본문 바로가기
세상읽기

세상읽기 - 새로운 마녀사냥/ 한반도/ 이란/ 상호교차성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8. 1. 17.

전지윤


종북몰이에서 반동성애, 반페미니즘 마녀사냥으로

 

출소 후 머리를 자르러 갔는데 미용실 아주머니가 묻지는 못하고 눈치가 좀 이상해서 제가 먼저 오랜만에 뵙습니다하니까 그분이 고생하셨다. 얼마나 억울했겠냐며 머리를 자르는 내내 위로의 말씀과 함께 감옥 생활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세탁소에서, 자주 가던 전파상에서 모두 손을 잡아주며 고생 많았다. 얼마나 억울했겠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4년 전에는 제 차와 아내 차에 붉은 페인트로 간첩이라는 낙서를 했던 이 동네의 민심이 4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 먼저 알아봐주고 손을 잡아주고 있습니다.”(‘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소식지. 2017.12월호)

 

매달 받아보는 소식지에서 이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4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가 지난 연말에야 나오신 이상호님의 글이었다. 4년 전의 그 억울함과 고통, 다시 나와서 사람들을 만날 때의 걱정 등이 느껴졌다.

 

마녀사냥을 당하고 누명을 쓴 사람의 감방 생활은 슬기로운’, ‘명랑한것이 되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몇 년을 더 감옥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남아있고 이번에 사면도 받지 못했다.

 

물론, ‘종북몰이의 약발이 예전같지 않다해도 아직 많은 사람들의 여론이 다 위의 동네사람들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다수여론이 지지하는 개혁에만 열의있고, 나머지는 눈치보기 바쁘다. 이것은 분명히 다수여론이 반대하는 개악마저 서슴지 않던 박근혜와는 다르다.

 

하지만, 여기서 여론과 변화를 만들어나가야 할 스스로의 책임과 역할은 실종돼 있고, 이것이 과연 촛불대중이 기대했던 모습일까. 이렇게 눈치보고 주춤하는 사이에, 종북몰이 바람이 세지지 않아서 짜증난 세력은 이제 반동성애, 반페미니즘라는 새로운 광풍을 일으키며 한동대에서 학생 징계, ‘까칠남녀에서 은하선 작가 추방 등 또 더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하고 있다.


 

혐오세력의 공격이 더 확대되고 있다


 

한반도에 대화의 바람은 계속 될 것인가

 

남북간에 대결과 긴장이 아니라 대화가 이뤄지는 것은 무조건 반갑고 좋은 일이다. 특히 전화와 통신선이 복원됐다니, 군사분계선에서 서로 확성기로 의사를 전달하던 소름돋고 웃픈 상황이 끝난 거 같아 한시름 놓게 된다.

 

바로 몇주전 상황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당시 미국무장관 틸러슨은 핵을 제거하기 위해 38선을 넘어가도 다시 38선 밑으로 돌아오기로 중국에 약속했다고 했고, 미국방장관 매티스는 주한미군 가족 비상철수계획을 마련했다며 한반도에 먹구름이 몰려온다고 했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과 불법 선상거래를 했다고 문제삼았고, 북한 해상봉쇄이야기도 나왔다. 김정은 신년사에서 핵 단추가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다고 하고, 트럼프가 내 버튼이 더 크고 작동도 한다고 답한 게 바로 얼마 전이다.

 

그랬다가 갑자기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니 어리둥절할 정도다. 문정부가 나름 노력한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고, 특히 한미군사훈련 연기 제안은 의미있었다. 여러 면에서 이 변화가 미국의 묵인이나 지지없이 이뤄지긴 어려울텐데, 실제로 트럼프는 약간 놀랍게도 남북대화를 지지하고 환영하는 입장을 밝혔다.

 

과연 이것이 트럼프의 가랑이 밑이라도 기어간 것이 낳은 성과일까? 그보단 북한이 핵무력 완성까지 선언한 상황에서, 미국이 당장 군사적 해결책을 선택하기는 부담이 크고 일단은 시간을 벌기 위해 이러는 것일 수 있다. 더불어 트럼프의 관심이 당분간 중동으로 집중된 결과이기도 한 것 같다.

 

최근 트럼프는 이란 핵합의 파기 시도,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수도 선언 등 중동지역의 기존 질서를 뒤흔들었다. 이에 따라 사우디 등 친미왕정들과 이란의 대립과 갈등도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한반도 문제를 일시적으로 봉합하고 싶을 수 있다. 2000년대 중반에 조지 부시도 이라크에 집중하며 남북대화를 허용하고, 파병 등 협조도 요구했다. 그 점에서 UAE 의혹을 봉합하며, 군사적 협력을 격상키로 했다는 최근 보도는 우려스럽다.

 

정말 유사시 한국군 자동개입 조항이 있고, UAE뿐 아니라 사우디, 카타르, 요르단 등 수니파 국가들과 비밀 협정을 맺었고, 현 정부도 그걸 따른다면? 그렇다면 이미 예멘에서 진행중인 충돌과 트럼프가 일으킬 중동의 군사적 분쟁에 우리가 말려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으로 한반도 평화를 얻는다던 참여정부의 논리도 생각난다.

 

, 트럼프에 맞서고 싸우면서 얻어낸 기회가 아니라는 게 지금의 한계다. 이것이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서도 한미일 동맹을 위한 어정쩡한 봉합을 낳은 듯하다. 성노예 문제도, 또 북한에서 올 미녀응원단과 언론의 호들갑도 생각하면 민족화해라는 이름 뒤에서 어떤 문제들이 가려질지 걱정되기도 한다.

 

한반도 파국을 부르는 요인들 중 우발적 충돌과 오판은 문정부의 노력으로 줄어드는 것 같다. 하지만 긴장을 낳는 객관적 구조라는 근본 문제는 여전하다. 미국은 지난 연말 발표한 신국가안보전략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경쟁자’, 북한과 이란을 불량 국가로 규정하며 압도적 힘으로 대응하겠다고 선포했다.

 

조만간 발표될 미국의 핵태세 검토보고서에도 방어에서 공격으로 핵무기의 유연한 사용이라는 대전환이 담길 것이란다. 트럼프는 올림픽 기간에도 항공모함 2척을 한반도 주변에 배치할 계획이고, 한미군사훈련도 중단이 아니라 연기일 뿐이라면, 북한의 부담도 여전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핵무력의 실질적 완성을 위한 실험을 거듭할 가능성도 여전하다.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남북대화를 방해하려는 미국의 의도와 행태는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 미국은 최근 괌에 장거리 전략폭격기 9대를 배치했고, 2월에는 ICBM인 미니트맨3의 시험 발사도 준비중이라고 한다. 틸러슨 미국무장관은 최근 밴쿠버 21개국 외교장관회의에 가서 북한 선박에 대한 해상 차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물론 어떤 정부도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다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정부는 이러한 객관적 구조의 문제는 별로 건드리지 않거나, 국방비 증액과 한미군사훈련 강화 등을 통해 오히려 악화에 일조해 왔다.

 

한미동맹 속에서 만들어진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하는 자유주의 정권에겐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까? 따라서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약간이나마 불어오는 지금이야말로, 반전평화를 위한 운동과 연대가 더욱 더 중요할 것이다.

 

 

이란 민중의 불만이 폭발하다

 

지난해 12월말에 마슈하드라는 도시에서 시작된 이란 민중들의 투쟁이 갈수록 활활 타오르며 번져가 왔다. 일주일만에 수도 테헤란을 포함해 40개가 넘는 도시로 번졌고, 부상자와 연행자도 수백 명에 달한다고 한다. 정권의 강경, 폭력 진압으로 사망자도 벌써 20명이 넘었다. 이 때문인지 일부 지역에서는 시위대가 무장하는 양상까지 나타났었다.

 

2009년의 녹색운동이 하메네이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에 맞서서 개혁파에 기대하는 성격이 강했다면 이번 투쟁은 보수파개혁파를 가리지 않고 기득권 세력 전체를 겨냥하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 보수파 정치인의 정치적 고향에서 시작해 주로 개혁파를 겨냥한 구호를 외치던 시위가 곧바로 걷잡을 수 없이 많은 도시로 확대되면서, 지배층 전체를 겨냥한 구호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개혁파인 로하니 정부가 집권하고 나서도 달라진 게 별로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로하니는 민주적 개혁보다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더 주력했고, 다국적 기업과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는 더 많은 시장이 열렸지만, 이란 민중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현재 이란 민중의 1/3이 빈곤선 아래에 있고, 저임금 고물가에 대다수가 막대한 빚에 허덕이고 있고, 청년실업률은 25%가 넘는다. 이란 노동자의 대다수가 기본적 권리도 보장받기 어려운 계약 노동자 신세다. 그런데 정권은 시리아 등에서 군사개입을 위해 수십억 달러를 낭비하고 있다는 게 대중적 불만이었다. 이 상황에서 기름값 50% 인상과 저소득층 보조금 삭감을 담은 정부의 새해 예산안 발표가 불을 당겨버린 것 같다.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로하니에게 죽음을”, “우리는 일자리가 없다”, “빵과 자유”, “노동자, 교사, 학생의 단결! 단결!”, “정치범을 석방하라등의 구호가 거리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시리아가 아니라 우리에게 돈을 써라는 군사개입 종식 요구도 나왔다. 공정한 선거 등을 요구했던 2009년보다 요구가 훨씬 급진화된 것이다.

 

특히 구호를 외치고 경찰과 싸우는 앞자리에서 여성들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이란 대학 졸업자의 60%가 여성이고 대부분이 졸업 후 실직상태라는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실업자, 노동자들이 폭넓게 시위에 참가하고 있고 많은 독립노조들도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미 이란에서는 지난 1년 동안 공무원, 교사, 간호사, 광산노동자, 제조업과 공공교통 노동자 등의 경제적 파업이 지속돼 왔다. 그것이 이번 시위들과 연결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고, 이미 교사 노동자들은 전국적 파업을 호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이란 지배세력, 특히 석유, 천연가스, 건설업 등을 손에 쥐고 혁명수비대를 앞세운 신정체제의 지배자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이란은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매우 다양한 이해관계와 집단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이다.

 

특히 트럼프와 이스라엘이 이란의 시위를 지지한다고 나선 것은 최악의 투쟁 파괴 행위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란 민중들이 트럼프나 이스라엘을 너무나 싫어하기 때문이다. 운동이 초기부터 강경 탄압과 폭력으로 얼룩진 것도 대중적 확대에 어려움을 줄 수 있다. 이런 훼방과 난관을 딛고서 이란 민중이 더 이상 누구도 희생되지 않으며 전진해 나가길 응원한다.

 

 

여성주의, 상호교차성, 사회재생산

 

성평등이 아니라 양성평등이라는 개신교-우파가 애초부터 평등에 관심이 없고, 기존의 남성지배적 젠더질서를 지키려는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남성인권연대양성평등연대로 이름을 바꾼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다.

 

이 젠더질서는 여성혐오와 차별만이 아니라 수많은 소수자들의 고통과 피해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일부 사람들처럼 여성과 소수자를 대립시켜 보는 건 큰 잘못일 것이다. 최근 <까칠남녀>의 성소수자 특집방송이 그토록 감동을 준 것도 이 때문이다.

 

같은 점에서 지난 연말에 사본 언니네트워크가 발행하는 매거진 <>쓰까페미특별판도 매우 유익했다. 특별판은 성소수자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여성혐오라는 해일 속에서 조개나 줍고 있는 행동인 것처럼 깎아내리는 또다른 해일-조개론을 정면으로 거부하면서 다양한 주장들을 내놓았다.

 

흑인 여성의 경험을 제외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장애인 여성의 경험을, 성소수자 여성의 경험을 제외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여성의 경험이 아니다. 그저 백인 비장애인 비성소수자 여성이라는 작은 집단의 경험일 뿐이다.”

 

정말, 누군가의 정체성은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도 한 가지 틀에 고정될 수도 없는 것 같다. 인터뷰에서 루인은 자신이 레즈비언, 트랜스, 바이 등으로 스스로 소개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자신이 무엇이라고 쓸지 자신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얼마 전에 본 존 콜트레인에 대한 다큐에서 콜트레인은 나는 재즈를 연주하는 게 아니다. 나는 콜트레인을 연주한다고 말한 것과도 비슷한 의미인 것 같다.

 

어떤 상황과 맥락에서는 소수자로서 차별받는 사람이, 또다른 상황과 맥락에서는 특권적 위치에 있을 수 있고, 이것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기억에 남는다. 상호교차성에 대한 이러한 논의는 항상 큰 자극과 영감을 준다.

 

가부장적 억압체제에 대한 분석들이 자본주의적 착취에 대한 기존의 일면적 분석이 놓쳐온 부분을 메워 왔다면, 상호교차성에 대한 분석은 이것을 뛰어넘어서 더 폭넓고 통합된 분석을 위한 길을 열고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가 더 낫고, 이미 모든 걸 설명해 왔다는 태도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 ‘기계적 유물론보다 변증법적 관념론이 더 낫다는 말이 있듯이 일면적인 마르크스주의 분석보다 상호교차적인 페미니즘의 분석이 현실을 더 잘 설명하는 것 같다.

 

물론 여러 방향의 교차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의 교차성과 복합성을 이해하고 사고의 책임을 구체적으로 따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런 교통체계와 도로, 자동차들은 처음부터 왜 어떻게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총체적 설명도 필요하다.

 

상호교차성을 넘어서 사회재생산 이론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은 그런 문제의식에서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도 가부장제나 상호교차성에 대한 앞선 수많은 고민과 노력, 성과에 대한 인정과 배우려는 자세를 바탕으로 나타나고 가능해진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기사 등록 2018.1.17)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newactorg@gmail.com / 010 - 8230 - 3097 http://anotherworld.kr/164


 '다른세상을향한연대의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저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전지윤  1002 - 452 - 402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