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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시리아 폭격/ 리비아 해법/ 김어준/ 마더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8. 4. 15.

전지윤


 

트럼프의 폭격은 시리아 전쟁의 해결책일 수 없다

 

트럼프가 414일 시리아의 수도를 폭격했다. 7년이나 끌어온 시리아 전쟁이 끝날 수 있을까하는 기대는 또 여지없이 무너졌다. 다시 시리아 민중은 아침에는 아사드의 폭격, 점심에는 서방연합군의 폭격, 저녁에는 러시아의 폭격, 중간중간에 이슬람국가의 처형이라는 죽음의 무한궤도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아사드가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비난이 곧 미국, 영국, 프랑스 군사력의 지중해 집결로 나타나고, 이스라엘이 먼저 미사일를 쏘고, 이어서 이번 폭격으로 이어졌다. 아사드는 화학무기를 써서 자국민을 학살하고도 남을 독재자이자 학살정권이다. 시리아 전쟁에서 죽은 50만명의 압도다수는 아사드가 죽인 것이다.

 

트럼프는 화학무기를 조작해 내서라도 폭격 빌미를 만들고도 남을 권력자이다. 베트남전의 시작인 통킹만 사건도 미국의 조작이었다. 죽어가는 시리아인들을 보고 트럼프의 없던 인류애가 갑자기 살아났을 리는 없다. 핵무기와 화학무기 등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실험해 온 것도 미국이다.

 

따라서 화학무기가 실제 사용됐는가, 그랬다면 누가 사용한 것인가는 지금 상황의 본질이 아닌 거 같다. 7년간의 전쟁과 학살로 만신창이가 된 시리아의 도시 위로 폭탄을 쏟아붓는건 절대 해결책이 아니라는 게 본질이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미국의 폭격을 우리가 상상할 수도, 지지할 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리아 민중에게 필요한 것은 식량, 의약품, , 민주주의와 평화이지 삶의 터전을 부수고 사람들을 죽이는 미사일과 폭탄이 아니다. 아사드와 그 하수인만 골라서 죽이는 멋지고 스마트한 폭탄”? 그런 것은 없다.

 

트럼프가 볼튼과 폼페이오 등으로 꾸린 전시내각의 용도는 더 분명해졌다. 석유와 패권이 걸린 중동에서 전쟁을 통해서라도 다시 과거의 지위를 되찾겠다는 것이다. 힘의 공백을 치고드는 러시아와 이란을 손보겠다는 것이다. 이제 5월에 이란 핵협정 파기는 확실해 보이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도 더 본격화할 것이다.

 

러시아 쪽으로 기우는 터키 등에게 확실한 경고도 보낼 것이고, 예멘에서 피에물든 전쟁중인 사우디에게 더 힘을 실어줄 것이다. 물론 80년대 아프간 전쟁에서 밀려난 후 그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어렵게 중동으로 돌아온 러시아도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지금 미, , 프 연합군이 다시 시작한 폭격과 군사적 개입은 러시아와 이란이 이미 시리아에서 계속 해오던 것이다. 이들 모두는 오로지 석유와 패권을 위한 더러운 게임’(이것은 결코 '그레이트 게임'이 아니다)에만 관심 있고, 그 게임은 시리아 땅에서 시리아 사람들의 생명을 판돈으로 벌어지고 있다.

 

지난주에 있었던 시리아 토론회에서 헬프시리아 압둘 와합 사무국장은 눈물만으로는 부족하고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했었다. 시리아 민중이 종파와 민족을 넘어선 단결로 나아가고, 중동에서 아랍의 봄이 다시 시작되고, 반전운동이 이슬람포비아를 극복하며 국제적 연대를 건설한다면... 하는 기대도 나왔었다. 그 꿈이 다시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리비아 해법의 진실과 한반도 평화

 

요즘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너무 싫은 조선일보, 자한당 등 냉전우파들은 북한에 리비아 해법을 강제하자고 주장한다. 이런 우파에 맞서서 리비아 해법은 틀렸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주장에 많은 부분 공감한다.

 

하지만 우파뿐 아니라 반대편의 분들도 몇 가지 부정확한 전제들을 공유하는 거 같아 아쉽다. 크게 3가지인데, 먼저 2003년말 당시에 리비아가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전제다. 이건 조지 부시의 거짓말이었다.

 

같은 거짓말로 부시는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했었는데, 나중에 후세인은 어떤 대량살상무기도 없다는 게 드러났다. 리비아의 카다피도 마찬가지였다. 이라크 전쟁이 초기부터 수렁에 빠지며 부시는 카다피의 대량살상무기 포기 선언같은 퍼포먼스가 필요했던 것이다.

 

둘째, 카다피가 서방강대국에 맞서왔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카다피는 2003년의 타협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 협조했고 특히 반이슬람 테러리즘전선의 일부였다. 다국적 기업들을 끌어들였고 신자유주의 정책에도 적극적이었다. 서방정부들과 긴밀한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고, ‘아랍의 봄이 리비아로 번졌을 때, 시위대를 죽인 무기와 총알들은 바로 서방에서 수출한 것이었다.

 

셋째, 2011년에 카다피를 무너뜨린 게 미국이란 것도 부정확하다. 그것은 2011년 아랍혁명의 일부였고 분명히 아래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튀니지에서 벤알리를, 이집트에서 무바라크를 무너뜨린 힘이 리비아로 번졌다. 벵가지에서 혁명위원회가 등장하고 전국으로 민중 자치가 확산됐다. 카다피가 학살로 나오면서 혁명은 무장항쟁으로 발전했다.

 

이때 서방강대국들이 개입해 혁명을 납치해 갔다. 미국 등은 아랍의 봄이 중동전체로 번지며 친미왕정과 독재정부들을 몰락시키는 걸 원할리 없었다. 튀니지, 이집트에서 못잡은 불길을 리비아에서는 잡으려 했다. 과도국가위원회에 친서방 인사들을 밀어넣고, 나토가 군사 개입을 시작했다. 서방 개입에 반대하며 민주적 혁명을 추구한 혁명가들은 제거됐다.

 

서방과 친서방 독재국가들에 의해 혁명은 교살당했고, 현재 리비아 서부는 카타르의 지원을 받는 집단이, 동부는 UAE의 지원을 받는 집단이, 남부는 이슬람무장집단이 통제하며 끝없는 혼란과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따라서 리비아의 진짜 교훈은 평화를 지켜줄 핵무기를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미국과 강대국들이 정말 싫어하는 것은 핵무기를 가진 독재정부가 아니다. 얼마든지 그들과는 손을 잡고 협력할 수 있다. 특히 친미정부라면 더더욱.

 

제국주의 지배자들이 정말 두려워하는 건 아래로부터 민중 저항이 폭발하고 그것이 곳곳으로 번져가는 것이다. 리비아는 그런 저항이 강대국의 군사개입으로 변질되고, 내부 분열 속에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이것은 시리아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북한정권은 60년대 중소분쟁 때처럼 미중 갈등을 이용해 줄타기를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북미수교까지 갈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제국주의 질서의 갈등이나 균형이 평화를 보장해 줄 거라고 믿긴 어렵다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 트럼프 정권은 내각 개편을 통해서 일종의 전시 내각을 꾸렸다. 경제민족주의자들과 매파들을 전진배치하며 군국주의적 아메리카 퍼스트로 중요한 방향전환을 시작했다. 새내각에서 중국과 한판 전쟁은 백인의 불가피한 사명이라는 스티브 배넌의 묵시록적 세계관이 부활했다고들 한다.

 

정점은 폭탄 먼저 던지고 질문하자는 존 볼턴의 임명이다. 하지만 존 볼턴도 미국에서 두 번째로 위험한 사람에 그친다. 트럼프가 언제나 첫번째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믿고 기다린다고 평화가 올 리 없단건 너무 명백하다.

 

 

오류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의 위험성

 

이재용 석방을 비판하고 이명박 구속을 촉구해 온 김어준 씨의 공을 인정한다고 해서, 그가 미투 국면에서 보인 잘못된 태도와 부정적 구실에 눈감을 순 없다. 요즘 미투에 나선 여성 주체들에게 가해지는 댓글테러와 가짜뉴스 등의 공격이 엄청난데, 가짜뉴스와 댓글공작에 대한 전문가로서 문제를 파헤쳐온 김어준이 여기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또하나 요즘 김어준에게 아쉽고 불편한 점은 자꾸 트럼프 노벨상운운하는 점이다. 단지 농담같지가 않고, 심지어 이에 필받은 뉴스공장 애청자가 트럼프 트위터에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고 댓글까지 달았다고 한다.

 

트럼프가 직접 좋아요까지 눌렀는데, 이후 그 청취자는 미국시민들로부터 많은 항의와 비판을 받았다. 미국 시민들이 얼마나 서운하고 열받았을지는 뻔히 알만하다. 이 정도면 뭐가 문제인지 알만한데, 아무 변화와 반성이 없다.

 

입장을 바꿔서, 삼성이 미국에 공장세운다고 미국 노조가 이재용에게 큰상을 주자고 한다면, 삼성에 맞서온 노동자나 반올림 등의 분들이 얼마나 열받고 서운할까. 일부에선 원래 노벨상은 엉터리니까 신경쓸거 없다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고은 시인 노벨상 운운에 열받은 사람들이 노벨상에 대한 엄청난 환상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 맥락과 의미가 문제다.

 

더 나아가 김어준 등이 태도는 너무 근시안적인 거 같다. 이란 핵합의 파기와 전쟁 불사, 이스라엘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등을 앞장서 주장해 온 폼페이오를 국무장관으로 임명한 것을 보면, 트럼프의 그림은 더 분명해지는 것 같다.

 

, 일단 중동에서 미국의 패권을 다시 확고하게 재구축한 다음에, 다시 동아시아로 돌아오려는 것일 수 있다. 러시아와 이란 등에 더는 밀릴 수 없다고 볼 것이다. 북한핵 문제는 임시 봉합되는 것일 수 있다. 이란 핵 합의 파기와 이스라엘 대사관 이전 등 속에서 얼마나 많은 아랍 민중이 고통받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시리아는 생지옥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노벨평화상 운운은 정말 부적절하다.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어떤 민족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 있지만, 다른 민족의 고통에 무관심한 어떤 민족도 평화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시리아를 절대 잊지 말아주십시오

 

다음은 지난 322일 광화문에서 열렸던 시리아 학살 중단과 평화를 위한 촛불집회에서 낭독된 시리아 현지에서 온 연대의 메시지이다.

 

우리는 자유와 평등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탄압과 고문과 강제이주를 당했습니다.

폭군 아사드와 그의 정권은 다양한 수단으로 우리를 짓밟았습니다.

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연행해 가고 여성과 아이들을 죽였습니다.

그는 우리 땅에 지구상의 괴물들과 그 괴물의 민병대들을 불러 들여왔습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자 폭군은 우리집을 폭격해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죽였습니다.

우리는 집과 고향마을과 도시를 떠나 시리아 안팎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현재 우리는 난민이 되어 천막을 치고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안락함이라고는 전혀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죽음이 사방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우리는 희망을 잃었고 안전과 믿음도 잃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유와 인간다운 삶을 쟁취할 그 날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포기했습니다. 국제사회의 관심도 줄었습니다.

그래도 한국 국민들은 지난 몇 년간 저희에게 도움을 보내주었습니다.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주신 것에 대해 한국 국민들께 감사드립니다.

저희를 절대 잊지 말아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먹을 것도, 학교도, 마땅히 입을 것도 없습니다.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저희를 절대 잊지 말아주십시오.

감사합니다.

 

- 2018. 3. 22

시리아 알레포에서 피라스

 

 

드라마 <마더>가 보여 준 사랑의 힘

 

드라마 마더의 여운이 아직도 잘 사라지지 않는다. 만약 계속 울음을 삼키며 뜨거운 감동 속에 긴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마더를 추천한다. 심지어 피피엘마저 짜증나지 않고 따뜻하게 느껴졌던 드라마. ‘정상가족의 신화를 박살내며 아동학대와 입양 등을 다루고, 신뢰와 사랑만 있다면 얼마든지 동반자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그려낸 드라마였다.

 

거기다 주요 등장 인물은 전부 여성이고 남성은 악역이나 거추장스럽거나, 여성 주인공의 조력자로 등장한다. 드라마에 나오는 대부분의 가족이 가부장이 없는 가족이고 그래서 더 좋게 보일 정도다. 연기가 모두 좋았는데 특히 아역 배우의 연기는 믿기 힘들 정도다.

 

계속 떠오르는 장면은 수진과 윤복이 항만에서 경찰들에 의해 강제로 뜯겨지면서, 서로를 애타게 부르며 울부짖는 장면이다. 또 하나는 쓰레기 봉투 속에서 엄마의 마음을 확인하고 짓는 혜나의 표정이다. 그 아픈 마음이 느껴지고 떠올랐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사랑이 같이 한다면, 아주 작은 일도 대단한 행복을 줄 수 있고,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윤복이에게 행복을 준 것은 돈까스와 오므라이스가 아니라, 그것을 누구와 같이 먹느냐였다.

 

그리고 엄마가 되는 것은 하나의 작은 존재에 자신을 모두 내어주는 것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아이도 엄마를 선택할 수 있고, 엄마도 태어나는 것'이란 대사도 나온다. 이건 모성의 신화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랑에 대한 정의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올 어바웃 러브>를 찾아 봤다. 거기서 벨 훅스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가 사랑이라고 정리한다.

 

사랑을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관심, 보살핌, 신뢰, 존중, 헌신, 솔직하고 개방된 소통이 필요하며 정의로움이 없다면 사랑도 싹틀 수 없다고 했다. 의지를 가지고 선택하는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사랑을 믿지않고 거기서 등을 돌리는 시대에 이런 드라마를 본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기사 등록 2018.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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