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서평) <트로츠키 사후의 트로츠키> ㅡ 세계를 해석하는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

시우

 

이 글은 국제사회주의경향 건설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던 토니 클리프(1917 2000)트로츠키 사후의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서평이다. 이 책은 클리프가 죽기 1년 전에 쓰여 졌다. 그는 정설 트로츠키주의자들의 현실을 대하는 왜곡된 프리즘에 도전했고, 그 결과로 국제사회주의 경향이 건설될 수 있었다. 이 책은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이론적 유산이 탄생하게 된 배경, 문제의식, 의의 등을 다루고 있다. 마르크스는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여러 가지로 해석해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혁시키는 일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또한 세계를 제대로 해석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릇된 실천과 좌충우돌을 낳을 것도 분명하다. 그런 운동은 필연적으로 역사에서 도태될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트로츠키주의 운동사는 혼란으로 채워져 있다. 잦은 분열로 사분오열되었으며, 일부는 혁명적 전통에서 이탈하기까지 했다. 이런 현상은 부분적으론 초기 트로츠키주의 운동에서 형성된 관성이 작용한 것이기도 하다. 초창기 트로츠키주의 운동은 분열의 역사였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소수파로서 지배자들의 탄압에 직면해야 했고, 동시에 운동 내에선 훨씬 강력한 세력인 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 배제되거나 억압당했다. 심지어는 스탈린주의자들의 물리적 공격까지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객관적 조건 속에서 급속한 사태 전개와 개혁주의 정당에 입당을 추진하는 등의 무리한 정책 전환 속에서 조직은 분열을 거듭했으며, 결과적으로 분파주의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클리프는 전후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위기의 핵심은 무엇보다 당대의 세계를 제대로 해석해내지 못한 점에 있다고 주장한다. “노동계급이 처한 실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 불가피한 결과라는 것이다.

트로츠키는 과도한 낙관주의에 기울어 있었다. 그는 죽기 전 몇 가지의 예측을 했다. 먼저 소련의 스탈린 체제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견디지 못하고 몰락할 것이다. 둘째, 자본주의는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셋째, 저발전 후진 국가에선 부르주아 민주주의 과제들은 노동계급 권력을 통해서만 달성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4인터내셔널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위의 예측들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의 사태전개와 들어맞지 않았다는 것이 점차 확실해져갔다. 소련은 몰락하기는커녕 전후 세계 최강대국의 반열에 진입했으며, 동유럽으로 세력을 확장하기까지 했다. 또한 전쟁 직후, 자본주의는 전례없는 장기호황을 맞이했다. 이 장기호황 속에서 완전고용, 노동계급의 생활수준 상승, 복지국가 등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중국 혁명, 쿠바 혁명 등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과제들은 농민 혹은 엘리트들에 의해 달성되었다.

하지만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트로츠키의 잘못된 전망에 천착했다. 전쟁이 끝났음에도 소련이 몰락하지 않은 것을 해명하기 위해 전쟁은 끝나지 않았으며, 소련이 초강대국이 된 상황임에도, 스탈린 체제는 위기에 직면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트로츠키는 소련을 변질된 노동자 국가라고 정의했다. 전후체제 속에서도 제4인터내셔널은 이런 주장을 고스란히 받아들였으며 사회주의 블록의 국가들을 분석하고 규정하는데 심각한 혼란이 초래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장기호황의 시대가 막을 올렸음에도, 그들은 자본주의가 안정되고 발전하는 새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확신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약화된 자본주의 속에서 호황은 곧 끝날 것이고 노동계급의 생활 조건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결국 세계 혁명의 파고는 높아질 것이다.

이 책 도입부에서 강조하듯, "마르크스주의자에게 으뜸가는 원칙은, 현실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의 변혁 운동가들이 계급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당대의 세계적 변화를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소련의 강대국화, 전후 장기 호황, 3세계 혁명의 이탈 등, 결국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이다.

 

전후 체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전쟁 이후 세계는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먼저, 소련은 미국과 더불어 제국주의의 양대 축으로 떠올랐다. 소련 경제는 급속한 성장을 이룩했으며, 동유럽의 군사적·지정학적 패자가 되었다. 미국은 NATO를 창립하고 자신의 동맹을 구축해 이에 대응하고자 했다. 이른바 냉전이 시작된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는 이른바 황금기를 맞이했다. 유례없는 장기 호황을 맞이한 것이다. 자본주의가 위기를 극복하고 드디어 풍요의 시대가 열리는 듯 했다. 호황이 끝날 무렵, 서방 각국의 생산량은 몇 배나 성장해 있었다. 노동자들의 삶도 상당히 개선되었다. 낮은 수준의 실업률이 계속 유지되었고, 실질임금이 향상되었으며, 복지가 확대되었다.

민족해방운동도 정점에 달했다. 중국, 쿠바 등지에서 정치혁명이 분출했고, 소련체체가 이룩한 급속한 산업화는 제3세계의 엘리트들에게 훌륭한 산업화 모델이 되었다.

클리프를 비롯한 소수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당대의 시대를 해석하는 작업에 투신해야 했다. 이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 개념들이 등장한다. 국가자본주의, 상시 군비 경제, 빗나간 연속혁명이 그것이다. 이 글에서 이 세 가지 이론을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시대적 맥락에 맞추어 간단하게 요약해보겠다.

국가자본주의론은 소련과 같은 현실 사회주의국가를 해석하기 위한 도구이다. 클리프는 소련을 변질된 노동자 국가가 아닌 명백한 계급 분할이 존재하는 모종의 자본주의로 규정했다. 클리프는 사적 소유 문제를 생산관계 문제와 떼어 놓고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소련의 사적 소유가 대거 폐지되고 국가소유가 압도적이었던 체제였다. 그러나 소유형태는 생산관계의 표현일 뿐이다. 생산수단과 생산과정의 통제는 관료집단에 의해 전횡되었다. 소련 경제는 서방 자본주의와의 경쟁적 축적에 종속되었다. 소련 체제에선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국가 소유로 대체되었을 뿐이지, 자본주의적 특징의 핵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클리프는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라고 규정했다.

상시 군비 경제 이론은 자본주의의 장기 호황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당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경기 회복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 반대편에선, 케인주주의 정책의 효과로 인해 자본주의가 안정적인 성장 궤도에 진입했다는 주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세계 자본주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고 냉전으로 진입하면서 경제 내부에선 강력한 군사 부문이 자리 잡았다. 미국의 군비 지출은 전쟁 전 GNP1% 수준이었지만, 전쟁이 끝났음에도 48년엔 4%를 차지했고, 냉전이 시작되면서 13%이상으로 치솟았다. 군비생산은 사치재 소비와 유사한 비생산적 소비로서, 새로운 생산수단에 대한 투자로 이어지지도 않으며, 소비에 기여하지도 않는다. 결과적으로 이런 체제는 이윤율의 저하를 상쇄시킬 수 있는 동력을 제공했고, 군사 부문이 거대한 경제적 완충지대 역할을 함으로써, 경기변동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빗나간 연속혁명 이론은 제3세계에서 분출한 정치혁명이 트로츠키의 연속혁명 정식을 벗어나면서 제기되었다. 트로츠키에 따르면, 제국주의의 굴레 속에 놓여있는 민족 단위에선 더는 혁명적이지 않은 부르주아지,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농민세력이 아닌 프롤레타리아만이 유일하게 제국주의 그리고 구체제의 잔재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세력이며, 프롤레타리아가 이끄는 민주주의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일국 단위에서 혁명은 완수될 수 없기에 후진국의 혁명은 선진국의 격변을 불러올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연속혁명은 이 정식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당대의 특수한 국제적 조건 속에서 농민과 지식인이 주축이 되어 부르주아적 과제를 성공시켰다.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면, 엉뚱한 세력이 나서서 국가자본주의를 추구할 수 있다.

국가자본주의, 상시 군비 경제, 빗나간 연속혁명은 당대의 세계를 설명해내기 위한 이론적 기둥들이었다. 국가자본주의는 소련과 동유럽을 설명하려는 시도였고, 상시 군비 경제는 선진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있으며, 빗나간 연속 혁명은 제3세계의 정치운동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였다. 세계가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듯이, 이 세 가지 분석은 국제적 틀 속에서 연관성을 갖추고 있다. 스탈린 체제의 생존은 상시 군비 경제가 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고, 3세계의 혁명이 국가자본주의로 일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또한 스탈린 체제가 생존함으로써 서방과 제3세계의 공산당들은 여전히 운동 안의 강력한 세력으로 남을 수 있었다. 공산당들이 수행한 역사적 구실을 고려해봤을 때, 결국 국가자본주의의 생존은 서방자본주의의 생존에 기여를 한 꼴이 되었다. 동시에 서방과 동방의 경쟁은 상시 군비 경제를 낳아, 장기 호황을 지속가능하게 했다. 클리프의 말대로 이 세 가지 이론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인류의 상황 변화를 파악하는 데서 하나의 총체를 이룬다.”

결국 이 세 가지 기둥이 하나로 모였을 때, 당대의 세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무기가 되었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할 때, 국제사회주의경향은 세계를 분석하는 것을 넘어 세계를 변혁하는 일에 도전할 수 있었다. 투쟁이 분출하는 시기에 적절한 입장을 제시할 수 있었고, 이는 성장의 동력으로 이어졌다. 운동의 침체기에도 급진좌파의 명맥을 유지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유산

 

자본주의는 본질적 특성상 끊임없이 변화하는 체제이다. 마르크스도 공산당 선언에서 주장한 바 있듯이, "생산의 계속적인 변혁, 모든 사회관계의 끊임없는 교란, 항구적인 불안과 동요"가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을 이룬다. 결국 클리프도 강조하듯이, 세계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이론인 마르크스주의도 항상 변화할 수밖에 없다. 역시 오늘날의 세계도 새롭게 이해되어야 한다.

국가 자본주의와 상시 군비 경제는 내부적 모순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없었다. 결국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몇 가지 토대가 붕괴하자 세계는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세계 경제는 다시 잦은 침체기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케인스주의는 순식간에 위기를 맞이했으며 신자유주의 공세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또한 소련-동유럽 블록은 붕괴했다.

이런 사태 전개는 전 세계의 운동, 특히 서구자본주의에서의 운동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강력한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의 중요한 물질적 토대였던 장기 호황이 막을 내렸다. 악화된 경제적 조건 속에서 운동을 건설하는 것은 사활을 거는 문제이기도 했다. 결국 신자유주의의 공세 속에 노동운동은 패배를 경험했고, 이 경험은 몇 차례의 승리의 경험으로 상쇄되기엔 깊은 상흔을 남겼다. 이런 상황이 어느 정도 장기화되면서 신자유주의는 노동계급의 삶 속으로 깊숙이 침투했다. 노동은 불안정해졌으며, 실업률이 치솟았고, 복지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노동계급의 운신의 폭이 좁아진 것이다. 여기에 겹쳐 동구권의 몰락은 좌파에게 이데올로기적으로 큰 타격을 입혔다. “대안은 없다는 신자유주의적 명제는 강화되었다.

이런 연속성 속에서 위기와 저항은 국제적으로 불균등하게 나타나고 있다. 21세기의 벽두에 반신자유주의 운동과 반전 운동이 거리에서 대거 분출했다. 경제위기 이후 아랍에서는 반란이 폭발했고, 이집트에서는 정치 혁명이 일어나 정권을 끌어내렸다. 유로존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그리스에서는 혁명적 수준엔 미치지 않지만 강력한 노동자 운동이 부상했으며, 스페인에서도 강력한 운동이 전개되었다. 반면, 다수의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에선 노동운동이 예전과 같은 활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유럽의회 선거에서 스페인과 그리스 등에선 급진좌파가 선전했지만, 프랑스와 영국에선 파시스트나 극우 세력이 최다 득표를 차지했다.

2008년 이후 세계 경제 위기가 시작되면서 노동계급과 대중들의 불만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균등한 조건 속에서 그 정서의 표현은 국지적으로 양상을 달리하고 있다. 또한 이전의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여러 가지 요인이 결합되면서, 저항 운동은 고전적인 준거만으로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클리프는 "엄청난 불균등성이 세계를 분열시킨다는 것과 함께 세계의 경제구조, 사회·정치에서 일어난 실질적 변화를 이해하면, 혁명가들이 변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가능성을 포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의 이 시기를 종합적으로 해석해내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좌파의 과제가 될 것이다.

지금 세계적 운동을 면밀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세계 경제위기의 불안정 속에서도 세계 자본주의가 대규모 공황은 모면하며 명맥을 유지하는 현 상황을 해명해야 한다. 또한 이 위기라는 것이 불균등하게 통합되어 있다는 점을 면밀히 탐구해야 한다. 또한 수 십 년간 지속되어온 신자유주의의 국제적 전개가 노동계급에 미친 영향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와 함께 소련-동유럽 붕괴 이후 재편된 국제적 질서를 추적해야 한다.

세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해야만, 오늘날 대단히 불균등하고 모순되어 보이는 운동의 성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시작으로, 오늘날의 변혁 운동가들이 현실의 노동계급과 새로 급진화한 세대에 뿌리내리고 사태에 개입할 수 있는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클리프의 이 책이 가진 진정한 의의일 것이다. 전후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트로츠키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도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좌충우돌과 혼란으로 나아가는 길이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현실 앞에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 현실을 이론으로 대체할 수는 없다.

결국, 그가 오래전에 했던 일이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작업이라는 것이다. 변화된 세계를 새롭게 해석하는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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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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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지윤 2014.07.07 1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쉽지 않은 책을 아주 훌륭하게 요약하며 핵심을 정리해낸 서평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결론 부분에 '현실을 이론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말이 다가옵니다. 정말이지 우리는 현실을 추적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론적 혁신을 시도하며 실천적 과제를 제시해야 겠죠. 사족을 달자면 '강력한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의 중요한 물질적 토대였던 장기 호황'이라는 말은 정확치는 않다고 봅니다. 경제 상황과 계급투쟁의 관계는 좀 더 복잡하니까요. 그리고 2차 대전 이후의 장기호황이 강력한 노동운동의 토대라고 말하기에는 난점이 있습니다. 유럽에서 투쟁이 가장 활발했던 때는 1차 대전 막바지, 30년대 대공황기, 2차 대전 막바지였고, 새롭게 투쟁이 분출한 때는 68혁명 이후, 즉 호황의 막바지와 불황의 시작이 교차하는 시기였으니요. 장기 호황은 사민주의적 계급타협 체제의 토대이기는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