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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오늘날 레닌의 혁명 전략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4. 7. 1.

폴 르 블랑(Paul Le Blanc)

번역 시우

 

[SocialistWorker(US) 편집자] 폴 르 블랑은 최근의 저작 끝나지 않은 레닌주의 : 혁명적 강령의 부상과 귀환(Unfinished Leninism: The Rise and Return of a Revolutionary Doctrine)을 포함해 레닌주의 관한 많은 책을 써왔다. 그는 뉴욕에서 개최된 레프트 포럼에서 오늘날 레닌의 혁명 전략 : 개혁, 선거, 의회 그리고 광의의 민주주의 투쟁의 패널로 참가해 발언했다. 어거스트 님츠 주니어 그리고 소셜리스트 얼터너티브(Socialist Alternative)[각주:1]의 타이 무어도 패널로서 참가했다. 이하는 그의 연설을 신문 발행을 위해 편집한 것이다.[각주:2]

 


21세기 들어 가장 흥미로운 사상적 발전 중에 하나는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사람들에게 레닌으로 알려진 혁명 이론가이자 조직가의 사상과 실천적 경험에 대한 관심이 갱신되고 자라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 중 일부는 레닌의 이론과 실천에서 도출된 관점들을 이르러 레닌주의라고 부른다. 레닌주의는 끊임없이 늘어나는 학술적 작업들에서 등장한다. 또한 종종 그 사상을 실천적 정치 활동에 창조적으로 적용하고자 하는 작업에서도 반영된다.

나의 글들을 모아 놓은 새 책 끝나지 않은 레닌주의에서, 나는 레닌주의는 끝나지 않았고 즉, 레닌주의를 이해하는 방식은 한 가지 이상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적어도 최소한, 지속적인 학술적 흐름이 존재함으로써, 레닌에 대한 정보와 통찰, 그의 역사적 맥락과 그의 사상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지금 시점에서 어떠한 책이든 간에 레닌과 그의 사상에 대한 결정판을 자처할 가능성을 봉쇄하고 있다.

하나의 사례는 존 리델과 그의 동료들의 초기 코민테른에 대한 여전히 진행 중인 연구 작업에서 찾아볼 수 있다. 라스 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풍부한 기여도 존재한다. 그들의 연구는 레닌의 러시아어 자료들을 우리가 더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최근 라스 리와 벤 루이스는 레닌의 동료인 그레고리 지노비예프(많은 이들에게 일부 정당화되기도 했으나 주로 비판의 대상이었다)의 부분적 재평가를 가능하게 했다. 이런 작업들은 지노비예프가 단지 레닌주의를 망쳐놓은 협잡꾼이라고 여기던 생각들에 도전하는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주요 추종자이자 독일 공산주의의 선구적 지도자인 폴 레비에 대한 저작들과 초기 학문적 탐구는 데이비드 페른바흐가 편집한 책 로자 룩셈부르크의 뒤를 따라 : 폴 레비 선집(In the Steps of Rosa Luxemburg : Selected Writings of Paul Levi)에 드러나 있다. 레닌을 수용했다가 이후 그를 저버렸던, 레비의 작업은 진지한 실천적 학자들에 의해 이제야 탐구되기 시작했다.

이런 작업이 곧 끝날 것이라는 징후는 없다. 난 다른 이들의 원고들을 자세히 읽어볼 기회를 가져왔다─헝가리어로 쓰여진 타마스 크라우츠의 흥미로운 새 작업이 번역되었다. 레닌의 재구성(Reconstructing Lenin)이란 책인데, 이 저작은 레닌에 대한 동유럽적 관점과 그곳에서의 논쟁을 추적할 수 있게 해준다. 먼슬리 리뷰 프레스(Monthly Review Press)에서 곧 출판될 것이다.

앨런 샨드로는 레닌의 사상에서의 독창적인 요소로서의 헤게모니 개념에 대한 중요한 해석을 했다. 곧 출판되길 바란다. 또한 레닌에 대한 연구로 적절히 흡수되기엔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최근 출판된 롤랜드 보어의 저작, 레닌, 종교와 신학(Lenin, Religion and Theology)은 주목할 만하다.

게다가 마르크스와 앵겔스의 정치사상에 중요한 기여를 해온 어거스트 님츠 주니어는 이젠 레닌을 전문적으로 다룬 연구를 발행했다. 그는 투표(The “Ballot”) 그리고 거리(“The Street”)라는 두 권의 책으로 선거 정치에 대한 레닌의 꽤나 진지했던 접근을 다루는 첫 번째 학술적 탐구를 제공한다.

 


 

우린 학술적 작업이 풍부해짐에 따라 레닌과 레닌주의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만만찮게 중요한 것은 레닌주의를 새롭게 적용하고, 때론 잘못 적용하며, 이것이 실천적 정치 경험으로 쌓여나갈 것이 기대된다는 것이다.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이 단지 현실을 해석하는 일에 매달리기 보다는 변화시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레닌주의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지금도 도정 위에 있는 인간해방을 향한 투쟁을 위해서 레닌주의를 끊임없이 활용하고, 정제하며, 풍부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 영역에서 소셜리스트 얼터너티브동지들의 새로운 기여는 이런 맥락에 놓여있다. 그들의 시도는 레닌주의의 민주적 갱신을 위한 논의에서 중심적인 지점이다. 이 실천적 경험은 분명히 어거스트의 연구와 연관된 것이지만, 라스 리가 수행했던 작업의 상당 부분에서 강조된 것과 관련되기도 하다. 소비에트의 세기 : 러시아와 유럽 사회민주주의 역사에 기반한 볼셰비키의 정치 전통과 조직(The Soviet Century: that the Bolsheviks' "political tradition and organization [were] rooted in the history of Russian and European Social-Democracy.")라는 책으로 권위적인 종합적 작업을 수행한 모셰 르윈과 같은 학자들이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과거 뿐 아니라 오늘날의 많은 서클들에서도, 레닌주의에 관한 꽤나 흔한 종류의 통념은 레닌주의와 명확히 반대되는 주장을 고집하고 있다. 이런 주장들은 베르트람 D 울프에서부터 레오나르도 샤피로, 리처드 파이프 그리고 로버트 서비스와 같은 학자들의 레닌주의에 관한 영향력 있는 해석에 바탕한 것이다. 이런 관점은 레닌을 권위주의적 엘리트주의자로 본다. , 레닌이 그의 제자이자 상속자로 여겨지는 이오시프 스탈린 하에 구축된 전체주의적 질서를 낳는데 주요한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통념들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요한 설명을 해야 했다. 레닌의 마르크스주의가 정치적 자유와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강력한 권력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레닌의 마르크스주의가 스탈린이 연루된 살인적인 관료주의 독재 체제에 길을 터줬다는 것을 부정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발언시간이 짧아 여기서 다 설명할 여유는 없겠지만, 통념에 대해 도전하는 풍부한 작업들이 있다.(레온 트로츠키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발전시켰다.)

반면, 아마도 독재 체제 하에서의 사회주의의 유망한 시작을 보길 바랐을 스탈린의 지지자들은 자연스럽게 레닌이 스탈린을 낳았다는 개념을 갖고 있다.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자 그 체제의 부정적인 특징들은 많은 이들에게서 레닌주의가 가진 신뢰를 대단히 약화시켰다. 사회주의와 혁명의 반대자들(그리고 한 때 혁명가였지만 지치고, 환멸에 가득 찬 이들) 또한 레닌과 스탈린 사이의 깊은 연관성을 강조한다.사려깊고 인간적인 사람이라면 고려해보길 원할 만한 혁명적 사회주의의 라는 전망을 차단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들의 이런 주장의 한 가지 문제는 충분히 사려깊지 못하고, 인간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미래의 혁명적 사회주의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 한다면, 정치적 자유, 진정한 민주주의, 만인을 위한 풍족한 삶은 미래의 일부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거다. [하지만] 레닌의 관점에 대해 전면적으로 부정하게 된다면 인류의 미래를 위해 헌신해온 이들의 노력을 망쳐놓을 것이다. 나는 잠깐 이 특별한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레닌]의 사상의 요체와 실천들을 조망해보고자 한다. 내가 보기에 이건 마르셀 리브만이 명명한 레닌의 레닌주의에서 핵심적인 것이다.



 

레닌의 작업의 핵심을 검토하면서 누군가는 사회주의자와 노동계급이 피억압자들의 투쟁을 지원해야 한다는 강조와, 개혁을 위한 투쟁과 혁명 전략을 통합해내는 방식에서 레닌 사상의 깊이와 일관성을 본다.

레닌이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의 필요성과 노동계급의 우위(또는 헤게모니)에 대한 필요를 강조한 것은, 만약 민주주의/개혁을 위한 투쟁의 승리가 임박한다면, 혁명적 투쟁의 핵심적 측면으로서의 사회적 동맹(예를 들어, 노동자소농 동맹)에 대한 그의 접근과 연관된다.

또한 우린 레닌주의의 핵심에 그가 발전시킨 공동전선 전술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공동전선을 통해 다양한 정치 세력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할 수 있고, 동시에 혁명적 조직들은 현재의 자본가들에 맞선 의미있는 대안을 내놓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자본주의의 발전과 제국주의 그리고 민족주의 대한 그의 심오한 분석은 마르크스의 분석을 활용해 그에 부연하고 어느 정도는 심화시킨 것이다.

레닌의 열정적인 혁명적 국제주의에 대한 지향은 전 세계의 노동자들과 피억압자들을 포용하고 있다. 민주주의 투쟁들이 사회주의 혁명으로 결합되도록 하는 방식에 대한 그의 놀라운 이해는 특히 인상적이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 사회주의 운동에 만연해있던 관점에 도전하면서, 레닌은 국가의 본질을 역사적으로 분석해 노동계급 투쟁의 승리가 민주주의의 심화와 확장을 낳을 것이고 궁극적으론 국가를 소멸시킬 것이라는 것을 개념화했다. 이건 마르크스와 앵겔스의 사상에 기반을 둔 것이지만 당시로서는 꽤나 혁신적인 작업이었다.

C.L.R. 제임스의 잘 알려진 다음의 요약은 고려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일당(一黨)국가에서 전위 정당의 이론과 실천은 레닌주의의 핵심 강령이 아니다. 핵심 강령이 아닐뿐더러 특정 맥락에서의 강령도 아니다. 볼셰비즘, 즉 레닌주의는 핵심적 강령들을 갖추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이론의 차원에서 야만으로 향하는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몰락을 예측한다는 점. 다른 하나는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숙련 그리고 규모 덕에, 오직 노동계급만이 야만을 막을 수 있고 사회를 재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실천이란 이런 목표들을 수행하기 위한 당을 조직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볼셰비즘의 핵심적 강령이었다.

 


 

레닌의 레닌주의의 핵심엔 혁명적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이 놓여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레닌주의에서의 그러한 요소는 러시아의 1917혁명 전야에 레닌이 권위주의 국가와 제1차 세계대전의 제국주의적 학살에 반대하는 대중을 동원하려 시도했을 때 더욱 심오해졌다.

레닌의 동반자이자 가까운 동지였던 나데즈다 크룹스카야는 레닌에 대한 회상에서 이 점을 강조했다. 그녀는 레닌의 1916년 에세이 마르크스주의와 제국주의적 경제지상주의에 대한 캐리커쳐그가 이후에 발언할 모든 것들을 결합한 사상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그의 글은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에서 민주주의의 역할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1930년대 스탈린의 관료적 독재 체제의 수립을 마주하며 크룹스카야는 레닌을 회상하는 중요한 책을 쓰며 레닌이 다음과 같이 한 말을 강조한다. “사회주의는 다음 두 측면에서 민주주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1.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부터 사회주의 혁명을 준비해오지 않았다면, 프롤레타리아는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할 수 없다; 2. 민주주의가 완전히 성취되지 않는다면, 승리했을지라도 사회주의는 승리를 유지할 수 없으며 국가가 소멸했을 때 인간적인 체제로 대체할 수 없다.”

1915에 쓰여진 에세이,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와 민족자결권에 이와 관련된 핵심적인 구절이 있다. 이 글은 매우 탁월한 관점들을 담고 있다.

하나는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과 노동계급 혁명의 동학을 개념화 한 것이다. , 민주주의 투쟁이 사회주의 투쟁으로 발전한다는 것으로 트로츠키의 연속혁명 이론과 많은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민주적 권리와 자유를 방어하고 확장시키는 것은 노동자들과 사회주의 운동의 중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개념을 심화시킨 것이다. 노동계급 운동의 발전에 있어서 핵심적인 것으로서 레닌이 열거한 쟁점들의 광범함 또한 매우 놀라운 점이다.

레닌의 그 구절은 다음에 있다. 길긴 하지만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프롤레타리아는 민주주의 투쟁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승리할 수 없다. , 모든 영향력을 민주주의 투쟁에 쏟아내고 민주주의 투쟁의 각 단계를 연결함으로써 민주주의적 요구들은 가장 단호한 조건으로 형성된다. 사회주의 혁명과 자본주의에 맞선 혁명적 투쟁을 단일한 민주주의의 문제, 이 경우엔 민족적 문제가 될 텐데 이런 문제로 대체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짓이다. 우린 자본주의에 맞선 혁명적 투쟁을 민주주의적 요구에 관한 혁명적 계획과 전술을 결합시켜야만 한다. 민주주의적 요구들이란 다음과 같다. 공화국, 민병대, 대중에 의한 관리 선출, 여성을 위한 평등한 권리, 민족의 자기결정권 등.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민주주의적 요구들은그것들 모두제한적으로만 성취될 수 있다. 그렇기에 불완전하고 왜곡된 형태로 성취될 것이다. 성취된 민주주의적 성과들에 우리를 기초시키고 자본주의 하에서 성취된 그 요구들의 불완전성을 폭로하면서, 우리는 자본주의의 전복을 요구할 수 있다. 또한 대중의 가난을 폐지하고 모든 민주주의 개혁의 완전한 전면적 시행을 위한 필수적 기초로서 부르주아지의 소유를 몰수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이런 개혁 중 일부는 부르주아지를 전복하지 전에 이미 시작될 것이다. 또 일부는 전복의 과정에서, 나머지는 전복 이후에 성취될 것이다.

사회 혁명은 단판의 승부가 아니다. 사회혁명은 모든 종류의 경제적/민주적 개혁의 문제들을 둘러싼 일련의 전투들을 포괄한다. 이런 과제들은 부르주아지의 소유를 몰수해야만 완성될 수 있다. 우리가 민주적 요구들을 성취하기 위한 모든 투쟁을 지속적으로 혁명적 방식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것은 최종 목표를 위한 것이다. 단 하나의 근본적인 민주적 개혁이라도 완전히 성취되기 전에 일부 특정한 국가의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지를 전복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가장 일관되고 단호하게 혁명적인 민주주의의 정신 속에서 훈련받으며 혁명을 준비하지 않고서는, 역사적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지에 맞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상상하기는 매우 힘든 일이다.



 

이제 노동계급의 혁명적-민주적 투쟁들을 전진시킬 수 있는 경로에 대한 질문이 나올 수 있겠다. 내 생각에 여기에 대한 답은 마르크스와 앵겔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윤곽을 그려놓은 관점을 레닌이 기본적으로 수용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공산당 선언은 기초적인 세 가지 활동 공간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마르크스와 앵겔스에 있어서 활동 공간의 하나는 임금 인상과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해 투쟁하는 작업장에서 건설될 노동조합 조직들을 포함했다. 두 번째 활동 공간은 당대 사회에서 긍정적인 사회 변화를 쟁취하기 위한 광범위한 사회 운동의 형성을 포함했다. 개혁 요구는 더 많은 민주주의, 인권, 그리고 경제적 정의에 대한 요구로 발전할 것이다. 그들이 제시한 세 번째 활동 공간은 노동계급의 정당, 즉 노동자 정당 건설이다. 노동자 정당은 민주주의 투쟁에서 승리로 이어질 것이고 정치적 권력을 노동계급 다수에게 부여할 것이며, 이 힘으로 점차적으로 사회주의의 경제적 민주주의를 쟁취할 것이다.

내 생각에, 위 내용은 어거스트 님츠의 레닌의 선거 전략에 대한 연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일반적인 개념적 가이드라인이다. , 이를 통해 우리는 소셜리스트 얼터너티브의 선거 개입 활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도, 우리는 이러한 일반적인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준거점들을 레닌 시대와-어떤 점에서는 다르고 어떤 점에서는 같을-우리 자신의 시대를 이해하는 데 참조해야할 것이다. 레닌의 접근은 혁명가의 견지에서 레닌과 그의 동료들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 내가 보기에, 매우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 대한 이해도 심화시켜 준다. 그리고 난 내가 발견한 레닌 시기와 오늘날 사이의 차이점의 주요한 측면들을 언급하면서 결론지을 것이다.

레닌이 활동하던 시절, 광범한 [전투적] 층위의 노동계급, 즉 의미있는 수준의 혁명적 계급의식을 갖춘 상당한 규모의 전위가 존재했다. 또한 여기에 더해서 러시아 뿐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노동자 정당을 포함하는 풍부한 노동계급 운동이 존재했다. 그 속에서 레닌과 그의 동료 사상가들은 하나의 조직된 조류로서 기능할 수 있었다.

우리의 시대엔, 레닌의 시절과 같은 노동계급의 전위 그리고20세기의 마지막 수 십 년간 극적으로 침식해 사라지다 시피 되어버린노동계급 투사들의 댜양한 조직적 표현체는 재구성의 과정 속에 있다. 하지만, 여전히 충분히 상당한 힘으로 결정체를 이루고 있진 못하다. 재구성이 충분히 이루어지기 전엔, 레닌이 이끌고자 했던 종류의 혁명 정당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고 존재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일부 자칭 레닌주의자들은 오직 자신들만이 혁명적 전위를 표현하는 양 행동한다. 이런 행동은 타리크 알리가 표현한 바 "속류 볼셰비키 정당"(toy Bolshevik parties)따위의 꼴로 귀결될 뿐이다. 이런 조직은 분파적 존재로 전락해버릴 운명이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피착취자들과 피억압자들의 해방 투쟁에 헌신하는 오늘날과 미래의 다양한 그룹과 개인들을 포용해야 하는 비분파적 접근은 진정한 레닌주의의 정신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우린 전위의 재구성과 사회주의의 경제적 민주주의로 이끌 노동계급 전위의 재창조를 촉진시킬 운동을 건설하는 데 힘쓰는데 있어서, 레닌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이런 이해의 발전은 우리 모두의 집단적 이해와 집단적 투쟁이 전진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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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역자]소셜리스트 얼터너티브는 사회주의자인 크샤마 사완트(Kshama Sawant)를 시의원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조직이다. 그녀는 당선에 성공했고, 미국 시애틀에서 최초로 사회주의자 시의원이 탄생해 화제가 되었다.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를 대자본을 대변하는 부르주아 정당으로 규정하고 자본에 맞서 독립적으로 노동자들과 투사들을 대변하는 것을 지향한다. 부족하긴 하지만 다음의 한겨레 기사에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611571.html [본문으로]
  2. 미국 ISO의 기관지 소셜리스트 워커에서 발행한 글로, 이 링크에 원문이 있다. http://socialistworker.org/2014/06/17/lenins-strategy-in-our-times)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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