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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5차 노동운동 세미나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4. 7. 2.

전지윤


* 이번에는 5회차 세미나였고 619했다. ‘산별노조 건설의 과정과 쟁점을 다룬 논문을 읽고 와서 토론했다. 내가 간단히 산별노조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관점에 대해 발제하고 토론했다. 변경된 계획대로 논문을 하나만 텍스트로 해서 토론하니 훨씬 여러 고민들을 충분히 토론할 수 있는 장점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날 있었던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을 나누었다. 뒤풀이도 최근 노동운동의 상황과 쟁점을 서로 공유하며 알차게 진행됐다.

이번 세미나에서 제기된 쟁점과 토론 내용을 아래에 정리했다.(정리의 편의를 위해서 질의 응답식으로 정리한 것이다실제로는 많은 부분 다양한 참가자들의 주장과 토론 속에서 나온 내용들이다물론 정리자의 주관이 많이 개입돼서 정리된 내용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논쟁됐던 내용에서도 양 쪽의 입장을 동등하게 정리했다기 보다 정리자의 입장으로 써있다는 점을 주의하라토론 때 충분히 정리되거나 답변되지 못한 점도 정리자의 의견으로 보충했다.)

 

* 산별노조가 꼭 더 큰 단결을 뜻한다고 볼 수 있는가?:

노조의 한계 내에서 기업, 업종, 부문의 차이를 넘어선 단결에 대한 염원을 반영하는 조직형식이 산별노조임은 분명하다. 예컨대 금속노조에서 기업 소속을 떠나서 실업자, 이주노동자에게도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는 규약이 있는 것이나, 각 기업의 조합원들이 낸 조합비를 중앙으로 집중해서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의 생계비로 지급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물론 중요한 것은 이런 조직형식 안에 계급적 단결과 투쟁이라는 내용을 채워넣는 것이다. 따라서 산별노조가 되면 노조 관료화와 체제내화가 더 심해진다며 산별노조를 반대하는 초좌파적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동시에 산별노조라는 조직형식이 자동적으로 계급적 단결과 투쟁을 보장한다는 조직형식주의적 접근도 경계해야 한다.


* 같은 산별이라도 노동조건 등의 차이가 큰 데 무조건 하나의 조직으로 묶는 게 바람직할까?:

그런 차이를 이유로 세분해서 조직하지 말자는 게 산별노조의 취지다. 그래서 이미 자동차 업종에서는 사무직이든, 판매직이든, 정비직이든, 생산직이든 다 하나의 노조로 통합해서 조직돼 있다. 더 나아가 비정규직과 부품업체 노동자도 하나의 11노조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런 단결된 조직 형태가 노동자들의 단결과 회사와 협상할 수 있는 힘을 강화한다. 따라서 차이를 이유로 더 폭넓은 단결을 뜻하는 조직형태를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물론 조직형식은 정치적 목적에 종속돼서 언제든지 구체적 상황에서 유연하게 변형될 수 있지만 말이다.

 

* 산별노조가, 그나마 산별노조가 아니었으면 조합원이 더 줄어들 수 있는 것을 막아낸 효과는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산별노조가 있었기에 건설일용직이나 청소노동자 등이 더 쉽고 부담없이 노조를 건설하고 가입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산별노조로의 전환 이후 10여년의 역사를 보면 비정규직과 영세작업장 미조직 노동자들의 대거 조직화라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몇 년간 비정규직의 노조 조직율은 오히려 조금 하락했다.

또 산별노조에서 주요 대형 노조 노조 지도부가 여전히 협소한 관점에서 기존 조합원 챙기기만 하면서 비정규직에게 노조 문호 개방과 연대 등을 회피해 온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산별노조가 무늬만 산별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지금 민주노총에서는 전략조직화사업에 큰 강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 교섭권과 파업권을 집중하는 것이 더 낫다고 봐야 하지 않나? 금속노조는 그나마 집중돼 있고 보건의료노조는 여전히 분산돼 있지 않은가?:

사실로 보자면 금속노조는 여전히 분산돼 있다. 금속은 부품업체를 중심으로 금속 중앙교섭과 투쟁이 마무리되고 나서, 자동차 4사의 교섭과 투쟁이 시작되는 구조이다. 자동차 4사는 여전히 기업별 노조 지도부가 교섭권과 파업권을 가지고 있다.

반면 보건의료노조는 102조 파문 이후에 이에 대해 비판적 제기를 하던 노조들이 다 탈퇴하면서 현재는 산별중앙 지도부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돼 있는 상태다.

 

* 그렇다면 이중교섭과 이중쟁의를 금지하는 게 옳은가 허용하는 게 옳은가?

일단 우리는 산별노조를 접근할 때 몇 가지 기준을 가지고 봐야 한다. 먼저 조직형식과 내용에서 우리는 산별노조라는 형식보다는 계급적 단결이라는 내용을 우선해서 봐야 한다.

또 교섭과 투쟁에서도, 산별노조가 교섭방식보다는 연대 투쟁의 방식이라는 점을 더 강조해야 한다. 또 산업별 노조 관료에게 권한을 집중하느냐, 기업별 노조 관료에게 여전히 권한을 남겨두느냐 보다는, 그런 권한을 어떻게 조합원들이 민주적으로 통제하느냐에 중심을 두고 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쟁점을 두고 시공간을 초월한 원칙을 정하기보다는 구체적 맥락에서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중교섭과 이중쟁의 문제를 보자. 먼저 금속중앙교섭에서는 자동차 4사 지도부는 비정규직, 부품업체 노동자들과 연대하지 않으면서 이중교섭과 이중쟁의를 하려는 것이다. 이럴 때는 그런 부문주의를 비판하는 게 옳다.

반면 보건의료노조에서 산별관료들이 중앙교섭을 타결지은 다음에, 그것에 만족하지 않는 지부의 투쟁을 가로막으면서 이중교섭·쟁의이라고 비난한 것은 지지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아가 우리는 일반적으로도 교섭과 쟁의는 산별이든 기업별이든 노조 지도부가 아니라 현장 조합원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 산별노조에서 사회적 연대를 위해 대기업 정규직의 이익을 어느 정도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어떻게 볼 것인가?: 

보통 사회적 연대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 투쟁은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그리고 정규직의 투쟁이 오히려 비정규직과의 격차를 벌리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투쟁이 아니라 교섭에서 정규직의 요구를 삭감·자제하자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확보한 재원으로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 사용하고, 그러면 지배자들도 양보를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것이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에서 계속 나온 논리였다. 이런 논리 속에 정규직 임금인상률은 계속 떨어졌고, 파업은 줄어들었다. 반면 보건의료노조는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조직한다거나, 비정규직의 투쟁에 연대하는 데서 소홀했다.

이런 논리를 이용해서 금속산업의 우파 현장조직들은 우리의 조건을 더 낮추자는 산별에 남아 있지말고 산별노조를 탈퇴하자고 선동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사회적 연대를 지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 2배 가까이 되는 정규직, 비정규직의 격차를 그대로 두고 보자고 해서는 안 된다. 그람시는 이탈리아에서 북부 노동자들이 남부 농민과 연대하고 계급투쟁에서 헤게모니적 지위를 갖기 위해서는 일시적, 부문적 이익을 양보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도 더 나은 조건에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과 피억압 민중과 연대를 위해서 일시적, 부문적 이익을 양보할 수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예컨대 한미FTA 반대 파업, 비정규직 연대 파업 등은 모두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 손해와 해고와 탄압의 위험을 감수하며 해야 하는 행동이다. 심지어 임단협 시기가 아니고 자신들의 경제적 요구와는 상관없는 문제를 가지고도 연대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 산별노조로의 전환하면서 작업장에서는 기업별 노조가 사라지고 현장위원회로 가야 한다는 주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

서구에서는 관료화된 산별노조가 중앙교섭을 통해 현장 노동자들의 불만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면서 개별 사업장에서 직장위원회 조직과 운동이 등장했다. 이 운동은 현장 노동자들에 의해 직접 선출된 대표자들이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의 요구를 대변하고 조건을 개선해 나갔다.

이 나라에서는 기업별 노조가 산별노조로 전환하면서 권한이 산별중앙으로 집중되고, 기업별 차원에서는 더 이상 지도부가 교섭 권한을 갖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 작업장에서 조합원들에 의해 선출된 현장위원들이 조합원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교섭보다는 투쟁을 조직하는 구실을 하게 될 가능성을 봐야 할 것 같다.

 

* 전교조 판결에 대해 노연의 성명서는 너무 법원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환상을 담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관점이다보니 법원 판결을 기다린 약점에 추수하게 된 것 아닐까?:

양 편향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는 법원이 공정하고 중립적이라는 환상을 부추기는 태도이고, 하나는 원래 법원이 그렇지 하면서 대중의 분노에 공감하지 못하고 제대로 폭로하지 않는 태도이다. 노연의 기사도 이런 관점에서 공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전교조 판결에서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이 판결에 분노하는 대중에 공감하고 지배자들을 폭로, 규탄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다른 노연 등 좌파들의 입장에 대한 평가로 가야 한다. 한편, 노연이 법원 판결을 기다리자고 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노연은 오래전부터 법원 판결을 기다리지 말고 연가파업 등 단체행동을 통해 법외노조화 공격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연의 주장을 면밀히 추적하면서 사실에 입각해서 옳은 점과 틀린 점을 공정하게 지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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