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사회적 붕괴와 기후 파멸


조나선 닐(Jonathan Neale)

번역: 두견

 


[기후 붕괴를 이해하며 슬픔과 분노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지혜가 시작된다. 전 세계에 걸친 사회적 붕괴 앞에서 우리는 급진적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이 글의 필자인 조나선 닐은 인류학자, 동화 작가, 등산가, 에이즈 환자들의 조력자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사회주의자로서 <기후변화와 자본주의>, <미국의 베트남 전쟁>, <두 개의 미국> 등의 저서가 국내 번역돼 있다. 근래에는 ‘1백만 기후 일자리등의 캠페인을 주도하며 기후변화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해 왔다.]

 

출처:

https://theecologist.org/2019/may/08/social-collapse-and-climate-breakdown?fbclid=IwAR1jkYHEI53yxp7yUFeZrx2vLJB3YQtwGBGtvC1l0fKSBxXYY1YxQyvQZJs



 


35만 명을 넘어서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젬 벤델(Jem Bendell: 컴브리아대학교 교수) 의 논문(https://www.lifeworth.com/deepadaptation.pdf)을 다운로드 받았다. ‘깊은 적응: 기후 비극을 탐색하기 위한 지도’. 여기서 나는 벤델이 말한 사회적 붕괴를 발전시키고 싶다. 그러나 우선, 그의 연구 논문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벤델이 말하는 세 가지 중요한 진실을 알아야 한다.

 

세 가지 진실

 

첫째, 기후 변화는 과학자들이 예측한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중 몇 명의 일생 동안에 상황은 매우 더 나빠질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나쁜지, 얼마나 빨리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알 수 없다. 벤델이 말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정치적 확신에 따른 예측에 기반하고 있다. 그건 내가 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진실이다. 벤델은 사회적 붕괴가 불가피하고, 재앙이 일어날 개연성이 높고, 멸종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두 번째 진실. 과학자들은, 많은 이유로, 기후 변화의 위험과 정도를 과소평가하라는, 군중들을 겁먹게 하지 말라는 지속적인 압력을 받아왔다. 비정부 기구들은 재앙의 규모를 감추고, 문제를 풀 수 없는 해결책을 추진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부 및 기업과 타협해 왔다. 과학자들과 NGO들은 그들의 자금 제공자들이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렇게 했다.

 

세 번째 진실: 벤델은 무엇이 다가오는지 받아들이는 것이 처음에는 어렵다고 말한다. 나도 그것을 발견했다.


기후 정치들

 

나는 프리랜서 작가로 처음 기후 정치에 관여했고 2004년에 나는 기후 변화에 대한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나는 이 문제가 흥미있을 것이고 돈벌이 기회도 있을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이다.(하느님 용서하소서) 나는 기후 변화에 반대해 운동하는 기후 행동 단체에 참여했고 관련 글들을 읽기 시작했다. 몇 달 후부터 나는 몇 달 동안 거의 매일 밤 똑같은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그 악몽 속에서 나는 어떤 사람들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듣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관해 내가 읽고 있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가지 이유는 내가 과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관련된 숫자를 이해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이미 사회적 붕괴를 이해했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빴다. 그 후 4년 동안 나는 우리가 행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알고 있었다. 2009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엔 기후회담이 끝날 무렵, 금요일 점심시간에, 나는 버락 오바마가 방금 다른 정부들이 동의하도록 만든 합의문의 내용을 읽었다.

 

이 문서는 교토 의정서를 종결시켰고, 따라서 앞으로 어떤 정부도 강제적인 배출 감축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정부는 그들이 원하는 삭감이나 증액을 선택할 수 있었다. 2015년 파리 회담은 이를 2035년까지 연장했다. 나는 오바마가 무엇을 한 것인지 즉각적으로 이해했다. 그 텍스트는 한 세대에 걸친 행동의 가능성을 종식시켰다. 그때부터, 나는 사회적 붕괴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기억들

 

두 가지 추억이 자꾸 떠오른다. 당시에 나는 6살이었다. 딜런 씨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인도 펀자브에 있는 도시 루디아나에서 우리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딜런 씨는 그의 부모가 그들의 집 아래, 즉 현관 아래 무슬림들을 숨겨주었던 칸막이를 나에게 말해줬다. 딜런 씨는 내 위에서 나를 쳐다보며 미소지었다. 나는 그가 왜 자랑스러워하는지, 그의 주위에 어떤 끔찍한 비극의 기운이 존재하는지 이해했다.

 

그는 그들이 무슬림들의 생명을 구했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그 나이 때의 기억이 거의 없지만, 그것은 기억이 난다.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분단은 그 당시에 오래된 역사가 아니었다. 나는 한 살을 더 먹어서 일곱 살이 됐다. 딜런 씨가 내게 한 말은 그가 아는 다른 사람 중에 단지 그의 부모만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에게 중요한 것이었다. 펀자브에서 몇 주 동안 100만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그들 중 절반은 무슬림에 의해 살해된 힌두교도들과 시크교도들이었고, 절반은 힌두교도와 시크교도가 살해한 무슬림이었다. 나는 우리 같은 사람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대량학살에 동참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자랐다. 그리고 우리 중 극소수는 딜런 씨의 부모처럼 될 만큼 운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그들의 예를 따르라고 말했던 것이다.

 

끔찍한 기근

 

다른 기억은 내가 스물세 살 때인데, 당시에 나는 아프가니스탄 남서부 라슈카르가 마을에서 첫 현장 연구를 시작한 젊은 인류학자였다. 저녁 식사를 하러 시내에서 유일한 호텔로 되돌아가던 나는 길가에 서 있는 10대 소년을 지나쳤다. 그는 조용히 무언가를 말했다. 그가 한 말을 이해할 때쯤에 이미 나는 그를 훨씬 지나쳐와 버렸다.

 

그것은 내가 수업 밖에서 이해한 최초의 아프가니스탄어 문장이었기에 나는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가기엔 나는 너무 당황스럽거나 부끄러웠다. 그는 말했다. “나는 배가 고파요.” 라슈카르가의 북쪽에서 무서운 기근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몇 주 안에 그 소년이 그 기아의 피난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기근은,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바로 기후 변화로 인한 가뭄 때문이었다.

 

모든 기근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불평등과 폭정에 의해서도 야기되었다. 그 나라의 북부에서 정부는 해외 원조 곡물을 전달했다. 지역 관료들은 굶주린 사람들이 음식을 얻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한가운데 있는 곡식더미 주위에 무장한 병사들을 배치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지방 관료들로부터 보통의 다섯 배나 열 배가 되는 가격으로 밀을 사기 위해 그들의 땅을 부자들에게 헐값으로 팔았다. 팔 땅이 없는 사람들은 죽었다.

 

끝없는 비통함

 

내 친구 마이클 배리는 굶주린 사람들에게 왜 곡식 더미를 덮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말했다: "왕은 전투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 그들이 와서 우리를 폭격할 것이다." 그것은 미국에서 훈련받은 조종사들이 운행하는 러시아제 비행기였다. 미국 원조당국은 그들의 원조한 곡물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카불에 있는 멋진 집에서 스카치를 마시면서 미국 원조당국 운영자의 아내와 딸이 나에게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안다.

 

그들은 남편과 아버지에게 뭔가를 하도록 아무 것도 시키지 못해서 화가 나 있었다. 나는 그 이후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 이야기를 여러 번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나는 내가 죽는 날까지 지루하게 그것을 계속 말할 것이다. 나는 심각한 기후 변화가 어떤 느낌일지, 그리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이미 어떤 느낌인지에 대해 중요한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사실을 말하고 있다. 아무도 감히 그 곡식 더미를 덮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왕의 사촌인 '좌파 독재자' 다우드가 2년 후에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아무도 왕을 위해 죽지 않았다. 기근으로 그는 형제살육의 표적이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 후 공산주의자들이 다우드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키자 왕의 사촌인 다우드를 위해 싸우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그 이후의 아프간 정치 이야기는 끝없이 복잡하다. 그러나 그 방향은 분명하다: 전쟁 후의 전쟁, 배신 후의 배신, 끝없는 슬픔. 항상 그 배경에는, 중앙아시아 전역에 걸친 수십 년 동안의 가뭄이 있다.

 

사회적 붕괴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을 기후변화로 축소하는 것은 잘못된 일일 것이다. 다른 많은 관련자들과 많은 강대국들, 이루 말할 수 없는 러시아와 미국의 살인적인 침략들, 그리고 부정직하고 탐욕스러운 반군 지도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세상에서는 기후변화가 점점 더 그러한 비극의 추동력이 되고 있다. 칸막이에서의 학살과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은 대부분의 영국인들이 '사회적 붕괴'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바가 아니다. 벤델 자신은 충분히 명확하다: "기아, 파괴, 이주, 질병과 전쟁." 그의 말이 맞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디스토피아 영화에서 계속 보는 것이다. 거기엔 길거리를 배회하고, 공포에 질린 채 쓰레기를 뒤지며, 궁지에 몰려 어둠을 피하며 일시적 친구를 만드는 야만인 무리들이 나온다. 그것은 결코 쉽게 같은 것이 될 수없다. 무질서한 야만인들에 대한 환상은 17세기 영국의 추악한 지배계급 사상가 홉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오직 국가에 의한 확고한 통제만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막는다고 믿었다.

 

이것은 모든 엘리트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지속된 환상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가장 깊은 두려움은 나머지 사람들이 그들의 강력한 손아귀에서 느슨하게 놓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특권을 가지고 자란 사람들에게 여전히 어필하는 환상이다. 이것은 기후변화가 "시민 불안"을 의미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국방부가 우리에게 알리고 있는 환상이다. 나는 우리가 치솟는 기후 변화에 시민 저항으로 함께 반응하지도 못할 정도로 타락한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수백만 명의 죽음

 

'사회적 붕괴'에 대한 이러한 견해의 가장 영향력 있는 주창자는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였다. 많은 내 친구들은 그의 책을 기후에 대한 경고로 보기 때문에 그의 책 <붕괴>를 좋아한다. 그러나 사실 그는 문명이 환경을 너무 심하게 압박했기 때문에 어떻게 암흑시대로 추락했는지에 대해 역사적으로 부정확한 이야기를 연달아 한다. 이 이야기들 중 대부분은 한 인구집단이 어떻게 폭정을 타도하고 더 작은 규모의 해방적 공동체에서 다시 살아왔는지에 관한 것이다.(Patricia NcAnanyNorman Yoffee<붕괴>에 대한 의문을 참조하라.)

 

하지만 우리가 직면할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후변화의 '사회적 붕괴'가 어떻게 나타날지 알 수 있을 만큼 현대사에서 공포의 경험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6천만 명이 죽었던 20세기 중엽을 생각해 보자. 아마도 우리가 직면하게 될 것에 비하면 적은 숫자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하는데 유용하다. 6천만 명 중에서 스탈린그라드의 킬링필드를 생각해 보라. 사망한 6백만 명의 유태인과 집시들. 애틀리와 처칠의 정부가 곡식이 아닌 전쟁 물질을 이동시키기 위해 인도 철도가 필요하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벵골 기근에서 죽은 2, 300만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일본군이 같은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베트남 북부에는 100만 명이 기근으로 죽었다.

 

북중국에서 기근으로 죽은 3백만 명 정도의 사람들. 그리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죽은 사람들이 있었다.(미 공군은 두 도시를 폭격했다. 왜냐하면 첫 번째 폭탄으로 이미 전쟁에서 이겼지만, 그들은 여전히 실험해야할 또 다른 폭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는 거의 모든 일본 도시들에서 원자폭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인 소이탄에 대해 생각해 보라. 대부분은 더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스탈린의 추방과 수용소도 모두 있었다. 인도의 칸막이에서 살해된 자들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보면 낡은 유니폼을 입고 죽었다. 수천만 명이 여기저기서 강간당했다.

 

녹색 불평등

 

이 수치들은 모두 근사치이다. 아무도 제대로 세지 않고 있었다. 그 공포들 중 거의 어느 것도 폐허를 헤매는 소수의 야만인들이 저지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국가와 대중 정치 운동에 의해 저질러졌다. 사회는 붕괴되지 않았다. 그것은 부서지지 않았다. 사회는 격화되었다. 권력이 집중되고 갈라졌고 그 힘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를 죽이게 했다. 기후 사회 붕괴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우리가 운이 좋으면 과거보다 다섯 배가 죽을 것이고, 운이 좋지 않다면 스물다섯 배가 죽을 것이다.

 

이것을 기억하라. 왜냐하면 폭주하는 기후 변화의 순간이 당신이 살고 있는 곳으로 찾아올 때, 그것은 떠돌아다니는 소수의 장발 폭주족같은 형태로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리에 서 있는 탱크들과 군부나 파시스트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올 것이다. 그 장군들은 짙은 녹색의 언어로 말할 것이다.

 

그들은 저성장과 지구의 생태학적 한계에 대해 말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너무 많이 소비했고, 너무 욕심을 부렸고, 이제 어머니 지구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맬 것이고, 우리는 고통을 겪을 것이고, 그들은 새로운 종류의 총체적인 녹색 불평등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생태학적 자유낙하의 세계에서, 그들의 불평등을 제자리에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례 없는 규모의 잔인함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 후손들

 

우리의 새로운 통치자들은 새로운 인종주의의 불길을 부채질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왜 벽 반대편에 있는 굶주린 노숙자들의 무리를 막아야 하는지 설명할 것이다. ,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그들을 쏘거나 익사하게 놔둬야 하는지 말이다. , 불행하게도, 벽의 반대편이나 해협을 가로질러 사막에 있는 난민 수용소를 위한 식량은 바닥나 있는지. 왜 이쪽 벽의 사람들과 같아 보이는 저쪽 벽의 사람들이 우리의 적인지. 왜 우리가 전쟁을 해야 하는지.

 

그런 목소리들은 지금 우리 주변에 있기 때문에 쉽게 들을 수 있다. 나는 손주들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벤달의 타이밍은, 내 생각에 맞는 것 같다: "지금 살고 있는 그 사람들의 생애 안에"라고 그는 말한다. 12년 안에는 안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매우 아마도, 내 손주들의 생애 동안에. 물론 나는 그들이 죽을까봐 걱정한다. 하지만 내가 진짜 두려워하는 건 그게 아니야. 나는 그들이 무엇을 볼 것인지,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할지에 대해 더 걱정한다.

 

떠돌아다니는 야만인들에 대한 통상적인 이야기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이것은 국가를 숨기는 거짓말이다. 그것은 또한 딜런 씨가 나에게 말한 것을 은폐한다. 그것은 우리의 이웃들이었는데, 그는 여섯 살짜리 조나단()에게 말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에게 중요한 것이었고, 내가 알았으면 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신의 자녀들, 또는 당신의 손주들이 될 것이다.

 

가해자가 되는

 

사람들이 사회적 붕괴 속에 살고 있는 곳을 보면, 당신은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리아의 최근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왜 누군가가 기독교 암살단, 헤즈볼라 암살단, IS 암살단, 미국의 호출 속에 수니파 무슬림들의 앞에선 쿠르드족 정찰대, 미국 특수부대, 러시아 조종사, 하얀헬멧과 함께 생명을 구하는 간호병, 자유시리아군의 병사, 응급실에서 생명을 구하는 아사드군의 간호원, 아사드 고문 수용소의 죄수, 심문관 또는 지중해 해안에서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아버지의 위치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지 이해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소말리아에서 지난 40년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이해하고 있다. 출생과 경험의 우연이 너무 많다. 신의 은총이 없었다면 나도 저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올바른 선택과 잘못된 선택이 있다. 그 차이가 중요하고, 그들 사이에는 피가 흐르는 강이 있다. 그러나 당신은 자신, 또는 당신이 사랑하는 누구도 옳은 쪽에 있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없다. 그것은 비극의 일부분이다.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다르푸르, 남수단, 에리트리아, 이라크, 아이티, 콩고, 그 나라들의 대부분의 역사에는 침략이 있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미국의 침략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콩고를 제외한 모든 나라들에는 이미 심각한 기후 변화가 있다. 기후 변화가 아직 그들 대부분에서 붕괴를 초래하는 주된 요인은 아니다.

 

다르푸르와 차드만 빼고.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미친듯이 복잡하고, 부분적으로 중국과 미국 사이의 대리 석유 전쟁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그러나 1968년 다르푸르와 차드에서는 비가 오지 않았고, 기후가 제대로 돌아온 적이 없다. 어떤 해는 더 나았고, 어떤 해는 기근을 위협했다. 그 동안 일어난 일은 사라져가는 풀들을 위한 목축업자들과 농부들 사이의 전쟁이었다.

 

사회주의적 해결책

 

절대 순수한 기후변화의 공포를 기대하지 마라. 항상 그것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피와 오물로 가득 차서 도착할 것이다. 과학자들과 환경주의자들은 기후 변화의 문제를 발견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그것에 대해 모두 말했다. 대단한 일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멋도 모르고 지옥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이것은 대단한 업적이다. 그러나 과학자들과 환경보호론자들은 보수적인 사람들이다. 녹색 운동은 대부분 백색이고, 대부분 우아하며, 주로 부유한 북쪽에 있다. 많은 환경보호론자들의 깊은 소망은 소기업인이 되는 것이다.

 

지금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세계 남쪽에 있거나, 가난하거나, 부유한 나라의 유색인종이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가난한 나라들에서 여전히 미미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해결책은 사회주의적 해결책이다. 노동조합 운동가들이 항상 좋아했던 종류들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를 재정비하기 위해 15천만 개의 기후 일자리가 필요하다. 기업 일자리가 아니라 공공부문 일자리가 말이다.

 

정치적 대안

 

그러나 노조는 거의 어제까지도 기후변화에 대응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회주의자들은 훨씬 더 적게 했다. 이 분열에는 두 가지 가능한 반응이 있다. 하나는 다른 쪽과 갈라서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 그리고 노동조합주의자들은 멸종반란은 기후정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무리의 상류층이라고 지적한다. 환경론자들은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조합원들이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또 다른 정치적 대안이 떠오르고 있다. 나는 노동조합이 한 일의 일부였고, 그것은 작았지만, 나는 전 세계의 학생 파업 참여자들이 우리의 주장을 따라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그들은 '그린 뉴딜'과 기후 일자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치에 맞는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그레타 툰베리가 총파업을 촉구했다고 들었다.

 

이것은 세계의 모든 노조, 기후 운동가들에게 아찔하고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시간이다. 우리는 해결책이 있다. 모두에게 말해라. 더 나아가 친구들을 문 밖으로 데리고 나가라. 지난 달의 또 다른 소식 한 가지. 모잠비크의 '지구의 벗' 코디네이터는 사이클론이 기후 변화 때문이라는 것을 그곳의 모든 사람들이 이해한다고 썼다. 과장해서 말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곳의 많은 사람들이 이제 이것을 알고 있다. 이 지식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기후 일자리

 

1943년 기근이 벵갈을 덮쳤을 때 영국 식민지 정부에 반대하는 인도 국민회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연결은 복잡하지만, 그래서 4년 후에 칸막이 대학살을 보게 된 것이다. 1945년 초 기근이 베트남 북부를 강타했을 때, 산속 정글에 있던 작은 무리의 공산주의자들이 도시로 내려와 곡식 저장고를 점령하려는 군중을 이끌었다. 1년 안에 그들은 북부지역을 통제하게 됐다.

 

지금까지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대부분 신을 탓했다. 나는 이런 꿈을 꾼다. 모잠비크, 남아프리카, 또는 어느 곳에서든 붕괴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미국 대사관으로 행진한다. 그들은 그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많지 않은 양의 돈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들은 미국인들을 위해 8백만 개의 기후 일자리를 요구한다. 그리고 남아프리카에서는 백만 개의 기후 일자리를 요구한다.

 

나는 종종 NGO 사람들과 환경 운동가들 앞에서 이 꿈을 언급해 왔다. 그들의 고개는 납 풍선처럼 아래로 내려갔다. 그들은 그들이 기부금 제공자들의 손을 물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군중들의 분노를 두려워한다.

 

불확실성

 

폭풍으로 인한 백만 명의 희생자나, 농작물이 죽는 것을 지켜본 백만 명의 농부들을 상상해보라. 거리에서 그들의 분노를 상상해보라. 뭐든지 발생할 수 있다. 군인들이 군중을 학살하거나 발포할 수 있다. 아니면 그렇지 못할 수 있다. 군중들이 대사관 사람들을 폭행하거나 그렇지 못할 수가 있다. 워싱턴 DC의 흑인들은 백악관으로 행진할 수도 있다.

 

여기에 또다른 불확실성이 있다. 아마도 우리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되먹임과 급격한 기후변화를 가져오는 한 가지 티핑포인트는 없을 것이다. 티핑포인트는 많을 것이고, 각각은 앞서 마지막의 것보다 더 나쁠 것이다. 석탄, 석유, 가스로부터의 이산화탄소 배출이라는 핵심 요소가 되먹임의 기본 동력이다. 그것이 늘어날수록 되먹임도 많아진다.

 

육지 공룡을 멸종시킨 백악기[13,500만 년 전부터 6,500만 년 전까지] 말기의 대량 멸종은 끔찍했다. 그러나 페름기[27000만 년 전부터 23000만 년 전까지의 지질시대] 말의 대량 멸종은 지질학사에서 다른 큰 멸종보다 훨씬 더 나빴다. 왜냐하면 동력들이 더 심각했기 때문이다. 각 지점에서 우리는 속도를 늦추거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행동할 수 있다. 그건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괜찮을 거라는 의미가 아니다.

 

군사 독재

 

그러나 또한 사회적 붕괴가 끝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라. 다르푸르를 기억하라. 1968년에 그 곳은 비가 오지 않았다. 가뭄, 강간, 살인, 복수, 굶주림 그리고 기아가 있었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을 묻어버리고 삶을 계속하며 한동안 평화를 유지했다. 그 후 1985, 정말로 심한 첫 기근의 와중에 사람들은 수단의 수도인 하르툼에서 봉기했다. 그들은 곡식 저장고들을 습격했고, 노동자들은 총파업을 벌이며 나왔고, 군사독재는 몰락했다.

 

곡식 저장고를 습격하는 많은 군중은 다르푸르와 서부의 기근으로부터 온 피난민들이었다. 마흐디의 손자이고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알 마흐디가 이끈 제 1야당인 움마(Umma)가 권력을 잡았다. 그의 정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려고도, 줄 수도 없었다. 남부와 다르푸르에는 또 다른 군사독재, 더 많은 굶주림, 내전이 있었다. 그 시대에 사는 것이 어땠는지 읽으면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요동칠 것이다. 그러니 그 시대를 실제 살아가는 것이 어떨지 생각해 보라.

 

이제 수단 사람들은 다시 움직이고 있다. 그것은 [2018] 12월에 시작되었는데, 가장 강한 노조와 철도 노동자들, 그리고 공산당의 옛 중심지였던 아트바라(Atbara: 수단 동북부 도시)에서 시작되었다. 시위가 시작된 것은 정부가 빵 값을 3배로 올렸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은 다르푸르 전역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들은 군 기지를 포위하기 위해 행진한다. 다르푸르의 중심부에서는 많은 실향민 캠프에서 군중들이 군대를 향해 행진하며 민병대의 폐지와 감옥의 개방을 요구하면서, 무엇보다 그들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한다.

 

절망과 분노

 

사람들은 50년 동안 배웠다. 이 봉기의 주도권은 새로운 의사들의 조합, 교사, 수의사, 변호사, 약사 등의 연합체인 수단 전문인 협회에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알 마흐디의 움마, 공산주의자들이나 투라비(Turabi)의 이슬람주의자들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하르툼에 모인 군중은 비폭력적으로 군 본부를 에워싸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일반 병사들을 자기편으로 데려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십만 명이었고 지금은 적어도 100만 명이다. 그들은 과도 군사 정부를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두 가지 교훈이 있다. 하나는 붕괴가 일어날 때 일어나는 일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은 살아남고, 견뎌낸다. 그들은 배우고 다시 돌아온다. 다른 하나는 다르푸르와 수단, 어딘가 또 다른 다르푸르같은 곳에서 올 사람들이 기후변화를 막는 일을 그들의 과업으로 삼으면, 그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희망적으로 들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벤델의 논문의 교훈은 우리가 기후 비극을 이해하며 슬픔과 절망, 분노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지혜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후파업, 멸종반란과 나머지 모든 것에서 보고 있는 것은, 우리가 슬픔과 분노가 우리를 통과하도록 허용할 때 비로소 희망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삶과 죽음

 

나는 왜 사람들이 연결망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가고, 생태적 공동체에서 살기를 원하는지 안다. 하지만 그들은 틀렸다. 그들은 하르툼, 상하이, 메콩 삼각주, 버밍엄, 런던, 뉴욕, 뉴올리언스, 뭄바이, 콜코타 등의 사람들을 버린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나는 멸종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6년 전에 제임스 한센(James Hansen)의 책을 읽었다. 그 속에는 무시무시한 장()이 있다. 그러나 거기엔 죽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 내가 6년 동안 런던에서 에이즈 상담사로 활동할 때, 우리가 사람들을 살리는 약을 먹을 수 있기 전에 배웠다.

 

나는 내 환자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내가 함께 일했던 동성애자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지켜보았다. 이전의 약물 주사자들과 이성애자들은 대부분 외로운 수치심 속에 죽었다. 때때로 나는 그들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동성애 해방 운동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동성애자들은 주위 사람들, 즉 그들을 뒤따를 사람들을 위해 죽었다. 그들은 죽음에 초연하지 않았다. 그런 종류의 가짜 용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공황과 절망감을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또한, 그들이 사는 방식을 통해, 당신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들 공동체의 다른 남자들과 레즈비언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 그들을 붙잡아주었다. 그리고 그 힘 때문에 그들은 뒤따른 많은 사람들을 살려주는 약을 얻었다. 그들은 정치를 행했고 사랑을 행했다. 그들은 잘 죽는 길을 보여줬다. 그들처럼 죽어야 한다. 그리고 딜런 씨의 어머니와 아버지처럼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사 등록 20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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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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