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사회주의 페미니즘과 사회적 재생산 이론

[이론과 행동, 사회주의와 페미니즘의 교차성에 대해 수잔 퍼거슨(Susan Ferguson)을 인터뷰한 기사이다. 수잔 퍼거슨은 사회적 재생산 이론의 전문가로서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체계화시키는 경험을 수십 년간 해 왔다.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사회주의자로서 사회적 재생산과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대해 연구하고 기여해 왔으며 노동력과 노동계급의 사회적 재생산이 작업장을 넘어서서 인종과 젠더의 교차 속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번역: 두견)]

 

출처:

https://dsabuild.org/socfem-and-social-reproduction?fbclid=IwAR0Sf092yK5G6Eg26E7JEPdRPqvXNlbnNtqBoWanGFrkMlpMSYjYq22Lu-0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당신의 개인적 역사는 어떻게 되는가? 어떤 캠페인이나 그룹을 조직해 왔는가?

 

나는 토론토에서 대학원생이던 1980년대 후반부터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로 내 자신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학생으로서뿐 아니라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페미니스트 이론을 읽고 있었다. 나는 토론토에서 약 30(그리고 전국적으로 120여 명)의 사회주의자들로 구성된 단체인 국제사회주의자들(IS)에 가입했다. IS는 주간지를 발간하며 교육적인 토론회를 열고 도시에서 활동가들의 캠페인을 지원했다.

 

그 중요한 캠페인 중에 하나는 낙태방지법에 맞서서 낙태수술을 하는 캐나다에서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인 모겐탈러 클리닉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그 법은 여성들이 의료 전문가 위원회에서 그 낙태 절차에 대한 승인을 받도록 강요했다.

 

우리는 낙태를 추구하는 여성들을 괴롭히고 협박하는 것을 막으면서 우파적 반낙태 혐오주의자들에 맞서고 도전했다. 자유주의적 개혁주의의 대안으로 나에게 어필했던 이런 형태의 직접행동 정치는 자본주의에 맞서는데 필요한 연대를 어떻게 구축하느냐를 찾아내느냐에 있어서 나에게 중요한 것이었다.

 

자본주의에 어떻게 맞설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단순한 실천적인 질문 그 이상이었다. 당시 좌파 운동가와 학자들 모두 '가부장제'가 어떻게 '자본주의'와 융합하는지, 혹은 어떻게 융합하지 않는지에 대한 경쟁적인 생각들로 분류되고 있었다. IS의 상당수는 (전부는 아니었지만) '계급 우선'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더 페미니스트적인 좌파(예를 들어, 일부 클리닉 방어 조직자들)는 이중 시스템에 대한 분석 쪽으로 기울었다. 나는 후자에 더 끌렸지만, 이중 시스템 분석을 이용하면, 여전히 가부장적 체제에서의 권력의 기반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남성성은 보편적이고, 시대를 초월한 권력이라는 것이 내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정확히 가부장제를 이끌었는가?

 

나는 리즈 보겔(Lise Vogel)<마르크스주의와 여성 억압>을 접하기 전까지는 사실 더 나은 설명을 하지 못했다. 이 책은 영국의 훨씬 더 큰 자매 조직인 사회주의노동자당( Socialist Workers Party)으로부터 무시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토론토 IS 내에서 돌아다녔다. 나는 또한 메그 뤼스턴(Meg Luxton), 팻 암스트롱(Pat Armstrong), 월리 세콤배(Wally Seccombe), 조안나 브레너(Johanna Brenner) 같은 사람들의 사회적 재생산 페미니즘의 분석을 읽고 있었다.

 

이러한 작업들은 히마니 배너지(Himani Bannerji)가 지적한 바와 같이 구조주의적 분석에 너무 융통성없게 집착했기 때문에 이중체계적 분석틀을 뒷문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이 여성의 노동에 대해 강조하는 것이 내가 마주하고 있는 다른 관점들, 특히 그 당시에 유행하던 포스트모더니즘적 페미니즘 등 보다 더 비판적이고 설득력 있다고 느꼈다.

 

사회적 재생산 이론은 또한 지금 여기서의 페미니즘적 개혁을 위한 투쟁을 미래의 자본주의에 맞서는 사회혁명과 연결시킬 수 있는 고리를 제공했다. 나는 그 논리가 이중체계 분석과 계급 우선적 분석 모두에서 누락되었다고 느꼈다. 페미니스트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이론이나 실천에서 두 투쟁을 분리할 수 밖에 없다면 왜 굳이 힘을 합쳐야 하겠는가?

 

만약 그 노동자들이 그들 자신의 성차별과 여성들을 억압하는 성차별적 구조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노동자 권리를 위해 투쟁에 여성들이 어떤 필요한 관심을 가질까? 그리고 남성 또는 여성 노동자들은 더 나은 임금과 근로 조건을 위한 투쟁 속에서 왜 피해 여성들을 위한 피난처를 제공하거나 낙태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겠는가? 그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명확하게 말하기 시작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사회적 재생산 페미니즘은 적어도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계속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썼다. 그렇게 하면서, 현실이 교차하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재생산 이론이 어떻게 구조주의적 전제를 놓칠 수 있는지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양한 형태로 그것을 구체적으로 담아내는(그리고 구분하여 인종화하고, 젠더화하고, 성별화하는 등의) 작업은 그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 자본의 지속적인, 종종 폭력적인, 강탈과 축적의 과정에 따라 다양한 정도로 조직화된다. 이것이 내가 지난 10여 년 동안 더 명확하게 이론화하기 위해 연구해 온 핵심 아이디어였다.

 

당신은 최근에 휴스턴으로 이사해서 DSA 회의에 참석했다고 알고 있다. DSA에 대해 일반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유롭게 솔직히 말해 달라.

 

DSA 총회와 DSA가 주관하는 공개 행사에 한 번 밖에 못 가봤다. 나는 그 모임의 규모(내가 추측하기에는 60~80명 사이였다)와 참가자들의 상대적인 젊음에 기분 좋게 놀랐다. 내가 처음 참석한 회의에는 15명 정도의 신참자들이 참석했는데, 인상적이었다. 분명히 휴스턴의 DSA 조직은 건강한 외향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으며(좌파 그룹은 종종 내향적이 되기 쉽다) 왼쪽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중심점이 되기 위해 뭔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

 

2시간 정도 걸리는 이번 회의에는 허리케인 하비에 대한 피해 구호(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부터 극우파의 공격을 받고 있는 지역 도서관에서 '드랙 퀸 스토리 아워(Drag Queen Story Hour)' 행사 건설까지 회원들의 활동 영역에 대한 흥미로운 보고들이 포함돼 있었다. 한 가지 좋았던 것은 자치주 판사로 선출된 휴스턴 DSA 회원이 중요한 보석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불공정한 체제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배우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는 가벼운 경범죄를 저지른 수십 명의 사람들을 감옥에서 석방하는 판사로서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다.

 

선거보다 거리 동원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은 사람으로서, DSA의 이런 측면은 나를 흥미롭게 한다. 선거 정치가 항상 내가 고려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중요하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여전히 확실한 한계들을 가지고 있다. 이건 내가 DSA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질문을 이끌어낸다. 나는 휴스턴 그룹이 페미니스트, 반인종주의, 반식민주의적 사회주의 정치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발표하며 회의를 시작하는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그게 현장에서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아직은 좀 확신이 안 선다. , 그러한 정치적 약속들이 어떻게 그들의 행동주의와 운동 건설로 연결되는지. 내가 확신할 수 없는 한 가지 이유는 총회에서 구성원들이 그런 종류의 정치적 문제를 제기할 여지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참석했던 한 공개 행사에서도(알렉스 비탈의 훌륭한 책인 <감시의 종말>을 중심으로 참석한 패널들이 잘 조직됐다) DSA가 청중들이 어떤 메시지를 가져가기를 바라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저자와 이곳 휴스턴의 치안 유지 정치에 적극적인 두 사람으로 구성된 이 패널은 서로 다르고 때로는 상반된 견해를 제시하였다. (한다발의 교조적인 정치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논쟁과 토론을 일으키려는 의지는 건강하고 신선했지만, 나는 그것이 또한 DSA의 사회주의적 지향을 희석시킬 더 자유주의적 정치를 위한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 걱정된다. 그러나 이 모든 관측은 DSA와의 매우 제한적인 접촉과 현재까지 공식적인 관여가 없는상황에 기반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비판보다는 조직과 그 역사, 그리고 조직 운영의 이론적 근거를 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제기한다.

 

나는 1990년대부터 토론토 신사회주의자 조직의 회원으로서 비슷한 것에 맞닥뜨렸다. 어떻게 하면 다원주의적 사회주의 정치를 가장 잘 촉진할 수 있는지, 동시에 종파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인식 가능한 정치적 관점을 내세울 수 있는지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그 집단의 목적과 그 집단이 누구를 왜 끌어들이려고 하는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단계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사회적 재생산 이론의 전문가이다. 지금 미국에서 일하고 있는 사회주의 조직가들을 생각해 보면, 당신은 그 청중들을 위해 SRT의 넓은 개념/주장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SRT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실천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이것은 엄청난 질문이고, 나는 몇 단락으로 그것을 정의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사회적 재생산 이론의 핵심은 자본주의가 단지 세계 시장에서 판매하기 위한 상품의 생산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삶 그 자체의 생산에 의존한다. 그저 아무 삶도 아니고, 노동하는 사람들의 삶 말이다. 그리고 단지 아무 노동자들만 아니라, 자본주의가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수준으로 그 삶의 가치를 저하시키는 노동자들 말이다.

 

자본(과 자본을 뒷받침하는 국가)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통제할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들의 나날의 생존을 위한 수단을 소유하고 통제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바로 그 삶을 저하시킬 수 있다. 임금은 시작에 불과하다. 자본은 (국가를 통해) 또한 보건의료나 교육 같은 일들에 대한 접근을 형성하고 유지한다. 그것은 말 그대로 국경과 거리를 관할한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계급의 거대한 부문들이 겨우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허용하는 방법으로 그것을 보장한다.

 

상당 부분 그것은 사회적 재생산 비용을 낮게 유지할 필요가 있고 양질의 의료, 안전한 거리 및 기타 자원들이 이윤을 줄이게 되기 때문이다.(그들이 사람들에게 임금 외에는 이런 것에 대해서 지급하지 않을수록 그들의 이윤은 늘어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금전적인 것 이상의 것이다. 자본은 정말로 많은 사람들의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데 이해관계가 있다. 감옥과 국경과 전쟁은 수십억 달러가 들지만 지배계급은 그들을 기꺼이 유지하게 한다


이러한 억압적인 시스템은 동등한 노동력을 생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은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저임금이나 무보수로 어려운, 때로는 더럽고 위험한 일을 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도록 만들며, 자본이 분열되고 가치가 절하된 노동력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이 중 어느 것도 자본주의가 인종차별, 성차별, 그리고 무수한 사회적 억압을 그 자체로서 가져온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첫째,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재생산하는 조건에 대해 완전하고 민주적인 통제를 한다면 자본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추상적인 이론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 작동하는 축적의 논리 속에는 사람들의 생활 조건의 평준화를 촉진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사실,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에 불평등을 조장하고 강화하는 속에서 번성한다.

 

예를 들어, 노동력 부족이 나타날 때 여성들을 노동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몇몇 제한된 복지를 제공하는 예외가 있기 때문에 나는 "대부분의 경우"라고 말한다. 그러나 규칙을 증명하는 것은 이런 종류의 예외들이다. 이러한 경우, 사람들은 삶을 만드는 수단인 생존 수단을 되찾기 위해 그들의 지역사회에서 조직할 수 있고, 해야 한다. 그리고 억압에 맞서는 활동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정확한 목표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다코타 액세스 파이프라인에 맞서는 스탠딩록 원주민들의 투쟁, 월가 점거 운동, 또는 #MeToo 운동: 이것들은 모두 (자본이 아닌) 노동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조건으로 삶을 재생산하려는 집단적인 시도들에 관한 것이다. 교사들의 파업도 마찬가지인데, 이 파업은 삶에 대한 방어와 일터의 개선을 아주 멋지게 한데 모은다. 그리고 또 작은 전투도 마찬가지인데, 예를 들어, 트랜스젠더가 말할 시간을 지키거나 낙태 클리닉 접근권을 위해 동원되는 풀뿌리 운동이 있다.

 

모든 행동주의가 그렇듯이, 그것들은 항상 국가와 너무 많은 타협을 하는 더 많은 자유주의적 주도권으로 전환될 위험이 있다. 운동 단체들은 또한 개별적인 권한 강화의 매개체가 되면서 그들의 정치적 초점을 잃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자들은 어떤 특정한 운동의 목표를 그것이 투쟁하고 있는 억압의 체계적 본질과 연결시키는 광범위하고 활동적인 연대의 정치를 적절한 곳에서 추진해야 할 임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국제 여성파업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정확히 보여 준다: 즉 그것은 서로 다른 투쟁을 어떻게 결합하는지 인식하면서 그들의 다양성을 축하하는 필수적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회주의 조직가들은 그러한 활동과 운동을 수용하고 그것들을 건설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적 재생산의 관점에 의해 알려진 방식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하기 위해 이러한 운동 내부의 박동을 강화하고 구축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조직가들은 공동체에 대한 집단적이고 민주적인 통제라는 운동의 목표를 명확히 한다.

 


(기사 등록 2019.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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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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