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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가정의 종말?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11. 6.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요즘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을 경험했습니다. 한때에 오슬로에서 박사이후과정을 이수했던, 지금은 중국 항주의 절강대에서 교수 발령을 받은 옛 동료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에 대한 정다운 기억이 있는 터라, 저희 학과의 중국, 한국 전공 소속 교원들이 그의 성혼을 축하하기 위해서 다함께 노르웨이어로 결혼축하가요를 불러 축하 영상을 만들어 보냈습니다. 이 결혼축하가요란 노르웨이에서 상당히 오래전부터 전해온 일종의 전통가요인데, 40세 이상의 교원들은 이 노래를 다들 잘 알았습니다. 한데 40세 이하의 교원 같은 경우에는 가사를 잘 몰라 같이 부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 원인을 물어보니 본인부터 시작해서 본인이 속하는 세대에는 '결혼'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답니다. 같이 살아도 보통 동거를 하는 거고, 아예 동거도 하지 않아 성적 욕구를 Tinder등 데이팅 앱을 통해 만나는 "다양한 이성교제"로 충족시키는 경우들도 매우 허다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나중에 통계를 확인해보니 역시 틀리지 않았습니다. 덴마크의 1인 가구 비율은 37%라면 노르웨이는 아예 41%에 달해 거의 세계 최대에 가깝죠. 그리고 2~30대의 경우에는 결혼은 정말로 매우 드물고 1인가구나 동거는 대부분을 차지했더랍니다.

 

그런데 노르웨이를 굳이 들먹일 일도 없이 우리 대한민국도 아주 빠른 속도로 1인가구의 대국이 돼갑니다. 제가 한국을 떠났던 2000년에는 전국 1인 가구의 숫자는 약 2백만 정도이었습니다. 그 중의 다수는 그때는 저학력 빈민층과 독거노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숫자는 2,5배나 늘어나 이제는 전국 가구의 27%1인 가구입니다. 저학력과의 관계도 거의 없어진 듯한 현상입니다. 39세 돼도 미/비혼으로 남는 여성은 20%, 남성은 33%인데, 그들 중에서는 대졸들은 인제 다수죠.

 

만약 지금 추세대로 간다면 약 20~30년후에는 우리가 싱글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혼밥''혼술'이 아예 당연지사, 기본이 되는, 그런 사회에서 살 것입니다. 사실 이건 농촌사회의 신분질서 잔재들의 청산(1950년대), 도시화와 농촌의 고령화(1960-90년대), 대학 진학의 일반화(1990-2000년대) 등에 이어서 한국의 4번째 커다란 사회적 혁명입니다. 이 혁명은 아마도 21세기 중반의 미래 대한민국의 모습을 결정짓게 될 것 같기도 합니다.

 

노르웨이와 한국은 서로 아주 상이한 사회인데도 이렇게 한 방향으로 가는 걸 보니 모종의 세계적 추세라고 봐야겠죠? 물론 그 추세의 사회경제적/문화적 배경은 노르웨이와 한국에서는 각각 좀 다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노르웨이의 20~30대 싱글들은 대부분이 자가 주택을 소유하고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죠. 가정을 만들지 않는 이유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달콤한 맛"을 조금 더 즐겨보기 위해서죠. 육아 비용으로 들어갈 돈을 대신 여행이나 외식비 등으로 쓰고, 별장이나 요트 구입 비용으로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관계"에 들어가는 감정적 비용들을 삭감하려 하는 것입니다. 결혼하면 이혼시에 재산을 반반으로 나누어야 하는데, 이 부분을 많이들 피하려는 듯합니다. 이외에는 결혼 내지 동거와 같은 장기 파트너십일 때에 파트너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배려'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기분 나쁠 때에 달래주고 힘주고 이런저런 일들을 거둘어주고... 이미 모든 것을 다 계산하고 손익으로만 보려는, 신자유주의 밑에서 살아온 세대에게는 이런 배려도 비용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성욕을 충족시키고 싶지만, 장기 파트너십에 따를 '부담'을 절대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의리 차원에서" 해줄 게 그다지 없는 다양한 파트너들을 그때그때 교체하면서 사는 것이죠.

 

대한민국에서의 "연애포기 세대", 보시는 분들이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후기 자본주의의 "달콤함" 차원이라기보다는 그 "쓰라림"의 차원입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파김치 상태, 연애할 시간과 에너지가 없는 것뿐만 아니라 아예 성욕 자체를 못 느끼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듯합니다. 거기에다가 직장, 주거 불안까지 가세되어서... 노르웨이에서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것이 "부담"이라면 한국에서는 "사치"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죠.

 

루트는 조금 다르지만 목적지는 하나, 즉 혈혈단신으로 산다는 게 기본이 되는 사회입니다. 이는 꼭 한탄할 일만은 물론 아닙니다. "전통적 가정"은 매우 억압적이었고, 때로는 치명적으로 위험하기까지 했습니다. , 지금도...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보면 살인율이 비교적 낮은 사회고 최근 몇년 통계 보면 연간 살인건수는 약 200여건 정도인데, 그 중에서는 보통 약 70~80건은 남성 배우자/연애상대자에 의한 여성 살인입니다. 그러니까 여성에게는 "캄캄한 뒷골목"보다 자택의 안방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죠. 살인까지 안가도... 굳이 여기에서 상론할 것없이 결혼 관계에 있어서의 물리적, 정신적 폭력 발생의 빈도를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겁니다.

 

그러니 "싱글 사회"는 어쩌면 가정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보다 덜 폭력적일 수도 있다고는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불평등한 가사분담에 의한 착취의 발생도 줄어들 것 같고요... 그런데 그건 그렇지만, "싱글 쓰나미"이 몰고 올 위험성도 아주 큽니다. 노르웨이에서야 노인에 대한 장기요양시스템이 잘 되어서 "혼자 사는 나를 돌봐줄 사람도 없을 것 같아서" 전전긍긍할 것은 없지만, 한국에서는 오늘날 20~30대의 "3포세대"가 노후생활을 하게 되면 그 돌봄 문제부터 대단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것뿐인가요? 노르웨이에서는 공공의료 일부로서의 심리상담은 무료입니다.

 

그러니 "화려하게 생을 즐기는" 싱글에게 갑자기 고독감이 닥쳐와 계속 살아가기가 힘들어지면, 그는 적어도 돈을 들이지 않고 누군가와 ""이라도 나누고 자신의 고독감을 고백이라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은... 무료도 아니고 국민의료보험이 일부만을 커버하지만, 대개 정신신경과는 상담보다 약물치료를 더 선호하는 듯합니다. 서울의 인구는 노르웨이 전국보다 두배나 많지만... 외로운 사람은 이 커다란 도시에서는 어쩌면 더 절망적으로 외로울 것 같기도 합니다.

 

좌우간, 평가를 어떻게 하든 사실은 사실입니다. 신자유주의 폭풍노도 속에서는 "가정"호는 점차 침몰하고 있습니다. 인류역사 수만년상 최초로 "혼자"가 기본인 새로운 세대가 탄생됩니다. 그렇게 해서 개개인 사이의 인간적 접촉면이 줄어드는 만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배려의 사회", "따뜻한 사회"입니다. 외로운 사람이 어디엔가 가서 눈물 섞인 고백을 쉽게 할 수 있는, 그리고 외로운 사람이 아프고 늙어도 그를 돌봐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필요합니다. 이 시대에는 포괄적 보편 복지는 기본이고 필수입니다. 대한민국이 그런 사회로 가지 않으면... 지금보다 더한 ""이 될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기사 등록 2019.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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