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나와 다르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에 대한 정상성의 폭력을 봐야”

[관련된 이슈를 고민하고 활동해 오면서 정치적 관점을 구체적으로 발전시켜 온 밀사 동지를 인터뷰한 글이다. 이렇게 다양한 동지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직접 듣고 공유하는 기회를 가지려는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과 낙인들은 왜 만들어진다고 보는가?

 

정상성을 벗어난 것에 대한 멸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기 어려워하는 것,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에 대한 혐오에서 편견과 낙인이 만들어진다. ‘근면성실할 것을 요구하는 친자본적 규범, 노동하는 건강한 신체에 대한 신성화, ‘자기관리와 건강관리도 실력이다는 대표적인 신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겉으로 눈에 보이지 않고, 노동 수행을 잘 할 수가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언행들을 하니까 이상한 사람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신체장애처럼 정상성의 범위를 정해놓고 여기에 달하지 못하면 열등하고 나약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사실은 능력이 있다 없다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기준 자체와 정상성의 강요가 문제인 것이다.

 

* 정신장애인이 범죄와 가해를 저지른다는 편견과 제대로 돌봄과 지원을 받지 못하면 실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주장은 어떻게 다른가?

 

모든 정신장애가 돌봄과 지원을 받지 못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일부의 사례가 전체의 사례처럼 되는 것이다. 가능성이 있을 뿐이고, 문제가 생겨도 국가가 책임을 방기한 것에 책임이 있다. 그리고 돌봄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유별난 게 아니다. 최저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이 죽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딱히 다를 게 없다.

 

한마디로 문제가 과장돼 있고, 어떻게 제대로 지원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사유도 부족하다. 정신장애인을 무조건 강제입원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그것은 무조건 안 된다는 주장도 나이브하다. 정신장애인들을 지원할 실질적 방안을 찾으려면 많은 지원과 노력이 필요하고, 인권과 시민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치료를 돕고 구성원으로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면 나올텐데 사회가 그것을 안 하고 있는 게 문제다.


* 정신장애인과 공존하고 함께 활동한다는 것에 부담감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는가?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와 다른 사람과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뒤집어보면 정신장애인도 정상성 강요에 부담감을 느끼고 그것을 감내하고 있다. 따라서 비정신장애인만 힘들고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 것처럼 보는 것은 잘못이다. 모두가 공동체의 성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인 것이다.

 

노키즈존이 잘못인 것처럼, 나와 다르고 불편하더라도 공동체의 성원을 수용하는 것은 운동을 넘어서 기본적 시민의 의무이다.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오만한 생각을 했다가 실패하면 파국이 오기 쉽다. 좌절하면서 분노하게 되고 그것이 이상한 방향으로 가곤 한다.

 

정신장애인들이 사회적으로 배척, 소외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 한 사람의 주체로서 존중해야지, 나와 다르지 않고 평등하게 대해야 하고 이런 것만 외우다가는 뒤통수를 맞게 된다.

 

결국, 여타 소수자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느냐와 같다. 이것이 기본으로 깔린 상태에서 케어가 불가피한데 그 범위, 시간, 형태, 방법 등까지 당사자와 매우 구체적으로 함께 상의해야 한다. 그리고 케어는 요청할 수 있는 것이지 의무가 아니다. 결코 무리하면 안 되고, 자신을 지키는 범위를 확실하게 가져야 한다.

 

* 스스로 정신장애를 드러내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고 많은 부담이 있지 않은가?

 

언제나 제 소수자성에 대해 공개하는데 그게 내 방식의 투쟁이기 때문이다. 굉장히 운이 좋게도 내 소수자성을 내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처지다. 살아가면서 그걸 말하는 것만으로 중요한 투쟁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나에게는 그것이 가능했던 것인데, 모두가 그럴 필요는 당연히 없다.

 

정상성을 가장해야 하는 집단이 내 준거집단이 돼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딱히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고 부담감도 크지 않았는데 나같은 처지는 많지 않을 것이다. 칭찬을 들을 일은 아니고, 어느 정도는 숨기고 있는 사람도 살아있는 것 자체로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드러내지 않는 것에 대해 부채감을 전혀 느낄 필요가 없다.

 

* 이어서 성매매와 성노동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자. 성매매냐 성노동이냐는 논란 속에서 어떤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보는가?

 

물론 성매매론과 성노동론은 둘 다 한계가 많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노동이 긍정적이고 숭고한 무엇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성노동은 그것이 노동이라서 문제인 것이고, ‘노동이라고 사유해야 이것을 해결할 여지도 많아진다고 본다. 반성매매 입장에서는 성노동론에 대한 반감이 너무 심해서 성매매는 거래를 뜻하고, 성노동은 그 과정에서 이뤄지는 행위를 뜻한다는 것을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거래에 참가하는 것은 구매자도, 포주도, 성노동자도 있기에 성매매 여성은 어불성설이다. 이것은 성매매에 강경하게 맞서느냐 아니냐의 차이도 아니다. 노예노동도 노동은 맞다. 노동이라서 문제가 아닌 게 아니라, 그게 노동이라서 문제인 것이다. ‘노동이라는 말 자체를 불가침의 긍정성으로 보는 것 자체가 문제적이다.

 

* 성노동론은 자본주의적인 성상품화와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정당화하는 문제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은 어떻게 보는가?

 

오해의 산물이라고 본다. 물론 성노동 운동의 하위 분류 속에는 성노동자 임파워링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성노동 행위를 긍정하는 흐름이 있다. 소수자 운동에서 자신의 몸을 긍정하자는 맥락과 비슷한데, 성노동자라고 주눅들지 말고 자긍심을 느끼자는 것이다.

 

그것은 낙인과 폭력이 너무 심하고 그로인해 존재 자체가 부정 당하는 것에 대한 회복 시도라고 봐야 한다. 성노동이 무해하고 이데아고 이런 것 때문에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전체 성노동 진영에서 크거나 중요하지도 않다.

 

성노동의 유해성과 문제들을 밝혀내기 위해서도 성노동론이 더 효과적이다. 신자유주의 속에서 성의 상품화와 억압과 소외를 교차성적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 성노동론에서는 성구매자를 비판할 수 없다고 보는 것도 단편적인 사고다. 성구매자는 당연히 가부장제에 부역하며 여성혐오와 착취를 수행하는 사람이 맞다.

 

자본가적 위치인 포주나 성구매자의 행위와 위치가 반동적이라는 것은 성노동자들이 누구보다 가장 잘 안다. 문제는 성매매가 현실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없으면 성노동자들은 생계를 이어갈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노동자들이 포주와 성구매자들에게 부역한다는 비판은 공허하다. 그것은 취업해서 임금을 받는 노동자에게 왜 자본가에게 부역하냐는 것과 비슷하다.

 

* 성매매 과정에서 나타나는 착취와 폭력을 비판하는 주장과 성판매 여성의 권리와 주체성을 강조하는 주장은 다 필요할텐데 균형점을 찾을 수는 없는 것인가?

 

두 개가 분리돼 있다고 보는 것부터 잘못됐다. 착취와 주체성은 같이 가는 것이다. 여타 노동에서도 이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흔히 전통적 임노동자들에게는 자발과 비자발을 따지지 않는다. 자유의지로 100프로 선택할 수 없다는 게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 조건 속에서도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판단하려는 것을 주체성으로 보는 것인데, 성정치적 선택만을 다른 것처럼 보는 것부터 혐오가 깔려있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반성매매 담론과 성노동 담론이 균형적으로 존재하는 줄 알지만 그렇지는 않다.

 

단적으로 학계에서도 성노동론은 비주류적이고 주홍글씨적인 것이 사실이다. 일종의 기울어진 운동장인 것이다. 사실 성노동론의 주장에 대해서 격분해서 반응할 이유가 없다. 성노동이라는 분석을 통해서 더욱 강력한 반성매매 주장이 가능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 성매매 문제에 대해서는 노르딕 모델, 불법화, 비범죄화 등의 대안들과 그 장단점들이 제기되곤 하는데 어떻게 보는가?

 

다 지옥이라고 보인다. 예컨대 노르딕 모델도 교묘하게 성노동자에 대한 혐오와 고립을 강화시킨다. 알선과 구매를 금지하면서, 실제 법적용에서 성노동자는 절대 같이 일할 수 없고, 일하기 위해 공간을 대여할 수 없고, 홍보를 할 수도 없다. 결국 성노동자가 길거리에서 직접 성매매를 하게 만든다. 구매자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콘돔도 안 쓰고 자신의 사적 공간에 성노동자를 부른다. 이렇게 더 열악한 조건이 강요된다.

 

국제엠네스티가 완전한 비범죄화를 주장한 것은 그것이 좋다기 보다는 최소한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더 특수하다. 법적으론 강경한 불법이면서 성매매 시장은 엄청 크다. 처벌수위는 센데 집행은 잘 안 된다.

 

비범죄화도 그것대로 성노동자들을 취약하게 만들 것이다. 기업형 성매매가 만들어지면서 더 값싸게 착취받을 것이고, 전반적인 여성 혐오와 멸시도 강화될 것이다. 성노동자가 살해되는 비율도 높아질 것이다.

 

각 나라의 조건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이 그나마 성노동자에게 도움이 될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성노동자가 구매자를 고발해도 불이익이 없어야 한다. 성노동자들이 안 다치고 안 죽는 것에 가장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 성노동자들 자신이 실제 투쟁의 주체로 나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은데, 그동안을 돌아보고 앞으로를 전망한다면?

 

2000년대 중반에 전국성노동자연대와 민주성노동자연대의 투쟁이 있었다. ‘집창촌들을 없애버리는 과정에서 집결지 노동자들이 전국적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포주들이 동원한 것도 사실이지만 의식화와 조직화가 존재했고 오랫동안 투쟁했는데, 2005년부터 4년간 전개된 그 투쟁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낙인이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이다.

 

사회가 시민의 일원으로 보지 않고, 별종들처럼 거들떠도 안 본다. 여성운동에서도 별 다르지 않았다. 강력한 사회적 낙인 때문에 한세대 안에서는 어려운 일이라고 보고 가늘고 길게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치지 않기 위해 서로를 잘 돌봐야 한다. 자기 반성과 학습도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서로를 잘 돌보고 천천히 지치지 않고 나갈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근래 트위터 등을 중심으로 당사자들이 이야기할 흐름이 만들어진 것은 고무적이다.

 

*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성노동의 문제나 정신장애나 결국은 정상성에서 벗어난 이해할 수 없고 불쾌하고 잘못된 것처럼 보이는 존재와 관한 삶정치의 이야기인 것 같다. 좀 더 거대한 범위와 당위의 투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과 이것들이 사실은 전혀 다른 게 아니고, 정상성의 폭력에 대한 공통된 문제의식이라는 것을 이해해야만 최대한 소외되는 사람들을 줄일 수 있고 투쟁 전개가 가능하다는 게 나의 고민이고 문제의식이다



(기사 등록 2019.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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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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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액티브r 2019.12.28 1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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