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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그들, 우리들의 거울?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0. 2. 5.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저는 북조선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코리아학' 범위 내에서 일차, 이차 자료를 종종 보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학생들 사이의 열화 같은 관심이 있고 해서, 문외한임에도 불구하고 염치를 무릅쓰고 북조선학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그걸 가르치다가 한 가지 느낀 부분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전성기, 즉 고 김 주석 시절의 북조선 문예 정책과 가장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 바로 같은 시대의 남한의 대중 문화 정책이었습니다!

 

고 김 주석은, 박정희와 한 가지 통하는 점이 있었습니다. 박정희가 미국의 "이기주의 본위의 문화"를 이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듯이, 김일성은 당대 (스탈린 시대 이후) 소련 문화를 꽤 잘 알면서도....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사실 서로 같았죠. "지나치게 개인 본위, 당의 교양사업과 너무나 무관하다"는 이유이었습니다.

 

70년대 조선에서는 그걸 "수정주의에 정신적으로 오염됐다"고 표현했습니다. 개인의 사랑 감정에 초점을 두어서 묘사를 하는 오쿠자바나, 아예 그 초기 작품에서 폭력배 세상을 꽤나 사실적으로 묘사한 비소츠키의 노래시는, 북조선 문예 당국의 입장에서는 '오염' 그 자체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선 문학은 그런 '오염'에 노출되지 않게 아주 세밀히 '지도'됐습니다.

 

이렇게 지도를 잘 받아온 결과? 요즘 작품들을 봐도 좀 묘한 느낌이 듭니다. 일면으로는 사실주의 맞습니다. 고난의 행군, 굶어서 죽은 사람들, 그 상상 이상의 고통들, 이런 게 다 언급되긴 됩니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는... 너무너무 '건전한' 문학입니다. "", 즉 미제나 남조선의 편이라면 당연 각종 악한들이 다 있을 수 있지만, "우리" 편에는 부정적 주인공들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 사람은, 인간 약해서 실수야 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당적 양심이 있고 그 성품이 선합니다. 결국 거의 완벽한 알인욕존천리(遏人慾 存天理: 인간의 욕심을 억제하고 하늘의 이치를 보존한다)가 이루어지는 현장은 북조선 문학 작품들입니다. 맑스? 레닌? 이건 퇴계옹이 읽으셨다면 크게 기뻐했을, 그런 문학입니다. 그냥 퇴계옹이 "왕화", "교화"라고 포현하곤 했던 걸 요즘 말로 "혁명화"하고 고쳤을 뿐입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가끔가다가 실례로 김교섭 작가의 <보통사람들의 이야기> (2005) 같은 작품을 들어줍니다. 그 줄거리는, 전투(북남 교전?)에서 전사한 전우의 지방에서 사는 어머니를 찾아, 그 옛 지휘관인 김석이 봉양을 하면서 같이 살게 됐다는 것입니다. 평양, '서울'사람임에도 지방으로 자진 내려가서 전사한 전우의 어머니를 극진한 효심으로 봉양해드립니다. 전우가 다하지 못한 효도를 대신 해드리고....

 

그 여친은 처음에 지방에서 그 재능이 발휘되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하면서 사심(욕망)을 내비치지만, 그의 교화(?)에 정신적으로 개선되어 결국 본인 부모들의 적극적 지원에 힘입어 지방에 내려가서 신랑을 배필로서 내조(?)하면서 그가 봉양해드리는 어머니를 같이 극진히 모시고.... 저는 <삼국사기>'열전'의 일부를 옛날에 러어로 번역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고, <삼강행실도>, <효경언해>를 읽은 바 있는 사람인지라, 그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북조선은 어떤 면에서 1970년대 이후에 정말 '복고'에 성공했다는 것을 실감한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열전 문학'- 부분적으로나마 - 부활시킨 거죠.

 

그런데 남한에서 빅정희가 원했던 것은 어떻게 보면 같은 방향이었습니다. 박정희는, 미국의 1968년을 연상케 하는 "퇴폐문화"가 없는 "건전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문학까지는 그다지 손대지는 않았죠. 그의 인격과 세계관이 형성된 일제말기에는 가와바타 야수나리(川端康成) 같은 에로티시즘, 개인주의 작가들을 가만두고서 주로 대중문화를 통한 '국민 총동원'에 초점을 맞추었으니까 박정희도 그 방식으로 작업했죠.

 

그 작업이란, 장발 단속, 짧은 치마 단속, 대마초 사용자 단속, 신중현 같은 초기 로커들의 구속(과 옥중 고문), 방송에서 외래어 사용 제한, 그리고 세종대왕을 주제로 하는 국책 사극의 상영 등등이었습니다. ,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의 "계급적 한계"들을 북조선에서 그나마 지적이라도 했지만, 개인적인 성적 표현이나 "외레 퇴폐 문화"의 배척은... 양쪽에서 그리 다르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김일성과 박정희 사이의 '차이'는 확실합니다. 전자는 식민지 시대 엘리트를 뒤엎어버리고 (적어도 간부 아닌 일반인들이) 비교적 평등하게 사는, 국가가 시장을 대체한 세상을 원했던 사람이고, 후자는 결국 식민지 시대 엘리트의 특권을 영구화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지향의 차이"와 별도로 두 사람 사이에는 상당한 "문화적 상통"이 존재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두 사람 다 국가 내지 민족 내지 당을 위해서 개인이 희생돼야 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성장했고, 두 사람 다 병영에서 사회화된 부분이 큽니다. 결국 이 두 사람에게는 미국이든 소련이든 '개인'의 욕망에 지나치게(?) 민감한 현대 문화보다는 차라리 신하들이 군주를 보필하고 백성들이 왕화를 입어 삼강오륜을 익혔던 시절의 문화는 더 친숙했습니다.

 

그들이 권위주의적인 근대화 과정에서 진행한 '복고'의 영향은, 꽤나 오래 갔습니다. 마광수 작가가 사실 아무것도 아닌 성적 표현을 가지고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아예 민주화가 다 된 1995년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1990년대 후반부터 남한에서도 신자유주의 사회에 이미 맞지 않은 '건전'에 대한 집착이 거의 사라지고, 북조선에서도 외부로부터의 대량적인 정보, 문화의 (비공식적) 유입이 시작됩니다. 남한에서 일본 대중 문화가 해금된 시기와, 북조선에서 불법 복제된 남한 비디오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시기는 거의 겹칩니다....

 

남한에서는 북조선을 우습게 보거나 악마화하는 사람들을 가끔 보는데, 제발 좀 깊이 사고해보기를 바랍니다. '그들''우리' 사이에는 사실 이렇다 할 만한 ''은 없습니다. '그들''우리'의 거울이지요. 북조선의 아픔이 많은 현대사는, 사실 남한의 현대사를 많은 면에서 닮은 것이기도 합니다....



(기사 등록 20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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