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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시간이 트라우마를 해결하나요?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0. 8. 1.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세상살이에서는 '시간'은 아주 많은 부분들을 해결해주는 것 같긴 합니다.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예컨대 그런 사례를 생각해보시지요. 1812, -러 전쟁통에는 나폴레옹은 러시아로 진입해서 모스크바까지 다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나폴레옹 침공'을 이유로 해서 '반불 감정'을 갖는 러시아인들은 과연 있나요? 지금도 한 명도 없지만, 이미 19세기 중반에도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었습니다.

 

러시아는 본래 10년 안에서도 전쟁을 몇 개 하는 군국입니다. 코커서스 정복 전쟁, 1831년 폴란드 민족 독립 운동 진압, 터키와의 몇 차례의 전쟁, 1848년 헝가리 민족 운동 진압...이러다 보니 '나폴레옹'과의 전쟁은 어언 현재와 무관한 '옛 과거'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른 사례지만, 1941~45년간 독소 전쟁에 대한 기억들은 지금도 강력하게 남아 있긴 하지만, '반독 감정'은 그다지 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으로 인식되는 것은 독소전쟁 시절에 동맹국이었던 미국이지요. 냉전과 신냉전이 이처럼 반독 감정을 상대화시키고 핵심적인 '적대적 타자'로 미국을 만든 것입니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어떤 트라우마들은 수십년, 죽을 때까지 사람을 놓아두지 않고 괴롭히지만, 어떤 트라우마들은 몇년, 몇십년의 시간이 지나서 자연스럽게 '해소'되기도 합니다. 예컨대 저는 중학교 시절에 왕따 가해에 노출된 뒤로는, 그 가해자들을 약 30년 동안 악몽에서 계속 봤습니다. 그런데 요즘 그런 악몽들을 꾸지 않고 있고 그 가해자들을 기억해내도 아무런 감정도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옛날에 왕따 가해 방지에 실패하는 것은 러시아 같은 후진 지역이라고 생각하고 그랬지만, 노르웨이에서도 왕따 피해로 자살을 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직접 이 현상의 보편적 심각성을 확인한 뒤에, 사회화 과정에 있는 어린이 소사회에서 생겨나는 폭력적 위계질서란 '인류' 전체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아 제 개인적인 불행한 경험을 어느 정도 보편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힘이 쎈 순서로, 즉 상대방을 때릴 수 있는 순서로 서열을 이루는 침팬지 수컷들과, 상당수의 남성 어린이들이 매우 비슷한 행동패턴을 보이는 것인데, 집단이 아직도 사회적 통제가 되지 않는 수컷의 폭력성을 컨트롤하지 않는 이상 가해가 자연스럽게 발생된다는 것은 저의 결론입니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든 큰 차이 없지요.

 

시간은 만능하지 않지만, 어떤 트라우마를 해소시키긴 합니다. , 그 해소에 몇 가지 전제 조건은 붙어 있습니다. 첫째, 가해자와의 분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러시아가 불란서나 독일의 통치를 받은 것도 아니고, 러시아 지배층이 친불 내지 친독파가 독식한 것도 아니기에, 전쟁 때에 입은 피해는 시간이 지나서 비교적 쉽게 망각되어질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도 중학교 시절의 기해자들을 졸업 이후 본 적도 없지만, 이제는 아예 서로 신냉전을 벌이고 있는 두 개의 다른 '세계'에서 각각 사는 셈이 되는 것이죠. 가면 갈수록 제가 사는 서방과 러시아가 서로 멀어지고, 그 사이의 '거리'만이 계속 커지고 있을 뿐입니다... 과거에, 전혀 다른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는 과연 어디까지 심적으로 매달릴 수 있겠어요?

 

둘째, 가해자가 본질적으로 바뀌는 것은 과거의 가해를 좀 상대화시킵니다. 나폴레옹은 결국 몰락했으며, 지금의 독일은 히틀러 시대와 달리 스스로 전쟁할 능력을 갖추지 않고 있는 나라입니다. 전혀 만족스러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치당의 주요 범죄자들은 재판을 받았거나 공공 무대에서 쫓겨났으며, 지금도 비록 90살 넘은 노인이라 해도 수용소에서 보초병이라도 섰던 사람은 독일에서 재판 받아 유죄판결을 받곤 합니다. 아무래도 이런 상태에서는 '반독 감정'을 계속 갖는 게 부자연스러운 일이 되겠죠? 더군다나 승리를 거둔 쏘련군이 독일 민간인들을 다루는 방식은 꼭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은 측면도 컸다는 사실까지 염두에 둔다면요....

 

한국에서도 (북조선에서도) 70년 이상이 지나도 반일 감정이 수그러질 날이 오지 않는 이유는, 즉 시간이 식민화의 트라우마를 해소시키지 못한 이유는, 위에서 이야기한 전제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해자는 몰라도 가해자에 부역한 사람들의 혈통적, 제도적 후계자들은 계속해서 한국 사회를 관리하고 있는 건 현실이지요. 재미있는 게, 노무현 시절의 친일진상규명위원회마저도 예컨대 삼성 이병철의 친일부역, 전쟁폭리 행위, 즉 일군에 납품을 했던 행위를 조사 대상으로 삼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한국 총국민소득의 4분의 1을 독차지하는 괴물 같은 재벌의 과거에는 무슨 친제국주의 부역, 무슨 부정축재가 있어도 이걸 '국가'가 다룰만한 '' 이 없는 게 한국의 현실이죠. 그리고 가해자는 전혀 바꾸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최근 총리나 주요 장관들 - 코이즈미, 하토야마, 아베, 아소 등등 - 의 계보만 봐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미 메이지 시대, 쇼와 시대에 자산가나 고관대작들을 지낸 조상들을 갖고 있는 '명문가'들입니다.

 

독일에서는 '히틀러의 쏘련 침공은 잘한 일'이라고 공언하는 순간에는 공인으로서의 인생은 마감되고, 홀로코스트를 부정하거나 합리화하는 것은 형사처벌의 대상입니다. 일본 정부 같은 경우에는 한국의 '합방''그 당시로서는 합법'이었다는 것은 불변의 정부 입장이죠. 위안소 운영에 연루된 군인들에 대한 재판 같은 것은, 하도 불가능한 일이기에 요즘 같으면 피해자 지원 단체들이 요구조차 하지 않고 있을 정도입니다. 어차피 이루어질 리가 만무하니까요.

 

그러니 일제 식민화의 트라우마를 아직도 시간이 해소시키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오래 갈 것 같습니다. 일본도 한국도 본질적으로 바뀌어야 비로소 해결이 가능해질, 그런 성질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기사 등록 202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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