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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내가 비관론자인 이유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0. 8. 12.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이런 말을 하면 정말 미안하고 하고 싶지도 않지만, 저는 장차 5~10년 사이의 세계 정세를 비관합니다. 아주 깊이 비관합니다. 대공황 속에서는 국가 중심의 관치 경제, 중상론적 (merchantilist) 경제의 요소들이 일부 살아나고 어쩌면 일정한 재분배 활성화도 있겠지만, 특히 노동문제에 있어서는 신자유주의적 '유연화', 즉 불안노동자층의 양산이 지속되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각종의 빈민 봉기들, 금일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반인종주의적 민중저항들 등등이 진행돼도 정치판이 크게 왼쪽으로 돌아가기가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높아져 가는 중하층 내지 하층의 불만은, 급진 좌파 정치뿐만 아니라 일부의 경우에는 '민족 우파' 정치로도 흡수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10년 이상의 정세 전망은 무리일 것 같고, 2020년대는 사회적 고통이 계속 커져가도 '해결'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것 같다는 게 저의 불길한 예감입니다.

 

제가 쏘련 학교에서 스탈린주의 등식대로 쓰여진 교과서에서는 '자본주의 모순들이 혁명으로 필수적으로 이어지게 돼 있다'는 걸 배워야 했었습니다. 그 교과서는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성격 규정하는 러시아 혁명이 왜 하필이면 제1차 세계대전의 와중애서 발발됐는지를 이야기해주지 않았습니다. "전쟁과 혁명'의 관계보다 '자본주의와 혁명'의 관계에 훨씬 더 중점을 두었던 설명 방식이었는데, 이 설명에는 핵심은 빠져 있습니다.

 

1916~1923년간 아일랜드 독립전쟁부터 중국의 5.4운동과 공산당 창당, 일본의 쌀소동까지, 조선의 3.1운동을 포함해서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규모의 급진운동이 일어난 건 사실이지만, 그 도화선이 된 것은 바로 '세계전쟁'이었습니다. 그 전쟁이 발발되지 않았다면... 레닌은, 본인의 애당초 생각대로 스위스 망명생활하다가 취리히에서 임종을 맞이했을지도 모릅니다. 평상시 같았으면 얼마든지 무마가 가능한 제정 정권과 국회 ('두마') 리버럴 사이의 갈등 관계, 그리고 채찍과 당근으로 어떻게든 봉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노농대중들의 불만은, 전쟁이 계기가 되어서 통제가 불가능한 차원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 끝에 일어난 혁명의 결과로 성립된 쏘련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1920~30년대의 서구의 초기 사민주의 정권들은 과연 지자체 공공임대주택 (council houses) 건립이나 실업수당 지급 등 초기의 복지 정책들을 실행했을까요? 물론 총수요 진작이라는 의도도 있었지만, '노동자들의 급진화와 쏘련식 혁명의 저지'는 아주 큰 동기 중의 하나이었습니다.

 

뉴딜도 해결하지 못한 대공황을, 결국 제2차 대전이 해결해주었습니다. 2차 대전은 미국 대기업을 살찌우고 엄청난 기술적 도약의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지구인들을 엄청나게 급진화시켜 놓았습니다. 파시즘과의 싸움에서 피를 흘린 수천만 명의 젊은이들이 군복을 벗어놓아 집에 돌아온 뒤에는 더 많은 사회적 정의를 원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쏘련식 공공의료 체제를 포함한 복지 국가 건설을 악속한 노동당이 바로 총선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미국에서도 퇴역 군인 무료 대학 진학 등 모자라지만 일부 복지 정책들이 실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뒤에는 1980년대말까지 복지 국가 정책을 철회하지 못하고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동서 냉전이었습니다. 동구의 대학들이 무료인 상태에서는 서구의 대학에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징수하는 것은 냉전의 심리전에서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는 꼴이 됐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시대에는 상당수의 남한인들이 서구에서, 그리고 상당수의 북조선인들이 동구에서 각각 무료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기도 했었죠. 한 마디로, 1914~1945년간의 전쟁과 혁명의 시대는, 1980년대까지의 복지 국가의 전성기로 이어진 것입니다.

 

문제는, 동서구가 신자유주의를 기초로 해서 1989년 이후에 '통일'을 이룬 뒤에는, 총자본의 횡행을 그나마 견제할 수 있었던 요소들이 거의 그 종적을 감춘 것입니다. 전쟁의 참화를 겪어서 급진화된 세대는 이제 점차 저 세상으로 가고 있으며, 1950년대의 세계에서 정치 무대를 호령했던 대중적인 급진 정당들은 이제 과거의 유령이 된 것입니다. 불란서 공산당은 지금 개혁주의 노선을 지향하는 군소 사민주의 정당이고 의태리 공산당은 아예 붕괴돼 없습니다.

 

구미권의 새로운 지정학적 '타자'로 부상된 게 중국인데, 과거의 동구와 달리 중국은 (아직) 복지 국가는 아닙니다. 대학에서 학비를 내고 특히 시골에서는 상당수 지방에서 돈 내고 병원 가야 하는 사회죠. 일부 국영 기업 이외에는 중국에서의 기본적 고용형태는 계약제지, 동구식 평생 고용은 아닙니다. 그러니 앞으로 중-미 체제 경쟁이 가열차게 일어나도 복지 제도는 이 체제 경쟁의 무대로 떠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외부적 '자극'이 없어진 부분 이외에는 가장 큰 사회 보수화의 요인은 신자유주의형 인간의 탄생입니다. 당비를 내고, 조합비를 내고, 급진 정당과 급진적 노동조합의 조직 생활에 열심히 참여하고, 여가가 있으면 맑스에 대한 대중서를 탐독하고, 그리고 되도록이면 한 군데에서 은퇴할 때까지 일하려 하는 1950년대식 노동자를 이제 어디에서도 찾기가 힘들 것입니다.

 

제가 지금 경험적으로 아는 노르웨이의 젊은 노동자들은 자신의 캐리어를 디자인하고, 투자펀드에다가 저축하는 것을, 어느 '조직'에 속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일차적으로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맑스에 관심이 생기면 대중서보다 유튜브 영상을 찾을 확률이 더 높을 것입니다. 전쟁과 혁명의 시대가 끝나고, '조직'이나 독서 문화를 중심에 두었던 과거의 사회가 원자화되고 영상 문화 중심의 사회로 대체된 금일에는, 총자본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이 과연 무엇일까요?

 

사실 현재 미국에서 볼 수 있는 미조직 대중들의 가두 저항 말고는 견제 요인들이 많지 않을 것이고 지속성이 떨어지는 가두 저항만으로는 충분한 견제는 되지 못할 것입니다. -미 양쪽에는 병리적 전쟁광들도 다 있지만, 20세기의 역사적 경험을 아는 만큼, 그리고 핵전쟁을 원하지 않는 만큼 양쪽은 아마도 전쟁보다 지속적 '대결'을 선호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는 중-미 양쪽 사회에서의 '애국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내부 결속이 강화될 셈입니다.

 

가두 저항 등으로 일부의 국지적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기업에의 국가 지원과 노동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초과착취를 결합한 현재 사회적 모델이 그냥 그대로 굴러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속에서는 지구온난화에 의한 각종 자연재해만은 해마나 더 많이 나타날 것이고, 온난화에 대한 효과적인 국제 협력적 대책은 아마도 불가능할 듯합니다. 이 불행한 상황의 연속을 어떻게 끊을 것인지, 세계를 다시 지속가능한 급진화 국면으로 어떻게 이끌 수 있을 것인지, 좌파 진영의 치열한 고민부터 절실히 필요한 형국이지요.

 

(기사 등록 20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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