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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차별금지법/ 기후위기/ 레바논/ 검언유착의 구조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0. 8. 17.

전지윤 


 



차별금지법 제정촉구를 위한 오체투지

 

얼마전 차별금지법 제정촉구를 위한 오체투지에 함께 했다. 나는 플래카드 들고 옆에서 걷는 것에 불과했기에 힘들 것도 없었지만, 직접 오체투지를 하는 차제연 활동가들과 조계종 사회노동위 분들은 덥고 습한 날씨에 정말 고생이 많으셨다.

 

영등포 미통당 당사에서 출발해 여의도 민주당 당사까지 갔는데, 미통당은 지금 차별금지법 제정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지난번 조지 플로이드 사망 때 미통당 의원들이 무릎꿇으며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고 퍼포먼스를 해놓고, 역차별과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당 지도부가 나서서 차별금지법에 태클을 걸고 있는게 미통당이다. 혐오세력과 공모해 발목을 잡으려 하고 있는데, 이런 미통당이 어제 겉만 번지르한 혁신안을 발표한 것도 참으로 이중적이었다.

 

민주당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몇 년째 혐오세력의 눈치만 보면서 시간만 끌고 있다. 특히 김회재라는 검사출신 민주당 의원이 혐오세력과 손잡고 국회에서 반차별금지법 토론회까지 연다는 것에 오체투지 참가자들 모두가 분노했다. 그런 의원을 영입한 것도, 놔두는 것도 한심하다. 금태섭 의원이 당론인 공수처법에 반대했다고 징계까지 하더니, 김회재를 놔두는 것은 차별금지는 당론이 아니라는 것인가?(물론 징계가 답이란 뜻은 아니다.)

 

누군가 혐오를 선동할 때 침묵하는 것은 그것에 동조하는 것이라는 말은 여기에도 적용된다. 그래도 민주당 성소수자위()가 강력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 분들의 주장과 행동을 적극 지지한다.

 

뒤늦고 여전히 부족한 부동산 법안 강행 통과의 후폭풍 속에 요즘 문정부, 민주당 지지율이 급락했고 우파언론과 세력의 기세와 공세가 더욱 심해졌던데, 이걸 핑계로 또 후퇴할까봐 걱정된다. 어제 가장 참담한 소식중 하나는 이석기 의원 석방은 이번 8.15에도 없다는 것이다. 우파언론과 혐오세력들의 악선동과 공세에 계속 눈치보고 인기 관리에만 신경쓰면서 필요한 개혁과 조처들은 계속 미뤄지고, 그것은 결국 반격의 기회만 제공할 것이다.

 

더불어 진보진영에서마저도 홍콩 보안법에 대한 관심과 구속자 석방의 목소리와 달리, 한국 보안법에 대한 관심과 규탄, 구속자 석방의 목소리는 많이 없는 것은 계속해서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홍콩보안법으로 공격받은 지미 라이는 사실 특권층이고 친서방적 인물이지만, 그것이 그를 방어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될 수 없듯이, 우리도 얼마든지 입장 차이를 떠나서 연대할 수 있을텐데, 조지 플로이드에는 연대하면서 차별금지법은 반대하는 미통당과 우리는 분명히 다를텐데 말이다.

 

최근에 본 넷플릭스 <디스클로져>에는 어릴 적에 트랜스젠더는 괴물이거나, 연쇄살인마이거나, 여성들의 적이고 위협이라는 식으로 묘사하는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자라온 트랜스젠더들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들은 그 끔찍한 기억을 어처구니없어 하면서 돌아본다. 더 이상 누구도 이런 혐오와 낙인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해서 차별금지법이 절실하다.

 

물난리, 기후위기, 육식주의

 

이번 물난리 속에서 많은 사람에게 인상 깊었던 사진 중 하나는 아마도 살려고 발버둥치는 소들의 모습이나, 물에 빠진 소를 구하려는 농부들의 필사적인 모습 등일 것이다. 왠지 뭉클한 마음으로 그것을 보다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떠올랐다.

 

그 책에서 알렉시예비치는 주로 여성들을 인터뷰해서 승리와 영광, 영웅에만 주목하던 2차대전에 대한 소련의 공식 역사와 기록이 외면하던 가장 생생하고 인간적이고 감동적인 목소리들을 담아낸다. 그런데 그 책에는 전쟁 속의 인간만이 아니라 비인간 동물들의 모습도 담겨 있었다.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 물위로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사람을 힘껏 붙잡았어... 뭔가 차갑고 미끈한 게 만져지더군... 부상당한 병사가 틀림없다고 생각했지. 폭발에 옷이 다 찢겨져나간 거라고. 사실 나도 거의 알몸이었거든... 사방이 칠흑처럼 캄캄했어... 주위에서는 계속 신음소리, 비명소리, 고함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지... 그 병사를 데리고 간신히 강기슭에 도착했는데... 마침 하늘에서 신호탄이 터지면서 순간 사방이 환해졌어. 그런데 보니까 내가 데리고 나온 게 사람이 아닌거야. 글쎄 상처입은 커다란 물고기더라니까. 사람만큼이나 커다란 물고기... 죽어가고 있었지... 나는 녀석 옆에 털썩 주저앉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 어찌나 속상하고 화가 나던지 눈물이 났어... 이렇게 물고기까지 고통을 당하는 게 너무 속상해서...”

 

폭격이 쏟아지는데 갑자기 염소 한 마리가 우리 쪽으로 뛰어든 거야. 녀석도 우리와 같이 바닥에 엎드렸지. 우리 옆에 엎드려서는 꽥 꽥 비명을 질렀어. 폭격이 멈추자 녀석이 우리를 따라오며 자꾸 달라붙는 거야. 저도 살아있는 생명이라고 무서웠던 게지. 마을에 도착하자 우리는 마을 여인에게 염소를 부탁했어. ‘데려가세요. 불쌍해서요.’ 염소를 구해주고 싶었지...”

 

, 인상적이었던 것은 전쟁 이후의 새로운 삶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그것이 무너진 것에 대한 한탄이었다.

 

전쟁터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우리가? 우리는 그랬어. ‘아 끝까지 살아남기만 한다면... 전쟁이 끝나면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해할까!... 이처럼 처절한 고통을 이겨냈으니 이제 사람들도 서로 가엾게 여기겠지. 서로 사랑할거야. 달라질거야.’...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 미워해. 다시 서로를 죽이고. 나는 그게 제일 이해가 안 돼...”

 

이 물난리도 결국 이제 끝나고 있고, 그러면 우리는 아마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태양광 때문에 산사태가 왔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그렇게 다가오는 기후 위기를 무시하고 더 더 과거로 돌아가자고 우겨댈 것이다. 물난리 속에 힘들고 아파하는 이웃들에 대한 관심과 걱정도 다시 잊혀질지 모른다. 함께 위험을 피하고 살아나려고 했던 동물들을 다시 가두고 팔고 죽이고 먹는 사회로도 돌아갈 것이다.

 

비건 지향을 선택하고 나서야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식당을 찾다보면, 10개 중에 7~8개는 고기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고, 간판과 광고에 나오는 시뻘건 고기들이 낯설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돌아가기 보다는 돌아보기가, 이제 기후위기를 재촉하는 사회를, 육식만 권하는 사회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레바논 대참사와 민중의 분노

 

레바논 민중들이 베이루트 대참사에 대한 분노를 폭발시키며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투쟁에 나서고 있다. 그 슬픔과 분노에 공감하고 연대한다. 안 그래도 레바논 민중의 삶은 힘겨웠을 것이다. 실업률이 무려 45%에 달하고 IMF 구제금융을 신청할 정도로 힘든 경제 상황에 코로나19로 큰 고통을 견디던 상황에서 이번 대참사가 터진 것이다.

 

핵폭발에 버금갈 정도였다는 이번 대참사로 수백 명이 죽고 5천여명이 다치고, 30만명이 이재민이 됐다고 한다. GDP30%가 한순간에 사라질 정도의 엄청난 대참사였단 것이다. 모든 것이 산산조각나고 곳곳에 피와 시신, 비명이 넘쳐나는 처참한 폐허 속에서 레바논 민중이 느꼈을 참담함과 고통은 가늠하기 어렵다.

 

처음에 즉각적으로 이스라엘, 사우디, 미국의 폭격이나 사주한 테러가 아닌가하는 의심이 제기됐던 것도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석유와 패권을 위해서 중동과 레바논의 역사를 유린하고 민중의 삶을 파괴해 온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군사적 개입의 경험이 이런 의심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이 날라와서 구원자 생색을 낸 것도 보기 좋지는 않았다. 프랑스는 레바논을 식민통치하며 지금의 종파간 적대와 끝없는 갈등의 씨를 뿌린 책임이 있으면서, 문제만 생기면 생색만 내며 다시 개입할 기회를 노리는 것처럼 보여왔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대참사의 원인은 질산암모늄 2750톤을 6년 동안이나 항구에 방치해 온 정부와 관료들에게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여러차례의 항의와 경고도 무시한 채 말이다. 대재앙의 불씨를 코 앞에 두고도 나몰라라한 것이고 대참사가 다가오기를 손놓고 기다려 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레바논 민중의 안전과 생명은 안중에도 없었던 셈이다. 그래서 난민 학살, 내전, 경제파탄 등으로 레바논 민중이 고통받는 지난 반세기 동안에 부패한 기득권과 부의 축적만 추구해 온 권력자들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비극인 것은 현 정권의 핵심기반이 헤즈볼라라는 것이다.

 

헤즈볼라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침공과 학살 등에 맞서는 투쟁 속에서 레바논 민중의 희망으로 떠올랐던 저항조직이었다. 특히 2006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헤즈볼라가 물리쳤던 것은 제국주의의 치욕스러운 패배이자 중동과 레바논 민중의 승리였다. 그러나 그런 헤즈볼라도 권력이 일부가 되면서 부패하기 시작했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헤즈볼라는 미국과 사우디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지역강대국 이란의 편에 붙었고, 시리아 내전에도 군사적으로 개입했다. 결정적으로 시리아 민중 수십만명을 학살한 독재자 아사드의 편을 들었다. 이 돌이킬 수 없는 배신으로 헤즈볼라의 변질은 완성됐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저항조직이나 좌파로 출발했다고 성찰하고 경계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잘못된 길로 나갈 수 있다는 또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그래도 지난 겨울에 전세계를 휩쓸던 반란의 물결 속에서 레바논에서 기독교, 시아파, 수니파를 뛰어넘는 민중적 단결을 통한 반정부 시위가 등장했던 것은 새로운 희망이었다. 그것이 코로나 팬데믹의 역경 속에 사라졌다가 이번 대참사를 계기로 다시 거리에서 부활하고 있다. 레바논 민중이 종파를 뛰어넘는 단결 속에서 제국주의와 주변 강대국들과 연결된 부패한 기득권 체제를 변혁하길 기대하고 응원한다.

 

한국에서 우리도 촛불 이후 등장한 새로운 정부가 구체제와 기득권 세력에게 타협하지 않도록 압박하고, 더 근본적 변화를 위해 우리 스스로가 투쟁할 과제가 있다. 특히 레바논에서 위험천만한 유독화학물질을 방치해 대재앙을 부른 것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지금도 매년 몇 천 명이 산업재해로 죽어 가는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하나 통과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도 재앙과 죽음을 뻔히 알면서 손놓고 방치한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Fury_and_anger #Lebanon #Beirut

 

검언유착에 대한 구조적인 접근과 해법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티비를 안본지는 오래됐고 관심사나 주요 시사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유튜브로 본다. 그리고 가장 애청하는 프로들은 뉴스타파, PD수첩, 시사직격, 저널리즘토크쇼J, 스트레이트, 해시태그 등이다. 대부분 탐사취재와 검증보도가 뛰어나다.

 

매주 이런 프로들만 빠짐없이 잘 챙겨 봐도 아주 큰 도움을 얻고 많은 궁금증들이 해소된다. 중요하면서도 복잡한 여러 정치, 경제, 사회, 국제적 쟁점들을 분석하는데 좋은 정보와 관점을 제공하는 프로들이다. 예컨대 이 프로들을 보면 최근에 이슈가 되는 부동산, 플랫폼 노동, 자영업 위기, 코로나, 성폭력, 검언유착, 검찰과 언론 개혁 등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사회비판적이고 구체제와 기득권 세력의 치부를 열심히 파헤치는 데, 그것이 친정부적이고 편파적이라는 식의 비판을 부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진중권 씨는 뉴스타파와 PD수첩을 그런 식으로 매도해 왔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기본적으로 이런 프로들을 본 적도 없는 이의 근거없고 무책임한, 무식한 비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최근에 뉴스타파(PD수첩도)에서 방영한 문재인 정부의 4대강은 조중동같이 목소리만 큰 질 낮은 수구언론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날카롭고 강력한 정부 비판이었다. 이것을 보면 문재인 정부의 한계가 무엇이고 왜 그 개혁 기대와 약속들이 많은 부분 좌절되고 실패하고 있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가 있게 된다.

 

<저널리즘토크쇼J>도 아주 재미있고 유익하게 즐겨보는 프로 중 하나인데 특히 지지난주에 이 방송에 출연한 박영흠 교수의 주장들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경향신문 법조기자 출신이면서 얼마 전 법조 뉴스 생산 관행 연구 - 관행의 형성 요인과 실천적 해법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 박 교수는 '저리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2009년도에 경향신문 법조기자로서 대검 출입을 했었습니다. 20095월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던 시기거든요. 저는 당시에 그 대검을 출입하면서 검찰 브리핑을 무비판적으로 받아썼던 기자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제가 기자를 그만두게 되는 상당히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기도 하고요... 긴 시간 동안 반성을 하면서 저는 계속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져야 했습니다. 왜 나는 그러한 보도를 할 수밖에 없었는가... 태평양 같은 지면을 두세 명의 검찰 출입 기자들이 하루 종일 취재하고 작성해서 메워야 합니다. 그런데 취재를 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검찰 브리핑을 받아쓴 다음에 거기에 대한 추가적인 검증 없이... 저녁 시간 때가 되면 또 경쟁 언론사에서 단독 뉴스들을 쏟아냅니다. 그러면 그걸 또 확인해야 해요, 받아 써야 됩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이렇게 쳇바퀴 굴러가듯이 아주 강도 높은 노동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보면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왜 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할 수 있는 조금의 여유도 없습니다.”

 

여기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자신의 과거를 성찰하면서, 그것을 새로운 각성과 고민, 발전의 계기로 삼았다는 것이다. 남을 비판하는데 커다란 열의와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은 많아도,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돌아보는 사람은 드문 이 사회에서 말이다.

 

나아가 그가 언론의 문제점을 단지 기자 개개인의 잘잘못에 대한 성토와 비난에 머물지 않고 더 큰 구조, 관행, 규범의 문제로 접근해서 치밀하게 연구하며 해법을 제시하려 노력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쓴 논문에도 흥미가 가서 더 찾아보게 됐다.

 

물론 구조, 관행에 대한 분석이 잘못된 기사를 쓰고 보도를 한 기자 개개인에게 면죄부를 주는 핑계가 될 수는 없다. 또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론기업들의 시장경쟁과 출입처 제도를 통한 국가기구와 언론과의 유착에 대한 분석을 넘어서, 지배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검찰과 언론에 대한 특정한 프레임이 왜 이토록 강력하게 곳곳에 (심지어 진보적 지식인들과 좌파들에게까지)스며들어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한 더 발전된 정교한 분석도 필요할 것이다.

 

기자들을 싸잡아서 비난, 매도하고 적대시하는 것의 한계는 분명하다. 예컨대 항상 느끼지만 기레기라는 말은 가능한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든 기자가 다 문제는 아니며, 더구나 기레기라는 용어는 혐오성 멸칭이 분명하다.(기자라는 집단이 한국 사회에서 억압받는 소수자는 아니겠지만, 그것이 혐오성 멸칭을 써도 된다는 뜻일 수는 없다.) 더 많은 기자들의 성찰과 검찰과 언론, 검언유착에 대한 더 구조적이고 치밀한 분석과 해법이 필요하다.

 

(기사 등록 20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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