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4월 테제: 1917년 4월의 이전과 이후

라스 리(Lars T Lih)

번역: 두견

 


4월 테제는 단절보다는 볼셰비키의 연속성을 상징한다고 라스 리는 주장한다. 이것은 한 포럼에서 행한 연설의 편집본이다. 이 글에서 라스 리는 다시 한번 역사적 기록을 치밀하게 살펴보면서 레닌이 174월에 천재적인 독창성으로 옛 볼셰비키와 단절했다는 신화에 도전한다이처럼 러시아 혁명과 레닌주의를 재평가하는 글들을 계속 번역 소개할 계획이다. 이 글의 필자인 라스 리는 러시아어 원자료와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에 입각한 러시아 혁명과 레닌주의에 대한 혁신적 재해석으로 주목받아 왔고, 수많은 책과 논문을 쓴 역사학자이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러시아에서 빵과 권위: 1914~1921>(1990), <레닌 재발견: 맥락에서 본 무엇을 할 것인가’>(2006) 등이 있다. 

 

출처:

https://weeklyworker.co.uk/worker/939/april-theses-before-and-after-april-1917/

 




이 강연의 잠정적 제목으로 나는 '볼셰비키 혁명에 볼셰비즘을 돌려주기'와 같은 것을 내세웠는데, 그 의미를 설명하려고 한다. 나는 이 강연을 준비하는 것이 내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그것을 논쟁적이기보다는 긍정적 방식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나에게 매우 유익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은 오래 전에 내가 가졌던 이해에서 비롯한다. 한편으로 농민들이 지지하는 노동자 혁명의 볼셰비키 시나리오, 반혁명에 반대하며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농민들의 동맹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대부분이 농민으로 구성된 붉은 군대를 볼셰비키가 편성하는 내전의 현실도 있다. 이것은 시나리오를 실행에 옮긴 것으로 보인다. 처음부터 그들이 하겠다고 한 대로 했기 때문에 그들은 승리한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내가 지키고 있고, 그 이후에 그것을 더욱 광범위한 범위로 확대시켜 온 나의 통찰이다. 그러나 나는 놀랍게도 '(old) 볼셰비즘'10월 혁명 사이의 연속성에 대한 이 생각이 학자들과 활동가들 모두에게 크게 무시되어 왔다는 것을 발견했다. 실제로 그것은 어떤 진영에서는 얼마간 언어도단으로 간주되고 있다.

 

다섯 가지 걸림돌

 

명백해 보이는 것을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은 무엇인가? 나는 다섯 가지를 생각할 수 있지만, 아마 사람들은 또한 다른 것들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학계에서는 첫째로 옛 볼셰비키의 혁명과 노동자-농민 권력이라는 시나리오를 특별히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레닌은 당 조직, 권위주의, 일을 수행하는 지식인 등을 의미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잘못 읽은 것을 통해서 레닌의 본질을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1905년 이후의 그에 대해서는 거의 쓰여 있지 않다. 그리고 물론 농민들이 지지하는 이 거대한 노동자 혁명의 시나리오는 레닌이 노동자의 역량을 저평가하고, 나아가 농민을 무시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호소력이 있거나 이치에 맞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걸림돌은 노동자-농민 혁명의 이 시나리오에 실제로 친숙한 좌파 저술가들 사이에서 볼 수 있다. 당신은 몇몇 책에서 그것에 대한 좋은 설명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1917년에서 불연속성을 강조하기로 선택했다. 옛 볼셰비즘과 10월 사이에 불연속성이 있다는 것은 그들과 그들의 서사에 중요하며,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나는 두 가지를 말할 것이다. 하나는 레닌의 주요 부관, 즉 스탈린, 지노비예프, 부하린에 대한 적대감이다. 그들 모두는 나중에 좌파나 트로츠키주의적 서사에서 악당들로 밝혀지는 것으로 나오고, 그들에게는 관용이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실질적인 이유는, 내가 보기엔 그들이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의 병렬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분명히 변화는 있지만 불연속성은 과장되어 있다.

 

다른 걸림돌들 중 몇몇은 사실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 가지 널리 퍼져 있는 생각은 1914년에 레닌이 아마도 헤겔을 읽었을 때, 카우츠키는 사기꾼임을 발견하고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봤을 때 단절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은 그 반대이고, 실제로는 레닌이 자신의 신념을 재확인한 것이다. 레닌의 견해로는, 방향을 바꾼 것은 자신이 아닌 카우츠키였다.

 

셋째로, 내가 '페트로그라드의 4'이라고 부르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가장 유명한 역사적 이야기 중 하나를 가지고 있다. 그건 이런 식이다: 레닌이 도착했고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그의 새로운 비전에 당황했다. 하지만 그는 그들에 맞섰고, 약 한 달 정도 토론이 있고, 그리고 나서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노선에 올라탔다.

 

지금 이 서사는 연속성 개념에 대한 진정한 반론에 해당하는데, 그것은 그 서사를 확인시켜주는 듯한 많은 자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성실하게 조사한 최초의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서양 문헌에 대한 독립적인 연구는 없었고, 모든 사람들은 이차적인 출처들의 이런저런 인용구에 의존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활동가들과 학자들 모두 비슷하게 그들의 정보를, 이 문제가 아니라면 [스탈린주의라는 이유로 - 역주]그들을 믿을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인 소련 역사학자들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넷째, 레닌이 하는 모든 일이 항상 옳다는 레닌 숭배와 연관이 있는데, 우리 모두가 이것의 일부이기에 벗어나기가 좀 어렵다. 그래서 레닌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무엇이든 견해 차이가 있다면, 분명히 다른 사람들이 틀렸다. 그러나 방법론적인 관점에서도 말하자면 이러 저러한 문제에서 카메네프가 옳았고 레닌이 틀렸을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한다.

 

나는 여기서 이 이야기가 트로츠키주의 전통에 의해 강하게 지지되고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들만의 특별한 이유들 때문에 이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즉 학자들, 스탈린주의자들, 반스탈린주의자들, 소련해체 이후의 사람들이 말이다. 모든 것은 좌파이지만 반볼셰비키이던 전기작가 니콜라이 수하노프(Nikolai Sukhanov)에게 거슬러 올라간다. 내 생각에 수하노프와 그의 극도로 생생한 설명이 이야기를 펼쳐지게 했다.

 

마지막으로 내전 중에 볼셰비키와 농민의 갈등이 있는데, 이것은 학술적 역사가들에 의해 매우 많은 강조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좌파쪽 사람들도 노동자-농민간의 동맹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결론짓기 위해 그것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여기에 이런 걸림돌들 - 일반적인 추정들, 진짜 문제들 - 이 있고 나는 이것들을 하나씩 다루고 풀려고 노력해 왔다. 그것들을 조사하고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인용구가 서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등의 논쟁을 낳는다. 그런 지적은 가능한 한 생략하고, 아무도 내 말에 논박하지 않은 것처럼 긍정적 측면에서 서사를 제시하려고 한다. 내가 마무리하고 나서 그것을 논박하면 될 것이다!

 

볼셰비키 시나리오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첫 단계는 1905~07년의 원래 볼셰비키 시나리오인데, 내가 보기에 이 시나리오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 알려주겠다. 그러나 우선 나의 출처에 대해 한 마디 하겠다. 나는 레닌뿐만 아니라 다른 볼셰비키들의 글들을 살펴본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양한 이유로 재출판된 글들을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볼셰비키 두 사람은 스탈린과 카메네프다. 둘 다 레닌이 도착하기 몇 주 전에 페트로그라드에 있었으므로, 그들은 우리의 목적에 매우 좋은 출처이다. 그러나 스탈린과 카메네프(및 다른 볼셰비키 저술가들)가 선전의 목적으로 볼셰비키 시나리오를 재탕할 때 이를 단순화한다는 점도 지적해야 하는데, 이는 한 가지 점에서는 좋은 것이다.

 

어떤 특정한 일들에서는 레닌 자신이 혼자서 말을 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내 목적을 위해서는 이런 '2'의 볼셰비키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가 역사적으로 더 중요하다. 이 하급자들이 말하는 것은 실제로 기층에서 볼셰비즘이 의미하는 것이었다.

 

본질적으로, 다음 혁명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볼셰비키의 시나리오는 1905년 혁명의 더 크고 더 나은 버전이었다. 사회주의적 프롤레타리아와 그 정당인 러시아 사회민주당이 이끄는 나로드(narod) - 인민, 즉 노동자와 농민들(농민을 포함하기 때문에 사회주의 개념으로 간주할 수 없는) - 는 임시 혁명정부를 수립하고 혁명에 제동을 걸려는 다양한 자유주의적 시도를 좌절시키고 러시아의 거대한 민주적 변혁을 수행하게 된다.

 

나는 우리 좌파 쪽에서 사용하는 일부 선전문구인 '민주주의 독재' 등은 피하고,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한다. 그것의 본질은 혁명을 끝까지 관철할 노동자-농민 vlast - , '권력' 또는 '주권'이다. 그것은 소위 최소강령이라고 불리는 것을 실행할 것인데, 이것은 사실 자본주의 하에서 달성될 수 있는 최대치이며, 극도로 방대하고 야심차다.

 

나는 임시 혁명정부를 말했다. 왜냐하면 이 과정이 끝날 때쯤에는 제헌의회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혁명적 변혁의 끝에 제헌의회가 승리하면서 볼셰비키, 즉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 당은 더 이상 집권할 수 없다고 느끼고 당분간 퇴임한다. 그래서 그 통치는 잠정적이며, 그것은 1917년과 비교했을 때 진정한 차이를 나타낸다.

 

둘째로, 이 시나리오는 이러한 혁명 이후 부르주아 계급 통치의 시기를 상정했지만, 이 요점이 만들어질 때 흔히 말하는 것을 추가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볼셰비키 시나리오에는 장기간의 어떤 것도 없고 부르주아 통치의 안정적 시기에 관한 것도 없다. 사실, 볼셰비키들은 이 시기가 매우 평화로울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사실 그들은 그것이 매우 평화롭지 않을 것이며 그리 길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결국 모든 사람들은 세계가 전쟁과 혁명의 시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서유럽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터져 나오면서 이 기간이 짧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들은 러시아의 성공적인 민주주의 혁명이 이것을 촉발시키고 그것이 다시 러시아로 되돌아와 상황을 바꾸기를 희망했다. 그것은 트로츠키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흐름이었다.

 

왜 한계를 정했는가? 볼셰비키는 왜 사회주의까지 곧장 갈 수 없다고 했을까? 나는 그것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가 내가 '계급 동맹의 이치'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계급 동맹의 이익이 허용하는 범위까지만 갈 수 있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계급 동맹자는 누구인가? 물론 농민들이며, 국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이 이 시나리오에 있다.

 

나는 여기서, 트로츠키가 1905~06년 자신의 시나리오에서 농민들이 사회주의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그들의 생각대로) 경험적 사실인 계급 동맹의 이 공리를 분명히 부인하지 않았다고 말해야겠다. 그러나 그는, 농민들이 승선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정부가, 비록 대다수의 농민들이 반대했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계속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고, 그래서 어느 순간 두 계급의 세력이 내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볼셰비키와 다른 모든 사람들은 '글쎄, 농민들이 우리에게 반대한다면, 우리가 다수를 획득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해'라고 말했다. 그것은 1917년까지 이어지는 오래된 시나리오다.

 

4월 이전

 

여기서 이야기를 이치에 맞게 하려면 레닌이 나타나기 전에 페트로그라드에서 옛 볼셰비키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이것은 많은 오해를 받고, 탐구가 부족한 에피소드인데, 우리 모두는 소련의 역사학자들과 다른 사람들 모두를 포함한 매우 당파적인 역사학자들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들은 작은 자투리들에 집중하고 큰 그림을 무시하고 있다.

 

나는 페트로그라드의 볼셰비키들이 처음부터 새로운 '권력'의 맹아가 혁명을 끝까지 끌고 갈 것이라고 가정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한쪽에는 소비에트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부르주아, 개혁주의자, 자유주의 엘리트들을 대표하는 임시정부가 있으며, 결국 소비에트가 권력을 장악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우리가 옛 볼셰비키의 시나리오를 본다면, 우리는 무엇을 예상할 수 있는가? 그들은 혁명에 제동을 걸려는 자유주의적 부르주아 세력의 어떤 시도도 좌절시키고, 혁명을 수행하기 위해 노동자-농민 권력을 앞세울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일이고, 일어난 일이다.

 

이제, 내가 몇 가지 오해를 풀 것이다. 첫째로, 19174월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임시정부의 즉각적인 타도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고, 소비에트에 기반도 없다. 그래서 지금 나가서 타도를 외치는 것은 어리석고 모험주의적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그들이 옳았고, 그가 나타났을 때 레닌은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둘째로, 이러한 조심스러움이 관점의 긴 간극을 나타낸다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볼셰비키들은 소비에트 권력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레닌의 긴급성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니다. 나는 이것이 진짜 대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볼셰비키는 임시정부가 혁명, 전쟁, 경제, 토지개혁 수행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며, 급속히 사람들의 환상을 꺼지게 만들고 던져버릴 것이라고 상당히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임시정부의 교체는 적극적이고 가까운 미래의 관점이었다.

 

셋째로, 나는 처음부터 볼셰비키들이 꽤 비타협적(anti-soglashenie)이었다고 생각한다. soglashenie는 때로 '타협(compromise)'으로 번역되기도 하며, '온건 사회주의자들', 사회주의혁명가당, 멘셰비키의 전략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들의 직감적인 반응은 소비에트를 새로운 '권력'의 맹아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의 모든 개혁 세력들 사이에 일종의 합의가 필요했기 때문에, 일종의 타협이나 계급협조를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것을 위해 좋은 사례를 만들 수 있고, 나는 우리가 그들을 묵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볼셰비키 지도자들이 항상 그것에 반대했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나는 매우 흔하고 중요한 오해에 관심을 모으고 싶다. 논쟁 중 하나는 '민주주의 혁명은 이미 끝난 것인가?'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때때로 레닌에 맞서서, 민주주의 혁명이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오해는 우리가 아직 사회주의 혁명의 단계에 있지 않기 때문에 임시정부를 던져버리지 말고 참아야 한다는 말과 동일시될 때 발생한다. 트로츠키는 1924년에 이런 추정상 논리적인 암시를 한 최초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틀렸다. 내가 요약한 대로 전체적인 시나리오를 실제로 이해한다면, 민주주의 혁명이 끝까지 수행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러므로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임시 정부를 전복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민주주의 혁명을 끝까지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인 우리가 권력을 잡아야 했다.

 

나는 토니 클리프(Tony Cliff)의 책 <레닌>을 보고 있다가 그가 "푸틸로프 볼셰비키 위원회의 좌익 극단주의자 간부"인 바그다테프(Bagdatev)를 인용한 것에 주목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바그다테프는 민주주의 혁명이 끝나지 않았고, 또한 임시정부는 가능한 한 빨리 타도되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토니 클리프의 첫 반응은 "얼마나 혼란스러운 생각인가!"이다. 그렇다, 그것은 혼란스러운 생각이지만 바그다테프 쪽에서는 그렇지 않다. 어쨌든, 나는 토니 클리프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매우 흔한 오해이기 때문이다.

 

레닌이 돌아오다

 

다시 한번, 나는 누가 언제 무엇을 말했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지만, 나는 우리가 그 대신에 큰 그림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레닌이 러시아에 도착했을 때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여기 레닌이 있는데, 10년 만에 망명에서 돌아왔고 이런 문제나 저런 문제에 대해 연락이 닿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빨리 일들을 챙겼을테지만 그가 의식하지 못한 문제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를 환영하던 사람들은 아마 사태의 복잡성을 훨씬 더 자세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그것을 서로를 존중하는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가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사람들이 레닌에게 무언가 중대한 말을 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는 이것에 대한 간단한 사례를 들어볼 것이다. 적어도 10대 지도자들 중 한 명인 이 시기에 상당히 고위급이었던 스탈린은 레닌 등과 만난 자리에서 4월 테제는 너무 도식적이고 소수민족들의 문제를 간과했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종종, 그것은 스탈린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는 증거로 쓰이지만, 사실은 4월 테제가 민족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레닌은 그것을 포함시키는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기차에서 그 문서를 썼고, 그는 단지 민족문제에 관한 어떤 것도 넣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스탈린이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레닌이 그가 옳다고 말했을 것이고 그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말했을 것이라고, 그것이 일어난 일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것은 레닌이 스탈린이 같은 편에 선 4월 당대회에서 다른 문제들보다 더 진정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레닌과 소위 옛 볼셰비키들 사이의 분쟁에는 세 가지 범주가 있다. 하나는 진정한 오해가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레닌과 카메네프 사이에 말이다. 4월의 토론에서 두 사람 모두 일부 오해를 풀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을 때 그럴 수 있다는 것은 별로 놀랍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레닌이 틀렸다고 말하던 사람 중의 한 명이었던 카메네프가 왜 당 지도부 자리에 있는 대여섯 명 중에 핵심에 있었는지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둘째로, 레닌이 틀렸던 문제들이 있는데, 우리가 전반적인 상황을 볼 때 명백한 이유들로 이 중 일부를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레닌은 농업 임금 노동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싶어했고, 당이 일반 농민들을 의심해 봐야 하고, 마을에서 소비에트로 다가오는 이들 임금 노동자들에게 대부분의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볼셰비키들이 집단농장을 추진하고 이 사람들이 그것을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것이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고, 레닌의 그러한 제안에는 뭔가 잘못된 점이 있었다. 그리고 이 경우 지역 사람들이 옳았다: 이것은 단기적으로나 중기적으로 실행 가능한 정책이 아니었고, 결국 사라졌다.

 

셋째, 우리는 더 건설적인 부분에 도달한다. 레닌이 숙고하기 위해 가져온 것 중에서 실제로 새로운 것은 무엇인가? 볼셰비키가 채택한 새로운 관점은 두 가지였다. 첫째, '사회주의를 향한 발걸음'이다. 이것은 레닌이 많이 사용한 은유였지만 불행히도 1페이지 반의 4월 테제 정본에는 실려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회주의를 향한 발걸음'은 그가 그 한달 동안, 그리고 그 한해 동안 정말로 말한 다른 모든 것들의 핵심이었다.

 

그는 '우리는 사회주의를 향한 발걸음(steps toward socialism)을 원한다'고 말한 것이다. , 우리는 사회주의를 도입하고 싶지 않으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잘못이라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가 '사회주의의 도입(introduce socialism)'으로 무엇을 의미한 것인지, 그리고 왜 그것이 그렇게 잘못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는 그것을 아주 여러 번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은유를 레닌의 볼셰비즘을 이해하는 열쇠로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생각한 것은 노동자-농민 권력을 바탕으로 정부를 수립해 사회주의로 가는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길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가고자 했다. 때때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우회할 수도 있지만, 핵심적인 것은 그들이 그 길에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계급 권력이 '디지털(digital)'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양자택일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변혁의 문제는 '아날로그(analogue)'적이다: 그것은 더 많거나 적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점진적이든, 많든 적든 사회주의 변혁의 척도를 가지고 있는 반면, 계급권력에 관한 문제에서는 전부 아니면 전무이다: 볼셰비키의 사물을 보는 방식에 따라 프롤레타리아 권력이거나 부르주아 권력이 있다.

 

그래서 1917년에, '사회주의를 향한 발걸음'으로 돌아가기 위해, 레닌은 이것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볼 수 있는 곳은 그가 9월 쓴 '임박한 재앙과 그것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중요한 팸플릿이 있는데, 여러 이유로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해 왔다.

 

그 주장은 이렇다: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들이 있는데 볼셰비키가 아니라, 경제 전문가가 아니고 계급정치의 전문가도 아닌, 예를 들어 독일이나 옛 짜르 정권 사람이나 러시아의 온건 사회주의자들이 작성한 것이다. 해야 할 일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부르주아지들이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행해지고 있지 않다.

 

레닌은 오로지 계급 권력에 대한 문제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있다고 거듭 강조하고 이야기했다. 그러므로, 비록 이러한 정책들이 사회주의적이지는 않지만, 그것들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노동자와 농민들의 '권력'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농민 권력이 은행 통제 등의 정책을 도입하면, 그것은 대중적이고 민주주의적인 민중의 권력(people’s power)에 의해 수행되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향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

 

그것은 흥미로운 주장이고 어느 정도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지금 집권하는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일들이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할 때 그것들은 사회주의로 가는 발걸음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사회주의 혁명의 문제가 아니다. 레닌은 자신이 다른 일을 하겠다고 말하거나 특별히 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회주의 정책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원하는 정책이 출구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노동자-농민 정부만이 실제로 그 정책들을 실행으로 밀어붙이게 할 것이다.

 

레닌의 사고에서 새로웠던 두 번째 것은 소비에트 권력을 계급권력의 매개체로만 보지 않는 것이었다. , 옛 볼셰비키 시나리오에서는 노동자-농민 권력과 소비에트가 그것을 달성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비쳐지지만 핵심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단지 계급권력이 취할 형태일 뿐이었다. 여기에 레닌이 덧붙여 말한 것은 - 그리고 우리는 이것이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파리 코뮌에 대한 그의 독서를 통해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소비에트는 낡은 의회제도보다 더 높은 형태의 민주주의라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주장이었다.

 

요점은 소비에트 권력을 원하는 두 가지 다른 종류의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직접 선출, 즉각적인 소환이라는 소비에트의 형태 자체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가 작동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농민 권력의 또 다른 이름이나 별명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흥미롭고 중요한 생각들이지만, 우리가 볼셰비키들이 1917년에 했던 일을 하는 데 어떤 식으로든 그것이 필요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메시지

 

볼셰비키가 노동자들에게 실제 널리 알린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국가와 혁명>을 집어 들기는 쉽지만, 지역 볼셰비키 선동가가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을 때 실제로 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다른 사람들이 쓴 팸플릿의 주장뿐만 아니라 레닌이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살펴보았다.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그런 자료들에 근거하고 있다.

 

그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이 자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이 나라는 손바구니 속의 지옥이 될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이 난장판에서 구해내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부르주아이고, 엘리트이고, 지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을 없애고 모두가 그 필요를 알고 있는 조치를 취할 노동자 농민 권력을 세우자.'

 

그것이 바로 혁명을 보호하고, 국가적 위기에 대응하며, 혁명의 기본 강령을 실행하라는 메시지였다. 그런 것들을 다 원한다면 현 정권을 몰아내고 노동자와 농민을 대표하는 소비에트 권력을 도입하라. 한 유인물은 다음과 같은 말로 그것을 잘 보여준다: '은행가의 정부가 은행 국유화를 수행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토지 소유자의 정부가 토지 개혁을 수행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장군들로 구성된 정부가 평화 협상을 수행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좋은 지적들이고, 그것이 중심적인 메시지였다.

 

이것은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구호로 요약될 수 있지만, 실제로 내가 더 자주 발견한 더 근본적인 메시지는 '모든 권력을 민중에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슬로건은 사실 그 당시 어떤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혁명에 이르는 몇 달 동안 사회주의는 경시되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는데, 이것은 정말 놀랍다. 예를 들어, 레닌이 9월 말이나 10월에 발표한 '혁명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는데, 은행 개혁이나 평화 협상과 같은 모든 것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사회주의나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10월 이후 수사법은 매우 급격하게 변화했고, '사회주의를 향한 발걸음'에 대한 언급은 매우 두드러졌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전에 사회주의에 대해 경시했을까? 나는 그것이 사람들이 혁명을 수행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행해진 의식적인 결정이었다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민과 가까웠기에 사회주의 혁명이 그들에게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때 호소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것이 매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실제로 혁명을 수행했는가? 바로, 페트로그라드의 노동자들이다. 그들에게 전달되고 있던 볼셰비키 메시지는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에 대한 가장 좋은 단서다. 혁명을 방어하고,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치는 국가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노동자-농민 권력을 도입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왜 우리는 사물을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10월 이후

 

요약하자면, 10월 이후 당시에 볼셰비키들은 대중적인 노동자-농민 권력을 세웠고, 그들은 '점진적이지만 확고하게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발걸음'이라는 문구를 채택했다. 내가 처음 그것을 마주친 것은 부하린에서였지만, 보다 최근의 연구를 통해 나는 레닌이 그 정확한 구절을 가장 먼저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새 정권은 사회주의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었지만, 그것은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사회주의에 대한 어떤 특별하고 구체적인 조치를 약속하지는 않았다. 특히 내전 동안에는 실제 사회주의적 조치를 취할 아주 드문 기회만 있었다.

 

둘째로, 사회주의는 그들의 지지를 얻어야만 했기 때문에 농민들을 승선시키는 것이 핵심적이라고 여겨졌다. 이것은 처음부터 정권의 전망의 일부였고, 이것이 볼셰비키가 트로츠키의 관점을 채택했다고 하는 것이 어느 정도 호도된 것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이유다. 그는 1905~06년 당시에 이런 관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닌은 위기 때문에 농업에서 공동체적 형태로의 매우 빨리, 심지어 당장, 급속한 이동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의 애착하던 생각 중 하나였다.

 

나의 짧은 전기인 <레닌>에서 나는 그의 공동체와 국가 농장에 대한 발전하는 환멸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것들은 내전 중에 매우 무기력했고, 레닌은 이것을 완벽하게 알고 있었고 그는 점점 더 격분했다. 농민들과 함께가 아니라 - 그는 그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 그것들을 운영하기 위해 파견된 사람들과 함께. 그가 강조한 한 가지는 그 어떤 힘도 전혀 쓸모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전이 한창일 때 그는 농민들이 어떤 형태이든 집단농장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가장 볼셰비키답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농민들이 공동체적 농업의 형태를 지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그 답은 무엇이었을까? 볼셰비키는 다른 수단을 통해 농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기다려야만 할 것이라고 결정했다. 1931년의 스탈린과는 다소 다른데, 그는 모두를 납득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집산화 운동을 벌이면서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농민들이 설득되지 않아도 계속 전진했다. 내전 기간 동안, 마을에서 곡물 같은 자원을 뽑아내는 가혹한 정책에 대항하는 농민 봉기가 있었다.

 

레닌의 아래에서 몰이해와 폭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볼셰비키의 관점에서 - 그리고 나는 정확히 그렇게 생각하는데 - 농민들의 직접적인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불가피한 비용으로 여겨졌다. , 반혁명적인 지주들로부터 혁명을 수호하고, 경제를 지속시키고, 작동하는 새로운 행정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한 것이다.

 

마침내 내전이 승리하게 되었는데, 결국에는 농민들이 앞뒤로 흔들리고 나서도 백군보다는 적군을 더 지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군은 농민군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만약 1910년에 누군가 이 도시에 기반한 급진적 정당이 짜르의 장교들을 고용해서 내전에서 승리할 위대한 농민군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전에 없던 가장 미친 소리처럼 들렸을 것이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며 우리는 그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볼셰비키는 이 교훈을 배웠다.

 

전통적인 역사학은 볼셰비키들이 농민들에게 무자비하게 그들의 정책을 강요했다고 주장할 때 정말 잘못 이해하는데, 실제로는 그들을 계속 참여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농민들과 함께 당신은 승리할 수 있었고, 그들이 없었다면 당신은 파멸을 당했을 것이다. 사실, 농민들의 지지를 받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 또는,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노동자들이 농민들에게서 정치적 리더십을 제공하는 노동자-농민 혁명 - 이라는 원래의 볼셰비키 시나리오는 10월 혁명의 실제 발생과 반혁명에 대한 성공적인 방어를 모두 설명해준다.


(기사 등록 20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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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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