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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21세기 초반, 총결산의 시도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1. 1. 7.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이제 오늘이 지나면 21세기의 5분의 1은 다 지나갈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참 의미심장하고 무서운 시대이었습니다. 일면으로는 2000~2020년간 인류는 본격적으로 '소셜 네트워크'의 시대에 진입했습니다. 18세기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는 신문의 시대, 20세기 중후반은 텔레비전 시대라면 21세기 벽두부터 SNS시대입니다. 유튜버들의 소집단, 고인기 유투브 채널 하나가 <조선일보> 따위의 종이 신문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죠.

 

물론 영향력이 있는 유투버들의 대부분은 상류층이나 중상층 배경을 갖고 있으며 그 뒤에는 영향력 있는 사회적 집단들이 버티고 있지만, 그건 다른 문제입니다. 그러나 일면으로는 2000~2020년간은 기후 재앙이 점차 가시화되어 가던 시대이었습니다. 그리 춥다는 이 노르웨이에서는, 지금 제 창문 바깥의 기온은 영상 1~2도입니다. 눈이 오고 나서는 머지 않아 녹습니다. 이런 노르웨이도 16~18세기의 소빙하기 이후는 경험해볼 수 없었습니다. 기후 재앙의 심화와 인류의 SNS시대 진입, 이 두 가지는 지난 20년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던 듯합니다.

 

국제적으로는 지난 20년은 신자유주의 위기 심화의 시대이자 구미권 패권의 점차적 쇠락의 시대이었습니다. 2008년에 벌어진 공황 이후에는 자본은 플랫폼 노동이나 긱 노동, 즉 노동자로서의 모든 권리를 다 박탈당한 노동의 양산을 통해 이윤의 위기를 모면하려 했지만, 소비력이 없는 저임금 노동의 양산은 역으로 과잉 생산의 위기를 악화시켜 놓았습니다. 이제 코로나 위기까지 가세해, 앞으로 10~20년간 세계 체제 핵심부에서는 위기 국면과 침체 국면들이 서로 교체되고 이렇다 할만한 '성장'을 예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와 같은 경제적 사정을 배경으로 해서, 핵심부/구미권의 지구적 장악력은 가시적으로 약화됐습니다.

 

2001년 이후 미국/영국 등의 이라크 및 아프간 재식민화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으며, 시리아나 리비아 분할을 돌러싼 이전투구에서 핵심부 제국주의 (미국, 프랑스)보다 준주변부 제국주의 (러시아, 터키)가 더 많은 전리품을 강탈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이라크와 시리아, 예멘에서의 그 동조 세력의 영향력을 확장시켰습니다. 동시에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 시도는 아직까지 중국 경제에 이렇다할만한 타격을 주지 못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구미권은 준주변부 주요 세력들의 견제에 진력해왔지만, 그 성과는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서방의 몰락'은 내일 모레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서구를 중심으로 한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17세기 이후부터 발전해 왔으며 1945~73년간의 자본주의 황금기는 바로 그 절정이었습니다. 지금은 구미권 패권 체제로서는 하강 국면이라고 해도, 상승 국면이 몇 세기에 걸친 것처럼 하강 국면 역시 상당히 길 것입니다.

 

예컨대 자본주의 황금기에 세계 과학/연구계의 지배 언어로서의 영어의 위상이 고착된 이상, '국제적 수준의 연구를 영어로 해야 한다'는 등식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국내 학술지들이 영문만이 아니고 영어-중국어 '양문 체제'로 발행되기 시작하는 시점은 아마도 지금부터 20~30년 후일 것입니다 (학술 언어로서의 한국어를, 김대중 시기부터 역대 신자유주의 정권들이 말살해온 만큼, '한글로 하는 과학 연구'는 아쉽게도 진전되지 못할 듯합니다....).

 

영어의 지배력도 그렇지만, 달러의 지배나, 미국이 장악한 국제 금융 기관의 지배력 등은 적어도 앞으로 20~30년 갈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의 명목상 경제 규모가 2028년에 미국을 추월할 것이기에, 아마도 미국의 군사력상의 상대적 우위는 적어도 2030년대까지 지속될 듯합니다. , '아직'은 구미권의 지배력은 남아 있지만, 세계적인 일극 패권이 아닌 다극/다원 패권 체제의 윤곽은 이미 가시화돼 가고 있습니다.

 

동아시아가 새로운 세계 체제에서 하나의 중요한 경제권으로 부상되는 만큼, 지난 20년 동안 모범적 신자유주의 체제를 갖춘 한국의 명목상 생산량과 총소비량도 엄청 늘어났습니다. 동아시아 전체가 부상되는 만큼 한국도 부상된 거죠. 1999~2000년의 대한민국의 1인당 명목 국내 총생산은 슬로베니아 등 동유럽의 고소득 국가와 비슷한 1만불 정도이었다면 지금은 이탈리아 등 유럽권 핵심 경제들과 거의 엇비슷한 3만불입니다. '탈아입구'는 동아시아 근대주의자들의 숙원이었으며 한국에서는 늘상 '극일'을 이야기해왔지만, 지금 구매력 기준으로 본 한국과 일본의 1인당 국내 생산은 딱 같은 42천불입니다. 우리가 옛 식민모국을 '드디어' 따라 잡았는데... 그렇다고 과연 행복해졌습니까? 엄청나게 성장한 만큼 격차도 엄청나게 벌어졌습니다.

 

전국의 21백만 가구 중에서는 약 60%''을 보유하고 있는 '지주'들인데, 그 중에서는 최상위 50만 가구의 "최고 5%의 부자 집안'들은 개인 소유 토지의 54%나 그 손에 갖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 성장이 낳은 엄청난 부는, 제조업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로 적절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부동산으로 유입됐으며, 그 만큼은 '내 집 마련'은 평균적 젊은 서민에게는 이제 거의 실현이 불가능한 꿈이 되고 말았습니다. 서울 평균 집값은 이제 10억이고, 서울이 아닌 전국을 기준으로 해서 봐도 서민의 내 집 마련에는 20년 이상 걸립니다. 내 집이 없기에 아이를 낳을 엄두도 못내죠. 한국의 출산율은 이제 드디어 세계 최저의 0,9가 되고 말았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성장'이 낳은 불균형은, 사회의 생물학적 재생산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망국적 재앙이죠.

 

이 재앙을 맞은 나라 대한민국의 주류 정치권에서는 두 개의 주요 경쟁 진영인 극우와 리버럴 (자유주의자)들은 서로간의 '무능력의 경쟁'을 벌인 듯한 스펙태클을 벌였습니다. 지난 20년간 그 어느 정권의 사회-경제적 정책도 한국이 직면한 위기의 해결에 거의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일단 극우 쪽이 끼친 해악은 더 컸다면 더 컸을 것입니다. '대통령' 이명박은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일 이외에는 한 게 없었고, 박근혜는 명색상 '대통령'이었지만 '국정 운영'의 능력 자체를 보유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리버럴들이 국정 운영에 훨씬 더 프로페셔널하게 임했지만... 결과는 여전히 참담합니다. 리버럴들이 1997-2002년 사이에 고착된 신자유주의적 게임 룰들을 전혀 고치지 못했으며, 그 사회적 후과의 처리에 실패했습니다.

 

대표적 리버럴인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3년째인데, 비정규직들은 여전히 전체 임금 근로자들의 36%이며, 그 평균 임금은 여전히 정규직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비정규직 양산, 주거의 위기, 산업화된 나라치고 최악인 노인 빈곤, 10% 밖에 되지 못한 공공병원 병상의 태부족, 노예처럼 부려지고 비닐하우스에서 얼어죽기에 이르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세계 최악에 가까운 학대와 착취.... 여러 시도들이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문재인 정권이 해결한 사회적 문제는 여태까지 거의 없었습니다. , 검찰 개혁의 시도 등이, 점차적인 권위주의적 국가 기구의 상대화에 도움이 되는 등 '민주화' 과정상의 제한적 성과나 비교적 상식적인 대북 정책 등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구미권 패권의 쇠락, 동아시아의 전체적 부상 속에서 한국은 2000~2020년 사이에 중간 소득국에서 '부자 나라'로 거듭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부자나라 대한민국 주민들의 다수가 전혀 '부유'하지 않으며 대부분은 깊이 불안하고 불행합니다. 케이팝이나 케이방역의 '세계적 성공'에 가려진 것은, 직장 불안과 일상적 과로, 허탈감, 피로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다수 한국인들의 '천하가 모르는 눈물'들입니다. 대한민국이 보다 평등한 사회를 지향할 수 있었다면 다수가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 터인데... 비극적이게도 그렇게 가기에는 이 나라에선 좌파의 존재감은 너무 약합니다. 일대 비극이죠


 (기사 등록 20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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