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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동정과 시혜의 이중잣대를 넘어야 하는 인권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1. 1. 20.

박철균

 



1년 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당시 대표가 장애인 비하 발언을 해서 논란이 있을 때 KBS에서 교장샘이 발언했던 영상 캡처다. 나는 저기 적혀 있는 "장애인"이라 적혀 있는 단어가 현재 문제가 된 "어린이 가정폭력", 혹은 비닐하우스에서 얼어 죽은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에 해당하는 어느 문구를 넣어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1.

몇 개월 살지 못하고 가정폭력에 세상을 떠난 정인에 대한 공분이 여기저기 들끓고 있다. 법원 앞에서 사형을 외치며 울부짓고 눈을 던지고 차를 막는 등 그 가해자라 불리는 부모를 향한 분노가 여전히 하늘을 찌른다. 여전히 인터넷 조금만 뒤져봐도 "정인아, 미안해" 식의 글을 볼 수 있다. 물론, 정인의 죽음이 너무나 안타깝고 비극적인 일이다. 진심으로 명복을 빈다. 그런 죽음을 만든 가해자는 제대로 처벌을 받아야 하고(하지만 그것이 사형이란 귀결로 가야한다는 일부의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 어떤 종류의 가족 구성이든 가정폭력에 제대로 대응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서 피해자 가족은 안전과 삶을 보장받고, 가해자는 그에 따른 분리조치 등의 엄격한 조치들이 만들어 져야 한다.

 

2.

그런데, 한편으론 과열된 추모가 불편하게 느껴진다. 정인을 닮은 외국인 아이의 영상을 끌어 와서 정인의 영상이라고 다들 댓글을 우수수 달았다가 많은 사람들이 낭패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 이야기 속에서 정인을 안타까워 한다는 사람들이 정작 그 피해자인 정인을 대상화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 대상화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신년 기자회견마저 입양을 탓하던 문재인 대통령의 이야기가 대표적으로 느껴졌다. 가정폭력에 대해서 그렇게 분노하면서 정작 정인의 환경이었던 입양아라는 테두리에서 사람들은 벗어나지 않고 입양만 탓하고 결국 입양아를 물건 취급하는 대통령의 말은 사실 정인이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들의 인식은 여기가 한계구나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 같다. 리허설을 네 번이나 했음에도 보좌관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문제 제기하지 않은 것은 청와대뿐만 아니라 이 사회가 딱 거기에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다. 결국 정작 가정폭력(성폭력이든 물리적 정신적이든)의 대부분은 친부모에게 일어나고, 그래서 대부분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것에 침묵한다. 자기와 비슷한 환경에서 때론 죽음까지 직면한 다른 어린이, 청소년들은 나몰라라 하고 오직 자신만 이야기하는 어른들을 보고 하늘에서 정인은 무슨 생각을 할까?

 

3.

사실 이러한 관점은 결국 어린이, 청소년 등에 대해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는 동정과 시혜 딱 거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 불쌍하고 아끼고 돌봐줘야 하는 존재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어린이, 청소년이 더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거나 자신들에게 손해를 준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돌변해서 그 어린이, 청소년을 비난하고 몰아세우고 악의 축처럼 폭언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아니라고 한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라. 아이가 떠들거나 장난을 치며 뛰놀거나 하면 노키즈존을 만들어야 한다느니, 아이들은 이래서 문제라느니 아이들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말을 일삼고 심지어는 그 아이의 부모 특히 엄마를 맘충이라 하면서 경멸한 적이 없는지, 심지어는 "겨울왕국2"처럼 엄연히 타겟이 아이가 함께 보는 컨텐츠를 자기가 보는데 방해한다고 아이들 자체를 분별없고 집중도 없고 민폐만 끼치는 사람들이라 몰아 세우며 노키즈존을 얘기한 적이 없는지... 심지어는 소위 민식이법 같이 스쿨존 같은 보호구역에서 아이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만들어진 법도 아이들이 무분별한 존재로 몰아세우고 그래서 억울하게 운전자가 피해를 본다고 몰아세우고 심지어는 그 법과 관련된 유가족 부모를 온갖 신상털이 하면서 몰아세운 적이 없냐는 말이다. 딱 이런 풍경들 때문에 나는 이 추모 열기가 생소하다. 지금 정인아, 미안해 하는 사람들 중에 그 정인이 또래의 아이가 까페나 극장에서 울음을 터트리거나 스쿨존에서 거리를 돌아다니면 너 때문에 내가 피해를 본다며 온갖 욕을 퍼붓고 부모에겐 애들 교육 제대로 하라며 "폭력적 훈육"을 강요할 사람들이 부지기수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4.

이런 것은 굳이 어린이가 아닌 다른 사회적 소수자를 예를 들어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이 모금 프로그램에 나와서 최대한 불쌍하게 나오면 "아이고, 어떻하냐" 하며 값싼 동정을 하고 몇 푼 모금하는 걸로 자기가 모든 선행을 다한 것처럼 사람들을 생각하지만, 그 장애인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권리를 외치면 바로 돌변해서 동정과 시혜를 넘어서는 장애인을 향해 온갖 차별과 배제의 폭언을 하는 사람들을 매우 많이 봤다. 장애인이 리프트 사고로 죽었을 때 "저런 어떻해"하던 사람들은 정작 그 장애인이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고 장애인 엘리베이터를 만들어달라고 "타고 내리기" 이동권 투쟁을 하고 길을 막고 목소리를 외치면 "장애인이 집에만 처 박혀 있을 것이지. 왜 내 가는 길을 막냐"고 폭언을 퍼붓고 장애인에게 손찌검을 하려고 한다. 그 욕을 하는 사람의 일상이 장애인에겐 보장받지 못한 일상인 것은 중요하지 않다. 장애인은 그저 불쌍하거나 돌봐 줘야 하는 존재지, 권리를 그 이상 내뱉으면 그 순간부터 사람들은 본심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장애인을 동등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란 본심 말이다.

 

5.

비단 이것은 이동권 뿐만 아니라 다른 권리에도 적용된다. 장애인의 노동은 비장애인의 노동과 단순 비교되어 한국은 최저임금조차 제대로 적용하지 않고, 장애인은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만 각인하고 여전히 대형 시설들이 각지에 즐비하고, 시설 폭력과 시설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장애인의 자유 권리 억압은 이 코호트 격리 속에서 신아원과 청도 대남병원 등을 통해 속속히 드러남에도 여전히 장애인의 탈시설 자립생활이라고 하면 시큰둥하고 오히려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엔 시설에 장애인 가족을 "맡겼다"는 가족 구성원이 활동가에게 전화해 "네가 시설에 (가족을) 맡겨 놓았는데 왜 난리를 치냐. 네가 키울 거냐"며 욕을 퍼붓는 경우도 있었다. 중증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자립생활주택이든 활동지원사든 다양한 지원과 제도, 시스템이 있다는 것(물론, 한국의 시스템은 여전히 부족함이 많아 더 열심히 싸워서 쟁취해야 한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 지지 않는다. 2021년에도 여전히 장애인은 그저 돌봐주고 보호해 주고 적당하게 불쌍하다 해 주는 존재에 머물려 있다.

 

6.

서울연구원에서 조사한 자료(https://bit.ly/2XWFEvS)에서도 사람들의 이중잣대는 수치로 증명이 되었다. 겉으로는 다양한 사람들을 존중한다면서, 자기 주변에 성소수자나, 북한이탈주민이나, 이주노동자나 장애인, 심지어 다른 종교의 사람들이 있는 것은 싫다는 현실은 사실 사람들에게 사회적 소수자를 대하는 모습과 인권이 결국 얼마나 동정과 시혜에만 끝나는지 명백히 보여준다.

 

장애인운동도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인권운동은 단지 제도만 바꾸는 것이 끝이 아니다. 그 운동을 통해 목소리를 통해 사회적 소수자는 결코 동정과 시혜를 통한 단 1초의 해결이 전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알리고 세상에 팽배한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온갖 차별과 배제의 진실을 변화시키고 그 이중잣대가 판치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라 생각한다.

 

7.

그렇기에 인권 운동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정말 장기적인 호흡이 필요하고 사실 그래서 몇 번이나 멘탈이 터져 버린 적도 많다. 그럼에도 믿고 싶다. 2001년 딱 20년 전 오이도 리프트 추락 사고로 사람이 죽었을 때 버스를 막고 지하철을 막으며 목소리 외쳤고 그래서 일상이 멈춰져 버린 사람들에게 온갖 욕설과 폭언을 들었던 이동권 투쟁으로 2001년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설치율 13.74%에서 2020년 현재. 91.73% (1동선 기준)까지 만들어 냈던 성과를 기억하고, 장애인이 이동한다는 것을 상상도 못하던 시절에 지금은 그것보다 좀 더 나아진 인권의 상황인 것을 믿고 싶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우리 스스로의 이중잣대를 박살내고 함께 하자고 말하고 싶다. 어린이든, 장애인이든, 성소수자든, 이주노동자든, 홈리스든 모든 사회적 소수자는 동정과 시혜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정작 필요한 사회적 권리를 위해 목소리 내는 사람들을 불편해 하지 말고 오히려 함께 함으로써 세상이 더 인권의 세상으로 만든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함께 해요! 세상은 단순한 상대의 대상화가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고 그 상대랑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바뀌는 거니까요!

 

(기사 등록 20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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