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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동지애와 젠더 정의 사이에서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1. 8. 15.

- 윤민석 씨의 문제제기에 대해

 

윤미래

 

 

가해자가 갈 수 있는 곳에 피해자가 갈 수 없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는 슬로건을 관철하려고 십 년을 싸웠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곧바로 보이콧, 활동 금지, 잘라내기로 대응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그 못지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좀 세련된 조직에선 그게 새로운 '조직 보위' 방식으로 활용된 세월이 이미 길고요, 애초에 그런 대응 자체가 가해자 한 명을 제외한 조직은 이상적이고 평등하고 무결하거나 당위적으로 그래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기 일쑤라서. 사실은 이 성별주의 사회에서 그 어떤 조직도 그럴 수 없고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치란 건 그 사실을 인정하고서야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모든 이견을 반여성주의로 몰아붙이는 일부의 반응은 이런 문제의식이나 논의를 원천 봉쇄함으로써 문제를 영속화시킨다. 이것은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악적이다. 해당 글은 백자 씨의 노래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여성을 차별해도 좋다거나 여성 문제가 부차적이라고 말하지도 않았으며, 단지 여성 차별에 대응하는 어떤 방식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있을 뿐이다. 전자를 부득부득 읽어내야만 직성이 풀린다면 머리를 좀 식히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그런 식으로 외부 투사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 경험상, 이런 식으로 자기 선명성을 과시하는 사람들의 일부는 (특히 이 사회의 지배 성별인 경우엔 일부가 아니라 9할 가까이가) 본인들 역시 똑같은 가해자임을 감추기 위해 그런 식으로 허세를 부리고 있을 뿐이더라. 반대로 ‘캔슬 컬처’ 운운하면서 노골적으로 자기들 복권시켜달라는 의제를 슬쩍 밀어넣으려 드는 모 조직도 제발 좀 빠져줬으면 한다. 아, 정말이지 이편에서나 저편에서나 숨겨진 남성 쇼비니스트들만 입을 다물어주어도 우리 모두가 얼마나 더 나은 논의를 할 수 있을까!

 

윤민석 씨의 문제제기는 말하자면 이 문제를 다루는 민주노총 여성위의 방식이 비동지적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지가 뭔가 미흡해서 실수하거나 문제를 일으켰을 때 우리는 쫓아내고 손절하는 것으로 대응하길 기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동지가 아니라 그냥 고용인과 고용주에게나 어울리는 대응이다. 오류를 다루는 동지적인 방식은 '당신과 내가 비록 입장이 다르지만 더 나은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연대하고 협력할 의지와 애정이 있다'는 신뢰를 계속 확인하면서 공동의 학습, 발전의 과정을 밟아나가는 것이지.

 

내가 실수 없이 완벽할 때만 나를 받아주는 공간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내가 그 자체로 존중받고, 사랑받는 곳. 돈이나 시간이나 심력이나 관계 자원, 아무튼 그 무엇 하나 풍족한 게 없는 운동판에 사람들을 버티고 서 있게 하는 힘의 원천 중 하나가 그런 '동지애'라는 관념이고 우린 당연하게도 그런 것을 서로에게 기대한다. 그것을 바라서는 아닐지언정, 그것이 있기에 입에서 나오려는 아쉬운 소리를 줄이고, 어련히 사정을 헤아리면서, 얼마 되지도 않는 출연료를 주니 안 받니 옥신각신해가면서 서로 의지하고 지탱해나가는 거지. 그게 없다면 차라리 자본주의 사회의 고용주답게 개런티라도 제대로 지급하라는 말이 나오는 심리도 지당하다.

 

문제는 성차별에 의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 '동지적 견인'은 유해하고 차별적인 방식을 하던 대로 계속 유지하면서 가해자를 안고 가는 것으로 해석되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이런 판에서 가해자는 손절을 피할 수 있지만 대신에 피해자가 쫓겨나게 된다. 이런 부조리가 너무 많이 반복된 결과로 여성들은 동지애, 동지적 견인 같은 발상 자체에 학을 떼게 되었고 활동 정지나 제명 같은 '배제'가 거의 자동반사에 가까운 일 번 요구안이 돼 버렸지. 공동체적 변화와 발전은 토론문에나 나오는 추상적이고 아름다운 문구로, 현실적으로 피해자가 발 붙일 자리 한 뼘이나 조직에 남을까 하는 회의와 환멸과 이 악 물고 울면서 싸우고 버티는 게 여성주의자들의 매일인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문제의 근본은 백자도 윤민석도 아니라 공동체의 그 변화하지 않는 관성이다. 이 문제가 누구의 사과로 과연 해결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건 총연맹을 비롯한 운동사회의 대표자들이 우리를 (특히나 남성 권력을 분점한 이들을) 대표해서여야 할 테다. 우리들이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함께 배우고 살아나가야 할 일이 가해자와 피해자 중 누구를 '동지'에서 제하고 손절할까 고르는 양자택일 게임이 되어버렸으니.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도 이 신뢰를, 상처입더라도 함께 가고, 가진 것을 잃더라도 변화할 만큼의 유대와 연결이 우리에게 있다는 신뢰를 복원해야 할 것이다.

 

+ 부연하건대, 물론 백자 씨가 계속 문제가 뭔지 모른다면 민주노총 집회에 그 사람의 공연을 올려서는 안 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거기에 있을 여성들이나 성노동 당사자들에게 그 공연이 전혀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운동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언행이 완전무결하고 올바르기만 할 수는 없을지언정, 최소한 예방할 수 있는 혐오와 차별은 최대한 예방하여 참가자들이 최소한의 안전감을 가지고 행사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최측의 마땅한 의무이다. 하지만 민주노총 여성위의 성명에서 이런 맥락은 없거나 적어도 설명이 불충분했고, ‘여성혐오적이므로 → 공연을 금지한다’까지의 도약이 너무나 당연하고 이론을 불허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 나로서도 상당 정도 기계적으로 느껴진 것은 사실이다. 그냥 ‘활동 정지’라는 매뉴얼 일 번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리라고 추단한 것은 이 때문이다.

 

(기사 등록 202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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