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트랜스젠더 해방과 마르크스주의

올해 상반기에 영국에서 출판된 책인 <트랜스젠더 마르크스주의Transgender Marxism>는 자본주의에서 트랜스젠더 억압의 뿌리와 구조를 분석하는 다양한 글들의 모음집이다. 주로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서 있는 필자들의 다양한 관점과 분석들을 담고 있는 이 책에 대한 두 가지 서평을 모아서 번역 소개한다. 비록 이 책이 아직 한국에 번역 출판된 것은 아니지만, 트랜스젠더 억압과 트랜스포비아, 트랜스 배제적인 일부 페미니즘, 트랜스 해방 등이 갈수록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고민과 논의를 진전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한다.(번역: 두견)

 

● 마르크스주의와 트랜지션

 

테리 콘웨이Terry Conway가 줄스 조앤 글리전Jules Joanne Gleeson과 엘르 오어로크Elle O'Rouke가 편집한 플루토Pluto 출판사의 <트랜스젠더 마르크스주의Transgender Marxism>의 새로운 출판을 리뷰한다. 이 글의 필자인 테리 콘웨이는 ‘반자본주의 저항’Anti-Capitalist Resistance의 활동가이다.

 

출처: https://anticapitalistresistance.org/marxisms-and-transitions/

 

플루토 출판사의 <트랜스젠더 마르크주의>의 출판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감격했다. 거의 50년 동안 LGBT+ 운동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나는, 적어도 내가 발견한 바로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억압과 그것과 여성 및, 또는 LGB 억압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는 글이 너무 적다는 것을 깨달았다.

 

젠더 이분법의 목조르기가 괴롭힘의 도구가 되서 젊은이들에게 미치는 타격, 가정과 거리에서의 폭력, 너무나 제한돼 있는 노동 시장에 대한 접근 등 트랜스젠더의 삶의 현실을 연대기적으로 기록하는 것조차 너무 적다. 게다가 존재하기 위해 심지어 의학적, 법적 허가가 필요하다는 공포까지 있다. 트랜스젠더가 이 억압에 저항하고 도전하기 위해 구축했고 구축하고 있는 연대의 공동체는 똑같이 중요하고 똑같이 잊혀져 있다.

 

이러한 질문과 목소리를 적절하게 통합하지 않고 LGBT 운동을 위해 글을 쓰고 말했던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간극에 대한 느낌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공격이 증가하는 맥락 속에서 더욱 날카로워지고 심지어 더욱 절박해졌다. 여기에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정의하는 사람들의 공격도 포함된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균열을 이해해야 할 필요성은 나 자신이 트랜스 해방과 관련된 이론적 및 실천적 문제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듣고, 탐구해야 한다는 느낌을 동반했다. 그런 면에서 자극적이고 보람이 있었던 한 곳은 런던의 ‘역사유물론 대회’에서의 성정치sexual politics 흐름이었다. 그곳에는 팬데믹 이전 시대에 트랜스젠더 사상가와 작가가 이끄는 많은 패널이 있었다.

 

이 책의 편집자 중 한 명인 줄스 글리전과 기고자인 미셀 오브라이언Michelle O'Brien과 로자 리Rosa Lee를 처음 만난 때가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처음부터 나는 그들이 (내가 이름을 간직하고 있지 않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통찰력을 가지고 있고, 내 머리 속에서 조립하려고 했던 퍼즐 조각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는 것을 안다.

 

더 최근에는, 교류를 위한 그러한 생활 공간이 팬데믹 동안에 모두에게처럼 박탈당하면서, 트랜스젠더 정치를 주제로 하고 있는 다른 작업 때문에 나는 이들과, 관련된 작가들의 글을 찾았다. 나는 미셸 오브라이언의 <가족의 폐지: 자본주의 발전 속의 노동계급 가족과 젠더 해방>이 특히 강력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산업화한 도시의 성매매와 성적 하위문화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형태의 젠더 위반을 포착했다. 시스젠더[생물학적 성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성노동자들과 함께 다른 새로운 트랜스여성 젠더 일탈자들이 런던, 암스테르담, 파리의 거리를 걸으면서 크로스드레싱 어휘목록이 등장했다: 몰리스Mollies, 메리-앤스Mary-Anns, 히-쉬 레이디he-she ladies, 퀸스queens. 그들은 거리에서 부르주아지에게 성을 팔았고, 경찰로부터 도망쳤고, 폭동을 일으켰고, 정기적으로 드랙볼drag balls[성소수자들의 무도회]을 개최했으며, 런던 전역에 흩어져 있는 남성지정 성노동자들을 전문으로 하는 약 2,000개의 성매매 업소 중 한 곳에서 일했다.” (미셸 오브라이언)

 

이로 인해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트랜스젠더 정체성은 레즈비언과 게이(그리고 어쩌면 양성애) 정체성과 동시에 그리고 비슷한 상황에서 등장했으며 성노동은 처음부터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경제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 중에 하나였고, 흑인 트랜스젠더 여성이 스톤월 폭동의 최전선에 있었다는 사실은 사실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트랜스젠더 마르크스주의>의 '트랜스 노동: 고용 궤적, 노동 규율 및 젠더 자유'라는 매혹적인 장에서 미셸은 대부분의 작업 환경에서 엄격한 성별화가 노동 시장에서 트랜스젠더가 접근할 수 있는 장소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방식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트랜스젠더는 일반적으로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대부분의 직장에서 열악한 대접을 받아 결국 가난하게 된다. 캐롤린Carolyn은 많은 트랜스젠더와 마찬가지로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던 초기 단계에서도 자신의 젠더를 표현하려는 깊고 강한 의지를 느꼈다. 이 젠더화된 선택은 그녀의 고용 가능성을 급격히 제한하여 습관적인 약물 사용과 사회적 주변화의 기간에 기여했다.

 

나중에 자신의 삶의 안정을 되찾았지만 캐롤린의 고용선택권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다… 이 부분은 많은 일자리를 ‘패스’할 수밖에 없는 트랜스젠더들, 특히 트랜스 여성들의 경험에 초점을 맞춘다. 일을 필요로 하는 젠더 일탈자의 경험과 트랜스젠더가 경제적 생존을 위해 싸우는 방식은 모두를 위한 젠더적 자유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준다.”(미셸 오브라이언)

 

미셸이 여기에서 사용하는 '패스' 개념은 레즈비언, 게이 및 양성애자에게 익숙하며 모순으로 가득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중심으로 한 사회화가 다양한 수준에서 핵심적인 생존 메커니즘인 사회에서 그것을 '패스'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업무 관계에 더 많이 투자하게 될수록, 우리 자신의 일부를 숨기려고 하는 압박감을 느끼는 것은 만족스럽지 못한 일이고, 가장 나은 경우에 손절이거나 최악의 경우에 폭력이라는 측면에서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결과들은 더욱 두렵다. 트랜스젠더의 경험과 LGB의 경험 사이에는 또 다른 연관성이 있다. 즉, LGB가 통과하지 못한다는 고정된 이미지는 젠더 표현으로 추정되는 이분법을 중심으로 매우 자주 구성된다는 것이다.

 

무명천바지를 입은 레즈비언 또는 충분히 스포티하게 보이지 않는 남성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가 있다. 실제로, 완전히 이성애자일 수 있는 여성도 작업장에서 뿐만 아니라 어디서든 젠더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압박받을 수 있다.

 

그들의 섹슈얼리티나 젠더 정체성이 그 자체로 도전적이거나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젠더 표현이 남성이 태생적으로 우월하다는 가정에 대한 모독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용된 구절의 끝에서 미셸이 지적한 '이 현실이 모두를 위한 젠더적 자유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말은 나에게 진실로 들린다.

 

이 구절은 또한 다른 질문을 고려하게 만들었다. 미셸은 캐롤린이 성전환 과정의 어디에 있는지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지만, 자신의 젠더를 표현하는 것은 경제적, 사회적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자신의 자아에 대한 인식에서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커밍아웃의 여정에서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비교적 빠른 길이 될 수 있으며 우리 각자가 내리는 많은 선택과 마찬가지로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나는 확실히 상상할 수 있다. 미셸은 나중에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트랜스젠더 미국인들에 대한 가장 쓸모있고 체계적인 보고서는 6500명의 응답자를 포함하는 트랜스젠더 평등 전국 센터(National Center for Transgender Equality)의 2011년 설문 조사에서 나온 것이다... 고용 데이터는 심각했다. 일반 인구의 실업 상태가 7%인데 비해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28%, 백인 트랜스젠더의 12%가 실업상태라고 응답했다. 모든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15%는 연간 소득이 $10,000 미만이며 일반 인구 비율의 4배에 달하는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트랜스 여성의 44%가, 라틴계 트랜스젠더의 28%가 성노동 경험을 보고했다.”(미셸 오브라이언)

 

노동 시장에서 제한된 부분으로의 트랜스젠더의 유폐와 그 이유를 연결해 설명하는 것은 트랜스젠더 억압과 그것의 여성 및 LGB 억압과의 관계에 대한 유물론적 이해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책 전체에 대해서 보자면 다른 주제들이 여러 챕터들과 기고자들 사이에 엮어져 있어서 나에게 자극을 줬다. 성전환이라는 주제에 대해 로자 리Rosa Lee는 '주디스 버틀러의 과학 혁명: 트랜스섹슈얼 마르크스주의의 토대'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종종 성전환은 생물학적 또는 의학적 개념들(호르몬 대체, 수술 등)로 구성되지만 이러한 의미에서 성전환의 핵심은 자아를 재창조하는 과정, 즉 의도적인 자기 변환을 의미한다. 트랜스젠더에게 성전환은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결정적인 일련의 스스로를 주체화하는 실천, 과정의 일부로서 우리의 경험에서 발생하는 실천들을 의미한다.”(로자 리)

 

오랜 세월 동안 주디스 버틀러의 열렬한 독자였던 나는 이 장의 관점에 끌렸지만, 내가 발견한 것은 그러한 기대를 뛰어넘었다. 논바이너리 정체성의 성장은 말할 것도 없고, 법뿐 아니라 의료 및 정신의학 기관이 통제하는 단일 경로로 트랜스젠더의 삶을 비하하고 폄하하는 사람들의 고정 관념과 싸우는 것은 모두 내가 글을 쓰고 대화하면서 논의하려고 했던 문제들이다.

 

그러나 위의 인용문에서 로자가 아름답게 요약한 이 모음들의 많은 작가들로부터 내가 이해한 것은 성전환이 능동적인 자아 만들기라는 것이다. 나는 트랜스젠더들의 주체성을 충분히 높이 평가하거나 강조하지 않았다. 비슷한 주제가 노아 자자니스Noah Zazanis의 '사회 재생산과 사회적 인식: 공동체 맥락에서 (트랜스)젠더 정체성 발전의 이론화' 장에서 탐구된다.

 

“트랜스 정체성 형성에서 의식적인 재생산 행위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우리는 ‘트랜스 본질주의’trans essentialism[누군가가 본질적/선천적으로 특정 성별이지만 그와 어긋나는 성별의 신체로 태어났다는 생각]와 시스 페미니스트 사회적 결정론cis feminist social determinism[젠더는 그 모든 면이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을 모두 피해나갈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트랜스젠더의 존재와 저항을 철저히 개념화할 수 있는 역사적 유물론으로 나아갈 수 있다.”(노아 자자니스)

 

케이트 도일 그리피스(Kate Doyle Griffiths)의 '노동에 반하는 퀴어 노동자주의: 트랜스젠더 노동자, 사회적 재생산 및 계급 형성의 전략화'는 미셸과 로자가 설정한 몇 가지 주제를 기반으로 한다. 그들은 이 사이트의 독자들에게 친숙할 수 있는 현재의 국면을 요약하여 그들의 생각을 배치한다; '가장 좋았던 시절이며, 가장 나빴던 시절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노동 시장에서 트랜스젠더와 퀴어의 위치를 찾아낸 다음 노동자 연구의 협력된 노력으로 나아가는 것'을 사회 재생산을 바라보는 틀 내에서 그들이 그리는 지도의 핵심으로 확고하게 설명한다. 나는 그들이 확고한 페미니스트적 틀 속에서 더 넓은 퀴어 커뮤니티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고, 또한 내가 킴 무디Kim Moody의 2018년 책 <새로운 지형에 대해On New Terrain>를 읽지 않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녀는 그의 초기 작업을 즐기고 인식하면서 가져온다. 그리피스는 사회적 재생산의 초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교사 파업의 물결은 사회적 재생산의 관문이 이제 새로운 투쟁 물결의 중심임을 보여준다. 노동계급 자체를 매일 다시 만드는 일을 하기 위해 보수를 받는 노동자들은 현장 투쟁을 확대하고 정치화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한다. 이러한 순간들은 보편적인 계급 전체의 요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게 하는데, 정확히는 교육과 같은 여성화된 재생산 부문의 노동자들이 전체 계급에 영향을 미치는 깊어지는 돌봄의 위기와 매일 접촉하고 있기 때문이다.”(케이트 도일 그리피스)

 

그리피스만이 사회적 재생산 이론의 맥락에 그들의 작업을 배치한 작가는 아니다. 예를 들어, 나트 라하Nat Raha 역시 '퀴어 마르크스주의 트랜스페미니즘: 퀴어와 트랜스젠더의 사회적 재생산'을 썼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지금까지 LGBTQ 주체를 결혼 제도에 포함시키는 것을 보증하는 사회적 재생산 노동의 물질적 비용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또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의해 보다 광범위하게 강화된 퀴어의 사회적 재생산에 대한 요구도 말이다. 사회적 투자 회수 및 긴축 조치는 많은 LGBTQ 사람들의 일상 생활의 특징이 되었다. 불안정한 노동(유급 및 무급 모두), 불안정한 주거, 불안정한 보조금, 불안정한 의료, 불안정한 이민 지위. 이것은 장애인, 이민자 또는 유색인종에게 특히 가혹하다.”(나트 라하)

 

다시 거기에는 LGBT 운동, 페미니스트 운동, 그리고 거의 확실히 다른 사회운동들의 다른 논의에서 나온 친숙한 주제들이 있지만 이러한 담론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더 익숙할 가능성이 있는 분석적 틀로 표현된다. 이것들은 또한 온라인 출판 기념회를 하면서 줄스와 엘르가 특별히 앞세운 주제이기도 하다. 나는 거기에 라이브로 참석할 수 있어 매우 기뻤지만 그 소식을 여전히 온라인에서 볼 수 있어 매우 반갑다. 불가피하게, 특히 서로 다른 작가들의 뒤범벅이 있는 책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 있었다.

 

나는 그녀의 브라질에 관한 장을 읽기 전에 버지니아 귀첼Virginia Guitzel의 이력을 읽지 않았다. 그것이 이 책에 있기 때문뿐만 아니라 내가 브라질 및 브라질 정치와 많은 강한 연결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고대하고 있었다.

 

나는 그 글이 수년간 지속적으로 가장 많은 트랜스젠더 살인 사건이 발생한 곳인 그 나라에서 트랜스젠더들의 삶의 잔혹한 현실에 대한 나의 이해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고, 그리고 그녀 자신이 아닌 다른 정치적 경향에 대한 비난은 그 지형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경직된 것이고 정보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둘 모두에서 실망했다.

 

나는 JN 호아드Hoad의 '랜캐스터에서의 만남'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장벽을 세운 것이 형식인지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집단적으로 쓰여진 '들뢰즈Deleuze와 젠더 차이에 대한 대화'(자유주의에 맞설 강한 난관을 포함하는)도 좋았지만 인용하는 것은 유용하지 않고 그것은 전체를 읽어봐야 한다.

 

나는 장애 정치에 대한 내 자신의 참여가 증가했기 때문에 조 밸린스키Zoe Belinsky의 '트랜스젠더와 장애인 신체들: 고통과 상상 사이에서'에 강하게 끌렸지만 다소 불만족스러웠다. 먼저 부제목에 관한 나의 확신할 수 없음이 있다. 이것이 장애인 신체에 대한 고정 관념에 영향을 주는가? 의학적 고통인가, 억압의 고통인가? 그래도 나는 확실히 다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로서의 우리의 쇠약한 조건이 트랜스젠더와 장애인으로서 우리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게 된다. 대신에 그것들은 우리를 구속하고 강압하며 많은 경우 우리를 죽이는 경제 구조에서 발생한다.”(조 밸린스키)

 

나는 메를로 퐁티Merleau-Ponty(현상학자)의 긴 탐구에 덜 흥미를 느꼈고 그것을 통해 실제 길을 찾지도 못했다(나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탐구의 영감도 받지 못했다). 자스비르 푸아Jasbir Puar(퀴어 이론가, 내가 조금 알고 있고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비슷했다. 이 부분에 이르렀을 때 나는 특히 피곤했는지 글의 짜임새와 내용이 내가 책 속의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장벽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평가가 끝나갈 무렵, 불가피하게 그 단어의 양가적 측면에서 부분적이며, 제기하지 않는 게 죄가 될 또 다른 질문이 있다. 이 책은 유물론적 관점에서 트랜스 정치에 대한 매우 인상적인 공헌일 뿐만이 아닌데, 나는 마르크스주의 자체에 대해서도 주장하고 싶다. 내가 이미 지적한 많은 저자들이 사회적 재생산 이론을 발전시키고 발전시키는 방식에 이 중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 이 이론은 최근 몇 년 동안 유물론적 접근에 기반한 새로운 통찰력과 분석이 만발한 영역이었다.

 

그 중 일부는 허무함을 거부하는 데 기반을 두고 있다. 소수의 유명하고 부유한 트랜스젠더의 이미지가 공허힌 갓은 대부분의 트랜스젠더 삶의 가혹한 물질적 현실로부터 우리를 빗나가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단의 포착: 트랜스 인식론을 향하여'에서 나다니엘 디킨슨Nathaniel Dickinson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트랜스젠더가 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자유주의적 포용 정치와 무언가 보다 도전적이고 전도유망한 것 사이의 경계에서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보석들 너머에도 내가 예상하지 못한 풍부함이 있으며, 그 유연함에 감탄하며 소리지를 뻔했다. 풍부한 색상과 짜임새를 제공하는 또 다른 타래가 있고, 이는 경직성과 영감의 부족함으로 나를 우울하고 화나게 하는 급진적 좌파의 경향 중 하나를 예리하게 깎아내리고 있다. 서문에서 엘르와 줄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해를 끼친다는 것을 가정해야 한다. 설명해야 할 것은 그것이 우리를 통해 어떻게 살아남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매 차례마다 요구되는 이 상처와 쓰라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세대를 거쳐 어떻게 지속되는지이다. 이런 식으로 사회적 관계를 '메마르게'하는 설명은 자본주의가 지속된 역사의 더 깊은 뿌리를 놓치고 있다. 그것들은 우리가 자본주의의 재창조와 부흥을 향한 끈질긴 경향, 그리고 '유통기한'으로 추정되는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명백한 고착화를 예상하도록 우리를 무장시키지 않는다. 소위 계급 환원주의적 관점의 문제는 계급으로 환원하는 것은 계급 분할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생하는지 또는 지속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줄스 조앤 글리전과 엘르 오어로크)

 

정말로, 정말로 맞다고 나는 나 자신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이것은 폭력적 행위는 물론이고 편견이 외부로부터 힘을 잃은 노동자들에게 우두머리 신에 의해 부과된다는 혼란스러운 개념을 낳는다. 생산 수단의 소유 및 통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 이외에도 어떤 문제와 관련해서도 권한이 없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케이트 도일 그리피스는 주장한다.

 

“<트랜스젠더 마르크스주의>의 렌즈는 계급과의 환원주의적 관여가 어떻게 자유주의적 '정체성' 정치를 필연적으로 반영하고 복제하고, 계급을 다른 (표시되지 않은) 정체성을 위한 그릇 또는 대리자로 도구화하는지 강조한다. 백인, 이성애자, 시스젠더 남성성, 민족주의. 여기서 계급은 작업장 안팎에서 조직화를 통해 대자적 계급을 구축하는 끈기있고 변혁적인 작업보다는 인구구성과 정체화의 문제인 것처럼 여겨진다.”(케이트 도일 그리피스)

 

그리고 더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우리는 노동계급을 항상 이미 급진화돼 있고 대자적이며, 단지 보수적 지도부에 의해 저지되거나 억제된 것으로 보는 것보다는 더 잘 볼 수 있다.

앞부분의 결론에서 - 1장의 노아 자자니스에서:

 

“그에 비해 마르크스 자신은 인간 존재의 조건을 바꾸는 인간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언급했듯이: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지만 원하는 대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한 상황에서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과거로부터 주어지고 물려받은 상황에서 역사를 만든다. 모든 죽은 세대의 전통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머리를 악몽처럼 짓누른다.”(노아 자자니스)

 

이것은 거의 50년 동안 나의 대부분의 아침을 깨워준 마르크스이다. 이 책은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에서도 주장한 마르크스의 유산에 강력한 기여를 했다.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했을 뿐이다. 요점은 그것을 바꾸는 것이다.' 분명히 나는 기대하기로 이 책을 몇 번이고 다시 내려놓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한 번 이상 그것에 내 자신을 파묻을 것이다. 모든 친숙한 친구와 마찬가지로 각 만남은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하고 새로운 탐험 경로로 이끌 것이다.

 

내가 언급하지 않은 챕터와 생략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모든 챕터가 나에게 해주는 말이 많았다. 나를 생각하게 하고, 진실이라고 가정된 것을 재검토하거나, 기존의 먼지투성이인 구석을 살펴보게 했다. 그것은 다음 시간에 이야기하자. 그리고 나는 이 동지들의 일부와 함께 같은 물리적 공간으로 돌아갈 기회를 기다리기 힘들다. 빈곤의 폭력과 문화 전쟁으로 분열된 세계에서 연대 의식을 키울 수 있는 더 많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말이다.

 

● 트랜스 해방의 이론화

 

에릭 W. 마로니 Eric W. Maroney

 

이 서평의 필자인 에릭 W. 마로니는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 있는 게이트웨이 커뮤니티 대학의 강사이며 미국의 급진좌파 단체인 ‘템페스트 콜렉티브’Tempest Collective의 활동가이다.

 

출처: https://www.tempestmag.org/2021/08/theorizing-trans-liberation/

 

2020년은 "흑인 트랜스젠더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Trans Lives Matter"라는 구호가 그해 여름 미국을 휩쓴 다인종, 다젠더 반란의 특징이 되면서 트랜스 해방을 위한 운동의 획기적인 변화를 나타냈다. 구호의 대중화는 트랜스 공동체에서 가장 소외된 부분의 해방적 욕망을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더 넓은 좌파 내에서 트랜스 해방 정치의 출현을 알렸다.

 

그러나 흑인 해방의 정치와 마찬가지로 트랜스 해방 정치의 성장도 반동적 반발과 맞물려 일어났다. 이러한 반응은 소위 ‘문화 전쟁’을 촉발하여 이익을 얻으려는 극우파, 그리고 젠더에 대한 엄격하고 이분법적인 정의에 의존해 정체성 정치에 편협하게 헌신하는 자유주의자들로부터 나왔다.

 

우파, 자유주의 중도파의 일부, 그리고 극좌파 사이의 이러한 긴장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고안된 상징적 투쟁 그 이상이다. 오히려, 그것은 세계 자본주의가 서로 다른 기구들과 그것들에 부여된 가치의 범주화를 통해 수익을 유지하고 확장하려는 방법을 둘러싼 논쟁의 중요한 현장이다.

 

현재의 정치적 순간은 일반적으로 트랜스젠더의 완전한 배제와 선택적 수용 사이에서 움직인다. 주의회들은 트랜스젠더 청소년의 삶을 구하기 위한 호르몬 대체요법 및 사춘기 차단제 접근을 거부하고, 트랜스젠더 청소년 운동선수의 중등교육 스포츠 참여를 금지하고, 트랜스젠더의 공공 시설 이용을 제한하는 법안(소위 "화장실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또한 선별적인 수용을 위한 여지를 만들었다. 트랜스젠더의 신체는 시스젠더 이분법을 깔끔하게 복제하는 조건으로 공공 공간에 접근할 수 있다. 시스젠더 이분법에 대한 복제는 지속적으로 공공의 감시를 받고 고용의 불안정성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 이데올로기 경쟁은 결과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인권 캠페인'에 따르면, 2020년은 트랜스젠더들에게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해였다. 미국에서만, 44명의 트랜스젠더와 젠더질서 비순응자들이 "치명적으로 폭력적인 행위"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2021년은 그 숫자를 능가하기 위한 궤도에 올랐다. 분명한 것은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계속되는 폭력이 우파가 우리의 존재를 논쟁의 이슈로 이용함으로써 더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정치적 공간에서 트랜스젠더 억압을 연구하는 많은 연구들이 등장했다. <트랜스젠더 마르크스주의Transgender Marxism>가 그러한 책 중 하나이다. 풀루토 출판사에서 출판하고 줄스 조앤 글리전Jules Joanne Gleeson과 엘르 오어로크Elle O'Rouke가 편집한 <트랜스젠더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렌즈를 사용하여 억압의 특수성을 이론화하고 역사화하는 일련의 목소리를 수집한다.

 

이 모음집은 단일한 이론을 제시하지도 않고 단일한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증폭시키려 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 책은 독자들에게 공식 및 비공식 트랜스 마르크스주의 지적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토론에 대한 접근을 제공한다. 글리전과 오어로크는 도입부에서 이 프로젝트의 기원을 "찰나적인 공간(활동가 집단, 북클럽, 소셜 미디어, 잡지와 소셜 미디어 쪽지들) 속에 번지는 것을 알아차린 트랜스젠더 작가들의 이론적 관점을 수집한 선집"이라고 묘사했다.

 

비록 이 모음집에 포함된 저자들이 각각의 접근 방식과 트랜스 해방에 대한 논의의 진입점에서는 다양하지만, 책 전반에 걸쳐 두 가지 경향의 연구가 나타난다. 첫 번째 쟁점은 독자들에게 자본주의가 작동하면서 트랜스 신체들의 가치와 트랜스 신체들의 위치를 결정하는 방법을 고민하도록 요구한다. 두 번째 쟁점은 독자들에게 트랜스젠더들이 자신과 공동체를 만들고 다시 만드는 방법을 고려하도록 사회적 재생산 이론을 확장하라고 요구한다.

 

미셀 오브라이언Michelle O'Brien과 케이트 도일 그리피스Kate Doyle Giffiths는 작업장에서 트랜스 신체의 가치와 위치를 탐구하는 두 명의 작가이다. 오브라이언의 에세이인 <트랜스 노동: 고용 궤적, 노동 규율, 그리고 젠더 해방>은 트랜스젠더들이 작업장에서 특수한 착취를 경험하고, 이것이 고용 형태와 위치를 모두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일탈적이거나 비규범적인 젠더 표현은 퀴어들을 작업장에서 배제하고, 우리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산업을 제한하며, 논쟁적이고 위험한 작업장에서의 경험을 만든다.”

 

오브라이언은 1930년대 여객 원양 정기선(나중에 ‘해양 조리사와 선원 조합’에서 조직한 산업)부터 항공사, 소매업, 성노동 및 서비스 노동을 통해 트랜스 또는 젠더질서 비순응 노동자들의 위치를 추적한다. 그녀의 에세이는 정체성 기반 투쟁을 작업장 투쟁과 연결하고 둘 사이의 예리한 관계를 보여준다.

 

오브라이언은 이러한 "퀴어한" 작업 공간에서도 젠더 표현은 엄격하게 감시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녀의 에세이에 등장하는 한 예는 "여성이 오너"이자 "성 긍정적"인 섹스 토이 숍이라고 자칭하는 ‘토이즈 인 베이비랜드’ 노동자들 사이의 노조 결성 운동이다.

 

오브라이언은 이 가게에서 트랜스젠더와 젠더질서 비순응 노동자가 경험한 젠더 규율을 기록한다. 그녀는 안전하지 않은 노동 조건, 고객으로부터의 괴롭힘, 그리고 ‘베이비랜드와 플레저 체스트’ 토이숍 노동자들을 노조 결성으로 이끌었던 트랜스여성 직원들을 특정해서 요구한 엄격한 복장 규정의 시행을 인용한다. 오브라이언은 작업장에서 트랜스젠더가 경험하는 명백한 젠더 감시가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젠더 감시를 광범위하게 가시화한다고 주장하면서 에세이를 마무리한다.

 

오브라이언처럼, 케이트 도일 그리피스의 <노동에 반하는 퀴어 노동자주의: 트랜스젠더 노동자, 사회적 재생산 및 계급 형성의 전략화>도 트랜스젠더 신체들의 노동력 내에서의 위치를 탐구한다. 그들은 트랜스젠더 노동자들이 가장 흔히 저평가되고 저보상이 되는 직업인 사회적 재생산 분야(가사 노동, 보건 노동, 성 노동, 특히 교육 및 지적 노동)에서는 지나치게 대표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일자리는 트랜스 노동력의 과잉 착취의 현장이다.

 

“트랜스 및 퀴어들은 종종 지속적인 실업의 위험에 처하거나, 일자리를 찾았을 때 종종 우리의 특정한 자질과 기술, 즉 애초에 우리 자신을 낙인으로 표시하는 것과 동일한 자질을 활용하는 부문으로 그것이 제한된다.”

 

그러나 그리피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노동 이론가 킴 무디Kim Moody의 작업이 생산(재생산과 반대로서) 노동자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그리피스는 무디의 ‘노동 결절 지점’ 이론[자본주의 체제의 주요 위치에 있는 소수의 노동자가 집단 행동으로 결정적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이론]을 트랜스(사회적) 재생산 노동자로 확장한다. 그리피스는 트랜스 노동자가 노동력 내에서 나눠지는 독특한 억압과 위치 때문에 일종의 전위와 같은 존재로 독특하게 위치한다고 주장한다.

 

“트랜스/퀴어 노동자들은 작업장 조직화와 물류를 중시하여 표적삼는 전략, 그리고 계급의식 간의 연결을 강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계급적 요구들에 따라서 작업 현장의 투쟁과 사회운동 사이에서도 단결을 이룰 수 있다.”

 

그리피스는 트랜스 정치는 정체성주의와 계급 환원주의에 저항하며, 트랜스 노동자들은 인종과 종교와 민족주의적 경계를 초월하는 독특한 위치에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고 주장한다. 트랜스젠더 마르크스주의의 두 번째 주요 연구 분야는 사회적 재생산 이론가들이 트랜스젠더의 고유한 필요와 역할을 탐구하기 위해 최근 몇 년 동안 해왔던 연구를 확장한다.

 

사회적 재생산 이론은, 자본주의적 이윤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과제인 노동계급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보상되지 않고 저보상되는 노동력을 가시화한다. 노아 자자니스Noah Zazanis의 <사회 재생산과 사회적 인식: 공동체 맥락에서 (트랜스)젠더 정체성 발전의 이론화>에서 그는 "트랜스젠더가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성전환이 일어나고 정체성이 나타나도록 하는 사회적 관계"를 조사한다.

 

줄스 조앤 글리전의 작업을 바탕으로, 자자니스는 성전환의 행위는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 공동체의 사회적 재생산 노동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주의 분석이 특히 적합한 비공식 무급 노동의 예를 통해... 트랜스젠더 사회적 재생산이 발생하고 트랜스젠더 정체성 형성이 촉진된다.”

 

자자니스는 ‘트랜스 본질주의’(누군가 본질적/선천적으로 특정 성별이지만 그와 어긋나는 성별의 신체로 태어났다는 생각)와 젠더 사회화 이론(유아기 사회화가 젠더를 결정한다는 생각)을 모두 거부한다. 대신 그는 사회적 인식 이론을 사회적 재생산 이론의 맥락 속에 놓고 사회적 영향이 개인에 따른 일생 동안 젠더를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자자니스는 이러한 젠더 구성이 시스젠더와 트랜스젠더의 경험 모두를 위한 작업, 특히 사회적 재생산 작업임을 강조한다. 그는 학교 교육, 종교, 가족이 시스젠더 정체성을 재생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트랜스젠더는 사회적 재생산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재생산한다고 주장한다.

 

트랜스젠더들은 트랜스 공동체를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서로를 조언하고 코치하며 정서적, 신체적 보살핌을 제공한다. 물론 이러한 트랜스젠더 재생산의 형태와 맥락은 인종과 계급에 따라 차별화되며, 더구나 개인에게 온라인 커뮤니티 형태로 가상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노아 자자니스와 마찬가지로 나다니엘 디킨슨Nathaniel Dickson도 성전환 경험에 사회적 재생산의 렌즈를 적용한다. 그의 에세이 <수단의 포착: 트랜스 인식론을 향하여>에서 딕슨은 젠더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작업과 젠더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도구의 무기화를 탐구한다.

 

트랜스젠더들은 젠더를 전복시키려 하지만, 그들은 자본주의에 의해 허용된 틀에서 그들 자신에 대한 정의를 구부려야 한다. 디킨슨에 따르면, 트랜스젠더들은 성전환의 수단들에 접근하기 위해 부모, 의사, 판사, 카운티의 직원 등에게 그들의 트랜스젠더성을 증명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젠더의 무결성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에 젠더를 생산하는 과정에 개입하려는 모든 시도는 그 무결성을 손상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명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입이 거부된다.”

 

디킨슨은 또한 언어, 패션, 신체에 대한 집단적 재정의를 통해 젠더 구성을 가시적으로 만드는 트랜스젠더 집단의 변혁적인 노력을 지적한다. 딕슨은 다음과 같이 쓴다. “트랜스젠더는 제멋대로인 방식으로 생산적이다. 사회적 재생산 노동은 세상과 새로운 젠더적인 관계를 우리 자신에게 가르치는 데 사용된다.” 그는 자아를 재해석하고 재정의하는 데 필요한 인간 행위주체를 강조함으로써 에세이를 마무리하고, 이 행위주체가 자본주의의 방식이나 목적과 여전히 충돌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내가 이 컬렉션에서 가장 좋아하는 에세이인 파라 톰슨Farah Thompson의 "젠더와 조직 사이의 다리"는 이 책에서 더 이론적인 글들의 많은 부분에 대해 담론적인 동반자를 제공할 것이다. 그녀의 찬란하고 복잡한 내러티브는 트랜스젠더 억압의 근원을 탐구한 경험을 살아 있는 경험 속에 배치한다. 자신의 커밍아웃과 성전환을 기록하면서 톰슨은 가족과 직장에서 발생하는 젠더 감시를 탐구한다.

 

그녀는 트랜스 신체 착취의 실제적 결과, 트랜스의 사회적 재생산 책임의 이중적 부담에 대해 논의하고 트랜스 공동체의 가장 소외된 부분인 흑인 트랜스 여성이 어디에서 자신의 삶을 창조할 수 있는지에 대해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톰슨은 다음과 같이 쓴다: “트랜스 여성이 이러한 모든 압력에 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힘으로, 다른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힘으로 대답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힘은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규정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트랜스젠더 마르크스주의>는 트랜스젠더 억압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고 트랜스젠더 해방 투쟁의 해방적 잠재력을 엿볼 수 있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들과 편집자들의 잘못이 아닌 이 모음집의 약점은 트랜스젠더의 노동과 트랜스젠더의 삶에 대한 제한된 경험적 데이터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기여자들의 이론적 발전은 현재 진행 중인 매우 제한된 양적 연구와 대조되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인구조사에서 트랜스젠더를 제외하기로 한 결정을 훨씬 더 비극적인 결과로 만든다. 모음집이 제기하는 마지막 관심사는 사회적 재생산 이론 자체에 관한 것이다.

 

트랜스젠더의 삶은 정체성이 어떻게 생성되고 유지되는지를 다시 상상하도록 요구하므로 사회적 재생산 노동을 구성하는 것의 재상상 또는 확장이 필요하지만 개념의 재평가에는 한계가 있다. 너무 멀리 뻗어가면 무기력의 위험이 있지만, 얼마나 멀리 갈 것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J. 코헨 피트Cohen Pitt와 S. 뭉크Monk를 인용하여 나트 라하Nat Raha의 <퀴어 마르크스주의 트랜스페미니즘: 퀴어와 트랜스젠더의 사회적 재생산>은 퀴어의 사회적 재생산이 일어나는 폭력적인 조건에 대해 논의한다. 라하는 의약품을 나누고, 우울증을 앓고 있는 집 구성원들을 보살피고, 거리 괴롭힘을 물리치는 것을 "퀴어, 트랜스 공동체와 공동 주택 사업들 사이의 공통된 주제"로 묘사한다.

 

이러한 행위는 퀴어 노동계급을 재생산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동의 범위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아 자자니스는 온라인 "패싱" 가이드, 유튜브 비디오 및 트위터, 디스코드 및 틱톡과 같은 "직접 지도" 및 "규범 설정"의 기타 사이트를 포함하도록 사회적 재생산 노동의 정의를 확장한다. 확실히 가상의 공동체는 많은 트랜스젠더 개인, 특히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에게 생명줄 역할을 하지만, 이러한 가상 플랫폼에서 내용물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흔히 대부분 보상되지 않는) 노동이 사회적 재생산 노동을 구성하는지는 불분명하다.

 

이러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하에서 트랜스젠더 억압에 대한 독자의 이해에 대한 <트랜스젠더 마르크스주의>의 강력한 이론적 기여의 가치는 이것 모두를 폐지하는 도구로서의 유용성에 의해서만 가려진다. 글리전과 오어로크가 이 책의 서문에서 결론을 내렸듯이 "우리의 목적은 우리의 사회적 고통에 대한 보다 엄격한 이해일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참을 수 없었던 것들을 폐지하기 위한 연료의 제공이다." 

 

(기사 등록 2021.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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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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