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두나예프스카야의 마르크스주의적 휴머니즘

피터 후디스PETER HUDIS

번역: 두견

 

러시아 태생의 사상가인 두나예프스카야Raya Dunayevskaya는 미국 급진좌파의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초기 단계에서 그녀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두 개의 억압적 구조인 인종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을 결합할 필요성을 인식했다. 나아가 현대 사회를 정의하는 무수한 형태의 소외에 대한 휴머니즘적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의 전제에 도전했다. 두나예프스카야의 사상은 사회주의 사상과 이론의 혁신을 위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글의 필자인 피터 후디스는 오크톤Oakton 커뮤니티 칼리지의 철학과 교수이자 <프란츠 파농: 바리케이드의 철학자>의 저자이다.

 

출처:

https://www.jacobinmag.com/2021/06/raya-dunayevskaya-marxist-humanism-anti-racism-capitalism-alienation

 

 

최근 몇 년 동안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의 고조는 미국 역사상 인종주의적 비인간화에 맞서는 가장 거대하고 창조적인 운동 중 하나가 규정하는 맥락에서 전개되었다. 흑인의 삶을 위해 경찰의 학대에 맞서는 운동은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를 계급처럼 심각하게 취급하는 교차적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달려 있음을 분명히 시사한다. 좌파 조직 내에서 종종 드러나는 성차별주의와 동성애 혐오에 반대하는 지속적 투쟁도 마찬가지이다.

 

이 때문에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갈수록 주목받는 인물이 라야 두나예프스카야(1910~87년)이다. 두나예프스카야는 현대 사회를 규정하는 무수한 형태의 소외에 대한 휴머니즘적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기성의 마르크스주의의 전제에 도전했다. 에이드리언 리치Adrienne Rich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나예프스카야는 마르크스의 마르크스주의가 계급투쟁이 일차적이라는 의미라거나 자본주의가 무너지면 인종주의과 남성우월주의가 사라질 것이라는 개념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녀는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가, 우리가 항상 함께 물어야 하는 질문이라고 말했다.”

 

마르크스주의의 위기

 

1910년 우크라이나 서부의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두나예프스카야와 그녀의 형제 자매들은 러시아 내전 중에 나라를 떠나 1921년에 시카고로 이주했다. 아직 10대도 되지 않은 그녀는 지역 좌파 정치에 참여하여 공산당의 청년 그룹에 합류했다. 1925년에 그녀는 미국 흑인 노동 회의(American Negro Labour Congress)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 공산주의자들이 흑인 사회에서 입지를 구축하기 위한 첫 번째 노력이었다.

 

1927년에 레온 트로츠키에 대한 당의 매도에 반대하다가 밀려난 이후 그녀는 제임스 P 캐논James P. Cannon, 마틴 에이번Martin Abern, A J 머스트Muste와 같은 인물들과 함께 일하면서 트로츠키주의 투사로서 노동 운동에 개입하며 나머지 10년을 보냈다. 1937년, 미국 좌파를 말아먹는 파벌적 다툼에서 벗어나려던 그녀는 트로츠키가 멕시코 코요아칸에서 망명하는 동안에 러시아어 비서가 되었다.

 

두나예프스카야는 1939년 히틀러-스탈린 조약이 제2차 세계대전에 청신호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을 "노동자 국가"로 옹호한 트로츠키와 결별한 후에 이론가로서 처음 등장했다. 그 협정과 트로츠키가 그것에 비추어 소련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재고하기를 거부한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사회주의"의 의미가 가장 심각한 범죄를 정당화할 정도로 타락했음을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회주의자들이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폐지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해방 사회로 이어진다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소련의 성격에 대한 경제적 분석에 착수함으로써 대응했다. 그녀는 1940년에 이렇게 썼다.

 

“사회의 계급적 성격을 분석하는 결정적 요소는 생산수단이 자본가 계급의 사유재산인지 국유재산인지가 아닌, 생산수단이 자본인지, 즉 그것이 독점돼 있고 직접 생산자에게서 소외되어 있는지에 있다. 소련 정부는 전체 경제 체제와 관련하여 개별 자본가가 단일 기업과 관련하여 차지하는 위치를 차지한다.”

 

그녀는 소련은 "사회주의"도 아니고, 트로츠키가 주장했던 것처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과도기 사회도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그것은 "국가 자본주의"였다. 소련에 대한 이러한 규정은 충분히 논쟁의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두나예프스카야는 재산 형태가 사회의 성격을 정의한다고 비슷하게 주장하는 스탈린주의에 대한 좌익 비평가들 - 그것이 트로츠키이든, 또는 소련을 "관료 집산주의" 체제로 규정했던 그의 소원해진 제자인 막스 샤흐트만Max Schachtman이든 - 에 문제를 제기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재산은 노동의 산물이며, 재산 형태는 사물 간의 관계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근본적인 문제는 재산이 개인 소유인지 집단 소유인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사물 취급을 받는 것이 중단되는 게 확립되었는지 여부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공적 소유나 국가 소유가 자본으로서의 생산 수단의 성격을 박탈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인간 관계의 맥박에 손가락을 짚는 데 계속 실패하고 있었다.

 

두나예프스카야는 사회주의자들이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무정부적 시장 관계에 반대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믿었다. 그들이 이러한 문제에 너무 집착하면서 그러한 재산 관계를 가능하게 한 소외된 삶과 노동의 조건을 간과한 것이 문제였다.

 

그녀는 소외가 생산자로부터 생산물의 분리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노동자가 임금으로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한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 불균형은 노동에서, 그리고 직장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그리고 자연과의) 관계 모두에서, 자신의 활동으로부터 소외된 결과였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따라서 사적 소유는 소외된 노동의 산물이자 결과이며, 노동자와 자연 그리고 자신에 대한 외부 관계의 필연적 결과이다... 사유 재산이 소외된 노동의 원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 결과이다.”

 

재산, 소득,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는 소외된 인간 관계의 필연적인 결과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마르크스는 그의 휴머니즘적 에세이로 알려진 <1844년의 경제 철학 수고>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썼다. 두나예프스카야는 러시아 경제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당시 영어권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러한 글들을 발견하고 일부를 영어로 출판한 최초의 사람이다.

 

소외에 대한 마르크스의 휴머니즘적 비판의 발견은 소련에 대한 그녀의 경제적 분석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것은 또한 그녀를 더 넓은 이해로 이끌었다. 두나예프스카야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경제주의와 객관주의가 현대 사회를 정의하는 비인간적 형태의 인간관계를 다루는 것을 차단했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인종과 젠더 억압 문제를 반자본주의적 관점으로 통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음을 알게 되었다.

 

인종, 계급, 그리고 변증법

 

반인종주의 운동에 대한 두나예프스카야의 참여는 1940년대에 ‘존슨-포레스트Johnson-Forrest 경향(JFT)’에서 C. L. R. 제임스James와의 협력 작업으로 확대되었다. 이것은 소련을 국가자본주의 사회로 분석하도록 장려한 미국 노동당의 반체제 단체였다. 그 이름은 제임스와 두나예프스카야의 각각의 가명에서 파생되었다.

 

인종과 인종주의 문제는 JFT의 작업에서 필수적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 그룹은 자본주의 내에서 달성할 수 있는 시민권 요구의 관점에서 반인종주의적 투쟁을 보았지만, JFT는 그러한 투쟁이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어떤 노력에서도 중추적이라고 주장했다.

 

인종주의적 결정은 미국의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계급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에 인종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은 노동자와 다른 피억압 집단이 목소리를 찾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이러한 근거에서 그들은 흑인 미국인에 의한 반인종주의적 투쟁을 일반적 계급투쟁의 부차적이거나 보조적인 것으로 보는 사람들에 맞서서 독자적 타당성을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은 계급투쟁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급투쟁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 이어졌다. 노동자들의 의식에 대한 통찰력을 얻기 위한 마르크스가 설문지를 활용한 것에서 차용한 JFT는 당시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 수익의 불평등한 분배뿐만 아니라 소외된 노동 조건에 점점 더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서는 "노동조합 의식"만을 얻을 수 있다는 레닌과 관련된 전통적 견해를 침식하면서 더 높아진 인식의 수준을 반영했다.

 

이것은 이어서 JFT가 마르크스 이후의 마르크스주의의 대부분을 특징짓는 조잡한 유물론에 의문을 제기하게 했다. JFT의 창립 직후 합류한 그레이스 리 보그스Grace Lee Boggs와 함께 제임스와 두나예프스카야는 헤겔과 그가 마르크스에 미친 영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 현대 정치에 대한 이 독일 철학자의 관련성뿐만 아니라 말이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두나예프스카야가 레닌의 1914년 저작 "헤겔 논리학의 개요"를 영어로 번역한 첫 번째 번역본에 의해 촉진되었는데, 여기에서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는 다음과 같은 진술을 했다.

 

“인식은 객관적인 세계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창조한다… 헤겔의 작품 중 가장 관념론적인 이 작품에는 최소한의 관념론과 최대한의 유물론이 있다.”

 

JFT는 미국에서 헤겔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첫 번째 그룹으로 여겨질 수 있는데, 이것은 그 전통에 대한 설명에서 종종 간과되는 사실이다. 자발적인 계급과 인종 의식에 대한 JFT의 강조는 결국 그것이 전위 정당의 개념을 깨고 트로츠키주의를 넘어서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그 개념에 대한 대안을 둘러싼 새로운 차이점은 그룹의 궁극적인 해체를 설명해 주었다.

 

두나예프스카야에게는 마르크스주의 사상가-활동가 그룹이 여전히 중요했다. 운동을 인수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운동들과의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실행 가능한 대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구실로서 말이다.

 

휴머니즘과 소외

 

두나예프스카야의 1958년 저작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은 마르크스주의적 휴머니즘에 대한 최초의 책 한 권 분량의 작품이었다. 그 서문은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이 책은 마르크스가 ‘철저한 자연주의 또는 휴머니즘’이라고 불렀던 마르크스주의를 원래의 형태로 재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마르크스주의는 해방 이론이거나 그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디트로이트 자동차의 흑인 노동자인 찰스 덴비Charles Denby와 함께 두나예프스카야가 설립한 여러 마르크스-휴머니즘 조직 중 첫 번째인 ‘뉴스 및 편지 위원회’의 기초 역할을 했다. 두나예프스카야는 다음 30년 동안 많은 작품으로 <마르크스주의와 자유>를 뒤이었다. <미국의 문명: 전위로서 흑인 대중>(1963), <철학과 혁명: 헤겔에서 사르트르까지, 마르크스에서 마오까지>(1973), <로자 룩셈부르크, 여성해방과 마르크스의 혁명적 철학>(1981), <여성해방과 혁명의 변증법>(1985). 그녀는 우리 시대의 현실이, 이론과 실천 모두에 필수적인 혁명적 휴머니즘의 관점을 만들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두나예프스카야에 따르면, 1917년 이래로 많은 끝나지 않고 유산된 혁명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권력 장악 전과 후에 인간관계의 철저한 재조직화의 필요성을 무시하면서 위계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조직 형태에 의존하는 것이 가져올 막대한 대가를 보여주었다. 마르크스의 휴머니즘에 기초한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적 재건이 필수불가결해졌다.

 

많은 사상가들이 수년에 걸쳐 사회주의적 휴머니즘과 관련을 맺게 되었지만 두나예프스카야의 접근 방식은 두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다른 많은 사람들과 달랐다. 첫째, 그녀의 휴머니즘은 인간 본성에 대한 본질주의적 또는 몰역사적 관점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혁명의 실질적 힘에 근거를 두었다. 그녀는 그것을 “그 자체가 이론의 한 형태인 실천으로부터의 운동”이라고 불렀다.

 

두나예프스카가 제기한 대중적 자유의 투쟁은 단순히 혁명 "만들기"의 이름으로 활용되는 힘이 아니다. 그것들은 듣고, 흡수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이론적 질문을 제기했다. 예를 들어 "내 노동일이 언제 시작되고 끝나며 왜 내가 그것에 대해 발언권이 없는가?" “왜 나는 인간이 아니라 인종적 고정관념으로 보여지는 걸까?” 또는 "왜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여전히 나를 대상으로 취급하는가?"와 같은 것이다. 새로운 사회운동이 제기한 그러한 질문은 마르크주의자들로 하여금 전체 해방 프로젝트에 대한 시야를 넓히도록 강요했다.

 

이러한 정신에서 두나예프스카야는 자동화에 반대하는 평범한 노동자의 투쟁을 크게 강조했다. 그녀는 오랜 시간 서신을 주고받은 허버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마르쿠제는 그러한 투쟁을 진보의 장애물, 또는 자본에 의한 산 노동의 대체가 사회주의의 물질적 기초를 제공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녀는 그들이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노동을 수행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고 주장했다.

 

자동화가 노동을 더욱 소외시킨다는 사실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불완전 고용과 영구적 실업은 또한 작업장 밖에서의 삶을 더욱 소외시켰다. "탈산업화"가 일상적인 단어가 되기 오래 전에 두나예프스카야는 더 큰 자동화를 위한 드라이브가 사회 생활 자체를 어떻게 일종의 공장으로 바꾸는 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자본주의가 일상 생활의 구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두나예프스카야의 관심은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에 맞선 투쟁에 대한 그녀의 견해에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1955-56년 몽고메리Montgomery 버스 보이콧으로 시작된 민권 운동을 미국에서 "흑인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많은 좌파들이 그것을 단순히 자본주의 파이의 더 큰 조각을 요구하는 것으로 여겼던 때였다. 1960년대의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시위자들이 들고 있던 "나는 인간이다"와 같은 팻말(최근의 경찰폭력 반대 시위에서 "나는 여성이다"와 "나는 트랜스젠더다"로 다시 등장함)은 일종의 휴머니즘의 선언이 아니라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두나예프스카야가 1985년에 흑인 여성 투쟁에 대해 쓴 글에 따르면,

 

“흑인의 관점을 파악하는 것은 새로운 언어, 생각의 언어, 흑인의 생각을 배우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새로운 언어는 잘 들리지 않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다. 자유를 위한 투쟁과 자유에 대한 사상이 공존하는 이러한 유형의 사고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듣기가 어렵다.”

 

노동가치 이론

 

두나예프스카야와 대다수의 사회주의적 휴머니스트들 사이의 두 번째 분기점은 이것이었다. 마르크스의 휴머니즘에 대한 대부분의 다른 논의들은 그의 초기 저작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두나예프스카야는 가장 심오한 표현을 그의 가장 "성숙한" 저작인 <자본>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학자들은 종종 마르크스가 자본가로부터 노동자에게 잉여가치가 재분배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이론에서 끌어냈다는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가 데이비드 리카르도의 노동가치 이론에 대한 급진적 변형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마르크스는 가치의 불평등한 분배뿐만 아니라 화폐로 표현되는 부의 존재 자체를 문제 삼았다.

 

마르크스는 상품의 가치가 상품을 생산하는 데 걸린 실제 시간이 아니라 생산에 필요한 평균 시간에 의해 결정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가 사회적으로 필요로 하는 노동시간이라고 부르는 이 추상적 평균은 생산자의 필요나 욕구와 상관없이 생산자들에게 그것의 의지를 부과했다. 마르크스에게 "가치"는 독특한 형태의 노동의 표현이었는데, 여기서 개개인은 그들의 통제 밖에서 추상적인 형태의 지배에 시달렸다. 그것은 비인간화된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었다.

 

사회주의는 시장이나 국가에 의해 시간을 조직하는 대신 개인이 자유롭게 조직하는 새로운 인간관계의 창출을 통한 가치 생산의 폐지를 나타낸다. 두나예프스카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르크스의 기본적 이론은 그가 ‘소외된 노동’이라고 부른 다음 ‘추상적’ 또는 ‘가치 생산적’이라고 부른 노동에 대한 이론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적 자본의 이론은 가치의 노동 이론이 아니라 노동의 가치 이론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옳다."

 

최근 몇 년 동안 독일의 ‘새로운 마르크스 읽기’Neue Marx-Lektüre, 체계적 변증법systematic dialectics 학파, 말년의 모이세이 포스톤Moishe Postone을 비롯한 많은 마르크스주의적 가치형태 이론가들로부터 소유 형태와 교환 관계에 대한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의 강조에 대한 도전이 있었다. 그들은 이러한 접근 방식이 추상적 노동과 사회적 필요 노동 시간의 증가하는 지배력을 무시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가치형태 이론가들은 지배의 추상적 형태에 너무 집착하여 자본의 논리가 노동자의 저항이나 모든 종류의 주관적인 인간 행위 주체들을 압도한다는 절망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가치 생산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이 지닌 휴머니즘적 함의를 지나친다. 이 사상가들 중 소수만이 인종주의나 성차별, 그리고 두 억압에 맞서 일어난 저항의 형태에 대해 많은 말을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두나예프스카야는 다른 접근 방식을 취했다. 그녀는 <자본>의 비판 대상이 소외된 형태의 인간 행위라는 점을 파악하면 계급 억압보다 훨씬 더 비인간적일 수 있는 성차별과 인종주의를 포함하여 경제학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소외 형태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철학과 조직

 

마르크스주의를 혁명의 철학으로 재구성하려는 두나예프스카야의 노력은 당대의 사회 변혁 노력이 직면한 위기에서 비롯되었다. 1960년대 후반의 해방 운동은 단 한 번의 혁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도 당국은 총을 쏘지 않고도 1968년에 혁명에 가까운 투쟁을 진압할 수 있었다.

 

그러한 문제는 “서구”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은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Wretched of the Earth에서 아프리카-아시아 혁명이 그가 "신휴머니즘"이라고 부르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신식민주의의 집게발에 갇힌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혁명 그 자체에서 나타나는 반혁명 현상은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훨씬 더 최근의 예는 1983년 그레나다의 ‘신보석운동’New Jewel Movement에 속한 마르크스-레닌주의 분파가 혁명의 민주적 사회주의 지도자인 모리스 비숍Maurice Bishop을 암살했을 때였다. 이로 인해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은 그해에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을 명령하기가 더 쉬워졌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두나예프스카야는 삶의 마지막으로 가면서 헤겔과 마르크스의 작업을 더 깊이 탐구하게 되었다. 그녀는 반자본주의 운동이 기존 사회의 첫 번째 부정에서 멈추는 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탐구하고 싶었다.

 

"새로운 시작으로서의 절대적 부정"이라는 범주를 중심으로 한 <철학과 혁명>에서 헤겔에 대한 그녀의 독창적인 해석은 이러한 초점을 반영했다. <로자 룩셈부르크, 여성해방과 마르크스의 혁명적 철학>에서 마르크스의 마지막 10년에 대한 그녀의 검토도 마찬가지였다.

 

이 시기는 마르크스가 비서구 세계에 관심을 돌리고 여성이 많은 전자본주의 사회에서 오늘날보다 더 큰 자유를 누린다는 사실을 강조한 시기였다.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한 두나예프스카야의 연구에는 그녀의 페미니스트적 차원에 대한 매혹적인 토론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또한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그의 저서인 <가족, 사유 재산 및 국가의 기원>에서 한 주장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엥겔스는 자신이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라고 불렀던 것의 이유를 사유재산의 등장으로 돌렸다. 그는 가부장제가 사유재산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에서 출발하여, 가부장제가 사유재산의 폐지로 같이 끝날 것이라고 가정했다. 이 주장은 20세기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거의 지속 가능하지 않다. 두나예프스카야는 마르크스 이후에 나온 가장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도 그녀가 “영구적 혁명의 철학”이라고 명명한 그의 해방적 관점에 미치지 못한다고 결론지었다.

 

오늘날의 세계는 "조직의 변증법"에 관한 새 책을 집필하던 중 1987년에 사망한 두나예프스카야가 경험한 것과 여러 면에서 다르다. 그러나 그녀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 즉 우리가 자본주의에 대한 실행 가능한 대안을 구상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직접 이야기한다. 그녀는 1981년에 이렇게 썼다.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쿠바에서 이란으로, 아프리카에서 폴 포트의 캄보디아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의 수많은 위기는 혁명의 철학이 없는 행동주의가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결코 밝히지 않고, 단순한 반제국주의와 반자본주의에 몰두한다는 것을 거듭해서 보여주었다.... 필요한 것은 마르크스의 휴머니즘에 입각한 새로운 통합적 원칙으로, 인간의 사고와 경험을 진정으로 바꾸는 것이다.”

 

(기사 등록 2021.11.9)                                                                                       

*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저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전지윤  1002 - 452 - 402383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newactorg@gmail.com/ 010 - 8230 - 3097 http://www.anotherworld.kr/608

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