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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윤석열 시대/ 총기난사/ 한동훈/ 파친코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5. 27.

전지윤

윤석열 시대의 반복되는 풍경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미 검찰과 언론의 가혹한 공격을 받던 분들이 더 심각한 고통으로 빠져들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그 중에서 윤미향 의원이 먼저 공격받을 것도 말이다. 왜냐하면 윤미향 의원은 검찰과 언론이 마구 두들겨온 희생양이었을 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군사적 동맹 강화로 나아가는 데 핵심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이번 한미정상 회담에서 드러났듯이 윤석열 정부는 기꺼이 미국과 일본의 하위파트너로 들어가면서 중국 포위를 위한 군사안보적 동맹에 총알받이가 될 자세가 돼 있다. 그러려면 한일간의 과거사를 덮으면서 제국주의 피해자들의 입을 막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그 문제를 가지고 앞장서 싸워온 윤미향 의원은 반드시 도려내야할 표적이 된다.

얼마 전 법원 판결과 외교부의 문서 공개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게 난점은 공개된 면담 내용이 오히려 윤미향 의원의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데 있다. 이번에 공개된 내용을 보면 당시 위안부 합의의 가장 굴욕적인 부분을 박근혜 정부가 결코 사전에 정대협에게 알려준 적이 없다는 윤의원의 일관된 주장이 옳았다는 게 드러난다.

박근혜 정부는 이미 당시 언론에도 흘러서 누구나 알 수 있었던 합의내용들을 반복 설명하면서 윤미향 대표와 정대협을 기만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 소녀상 철거/ 더 이상의 문제제기 포기라는 이면합의 내용은 철저히 숨겼다. 당연하다. 윤미향 의원, 정대협, 위안부 피해자들이 그것을 결코 받아들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면담기록 부분공개로 이제 윤미향 의원의 진실이 드러나고, 윤석열 정부는 깨갱하게 됐나? 전혀 아니다. 왜냐하면 윤석열 정부에게는 진실과 팩트는 하나도 관심없는 족벌언론들이 있기 때문이다. 면담기록이 공개된 어제부터 족벌언론들은 윤미향이 사전에 다 듣고도 숨긴 것이 드러났다. 역시 파렴치한 위선자였다는 기사, 논설들을 대대적으로 도배하고 있다.

기가 막혀서 숨이 막히고 분노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가능하다. 왜냐하면 여기는 윤석열 시대를 가져 온 한국사회이니까. 족벌언론이 쏟아내고, 포털에 도배되고, 국민의힘이 난리치면 누구든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지는 사회이니까. 그렇게 만들어진 강력한 프레임이 힘이 어떤 진실도 삼켜버리는 사회이니까.

윤미향 의원을 선거에 이용하기만 하고 일찌감치 손절해버린 민주당, 윤미향 의원에 대한 전사회적 마녀사냥에 슬그머니 올라타서 같이 돌을 던지다가, 이제는 침묵하고 있는 개혁언론들이 모두 모른척하고 있고 이런 내막을 전혀 설명하고 있지 않는 사회이니까.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지난 과정을 굳이 찾아보고 돌아보기 보다는 그냥 눈을 돌리는 사회이니까.

https://blog.naver.com/mhyang530/222747766200

요즘 불쑥 불쑥 화가 치밀어 오르고 뉴스를 보다가 욕이 터져나오는 이유

* TV조선에서 `5·18 북한군 개입설`을 퍼트린 장성민을 대통령실 정책조정기획관으로 임명한 윤석열이 광주에 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

* 탈북자 간첩조작한 이시원이 대통령실 공직기강 비서관 자리에서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될 때,

* 수차례 성비위를 저질렀고, 벌명이 EDPS(음담패설)라는 윤재순을 검찰에서 특활비 관리자로 두고 있던 윤석열이 그를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으로 데려가 계속 돈관리를 맡기려 할 때,

* 수많은 연예인, 공인과 그 자녀들을 죽음같은 고통으로 몰아갔던 극강의 사이버렉카 강용석이 윤석열과 사법연수원 동기이고 원래 전화하는 사이”“대선 때도 계속 통화했다며 유유상종을 확인해줄 때,

* 우리가 코로나 3년을 그나마 견딜 수 있도록 하는데 큰 기여를 한 것이 분명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쓸쓸하게 쫓겨나고, 그 자리를 외국인 입국금지를 주장하던 사람이 대체한 것을 확인할 때,

* 용기있게 역사적인 미투운동의 방아쇠를 당겼고 그 이후에도 성폭력 피해자와 연대자들에게 든든한 버팀목같던 서지현 검사가 모욕적으로 밀려났다는 소식을 들을 때,

* 무소불위의 칼을 휘두르며 검찰왕국을 만들어 온 정치검사들의 복마전 속에서도 외롭고 묵묵히 그 거대한 벽에 맞서던 임은정 검사가 또다시 적격심사 대상이 되고 지방으로 쫓겨나면서 커다란 시련으로 몰리고 있는 것을 볼 때,

* 그리고, 검찰과 언론의 희생양이었던 사람들이 윤석열 시대에 더 깊은 고통으로 빠져들고 있고, 노동자의 권리와 혐오와 차별의 종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굶주리고, 땅바닥을 기고, 감옥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올 때,

* 이렇게, 윤석열이 측근 정치검사들을 총동원해 검사동일체적 권력구조를 만들어가며 공정’, ‘상식’, ‘자유’, ‘지성의 단어 뜻을 완전히 거꾸로 만들고 있는데, 그것을 찬양하고 비호하는 족벌언론들의 온갖 궤변과 그것에 동조하고 침묵하는 일부 지식인들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헛소리였고 그저 강약약강이었음을 거듭 확인해 줄 때.

할 수 있는 것은 눈물을 흘리고 이를 악물고 참는 것인가

며칠 전 미국 뉴욕 버펄로의 흑인 밀집 지역에서 백인우월주의에 찌들은 한 18세 백인 남성이 총기를 난사해 10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상을 입는 끔찍한 참극이 또 벌어졌다. 범인은 군복 스타일의 옷에 헬멧, 방탄복 등으로 무장한 채 돌격소총 들고서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그리고 백인의 출산율이 낮아지고 유색인종의 이민과 출산율 급증으로 유럽계 백인이 밀려나고 있다”, “흑인은 백인보다 지능이 낮다는 등의 주장을 담은 선언문을 SNS에 올렸다.

이것은 편견 -> 혐오표현 -> 차별행위 -> 증오범죄 -> 집단학살로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혐오의 피라미드현상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타자를 증오하도록 만드는 일상적인 편견과 혐오표현들이 어느 순간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경고와 위기의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 누군가를 향하는 편견과 혐오표현들을 방치하는 것은 다가올 더 큰 비극을 방치하는 것이다.

또 이것은 그동안 트럼프와 극우 정치인들, 폭스뉴스와 우파언론들이 퍼트려 온 인종대체이론’(유색인들이 무한 번식하며 미국을 집어삼키고 있다)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우파 정치인과 보수적 언론인들이 때로는 막말을 하면서, 때로는 점잖은 언어로 이런 논리를 반복적으로 전파하고 선동해 온 결과인 것이다. 그것은 상식이 됐고, 어떤 이들이 행동에 나서도록 기폭제가 됐다.

자신이 목격하는 모든 고통과 문제들의 원인이 유색인들에게 있다고 확신한 채, '미국사회를 구하기 위해'서 흑인을 한명이라도 더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용의주도하게 준비하고 계획을 짠 18세 청소년의 머리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지 생각하면 아득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표현의 자유를 신봉하는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가 인수한 트위터를 통해서 이런 위험한 주장과 논리들은 더욱 많이 퍼날라질 것이고 한다.

이것은 이 나라에서도 그동안 윤석열, 이준석, 족벌언론 등이 종북좌파 낙인찍기, 혐중과 조선족 혐오 선동을 하고 여성과 성소수자, 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부추긴 것이 얼마나 위험한 범죄적 행위였는지 확인해 준다. 이들은 오늘의 혐오와 편견을 부추겨서 내일의 비극을 불러내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계속 미룬다면 그것을 방조한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은 어제 의원총회에서 이제야 차별금지법 논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검사 출신이고 보수개신교에 정치적 기반을 가진) 김회재 의원이 반대했다고 한다. 검찰개혁에 반대한 의원이 차별금지법도 반대한 것이다. 김회재가 반대해도 검찰개혁을 추진했다면, 차별금지법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 국회 앞에서 두 인권 활동가의 단식이 벌써 40일에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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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에서 총기난사로 10명이 사망한 지 일주일 만에 또 어제 텍사스에서 똑같은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초등학교에서 벌어졌고 그래서 초등학생 14명과 총 22명이 숨졌다. 이번에도 범인은 18세 남성이었다. 죽어간 이들을 애도한다.

이런 총기난사 참극은 미국에서 수십 년간 끝없이 반복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래도 미국 사회와 정치권은 이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방지 조처인 총기규제조차 계속 공화당과 기득권 세력들에게 가로막히고 있다. 미국의 전국총기협회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로비집단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절망에 빠진 미국의 진보적 활동가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을 눈물을 흘리고 이를 악물고 참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것이 언제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안아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기사와 글을 보고 있자니, 너무 가슴이 아프고, 또 현재 우리 사회의 차별금지법이 처해있는 상황도 떠오른다.

차별금지법을 요구하던 인권활동가 미류님의 단식농성은 오늘 46일자로 마무리되고, 국회 앞 농성도 끝난다. 어제 가까스로 진행된 국회 공청회에 국민의힘은 불참했고, 그 시간에 혐오단체들과 함께 차별금지법이 동성애자와 이슬람 등을 특권층으로 격상시킨다며 반대 기자회견을 했다. 지방선거에서도 반페미니즘, 반동성애, 혐중 선동이 펼쳐지고 있다.

극단적 반여성주의를 추구하던 청년극우 최인호는 국민의힘 구의원 후보로 출마해 혐오선동을 하고있고,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김은혜는 외국인(중국인)의 투표권 축소를 선동하고 있고, 보수교육감 후보 조전혁은 반전교조 반동성애를 선동하고 있다. 대선 이후 조용하던 신남성연대는 다시 등장해서 여가부 해체와 차별금지법 반대를 위한 대규모 집회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혐오, 차별, 낙인, 편견 속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차별금지법도 만들지 못하는 우리 사회와 총기난사로 사람이 죽어가는 데 총기규제도 하지 못하는 미국, 그리고 그것을 막고 있는 세력들의 잔인함을 생각한다. 희망은 어디 있는가.

한동훈 사태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이유

윤석열 시대가 시작되면서 죄없는 탈북자를 간첩으로 조작한 검사가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이 되고, 성소수자와 이주민을 혐오하는 막말을 한 사람이 다문화 비서관이 되고,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이 여가부 장관이 되고, 세월호 보고서 조작한 사람이 국정원장이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장관과 고위 인사가 되는 서울대, 법대, 검찰, 족벌언론 출신의 중년 남성들은 하나같이 온갖 특권, 반칙, 비리, 부패, 투기의 기록을 줄줄이 달고 있다. 정호영은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극단적인 사례일 뿐이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관직-로펌-기업-학계-관직의 어지러운 무한반복의 회전문을 통해 한국사회의 기득권 엘리트 부패 카르텔이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교과서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가장 기막힌 것은 한동훈의 경우이다. 한동훈은 이 기득권 엘리트 부패 카르텔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면서, 마치 자신이 부패한 권력자들을 감시하고 단죄하는 정의의 사도였던 것처럼 행세해 왔고, 윤석열 정부의 핵심이며 권력의 2인자로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한동훈이 법무장관으로 지명되고 검증이 시작되면서 그가 20대 초반부터 이미 부모를 따라서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고, 온갖 반칙과 범법을 일삼으면서 재산을 증식하고, 자녀에게 그런 부와 특권을 물려주기 위해 입시부정과 스펙쌓기에 매달려왔다는 것이 드러났다. 족벌언론들이 찬양하듯 조선제일검이 아니라 조선제일위선자였던 것이다.

한동훈과 검언카르텔이 그동안 주장하고 행동했던 것에 따르면 이제 한동훈 사태가 벌어져야 마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보다시피 그런 일은 전혀 벌어지지 않았다. 과거에 한동훈이 주도한 인간사냥에 동조한 것이 꺼림직했던지 일부 개혁언론들이 나서서 한동훈을 파헤치기는 했다.(이런 형식적 공평도 별로 보여주지 않은 개혁언론들도 있었다)

그러나 사태로 발전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먼저 족벌언론들이 앞장서 나서야하고, 개혁언론들이 적극젹으로 한 목소리를 내줘야 하고, 검찰이 압수수색하고 기소해야 하고, 포털이 도배해줘야 하고, 주요 지식인들이 거들고, 거기에 시민사회가 동참하거나 방조해야 한다.

이런 조건들이 없는 상황에서 아무리 <뉴스타파>같은 곳이 중요한 사실을 탐사 보도해도, 그냥 소리소문없이 묻히고 잊혀질 뿐이다. 분노와 고발의 목소리들은 찾잔 속의 태풍에 그칠 뿐이다. 대표적으로 성비위와 은폐 시도가 아주 구체적으로 드러났는데도 온갖 방송에 출연해 오만한 자세로 이것저것 논평하고 있는 이준석을 보자.

레거시미디어들은 이런 이준석을 서로 모셔서 마이크를 쥐어주기 바쁘고, 한동훈의 패션과 외모를 찬양하는 낯간지러운 기사들(‘모델 포스’, ‘비주얼 깡패’)도 내보냈다. 거대언론과 많은 지식인들의 이러한 선택적 분노와 거대한 침묵이 윤석열 시대의 시작 그 자체만큼이나 분노스럽다. 그들이 그토록 강조하던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감시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한동훈은 자신과 자녀에 대해서 파헤치는 이들에 대해 즉각적 고소고발로 대응했고, 심지어 유시민 씨의 법정진술마저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이런 표현의 자유 억압에 대한 분노는 찾기 어렵다. ‘문재인은 북한의 개라고 한 사람을 고소했을 때 표현의 자유 억압’, ‘전체주의’, ‘독재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일부 지식인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물론, 조국 교수와 윤미향 의원의 경우처럼 한동훈 가족과 자녀들에게도 사생활 침해, 인격살해, 인권침해, 낙인찍기, 혐오선동, 사적린치, 집단적 괴롭힘과 스토킹, 가족인질극을 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검찰권력과 언론권력이 손잡고 저지른 그런 사태가 그 누구를 대상으로 벌어지든 그것을 꼴 좋다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한동훈 청문회를 보니 민주당 의원들도 후보자의 자녀에 대해서까지 이러는 것이 마음 아프고, 온라인 상에서 과도한 공격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달고 있었다. 그러나 한동훈은 입장을 바꿔보니 내 잘못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그런 조금의 성찰도 보여주지 않았다. 더 분노스러운 것은 그런 한동훈을 변호, 찬양하는 언론과 일부 지식인들의 모습이었다.

이들이 정말로 입시와 교육의 불공정을 바로잡고 싶은 것이었다면, 이런 극단적 이중잣대는 설명될 수가 없다. 만약 (뒤늦게 이제와서라도) 개인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 해결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면, 윤석열 정부가 자사고와 외고를 부활하는 등 입시경쟁과 학벌주의를 강화하는 것에 대해서라도 반대해야 할텐데 그런 목소리도 듣기 어렵다.

더구나 사실 지난 몇 년간의 상황의 핵심은 입시 불공정의 문제가 아니었다. 진정한 이유는 그것을 핑계삼아서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을 막기 위해서 그 상징적 인물을 끌어내리고 그 가족까지 난도질하는 것이 본질이었다. 그래서 한동훈 가족의 입시문제는 못 본 척하는 거대언론들과 주요 지식인들이 이번에 검찰개혁에 앞장서 반대한 것은 일관된 것이다.

그리고 이번 한동훈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나온 한동수 감찰부장의 용기있는 고발과 증언은 검찰개혁이 왜 중요한 과제인지 다시 증명했다.(거대언론들은 이번 청문회에서 드러난 한동훈의 비위들과 이런 증언들을 철저히 외면했다.) 한동수 감찰부장은 윤석열이 얼마나 집요하게 채널에이 사건의 감찰을 방해했는지, 한명숙 모해위증의 증거들을 덮어버렸는지 고발했다.

윤석열이 족벌언론에 전달하면, 바로 인신공격적 보도가 시작되는 메카니즘을 직접 겪은 경험을 증언했다. 그 과정은 게임이나 사냥과 같은 잔인한 특수수사 기법의 전형이 부활하는 반동의 맥락이었고 언론권력을 배경으로 검찰권을 사유화해서 선거에 개입하고 검찰개혁을 저지하며 대권을 획득해서 검찰의 권한과 이익을 영속화하려는 일련의 과정이었다고 했다.

이 과정에 앞장서서 검찰과 언론의 희생자들을 그토록 잔인하게 조롱하고 조리 돌리며 물어뜯더니 이번에 한동훈에 대해서는 찬양하며 쉴드쳐주기 바쁘거나 침묵하는 이들 - 금태섭, 진중권, 김경율, 서민, 권경애 등 의 이중성을 보면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이들은 앞으로는 절대로 다시 공정과 정의를 운운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오로지 거짓이다.

“누군가 일요미사에 참석하면서 동시에 유물론자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의 유물론은 거짓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편협하고, 예절도 없으며 자기의 ‘개성’ 등을 공격하고 있다고 그가 아우성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아우성은 나를 감동시키지 못합니다.... 이중성은 내적 안정을 깨면서 예민성, 취약성, 지적 비겁을 낳습니다. 게렝 동지, 이중성을 타도합시다!”(트로츠키의 1939년 공개편지 중에서)

루나 사태와 세계 자본주의의 불안정

가상화폐 루나, 테라 대폭락 사태는 여러 가지로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 가치가 일주일만에 99%가 떨어지면서 60조원이 허공으로 사라지면서 30만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여기에 돈을 걸었다가 파산한 사람들이 속출하면서 관련 홈페이지 대문에는 자살예방 센타 핫라인 번호가 가장 중요하게 걸렸다고 한다.

언제나처럼 한국인이 개발한 코인이 시가총액 세계 8위가 됐다며 루나와 테라를 홍보해주며, 가상화폐를 규제하려던 문재인 정부의 시도를 ‘MZ세대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라며 비난하던 족벌언론들과 경제신문들은 슬그머니 발을 빼고 있다. 이들은 가상화폐 시장이 전세계적으로 미국 다음으로 가장 활성화됐다는 한국 상황을 만들어낸 일등공신들일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루나, 테라가 스스로 스테이블(안정적) 코인이라고 명명해 왔다는 것부터 기막힌 일이다. 안정은 어떤 실물적 기반도 없이 그저 구두약속과 알고리즘에 기반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루나, 테라를 설계한 경영진이 약속한 20%의 이자 수익도 나중에 투자한 사람들의 돈을 앞서 투자한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전형적인 폰지 사기’, 또는 다단계방식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갑자기 99%가 폭락하는 것은 예정된 일이었을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폭락에 배팅해서 큰 돈을 번 작전세력과 공모세력이 따로 있는 게 아닌가라는 의혹도 낳고 있다. 실제로 이번 폭락 과정에서 큰손들은 큰 이익을 챙기고 개미들만 상투를 잡았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결국 국가권력과 중앙은행의 통제와 권위에 맞서서 자유롭고 탈중앙화된 화폐가 필요하다던 구호들은 사기와 도박의 본질을 가리는 명분에 불과했던 것이다. 생산활동을 하는 기업이나, 그 기업의 실적과 연계된 주식과도 달리, 가상화폐는 실물경제의 기반과 연결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가상화폐의 탈중앙화는 그 투자자들이 자본주의 국가나 금융당국의 규제와 보호라는 법과 제도의 밖에 놓여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도 오늘날 생산부문의 투자수익률보다 금융부문의 투자수익률이 몇 배나 더 높고, 가상화폐의 투자수익률은 또 그 몇 십 배였다는 것은 강탈적 축적을 넘어서 기생적 축적 단계에 이른 후기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것이 윤석열과 밀턴 프리드먼이 찬양한 시장과 자유가 낳은 결과이다.

더구나 가상화폐 시장에서 벌어지는 대폭락은 이미 흔들리고 있는 주식시장, 이어서 불안한 부동산 시장, 나아가 실물경제의 거품 붕괴와 대폭락을 예고하고 있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자본주의가 위기에 직면하기 전에 항상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투기와 거품의 증가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 자본주의는 그동안 초저금리와 대대적인 유동성 공급으로 거품을 키워왔고, 그것은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더욱 강화돼 왔다. 이에 따라 전세계적인 소비자, 기업, 국가의 부채는 2020년에 280조 달러로 사상 최고치였고 세계 총생산의 350%에 이르렀다고 한다.

세계 경제를 초국적 투자자를 위한 거대한 카지노로 변화시켜 온 것이 디지털화된 플랫폼 자본주의의 어두운 이면이었다.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일부 의미가 있었던 소득주도성장을 끝없이 공격하고 결국 중단시켰던 재벌-언론-기재부 카르텔은 한국경제가 수출주도, 부채주도 성장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었다.

이제 윤석열과 검피아-모피아 연합정부가 들어서서 이 방향은 더욱 본격화할 것이다. 그것은 부자, 금융자산가, 건물주, 재벌과 대기업들을 위한 정책과 방향이다. 그것은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의 파고 속에 가라앉는 한국경제의 위기를 해결하지는 못하면서 노동자 민중을 더욱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한동훈은 금융범죄합동수사단을 부활시켰는데, 이미 <뉴스타파>, <PD수첩> 등은 검찰 특수통이 주도한 이 기구가 과거에 큰손, 현관, 전관들이 얽히고 설켜 뇌물, 향응, 청탁을 주고받는 금융사기의 온상이었다는 것을 꾸준히 탐사보도한 바가 있다.(그 보도들은 꼭 지금 다시 볼 가치가 있다. 그 주요 등장인물들이 이번 정부의 요직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도 금리인상으로 물가인상과 이런 문제들을 풀어나가려는 시도가 있지만, 현재의 물가인상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낳은 에너지와 곡물 가격의 인상, 중국의 코로나 제로정책이 낳은 공급부족 등과 연결돼 있기에 헛다리를 짚는 것이고 오히려 거품 붕괴의 방아쇠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물론, 파국적 붕괴론을 단정하며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세계 자본주의의 가장 심각한 위기가 시작됐다’, ‘중국 경제의 거품이 이제 곧 꺼질 것이다’, ‘이제 노동계급의 거대한 투쟁이 돌아오고 폭발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지난 20여년간 너무 반복돼서 이제는 좀 식상하게 들리는 게 사실이다. 나도 이런 호들갑에 한 몫을 했던 것이 아닌가 항상 돌아보게 된다.

다만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의 모순과 위기요소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고, 저들이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는지 만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매우 중요하고 사태의 전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유일하게 참된 예언자들은 스스로 미래를 개척하는 자들이다”(아일랜드 사회주의 혁명가 제임스 코널리)

견디고 견뎌서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 <파친코>

대선 결과가 나오고 나서도 두 달이 지나서, 이제 내일이면 윤석열 시대가 시작된다. 지난 두 달 동안에 뉴스를 보기도 힘든 시간과 기사만 봐도 저절로 욕이 치밀어 오르던 일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위안이 되던 것 중에 하나가 드라마 <파친코>를 보는 일이었다.

이 드라마의 시즌1 8편은 마치 윤석열 당선 이후 좌절과 분노에 빠진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서처럼 대선 직후 시작돼 윤석열 취임 직전에 끝났다. 두 개의 시간대(1910년대, 1980년대)와 세 개의 도시(부산, 오사카, 도쿄)를 오가며 4세대에 걸친 이야기를 끝없이 교차시키는 이 드라마는 대서사시라고 부를만 하다.

이 작품은 또 영화나 드라마가 편집의 예술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감독도 스스로 인정했듯이 명백히 영화 <대부2>의 형식을 따라서 각 세대의 기억과 이야기들을 정교하게 교차해서 편집하고 이어붙인 화면들은 어느 순간 그 자체로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차별과 혐오에 시달리면서도 견뎌내고 이겨낸 소수자들의 이야기다. 민족적, 젠더적, 계급적 차별과 혐오에 상처받는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소수인종, 노동자들이 드라마의 주역들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원작자인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은 지난해 연말에 사망한 저명한 교차성 페미니스트인 벨 훅스의 제자였다. 이민진은 벨 훅스의 책을 읽고 수업을 들으면서 커다란 각성을 하게 됐다고 돌아 본 적이 있다.

“나는 백인도 흑인도 아니지만 훅스의 책을 통해 내 몸에 역사적 다수가 있음을 알게 됐다”, “내 마음 속에서 누군가가 문과 창문을 열고 지붕을 올린 것과 같았다”, “모든 사람에게 이론이 필요하고 물처럼 이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

실제로 드라마는 다양한 억압과 차별이 서로 분리되거나 떨어져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교차성의 정신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해 내고 있다. 여성으로서, 식민지 원주민으로서, 자이니치로서 주인공 선자가 겪는 억압과 차별은 단순히 어느 한가지로 규정될 수가 없다.

드라마는 1923년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도 보여주는 데, 이것은 혐오와 차별이 어떻게 작동하고, 그것이 혐오범죄와 인종학살로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전형적 설명이다. 이 모든 내용들은 수많은 역사학자, 탈식민주의 연구자들의 자문과 고증을 거쳤다고 한다. 아쉬운 점은 이 모든 것을 시즌1에 다 담을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즌4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내용들이 더 기다려진다. 이미 시즌 1의 막바지에 많은 이야기의 씨앗들이 뿌려졌다. 미혼모가 될 처지였던 선자와 결혼해 일본으로 데려간 개신교 목사 이삭은 일본노동총동맹과 연대해 활동하다가 천황에 맞선 비국민으로 낙인찍히고 감옥으로 끌려간다.

선자의 손자인 솔로몬이 일하던 다국적금융회사의 부동산 투자 사업은 1980년대에 더욱 성장해 나가지만 곳곳에 거품이 부풀어 오른다는 대사는 곧 다가올 일본 버블경제의 붕괴를 예고한다. 선자의 고향친구가 위안부로 끌려갔었던 흔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시즌1의 절정은 아무래도 모든 억눌린 감정이 폭발하는 4화의 마지막이었다.

화면은 일본으로 건너가는 조선인 탄광노동자들이 가득찬 여객선의 하층칸에서 배멀미를 하며 괴로워하는 선자를 보여 준다. 반면 1등칸에서 일본인 권력자들은 화려한 쇼를 구경하고 있다. 동시에 화면은 솔로몬이 일하는 금융회사의 부동산 사업을 위한 최종서명식을 보여 준다. 개발을 시작하려면 자이니치 1세대 할머니가 살고있는 작은집을 철거해야만 한다.

화면은 다시 60년전 일본으로 건너오던 배 위에서 조선인 여가수가 일본가요를 부르다가, 갑자기 조선민요를 부르고 하층칸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이 다같이 배를 쿵쿵 두드리며 박자를 맞추는 장면을 보여준다. 일본 군인들이 여가수를 제지하기 위해 달려온다.

다시 바뀐 장면에서, 자신을 그토록 경멸하고 차별했던 일본의 재력가들 앞에서 사인을 하기 직전에 할머니는 갑자기 서명을 거부하고, 동시에 화면은 60년전 일본으로 건너오던 배에서 노래하던 조선인 여가수가 체포 직전에 자결하는 것을 보여 준다.

서명을 거부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 직전에 그 할머니는 솔로몬에게 말한다. ‘내 몸 속에 한 맺힌 피가, 그 핏방울 하나하나가 이걸 못하게 막고 있다.’ 비록 이 때문에 할머니는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잃고, 이 거래를 주선했던 솔로몬은 회사에서 잘리지만, 그것은 하나의 저항이었다. 드라마는 이런 저항을 거듭해서 보여 준다.

남편이 일본경찰에 끌려가고 혼자서 어린 노아를 키워야 하는 처지가 된 선자가 시즌1의 마지막에 시장 한복판에서 목이 터지게 소리를 지르며 김치를 판매하는 장면도 바로 그런 저항의 장면이다. 그 순간에 선자는 장애인이었던 아버지 훈이의 말을 떠올렸을 것이다. ‘팔자는 없다. 스스로 강해져서 자격을 얻어야 한다. 선자 너는 할 수 있다.’

선자는 손자 솔로몬이 왜 인생에서 더 편한 길을 포기하고 어려운 길을 택했냐를 물음에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선택한 거다. 나를 반으로 쪼개서 살 수는 없다. 뭐는 당당히 내놓고, 뭐는 숨기고.’ 드라마는 세상에는 고통에 주저앉는 사람과 다시 갈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며 그 후자의 사람들을 보여 준다.

시즌18편까지 끝나고 회면은 2021년 현재 일본에 거주하는 자이니치 1세대 할머니들의 실제 인터뷰 장면들로 넘어간다. 90~100세에 달하는 할머니들은 힘든 과거를 회상하면서도 밝은 웃음을 짓는다. 자막은 이렇게 설명한다.

식민지 시대에 조선에서 일본으로 200만 명이 이주했고, 절반은 강제로 이주했고, 그중에 60만 명은 해방 이후에도 일본에 무국적자로 남았다. 그들은 역사에 짓밟혔지만, 포기하지 않고 견뎌냈다. 이 드라마는 그런 여성들의 이야기다.’ 억압과 고통을 견디고 또 견뎌서 결국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 윤석열 시대의 시작에 큰 위로가 되는 이야기였다.

(기사 등록 202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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