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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투쟁과 한국 사회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8. 6.

전지윤

귀순어민과 철제감옥 - 두 장의 사진과 서로 다른 감정이입

여기에 지난 몇 주 간에 한국사회를 상징하고 움직인 2장의 사진이 있다. 하나는 북한에서 동료 어민 16명을 살해했다는 귀순어민이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끌려가는 듯한 장면이 담긴 사진이다. 이 사진은 주요 언론, 방송에서 계속 반복해 보여줘서 많은 사람들이 지겹도록 봤을 것이다. 어제는 동영상까지 등장해서 또 헤드라인들을 차지했다.

이 사진은 우리 사회 상층부의 마음을 움직였다. 윤석열 정부, 국민의힘, 거대언론들은 저렇게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등 떠밀어 보내다니 이런 반인륜적, 반인권적 만행이 어디있는가라면서 분노와 울분을 토해냈다. 북한에 돌아가면 강력 처벌받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 저런 장면이 나온 것은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그래도 그 감정이입과 공감능력을 인정해 주겠다.

그러나 저들이 철저히 외면하고 제대로 보도하지도 않고, 전혀 그 고통에 공감하거나 감정이입해보지 않는 또 하나의 사진이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하청노동자가 목과 팔다리도 제대로 펼 수 없는 1미터 철제감옥에 갇혀서 대소변을 해결하면서 한 달을 버티고 있는 사진이다.

귀순어민의 심정에 대한 저들의 세심하고 놀라운 공감 능력은 여기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지금 윤석열, 권성동, 족벌언론, 경제단체들은 모두 하청노동자들의 불법, 폭력을 비난하며 불법의 종식과 법치의 확립을 위한 경찰력 투입을 협박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청노동자들이 이기적인 생떼를 부리며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지난 조선산업 대불황 10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가. 조선소와 하청업체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거제, 영암, 울산의 식당이 다 문을 닫고, 지역이 황폐화하고 있다는 뉴스를 본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이 과정 동안 무려 8만 명의 노동자들이 짤려나갔고, 당연히 대부분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었다. 살아남은 노동자들도 30~40%나 깎인 임금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한 희생 끝에 이제 한국의 조선산업은 다시 부활했고 엄청난 호황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동안 하도 노동자들을 잘라낸 나머지 지금은 거꾸로 자본가들이 물들어 왔는데 노저을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선 것이다. , 지금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목소리에는 지난 10년간 희생한 조선업 하청 노동자 8만여명의 피와 땀과 눈물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요구와 투쟁에 대우조선 사측은 구사대를 동원한 무자비한 폭력 탄압으로 답했다. 정상적인 집회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 소수의 하청노동자들은 쫓겨나다시피 도크로 밀려간 것이고, 스스로를 1미터 철제감옥에 가둔 것이다. 그나마 철제감옥 안에 있으면 구사대와 경찰이 손쉽게 폭력적으로 짓밟고 끌고 가지는 못할테니까 말이다.

결국, 지금 하청노동자가 사용하고 있는 불법과 폭력이 있다면, 스스로 자신의 몸에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저런 상태 속에 누군가를 가두고 한 달 동안 꿈쩍도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무시무시한 폭력과 고문, 불법적 인권침해일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그것을 스스로가 선택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것이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것임을 잘 안다.

그런데 그것을 강요한 자들이 지금, 또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을 향해서 더욱 심각한 폭력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집권 두 달만에 검찰-경찰-국정원의 수직계열화를 통한 상시적 공안정국 체제를 완비한 윤석열 정권은 그 첫 번째 표적으로 하청노동자들을 정하며 칼을 빼어들고 있다. 족벌언론들도 하루는 귀순어민에 대한 눈물겨운 연민의 노래를 부르다가, 하루는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저주와 증오의 경찰투입 진군가를 부르는 식이다.

하지만, 철제감옥 속 노동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감정이입하는 수많은 이들의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은 지역과 부문과 정치적 입장차이를 넘어서 전국적으로 모아지고 있다. 여기에 희망과 힘이 있다. 무엇보다 대우조선 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이 중요할 것이다. 1만에 달한다는 대우조선 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이 모인다면, 하청노동자들은 철제감옥으로 고립돼 들어가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지금 윤석열 정권과 족벌언론들이 가장 파고드는 것도 바로 이 틈이다. 그 이간질에 휘둘려 당장은 하청노동자들을 죽이고 나중에는 스스로도 죽이는 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원청과 하청으로 노동자들을 갈라치며 끝없이 자본의 희생양으로 만드는 구조를 바꿀 것인가. 조선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하청노동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 고통과 요구에 감정이입할 때 세상은 바뀔 것이고, 사랑과 연대가 승리할 것이다.

“동일시라는 말은 나를 확장해 당신과 연대한다는 의미이며, 당신이 누구와 혹은 무엇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정체성이 구축된다. 신체적 고통이 자아의 신체적 경계를 정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동일시는 애정 어린 관심과 지지를 통해 더 큰 자아라는 지도의 경계선을 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은 끊임없이 뭔가를 덧붙여 가고, 가장 궁극적인 사랑은 모든 경계를 지워버린다.”(레베카 솔닛)

이토록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반노동자적인 정부라니

윤석열 정부와 족벌언론들의 집중포화 속에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은 지난 5년간 깎인 임금 30% 원상회복이라는 요구를 진작에 포기했다. 이제 노동자들은 감히 저항한 죄값으로 1인당 17억의 손배소송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경찰력 투입으로 개처럼 끌려나오거나라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최소한의 요구를 내걸고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은 이제 당장 죽을 것이냐 서서히 말려 죽을 것이냐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이게 모두 정부는 개입하지 말고 민간에 맡겨야 한다자유를 밥먹듯이 외치던 윤석열 정부가 대우조선 문제에 개입하면서부터 생긴 결과다. ‘작은 정부를 말하던 윤석열은 결코 민간자유에 맡기지 않았다. 노사관계에 난폭하게 개입해서, 노동시장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을 사정없이 두들겨대는 크고 폭력적이고 철저히 반노동자적인 국가로서 그 본질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불법폭력 시설점거와 재물손괴라는 논리를 펴는데, 폭력은 지금 한달째 구사대 폭력에 당하다가 고공농성장과 철제감옥에 갇혀있는 하청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폭력을 당한 피해자이다. 시설점거는 국제적 기준으로 보면 전혀 문제가 안 되고 한국에서 관련 법과 판례들도 노사관계에서 쟁의시 시설점거를 인정하는 추세이다. 그게 노동법의 기본 정신에 맞다. 결국, 윤석열 정부는 벼랑 끝으로 몰린 힘없는 하청노조를 희생양삼아서 위기를 돌파하고 정국 주도권을 잡고 잘못된 경제정책 방향을 확고히 하려는 것이다. 정말 잔인하고 나쁜 정권이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가슴 속 피눈물을 봐 주세요

어제 제가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이 처한 기막힌 현실에 너무 울분이 터져 올라서 이토록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반노동자적인 정부라니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여기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셨지만, 동시에 거부감을 보이며 반론을 펴는 분들도 꽤 있네요. 그런 분들을 비난하거나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뭔가 잘못 알고 계신다고 생각해 설명드리겠습니다.

* 대우조선에 세금으로 지원된 공적자금 모두 회수 되었나?

대우조선은 대우그룹 부도후 20년간 국가가 관리해 온 기업입니다. 따라서 정부의 자금이 많이 들어간 것이 사실이고 또 당연합니다. 그러한 이유는 조선산업이 자동차, 반도체와 함께 한국의 기간산업이었기 때문이죠. 대우조선은 조선 빅3 중에 하나이고, 한국 경제와 수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많은 기여도 해 왔습니다. 그래서 한국이 조선업 세계 1가 된 것이죠.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이고, 열악하고 위험한 조건에서 일해 왔습니다. 수천도가 넘는 용접을 하며, 옆에서 떨어져 죽는 동료, 철판에 깔려 죽는 동료들을 보면서 일해 온 것입니다. 조선업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전체 평균의 2.5배나 됩니다. 그러고도 15년 일한 숙련 하청노동자의 월급이 한 달에 250 정도입니다.

이 노동자들이 조선업이 호황일 때 무슨 대단한 특혜를 누린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불황이 오자 무려 8만 명이 잘려나갔습니다. 이제 호황이 돌아왔으니 임금을 원상회복해 달라는 것이죠. 대우조선에 들어간 국민세금은 기간산업에서 일하며 큰 기여를 해 온 이런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는데 쓰이는 게 맞지 않나요?

공적자금 들어갔으니 노동자들 다 비정규직 만들고 잘라내도 된다는 논리는 도대체 어떻게 나오는 것인가요? 대우조선이 흑자나고 호황일 때 수억 원씩 배당가져간 주주들, 잘못된 경영판단으로 불황을 가져온 오너들, 분식회계하고 정치자금으로 빼돌린 (주로) 국힘당 정치인들에게 책임을 묻는 게 맞지 않나요?

* 자기네 회사가 아니라 원청 업체에서 파업하는 게 문제다?

한국은 비정규직 비율이 국제적으로 엄청나게 높은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조선산업은 그중에서도 특히 높습니다. 평균 60~70%까지 됩니다. 이것은 다단계 하도급으로 노동자들을 쓰면 저임금을 주고, 언제든 잘라내고, 노조도 못하게 막을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실제로 하청노동자들을 관리감독하고 통제지휘하는 것은 원청인 대우조선입니다.

하청업체는 바지사장들이죠. 그러니 하청노동자들이 진짜 사장인 대우조선에게 요구를 하는 것이고, 국제적 노동기준에서만이 아니라 한국의 사법부에서도 하청노동자들이 원청업체를 상대로 쟁의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인정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기들이 일하던 곳에서, 자기들에게 일을 시키고, 자기들에게 임금을 주던 사람을 상대로 파업하는 건 너무 당연합니다.

* 고공농성과 철창농성을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다?

언론이 말하지 않고 있는데 대우조선하청노조는 합법적 절차에 따라서 정당한 쟁의권을 획득하고 파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파업을 하고 농성을 시작하자, 사측이 구사대를 동원해서 폭력적으로 침탈하기 시작했죠. 그러니 노조는 대응할 힘도 없었을 뿐 아니라, 괜히 폭력 충돌을 빌미로 경찰력 투입하려는 작전으로 의심해서 계속 밀려나고 쫓겨나다가 도크로 올라가고, 1미터 철제감옥을 만들어서 스스로 고통받는 길을 택한 것이죠. 이 과정을 보면 벼랑 끝으로 몰려서 대롱대롱 매달려 절벽에서 떨어지기 직전의 사람이 보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누가 떨어지라고 했냐고 묻는 것은 잔인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지금까지 피해 난 건 누가 보상하나?

대우조선은 지금 파업으로 7천억의 손해를 봤고, 다음 달이면 13천억의 피해가 생길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루 320억씩 손해가 생긴다는 것이죠. 그런데 대우조선의 매출액보다 파업손실비용이 더 크다는 엄청난 엄살과 과장도 문제지만, 그러면 그 10분의 1도 안 돼는 돈만 있으면 하청노조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데 왜 거부하고 있는 것인지 설명되지 않습니다. 하루 320억씩 벌어다준 노동자들에게 이런 쥐꼬리 임금을 주고 가축처럼 부려온 것이고, 그것을 내놓기 싫다는 실토 아닌가요? 윤석열 정부가 경제도 어려운데 괜히 대통령실 이전하느라 생긴 수백수천억의 피해나 보상하는 게 더 필요한 일 아닐까요?

* 노조가 이렇게 강한데 누가 투자할까?

대우조선 하청노조는 조합원은 현재 2~30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전체 하청노동자가 1만 명이 넘는데 그중에 1~2%만 노조원인 것이죠. 그리고 조선산업의 노조 현실이 이렇습니다. 전체 조선업 노동자의 60~70%가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인데 그 중에 노조로 조작된 사람은 아주 소수에 불과합니다.

워낙 저임금, 불안정에 노조만 만들면 바로 해고되기 때문이죠. 이것이 세계 1등 조선강국 한국의 검은 뒷면이죠. 그래서 최저임금 겨우받고, 노조도 없다시피 하고, 동료가 죽어도 악소리도 잘 못내는 노동자들이 강성노조라니요? 굳이 따지자면 대우조선의 정규직노조는 좀 힘이 있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지금 윤석열 정부와 족벌언론들은 그 정규직 노조원 일부의 목소리를 악용해서 하청노조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하청노조 파업으로 대우조선 직원들이 다 죽는다고 말이죠. 윤석열 정부가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먼저 공격하기 시작했다면, 그나마 그러려니 하겠습니다. 그런데 취임 초부터 가장 열악하고 힘없고 노동시장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하청노조부터 표적으로 정해서 커다란 칼을 휘두르는 윤석열 정부, 이토록 잔인하고 비겁할 수 있는 것인지.

* 회사가 있어야 직원도 있다?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바로 그 논리 때문에 지난 5년간의 조선업 대불황 동안에 8만 명의 하청노동자들이 잘려나갔고, 임금 30~40%의 삭감을 받아들였죠. 그런데 거꾸로는 왜 보지 않나요? 조선산업 인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 하청노동자들이 없다면 과연 세계 1위 조선강국이 가능했을까요? 정말 기다릴만큼 기다린 것은 이 노동자들 아닌가요?

지난 5년간 회사 사정이 좋아지면 다시 보상하겠다고 하더니, 이제 사정이 좋아진 회사에 요구하니 1미터 철제감옥에 가둬서 말려죽이려는 것인가요? 대통령까지 나서서 협박하고, 헬기까지 뜨고 에어매트까지 깔면서 공포분위기 조성하니 위축된 노동자들이 임금 회복 요구조차 포기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하청노조원 1인당 17억씩 토해내라는 기막힌 보복이 시작됐습니다. 다시는 노조는 꿈도 꾸지 말라는 협박입니다. ‘고액 손배 식물노조화 노조파괴 절망한 노동자들의 연쇄적 죽음이 악몽의 시나리오가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반노동자적 정부라는 글의 제목이 선정적이었다?

위에 이야기한 이 모든 것들을 제가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저는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욕설도 막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너무나 분노하고 강하게 비판할 뿐입니다. 지금 억장이 무너지고 피눈물이 흐를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이런 표현말고 더 무엇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글에 거부감을 보이며 반박하시던 분들은 아래 다른 언론 기사들도 살펴보시고 더 잘 상황을 이해하고 파악하려고 노력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0만원도 못 버는데, 수천억이요?" 20년 용접공이 물었다 https://news.v.daum.net/v/20220721154509509

"이게 귀족노조의 급여입니까"..하청 노동자의 호소 https://news.v.daum.net/v/20220721202706427

도크 5개 중 1개만 중단인데, 파업 손실 7천억 원https://news.v.daum.net/v/20220721195809065

노동자 죽이는 손배가압류그들은 물러설 수 없다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99884

[성명] 대우조선해양 손배소 주장에 대한 성명 http://www.sonjabgo.org/content/1909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투쟁을 돌아보며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투쟁을 돌아보면, 사실 가장 참담했던 것은 윤석열 정부가 경찰력 투입을 협박하던 순간이 아니었다. 그보다 일부 원청 노동자들이 만든 단톡방에서 하청 노동자들을 하퀴벌레라고 혐오하면서 위협하는 대화를 나눈 것을 목격했을 때였다. 그것은 혐오와 차별이 어떻게 작동하면서 이 세상을 더욱 지옥으로 만들어가는지 보여 줬다. 투쟁하는 하청 노동자들에게도 그것은 가장 큰 압박과 고통이었을 것이다.

대우조선 원청노조의 일부 (친사측) 대의원들이 주도했던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탈퇴 찬반 투표 결과가 만약 윤석열 정부와 기득권 우파들이 원하는대로 나왔다면, 경찰력 투입은 바로 강행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첫 번째로 열어본 투표함에서 반대표가 찬성표보다 더 많이 나오면서 개표가 중단된 그 시점이 그 투쟁에서 가장 결정적 순간이 아니었을까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희망의 가능성을 찾고 싶다. 하청 노동자들을 자신과 다른 존재로 타자화하는 게 아니라 그 고통에 공감하는 원청 노동자들이 조금 더 많았다는, 서로를 불신하고 증오하게 만들려는 시도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다는 증거로서 말이다. 원하청 연대를 추구한 활동가들의 노력도 중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제 본 인터뷰에서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의 말이 더 와 닿았다.

일부 원청 노동자들에게 그렇게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김형수 지회장의 입장은 분명했다. “정규직 임금 삭감은 노노갈등 2으로 이어질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말한 시장경제가 노동자 몫의 임금을 한정해 놓고 원하청이 나눠 가지는 것인가.... 이런 일이 실제로 추진된다면 하청노동자들도 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겠다.”

정규직 임금 삭감이야기가 나온 것은 하청지회의 파업이 끝난 이후 윤석열 정부와 족벌언론 등의 공격 방향이 또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의 하청 노동자들을 공격하던 저들은 이제 대우조선의 원청 노동자와 노조를 향해 칼끝을 겨누고 있다. ‘엄청난 공적자금이 투자된 대우조선에서 원청의 귀족노동자들은 성과급 파티를 하고, 놀면서 편하게 일하고 거액 연봉을 받고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문제는 20년이나 일한 숙련된 하청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임금을 받고있다는 것에 있지, 원청 노동자들이 너무 많은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다. 전자가 비정상인 것이지 후자가 비정상인 것이 아니다. 둘 다 야근, 특근을 하며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원청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은 하청 노동자들에 비하면 월등히 낫지만, 이것은 오랜 민주노조 조직화와 투쟁이 가져온 성과일 것이다.

따라서 1만 명이 넘는 하청 노동자들도 모두 민주노조로 조직돼야 하고, 원청 노동자들은 이런 조직화와 투쟁이 성공하도록 적극 지지하고 연대해야 한다. 장기적 전체적 이익을 위해 단기적 부분적 손해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 원청 노동자들과 원청 노조가 비판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이 부분에서 많이 부족했다는 것에 있다. 일부 원청 노동자와 친사측 대의원들은 하청 노동자들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흐름에 편승하기까지 했다.

물론, 윤석열 정부와 족벌언론들이 이간질을 하고 틈을 벌렸다. 원청 노조를 강성 귀족노조라고 비난해온 저들은, 이번에 하청 노조를 불법폭력 집단이라고 매도했다. 그래서 정규직은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비정규직은 노조를 만들지 못하게 막았다. 원청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들 사이의 격차가 우리 사회 불평등의 핵심인 것처럼 말하면서, 우리 사회의 진짜 최상층들과 나머지 노동자 서민들 간의 격차는 가려버린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이런 최상층 집단들에게 더욱 세금을 깎아주고 특혜를 제공하는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대우조선에서는 비정규직의 조직화를 막고 원청노조를 파괴하면서 분할 매각과 구조조정으로 나가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노동운동은 노동자들 내부의 격차와 분절을 넘어선 연대를 건설하면서 어떻게 이런 공격을 막아내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바꿀 것인지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은 한국 조선업의 초고속 압축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기형적 구조, 급격한 경기순환이 낳는 부담을 다단계 하청으로 전가하며 생기는 문제, 중국과 저가 수주 경쟁이 낳는 모순, 향후 조선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한 대안 제시와도 연결돼야 한다. 그것은 정치적인 과제이기도 하고, 정치적 고민을 필요로 한다. 그 점에서 최근 미국의 역사학자이며 노동운동 활동가인 에릭 블랑의 지적은 공감가는 부분이 있다.

‘현 시점의 주요 정치적 과제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 협력해 민주당에서 친기업적인 세력을 몰아내고 다인종 노동계급을 위한 폭넓은 정치흐름을 건설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급진적 정책을 통과시키기 위한 국가 안팎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 공화당을 막아내야 한다. 제도 정치와 아래로부터 투쟁을 결합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그것은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둘은 서로를 강화할 수 있고 강화해야 한다.’

(기사 등록 202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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