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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프락치' 이용의 후과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8. 22.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과거의 "프락치"(라고 생각되는) 김순호가 이제 경찰국장이 되려고 합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듣고서 "과거"의 생각들이 머리를 막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프락치"의 문제란 소련 생활에 있어서도, 그 전의 러시아 혁명의 전통에 있어서도 그야말로 늘 현재적인 문제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경찰 국가마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찰 국가의 본질은 바로 감시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전자우편 등이 발달되어 있지 않은, 정보화 이전의 사회에서는 사실 감시의 방법이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편지 검열과 미행 등은 있었지만, 가장 핵심적인 방법은 바로 밀정의 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러시아나 소련을 포함한 대부분의 경찰 국가에서는 밀정이라는 존재는 하나의 지배적 사회 현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 아버지는 제게 초등학교 시절부터 계속 한 가지 주의를 계속 주셨습니다. 남들 앞에서는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를 절대 마음대로 하지 말라고, 예컨대 아버지 자신이 비밀리에 영국의 BBC 단파 방송을 계속 청취한다는 것을 절대 누구에게도 언급하지 말라고, 학교를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는 다 밀정들이 포진돼 있다고, 라는 주의이었습니다.

물론 초등학생들 중에 밀정이 있었을 리가 없지만, "불온"한 부분에 대한 말이 그 학부모들의 귀에 들어가면 그들 중에서는 분명히 밀정이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던 거죠. 제 아버지를 비롯한 제 주위의 많은 어른들은, 대체로 4-5명의 성인 중의 한 사람이 밀정이거나, "기관"에서 부름을 받아 취조를 받게 되면 밀고를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모양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엄청난 과장, 일종의 피해 망상이었죠. 1937-8년에 고정적으로 주위 인물들에 대한 "동향 보고"를 보내는 유급 밀정들이 약 5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우리가 지금 알고 있으며, 소련 후기에는 그 숫자는 약 2배로 증가돼도 여전히 총인구의 1%에도 미달한 것이죠.

유급 밀정이 아닌, 간헐적인 - "기관" 요청시의 - "보고"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다 계산해도 약 천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그렇다 해도 소련 총인구의 4% 수준이었습니다. , "이민"이나 "외국과의 소통"이 가능했던 유대인 지식인 사회에서는 일단 밀정 포진의 밀도도 일반 사회보다 높아, 그 사회 구성원들을 일상적 패닉 상태로 몰아넣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민"을 꿈꾸어도 "혁명"을 꿈꾸지 않았던 소련 말기 유대인 지식인들은 그저 밀정들에 대한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었을 뿐이지만, 제정 러시아 시대의 혁명가들에게는 경찰의 밀정이란 "죽음의 위협"을 의미했습니다. 1980년대 한국의 대공 분실에서 고문으로 죽거나 불구자가 되고, 고문 후유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었듯이, 제정 러시아의 혁명가가 붙잡혀 시베리아로 정배되는 경우 얼마든지 거기에서 치료가 불가능했던 폐결핵으로 죽을 수 있었습니다.

종교적 신앙이 강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거나 스탈린처럼 한 때에 신학교에 다닌 혁명가들에게는 밀정이란 바로 유다스, 즉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놓은 "도덕의 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밀정에 대한 처단은 단순한 "자기 방어" 행위도 아니고 일종의 "정의 구현", 악에 대한 "정의의 재판" 같은 것이었습니다.

가끔 가다가 "밀정 처단"은 의례화돼 있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사회혁명당이 190519"피의 일요일"에 노동자 시위를 조직한 신부 게오르기 가폰이 "경찰 프락치"라고 판단하여 1906328일에 그를 "처단"했을 때에는 그 앞에서 그의 죄상을 읽어 그의 "더러운 배신"을 저주한 뒤에서야 그를 교수형에 처하게 했지요.

, 문제는 하나, "밀정 의심자"가 정말 밀정인지 아닌지 혁명가들이 제대로 알았을 리가 없었다는 점이었어요. 사실 가폰의 경우 그가 어용적 노조 조직자로서 국가 "보조금"(공개적으로) 받았지만, 경찰의 유급 밀정이 아니었다는 것은 오늘날 연구자들의 결론입니다. , 그 날 사회혁명당이 그를 "처단"함으로써 "정의"를 구현했다고 보기가 다소 어려운 것입니다.

더군다나 가폰의 "처단"을 조직한 사회혁명당 "전투 조직" (무장 행동대) 지도자 에브노 아제프 (1869-1918)이야말로 수많은 혁명가들을 경찰에 밀고한 거물 밀정이었다는 게 슬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밀정 제거"의 총책임자야말로 실질적 밀정이었던 거죠.

1980-90년대 한국 대학가에서의 "프락치" 의심자들에 대한 린치 사건들은 사실 학생 운동권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고 몰락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혁명적 분위기"와 사이가 멀었던 한국 사회에서는 - "프락치" 의심의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 "운동권 학생"들의 과격 행위는 "패륜"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1917년 이전의 러시아는 이와 대조적으로 달랐죠.

정권의 명분은 땅에 떨어진 상태이었고, 사회는 혁명을 오히려 학수고대하는 분위기이었습니다. 위에서 본 바처럼 "밀정"으로 의심을 받아 처단된 "모든" 사람들이 꼭 진짜 밀정이 아니었겠지만, 1917년 이전의 러시아 사회는 혁명가들에 의한 "밀정 처단"의 소식에 차리라 긍정적으로 흥분하고 환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특히 파업 때에 파업 파괴자에 대한 물리적 폭력 (구타) 등에 익숙해진 혁명적 노동자들이 "밀정 처단"을 대환영하는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1895, <노동계급해방투쟁동맹>을 조직하여 공장에서 노동 야학을 운영해 노동자들을 "획득"하여 "의식화"하고 있는 레닌이 경찰이 잡혀가자 그의 수업을 들었던 노동자들이 "스승님"을 배신한 "유다스"를 찾아내 죽이려 했던 것은 하나의 유명한 에피소드이었습니다 (레닌을 한 밀정이 밀고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확인됐습니다).

문제는, "밀정 제거""의식화된" 노동자들이 보통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특정인에 대한 "습격"을 해서 그를 "제거"하자면 무기를 구하는 것부터 무기를 다루는 연습하고 "표적"을 감시하는 일까지 상당한 역량과 전문성이 요구됐습니다. 결국 1905-7년 러시아 1차 혁명 때에 "밀정" 의심자들에 대한 살인이 대량화됐을 때에는, 대개 그 살인을 수행하는 것은 혁명 정당의 평당원이 아닌, 별도의 무장 행동대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무장 행동대는 대개 혁명 정당 상근 간부의 "명령""복종"해야 했고, 스탈린 같은 하급 인테리 출신의 상근자들이 그런 명령을 내렸을 때에는 다수가 노동자인 평당원들에겐 물어보는 일이라고 잘 없었습니다. "밀정"들을 적발, 감시, 습격, 살인하는 러시아사회민주주의노동당의 "시스템"은 제1차 러시아 혁명 때에 이미 일종의 "국가의 모태"를 방불케 할 정도이었는데, 이 국가가 혁명적인지 몰라도 그다지 민주적이지 않았다는 게 문제이었습니다....

"프락치"를 이용해 정치적 반대자들을 비밀리에 감시하는 국가의 민주주의란 "완전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석기 사건"에서 나타난 것처럼 "프락치 이용"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데,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이 그다지 높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문제는, 비민주적 정권의 "프락치" 사용이, 그 반대자들에게도 비민주적, 때때로는 반인륜적 행동 양식을 강요한다는 점입니다.

"프락치"의 밀고에 많은 동지의 목숨이 날아갈 수 있는 "혁명 준비"의 상황에서는 혁명적 조직이 "프락치" 의심자들에 대해 때때로는 매우 잔혹할 수 있지만, "잔혹" 자체가 나중에 또 하나의 "문제"가 될 수 있는 겁니다. 비혁명적 상황이라면 이 "잔혹"은 혁명 운동의 명분을 죽이는가 하면, 혁명적 상황에서는 "프락치 살해"의 전문가들이 성공적인 혁명 이후에는 새로운 "혁명적 국가"의 비밀 경찰이 돼 스스로도 "프락치 사용"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처를 어떻게 해도, "프락치"의 이용은 공포와 의심, 불신의 분위기를 조장하고, 사회적인 신뢰를 파괴합니다. 이런 걸 생각하면, "프락치" 공작의 상징처럼 된 인물의 경찰국장 발탁을 도대체 어떻게 봐야 되는 것이죠?

(기사 등록 2022.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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