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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2분 증오’를 부추겨 온 ‘십상시’들의 나라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4. 12. 3.

전지윤 


올해 북한 정권은 여러 가지로 오바마 정부에 화해와 대화의 신호를 보내 왔다. 얼마 전 억류 미국인들을 조건없이 석방한 게 대표적이다. 인권문제에 대한 유엔의 압박에 물러서며 몇 가지 조치들을 수용하기도 했다.


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은 “오바마 정부가 이라크, 시리아, 우크라이나 등 쌓여있는 현안으로 골치 아픈 상황이고 … 북한이 이를 간파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2006년에도 미국은 이라크에서 발목이 잡힌 상태에서 북한의 대화 요구를 받아들이기 급급했었다. 당시에는 그 깡패같은 부시 정부였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것 같다. 오바마는 북한의 대화 신호에도 아랑곳않고 계속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이것은 11월 18일 유엔 총회에서 ‘북한 인권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한 고비에 이르렀다. 북한 인권 침해의 책임자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인권’ 운운하며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침공을 위한 길을 닦았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마이클 브라운을 사살한 백인 경찰이 기소조차 되지 않은 현실에서 오바마는 남의 나라 인권을 걱정할 때가 아닌데 말이다.


무엇보다 북한 인권은 제국주의 압박이 아니라 북한 민중 스스로의 투쟁과 연대로 해결할 문제이다. 북한 정권은 이 위선적 압박에 “새로운 핵시험을 더는 자제할 수 없”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의 정록 활동가는 <참세상>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우리는 인권을 내걸고 시작된 행동이 가장 심각한 권리박탈 상태인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막힌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 유엔 조사위원회의 보고서와 유엔 결의는 목전의 학살과 폭력을 막아야 한다며 가해자 처벌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왔는데 이는 유고슬라비아, 리비아, 시리아 등에 대한 나토와 미국의 전쟁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 이제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적어도 명분이 아닌 실행과 결단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왜 2006년과는 다를까? 왜 중동에 발목이 잡혀 있으면서도 북한의 숨통을 조이려는 미국의 시도는 늦춰지지 않을까? 중국의 부상이라는 변수 때문일 것이다. 이 지역에서 경쟁자인 중국이 갈수록 힘을 키우는 상황에서 미국은 ‘아시아 회귀’를 선언했고, 중국을 겨냥한 북한 악마화와 압박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과 종북몰이는 여기에 깔맞춤처럼 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극우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계속 부추겨 왔다. 동아시아의 지정학에 대해 분석해 온 서재정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이렇게 지적한다.


“걸프전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전단이 사용됐다. … 정전상태에 있는 한반도에서 전단을 상대편에 살포하는 행위는 위험한 전쟁행위이다. …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현실적으로 전쟁행위가 엄연한 활동[이다.]”


이 정부의 이런 행태는 국내정치적 목적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정치적 반대파와 저항세력을 ‘종북’으로 몰아서 탄압하고 우파를 결집하는 게 이 정부의 핵심 지배전략이기 때문이다. 새민련의 협조를 이용해 세월호 국면을 억지로 마무리한 후 이 정부가 새로운 공세를 위해 꺼내고 있는 카드도 대부분 이와 연관된 것들이다.


종북 판별 시험대


국회에 올라가 있는 북한인권법은 우파에게 꽃놀이패다. 새민련은 혹시 ‘종북’으로 몰릴까봐 이 법안을 찬성하고 있고, 진보정당들은 또 ‘종북’ 판별시험대에 올라서게 될 것이다. 정욱식 평화네크워크 대표는 북한 인권과는 별 상관없는 이 법이 “통과되면, 북한의 반발 수위가 높아져 남북관계는 더더욱 회복하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릴” 거라고 우려한다.


간첩 조작 폭로에 앞장서 온 민변 변호사들에 대한 치졸한 보복 공격도 시작됐다. 검찰은 장경욱 변호사에 대해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까지 들먹이고 있다. ‘간첩 변호하던 변호사가 알고보니 간첩이더라’는 유신시대 수법을 꺼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종북몰이 카드중의 조커는 단연 진보당 해산청구다. 헌법재판소는 이 문제를 조만간 마무리지을 태세고, 우파와 조중동의 막판 총공세는 악취를 풍기고 있다. 김선수 변호사는 진보당 해산청구 최후변론에서 현 상황을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2분 증오”에 빗댔다.


소설에서 가상국가의 시민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2분 동안 ‘인민의 적 골드스타인’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증오를 표출해야 한다. 여기에 소극적인 사람은 ‘골드스타인에 동정적이거나 불온한 사람’으로 의심받는다.


정말 진보당에 대한 ‘2분 증오’가 펼쳐져 왔고, 진보당에 대한 지지나 연대를 표시하기가 꺼려지는 상황 속에 진보의 일부도 마녀사냥에 타협해 왔다. 심지어 일부 극좌파조차 “친진보당”이라는 딱지를 상대방을 비판하며 혐오를 부추기는 용어로 쓸 정도다.


정치적 영역에서 이런 반민주적 공격은, 사회경제적 영역에서 노동자 민중의 삶을 악화시키려는 시도와 맞물려 있다. 즉, 종북몰이는 공무원연금 개악과 복지공약들의 파기와 함께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종북몰이에 타협적인 새민련과 일부 진보진영은 이런 사회경제적 공격에 대해서도 타협적이다. 새민련이 공무원연금 개악의 시기와 방식만을 문제삼는 것과 정의당의 모호한 태도가 그것을 보여 준다.


하지만 거듭 봐왔듯이 우파 결집은 안정적이지만 않다. 최근 ‘정윤회 게이트’가 터져나오면서 박근혜 정부는 다시 내홍에 직면하고 있다. 이 정부의 태생적 모순이 새로운 파문을 촉발한 것이다. 먼저 이 사건에 대한 의혹은 결코 ‘찌라시’ 수준이 아닌 듯하다. 청와대에서 ‘공공기록물’로 지정해 보관하던 문건이 유출되면서 불거진 문제기 때문이다.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조응천은 “[이 문건의 신빙성은] 6할 이상”이라고 했다.


이 문건과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등의 증언에 따르면 ‘밤의 비서실장’이라던 정윤회의 파워는 대단하다. “[정윤회의] '정' 자도 못 꺼낸다”는 게 청와대 분위기라니 말이다. 실제 정윤회에 대한 감찰을 진행했던 당사자들이 전부 잘려나가면서 감찰은 중단됐었다.


이 문건을 최초 폭로한 <세계일보>의 회장도 3일만에 전격 교체됐다. 이러니 정윤회가 다니는 점집에 정치인들이 몰리고, ‘7억을 준비해야 정윤회를 만나서 청탁할 수 있다’는 소문이 번졌던 것이리라. 가끔 “김기춘 정권”이라며 이 정권을 비판했던 나도 돌아보게 된다.^^ 김기춘도 또 하나의 꼭두각시였던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막후에서 벌어졌던 정윤회 세력과 박지만 세력의 갈등이 물위로 떠오르며 사태는 발전하고 있다.


문건을 유출한 ‘제3의 인물’도 거론되고 있다. <조선일보>는 박지만 쪽의, <중앙일보>는 정윤회 쪽의 목소리를 싣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정윤회가 “저도 이제 할 말 하겠다”며 나서고 있으니, 이 ‘궁중암투극’은 이 정부의 치부를 드러내며 우파의 분열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궁중암투극


언제든 폭발하며 이 정부의 기반을 흔들 또 한 요소는 세월호의 진실이다. 아무리 덮으려해도 세월호의 진실은 결코 쉽게 가려질 수 없고 우리는 그것을 잊을 수 없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김어준의 파파이스>를 통해 내놓은 김지영 감독의 폭로다. 김지영 감독이 끈질기고 치열한 추적과 분석을 통해 밝혀낸 진실은 놀라운 것이다.


해경이 밝힌 AIS 자료는 물론 레이더 영상까지도 조작된 것이 거의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모든 증거와 자료는 고의침몰이 아니면 세월호의 항적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내기 어렵다는 점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러면 ‘조타수의 과실로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검찰의 발표와 1심 재판 결과는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진실이 파헤쳐질수록, 그것을 억지로 덮으려 한 자들의 설 자리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박근혜의 모순과 위기는 그 자체로 우리 편에게 기회가 되진 않는다. 우리 편이 얼마나 자신감을 갖고 단결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투쟁하느냐가 핵심이다. 공무원연금 문제를 봐도, 정부는 공무원노동자들을 고립시키는 여론전을 펴면서 공노총과 전공노를 이간질하고, 일부 지도부를 회유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이에 맞서려면 먼저 공무원연금 개악이 단지 공무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전반적인 고통전가 공격의 일부라는 점을 봐야 한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공무원연금 개악과 함께 비정규직 확대, 정리해고 요건 완화를 위한 법 개정을 꺼내들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런 폭로와 주장은 진정성있는 실천으로 연결돼야 한다. 즉 공무원노조 등 조직력있는 주요노조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장기투쟁 사업장에 연대하면서 전반적인 고통전가에 앞장서 싸우겠다는 진정성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 그래야 저들의 이간질 논리와 각개격파 시도가 먹혀들지 않을 수 있다.


이번 민주노총 직선제 선거에서 상대적으로 더 좌파적·투쟁적인, 나아가 노동자 단결을 이끌 수 있는 후보가 당선되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모두 알다시피 지도부의 교체는 한 가지 요소일뿐이다. 현장에서 이런 방향을 실천하고 조직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 점에서 학교비정규직 파업에 연대한 전교조 교사들, 함께 손잡고 파업에 들어간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노동자들, 무엇보다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의 모범을 보여 준 씨앤앰 노동자들이야말로 노동운동의 앞 날을 개척하고 있다.


씨앤앰 사측은 정규직 3퍼센트의 임금 인상, 비정규직 20퍼센트의 임금 삭감이라는 이간질을 시도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씨앤앰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해고자들의 생계비 지원을 위해 1인당 20~100만 원의 채권을 매달 구입했고, 연대 파업까지 들어갔다. 고공농성중인 임정균 조합원은 “이렇게 같은 동지라고, 연대가 아니고 내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 얼마나 있을까. 자랑스럽고 뿌듯하다”고 했다.


이런 모습에서 배우고, 이런 모범을 확산시키는 게 중요하다. 종북몰이와 이간질에 맞선 투쟁의 모범을 보여 준 장경욱 변호사의 말처럼 “사람을 모으고 저항해야 한다. … 긴 터널도 끝이 있고, 그 끝엔 빛이 있다고, 멈추지만 않으면 빛을 볼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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