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 무엇이 하마스의 폭력적 반작용을 낳았는가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인 하마스의 기습적 공격으로 이스라엘 시민 수백명이 죽고 수천명이 부상했다고 한다. 또 이에 대한 이스라엘 방위군의 공습과 폭격으로 팔레스타인 시민 수백 명이 죽고 수천 명이 부상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은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엄청난 가슴아픈 비극이다. 폭력과 살상은 당장 중단돼야 한다.
지금 많은 국제적 언론과 정부들이 모두 하마스의 기습적 공격과 살상을 규탄하고 있다. 물론 누군가가 주먹을 날려서 상대방의 턱을 깨버리면 잘못이다. 다만, 그 사람이 왜 갑자기 주먹을 날렸는지는 봐야 한다. 상대방이 오래동안 몽둥이로 그 사람을 두들기고 있었다는 맥락을 빼버리고 턱을 깨버린 행동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벌어져온 일이다. 길게는 지난 70년 넘게 벌어져온 일이지만, 당장 2022년 이스라엘에 네타냐후 극우연립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벌어진 일이다. 네타냐후 정권은 끝없이 정착촌을 확대하면서 무장헬기, 전투기, 불도저, 장갑차로 팔레스타인 시민들을 인종청소해 왔다.
수천 명이 사망했고 감옥에 갇혔다. 점령와 억압에 항의해 감옥 안에서 87일 동안 단식하다가 사망한 팔레스타인 지도자도 있었다. 그런데도 네타냐후 정부의 극우 신나치 벤 그비르 국가안보부 장관은 ‘모두 죽여야 한다’는 선동을 하며 대결을 부추겼다.
네타냐후와 벤 그비르는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을 ‘테러리스트’로 낙인찍고, ‘테러리스트와는 협상하지 않는다’고 했고, 폭격과 학살은 ‘테러리스트들이 우리를 공격하기 전에 그 기반을 제거하는 예방적 전쟁이고 선제 공격’이라고 정당화해 왔다.
이제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그 논리는 부메랑처럼 그대로 돌아오고 있다. ‘이스라엘 테러 정부와 협상은 불필요하고, 이스라엘이 우리를 다 죽이기 전에 먼저 선제 공격을 해야 한다’는 말을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공감하게 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와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에 이제 사우디와도 관계정상화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 큰 고립감을 느꼈을 것이다. 주변의 아랍 국가들이 모두 이스라엘과 손을 잡으면서 팔레스타인을 돕는 나라들은 다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의식이다.
네타냐후 정권의 사법개악에 반대해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주화 시위가 이스라엘에서 벌어졌지만, 그 시위에서도 팔레스타인 저항과 연대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 것도 절망을 낳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에서는 기대할 곳이 없다는 판단을 앞당겼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가 이스라엘과 타협하면서 등장했던 하마스도 갈수록 관료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커졌고, 청년세대에 기반한 새로운 저항단체들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도 경쟁심을 자극하며 하마스의 이번 기습 공격을 재촉한 요인일 수 있다.
이번에, 머리 위로 날아오는 로켓과 길거리에서 죽고 잡혀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스라엘 시민들은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지난 70년 동안 매일 느꼈던 충격과 공포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가자지구를 완전히 짓밟아야 한다’는 선동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국제적 언론과 서방 정부들도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보복 공격을 찬성하고 지지하는 것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그것은 더 큰 재앙과 비극을 부르는 주문일 뿐이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정부가 이스라엘 정부를 지지하고 나선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그동안 러시아 푸틴과 같은 만행을 저질러 온 것은 이스라엘이지 팔레스타인이 아니다. 해결책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대화하며 점령과 억압을 종식할 길을 찾는 것이다.
이 비극을 보면서 더욱 더 분명해지는 것은 윤석열이 ‘북한과 대화는 무의미하고 평화협정이 아니라 힘에 의한 평화만이 대안’이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하고 어리석은 헛소리인지이다. 윤석열의 입을 막지 못한다면, 하루 빨리 쫓아내야 우리가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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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호출산제 통과를 찬성해서는 안 된다
조민호 동지가 발제를 한다기에 응원도 하기 위해 어제 오전에 국회에서 ‘보호출산제’에 대한 긴급 토론회에 갔다왔다. 지난 여름에 냉장고에서 발견된 아기 시신 등이 문제가 되면서 몇 달 전 출생통보제가 국회에서 통과된 것에 이어서, 이제 보호출산제도 곧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출생신고도 안돼 있었던 아동 중에 일부가 학대와 방치 속에 숨진 상황에서 의료기관이 의무적으로 아이의 출생을 지자체에 신고하도록 한 것은 분명히 필요했다. 하지만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준다는 보호출산제는 다르다. 이것은 한마디로 ‘키울 자신이 없으면 아이를 버리라’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무책임하게 임신과 출산을 하고 아이를 살해, 유기한다’는 여성혐오를 바탕으로 깔고있고, 남성의 존재와 책임은 삭제돼 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주여성과 아동은 처음부터 배제된 제도일뿐 아니라, 장애아동의 유기를 유도하는 법안이기도 하다.
‘베이비박스’가 나타날 수밖에 없던 현실을 개선하라고 했더니, 거꾸로 베이비박스를 양성화시키는 법이고, 이미 100만명에 달한다는 ‘고아호적’을 더 많이 만들 것이다. 결국 고아를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해외로 ‘아기를 수출’하던 현실을 개선하는게 아니라 ‘하이패스’를 깔아주는 격이다. 그 아동은 공식적으로 부모와 가족과 국가가 ‘버린’ 아동이 된다.
이 법안을 앞장서 추진하고 있는 국힘은 ‘화장실과 길거리에서 출산하고 아이를 버리고 죽이는 일은 막아야 하고, 여성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포장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비극을 막고 싶으면 임신, 출산, 보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지원,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
또 임신중단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은 하나도 하지 않거나 가로막으며서 또 ‘생명의 소중함’을 핑계대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의도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에도 임신중지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출산을 유도하고 입양을 활성화할 방안으로 몇몇 이해관계 단체들의 로비를 받아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제 토론회에 참가한 보건복지부 관료는 여성인권단체들의 우려와 비판에 ‘개인적으로 공감한다’면서도 ‘댐이 무너져 사람들이 죽기 직전의 상황에서는 댐의 구멍도 막아야 하지만, 일단 사람도 살려야 한다’면서 보호출산제를 정당화했다.
그러나 지금 정부와 국힘이 하는 것은 댐을 미리 정비하지도 않고, 댐의 구멍을 막지도 않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헬기와 배를 보내는 것도 아니고, 겨우 구명조끼 하나 던져주는 것과 같다. 더구나 그 구명조끼를 잡는다고 산다는 보장도 없다. 이것은 수많은 이들을 계속 고통과 죽음 속에 방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대부분의 시민사회 여성인권 단체들과 진보정당들이 모두 보호출산제를 반대하고 있다. 문제는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보수적 여론의 눈치를 보며 후퇴했고 그래서 이런 법안이 본회의까지 올라와서 통과를 눈 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 됐다. 민주당은 국힘과 타협하지 말고 보호출산제를 막아야 한다. 박주민, 권인숙, 남윤인순 의원 등이 앞장서길 기대한다.
● 뉴스타파 봉지욱, 한상진 기자를 적극 지지 응원한다
윤석열과 검찰공화국 시대에 어떤 언론사와 기자들이 진정으로 언론으로서의 제대로된 구실을 하고 있는지 판가름하는 기준은 고소고발, 소환조사, 압수수색을 받았느냐 아니냐로 나눌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 점에서 아래 인터뷰에 나오는 뉴스타파 봉지욱 기자와 한상진 기자는 이러한 시대에 언론인이란 어떠해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즉, 가장 앞장서서 살아있는 권력에 맞서며 진실을 찾고 보도하려는 정말 멋지고 용기있는 기자들이다.
봉지욱 기자는 얼마 전에 ‘수학적으로는 가짜가 가짜라고 하면 그것이 진짜다’라고 했는데, 윤석열 정권과 족벌언론들이 ‘가짜뉴스’라고 공격하고 있으니, 뉴스타파와 두 기자들이야말로 진짜 언론이라는 말이 된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뉴스타파와 봉지욱, 한상진 기자는 엄청난 탄압과 시련 속에 놓여있다. 대부분 언론사들도 뉴스타파를 따돌리고 있다. 봉지욱 기자가 얼마 전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로 망명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가슴이 아팠다.
사실 지금 족벌언론이나 대부분의 법조기자들처럼 검찰과 정권이 만든 프레임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불러주는 것을 받아쓰기만 하면 정말 편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을 외면하고 권력을 편하게 해주며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것에 불과하다.
진짜 언론인이 해야 할 것은 그러한 받아쓰기도 아니고 양쪽 이야기를 반반씩 받아쓰는 기계적 중립도 아니고 진실을 탐사하고 검증하고 분석해서 알리는 것이다. 그 점에서 뉴스타파와 봉지욱, 한상진 기자를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한다.
아래처럼 ‘기자협회보’와 인터뷰하면서 ‘기자협회’를 직격 비판하는 태도를 보고도 감탄하게 된다. 반면, 문재인 시절에 언론개혁 시도에 ‘언론의 자유’를 외치며 그토록 결사 반대하던 수많은 언론사들이 윤석열 시대의 언론장악과 탄압에 알아서 기는 모습은 기가 막힌다.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서 언론사를 상대로, 기자 개인을 상대로 강제 수사에 들어간다. 이건 파시즘이다. 공산주의, 전체주의니 같은 복잡한 얘기 쓸 것도 없다... 언론사에게 권력 비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한상진)
“짧지 않은 시간 기자생활을 했는데 이런 언론 환경은 듣도 보도 못했고 경험해 보지도 못했다... 기자들이 하는 질문이 똑같았다... 검찰 주장에 대한 저의 입장을 묻는 질문뿐이었다.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한상진)
“검찰발 전언보도는 실체적 진실을 가리기 위해 검찰이 내용의 일부분만 흘리는 것이다. 하지만 단독이나 특종에 눈이 먼 기자들이 이를 보도하고 또 한국기자협회는 그런 보도에 상을 준다. 검찰이 저렇게 해도 언론이 안 받으면 되는데, 기자 스스로 검찰의 개가 돼서 먹이를 물고 오고, 그 물고 온 놈을 칭찬해 주는 게 또 기자협회다.”(봉지욱)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54349
● 국가보안법 7조가 합헌이라는 기막힌 반역사적 판결
지난주에 있었던 사법부의 판결 중에 많은 이들이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 여부를 기억하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정치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국가보안법 7조에 대한 합헌 판결이었다고 생각한다.
국가보안법 자체가 희대의 악법이고, 특히 7조가 가장 기상천회한 독소조항이기에, 이제는 시대도 많이 변화했고 한국의 지배자들도 '홍콩의 국가보안법'을 욕하는 상황이기도 하니까, 적어도 7조에 대한 위헌 판결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지난 몇년 동안 헌재의 판결을 기다려 왔다.
국가보안법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적어도 7조에 대한 개폐는 가능해지지 않겠냐는 기대였다. 국가보안법(과 특히 7조는)은 머리 속의 사상을 검증하며 기본적 표현의 자유조차 가로막는 악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시나는 결국 역시나였다. 또다시 헌법재판소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을 빌미로 국가보안법 7조를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정말 기가 막힌다. 여전히 이 나라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해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를 찬양, 고무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하고 적을 이롭게 하는 표현물을 제작, 배포, 판매,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 구속, 처벌될 수 있는 나라로 남게 됐다. 중국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아무나 잡아가는 홍콩과 다를게 없는 상황인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윤석열 정부를 탄핵하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라고 북한이 지령을 내렸으니, 그런 내용을 주장하는 것도 이적행위'라고 연결시킬 수 있는 가능성까지 있다. 어떤 이들은 '북한에 우호적인 좌파에게나 해당될 우리와 무관한 일'이라고 여길지 모른다. 탄압받은 이들을 나몰라라 하는 것 자체가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그조차 순진한 생각이다.
나는 '북한 지배관료들을 타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도 2번이나 국가보안법 7조로 구속된 적이 있다. 사실 국가보안법의 핵심은 북한을 핑계로 정권과 체제 비판자들의 정치적 자유를 틴압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헌법재판소가 동시에 '대북전단 살포를 막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막는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도 기막힌 일이다.
사실 대북전단 살포야말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을 이유로 제한해야 마땅하다. 대북전단 살포는 북한 정권을 비판할 자유를 핑계로 남북관계의 평화를 위협하며 군사적 충돌까지 유발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북한 정권을 비판할 자유가 가로막혀 있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넘치도록 보장돼 있고, 반대로 북한 정권을 지지할 자유야말로 철저히 막혀 있다. 따라서 대북전단 살포를 주도하는 탈북자들을 앞세운 극우단체들은 사실, 북한 정권 비판에 목적이 있는게 아니라, 그것일 핑계로 남북간의 적대와 대결을 부추기며, 결국 그것을 국내 정치적인 '종북몰이' 등에 이용하려는 데 진정한 목적이 있다.
결국 지난주에 헌법재판소는 정말로 필요한 '표현의 자유'는 다시 봉쇄하면서, 남북간의 군사적 충돌을 야기하며 종북몰이에 이용될 '표현의 자유'만 보장해 줬다. 이로써 한국사회는 여전히 민주주의나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먼 사회라는 것이 다시 확인됐다.
이런 사회에서 이런 방향을 주도하는 윤석열이 툭하면 '자유민주주의'를 떠들고 있는 것은 너무나 황당한 일이다. 이런 윤석열 정부가 탄생하도록 돕고, 지금도 은근히 지지하고 있는 '친검 친윤 진보 지식인’들이 '포퓰리즘보다 자유주의가 낫다'며 자신들의 선택을 정당화해 온 것도 그 못지 않게 황당한 일이지만.
적어도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보안법으로 체포되거나 구속된 사람의 규모는 이명박근혜 정부에 비해서 거의 8분의 1로 줄어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그 추세는 다시 역전됐고, '간첩단' 조작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고, '공산전체주의와의 전쟁'을 선포한 윤석열은 총선을 전후해서 더욱 더 대대적인 국가보안법 조직 사건들을 터트릴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보안법 적용을 최소화시키려고하고, 국가정보원의 힘을 약화시키려고 했을지는 몰라도 보수우파의 눈치를 보며 국가보안법 폐지는 시도하지도 못했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가 7조 위헌 판결을 내리면 그후 국가보안법 개폐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핑계를 댔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나이브한 기대였는지 드러났다.
한국의 지배자들은 여전히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 권리도 보장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 다시 확인됐다. 이제 민주당은 더는 헌재 판결을 기다리자는 핑계를 집어넣고, 윤미향 의원같은 분들의 요구와 주장대로 책임지고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을 제출해야 한다. 아무리 종북몰이가 두렵더리도, 그것은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정당의 최소한의 의무다. 진보정당들은 당연히 거기에 앞장서야 한다.
● ‘마녀’가 ‘마녀’와 손을 잡을 때의 감동
혐오와 차별에 기반한 사회에서는 언제나 곳곳에서 크고 작은 낙인찍기, 따돌리기, 마녀사냥들이 벌어진다. 주류와 다수를 상징하는 수도권에 사는 부유한 고학력 전문직 비장애의 ‘건강’한 청년 남성 이성애자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소수를 뺀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공감하고 연대하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다. 만약 그렇다면 혐오와 차별은 쉽게 사라질 수 있겠지만,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군가를 혐오하고 낙인찍는데 동참하기 쉽다. 이것은 윤석열 정부가 등장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것은 심지어 윤석열 시대에 대표적인 혐오, 낙인, 마녀사냥의 표적이 된 사람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민주노총에 ‘간첩’이 있고 시민단체는 ‘보조금을 횡령’한다는 말에 흔들리고,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민주당 대표가 ‘확정적 중범죄자나 잡범’라는 것을 믿어주고, PD는 NL이 ‘종북’이라고 의심한다.
뉴스타파의 어떤 기자가 ‘우리는 부당한 탄압을 받는 비정파적 독립언론이지만 뉴스공장 등은 정파언론’이라고 구분짓는 것도 봤다. 소수자라고 모든 혐오와 낙인을 반대하는것도 아니다. 나아가 마녀사냥의 직접적 희생자였던 사람이 나중에 다른 사람을 마녀사냥하는데 동참하는 비극도 현실과 역사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예컨대 김지하 시인은 군사독재 시절 마녀사냥의 대표적 희생자였다. 그런데 91년 5월투쟁 때는 그 반대 편에 서게 됐다. 진중권도 이명박 정권 때는 공격당하고 대학에서 쫓겨났지만, 지금은 ‘친검 친윤 진보’의 대표인사가 돼 있다.
종북몰이의 피해자였던 이들이 지금은 뉴라이트의 리더가 된 것도 비슷하다. ‘마녀’는 다른 ‘마녀’를 고발할 때만 주류사회와 권력자들에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어떤 ‘마녀’를 방어하는 사람이 다른 ‘마녀’에게는 돌을 던지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마녀’가 다른 ‘마녀’와 거리를 두고 선을 긋는게 아니라 오히려 손을 잡으면 더한 낙인과 돌팔매질을 각오해야 한다. 그 점에서 거대한 마녀사냥의 표적이었던 조국 교수와 윤미향 의원이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서로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장면들은 정말 소중하게 남게 된다.
자신의 아픔을 넘어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마녀사냥의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들에게 맞서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이번 조국 교수의 새책 <디케의 눈물>에 수많은 흥미롭고 의미있는 내용들이 많았지만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온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윤미향 의원 수사를 생각해 보자. 언론과 정치권은 ‘윤 의원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용해 돈을 챙겼다’, ‘공금을 유용해 딸을 유학시켰다’, ‘단체 자금을 유용해 개인 부동산을 구입했다', '안성힐링센터를 헐값에 팔았다', '배우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줬다’ 등등 이후 허위로 판명된 수많은 혐의를 부 각시키며 몰아세웠다. 그리고 검찰은 보조금관리법 위반, 지방재정법 위반, 사기, 기부금품법 위반, 준사기, 업무상 배임, 업무상 횡령,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등 자그마치 8개 혐의로 기소하고 징역 5년을 구형했다.
'먼지털이 수사'에 이어 '투망식 기소'를 한 것이다. '투망식 기소'는 수사를 마친 후, 최종적으로는 무죄가 나오더라도 온갖 혐의를 다 모아 일단 기소부터 하는 기법이다. 즉 '투망'을 던 져 '뭐든 하나만 걸려라'라는 식의 기소를 뜻한다. 대중에게는 피고인이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다는 인식을 심어 주고, 법원에는 모든 혐의에 무죄판결을 할 수 없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이 중 7개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고, ‘10년 동안 1700만 원을 가져다 썼다’는 업무상 횡령 혐의에만 벌금형을 선고했다(유죄판결이 난 건의 경우 오랜 시간이 흘러 영수증을 확보하지 못한 탓이 컸다). 그렇지만 윤 의원에게 붙은 딱지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그는 민주당으로 복당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에 대해 마녀 사냥을 전개했던 사람들은 전혀 사과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여전히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조국, <디케의 눈물>, 87~88쪽)
(기사 등록 202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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