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 이란 침략전쟁은 어디로
어제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많은 사람들이 잠을 자지 못했다. 수십년만에 닥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하루'였다. 트럼프는 '한 문명의 종말'을 위협했고, 밴스는 '마지막 무기(핵무기)의 사용'을 암시했다. 하지만, 결국 트럼프는 꼬리를 내렸다. '정신 승리'가 인류를 도운 휘귀한 경우다.
이것은 이란 침략전쟁의 결말에 대한 트럼프의 8번째 말바꾸기이다. 트럼프에게는 2가지 선택지가 존재했다. 하나는 지금까지의 손실과 패배를 받아들이면서 '정신승리'로 전쟁을 중단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전쟁을 지속하거나 확전하면서 더 큰 손실과 패배를 불러오는 것이다.
전쟁의 결과를 승리로 다시 바꿀 수 있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두 번째 선택은 당장의 개망신은 피하지만, 미국의 패권에 훨씬 더 거대한 타격, 심지어 붕괴를 가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더 많은 이란 시민에 대한 학살과 전세계적 고통의 도가니를 뜻했다.
그래서 우리는 첫 번째 선택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트럼프는 최악의 막말, 욕설, 공갈을 고삐풀린 듯이 마구잡이로 쏟아내다가 '정신 승리'로 굴욕적 참패를 덮는 길을 택했다. 여기에는 많은 요소들이 작동한 것이 분명하지만, 두 가지를 특히 주목하고 싶다.
하나는 이란의 수많은 시민들이 보여 준 저항 정신이다. 트럼프가 '모든 다리와 발전소를 폭격하겠다'고 협박하는 순간 한 음악인은 그 발전소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그 외에도 수많은 시민들이 다리와 발전소로 몰려나와 죽음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용기를 보여 줬다.
독재정권의 살인진압에도 포기하지 않고 거리에 나서서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이란 시민들은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폭격과 학살에도 절대 무릎꿇지 않았다. 트럼프는 전쟁을 확대해 그들 모두를 죽이면서 더 깊고 끝을 알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빠질 것이냐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렸다.
또 하나는 어제밤부터 미국의 최고위급 전직 장성들 속에서 나온 '지금 트럼프의 폭격 명령은 집단학살이고 불법적인 전쟁범죄에 대한 명령이기에 누구든 그것을 거부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베트남전에서도 이런 목소리가 커지면서 미군은 명령 거부와 내부적 붕괴로 패배했다.
결국, 트럼프는 개망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트럼프는 '정신 승리'를 넘어서 이것을 만회하기 위한 온갖 꼼수와 또다른 범죄를 시도할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트럼프와 미국이 전략적 혼수상태와 2차대전 이후 최악의 전략적 패배를 벗어날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만약 이 상태로 2주 안에 완전한 종전이 이뤄진다 해도, 트럼프와 네타냐후가 저지른 미나브 초등학교 폭격 학살 등 온갖 전쟁범죄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묻고 처벌을 해야 한다. 루쉰은 '사람을 물어뜯던 미친개가 물에 빠지면 더욱 더 두들겨 패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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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스라엘이 단 10분 만에 레바논을 100회 이상 폭격해서 250명을 살해하고 1,200명을 다치게 했다. 가짜휴전/ 휴전사기극/ '너는 멈추고 나는 쏜다'/ 휴전협정 밥먹듯 위반... 이 모든 게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종특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란은 말하고 있다 "미국은 선택해야 한다. 휴전인가, 이스라엘을 통한 지속적인 전쟁인가. 둘 다 가질 수 없다." 트럼프는 '정신승리'를 통해서 수렁에서 벗어나고 싶더라도 네타냐후가 동의해주지 않으면 쉽지 않은 처지다. 공동운명체의 분열과 상호 배신은 아직 잘 보이지 않는다. 두 명의 연쇄학살마 전쟁범죄자들을 반드시 같이 처단해야 하는 이유....
● 이란 침략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이란 침략 전쟁이 한달을 넘어서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폭탄이 목표물을 파괴하는 장면을 게임 영상과 편집해 내보내며, 전쟁을 구경거리처럼 만들어 왔다. 한국의 주요 언론은 민간인 피해보다는 유가 상승, 수출 차질, 경제 불안을 더 많이 다룬다.
그러나 전쟁은 경제적 변수나 지정학적 게임이 아니라 무엇보다 인도주의적 재앙이다. 더구나 유가 급등으로 생활비 압박을 느끼는 시민들은 '도대체 왜 이런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가'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침략전쟁규탄 파병반대 평화행동'이 만들어졌다.
물론, 반전평화 운동은 아직 크지 않고 이제 시작이다.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무력감이 크다. 지난 20여년 동안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집단학살 등이 있었지만 반전평화 운동으로 그것을 중단시킨 적은 찾기 어렵다.
이런 경험이 '우리가 싸운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라는 체념을 낳았다. 트럼프가 어디로 튈지 모르기에 곧 적당히 '승리'를 선언하고 전쟁을 중단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널리 퍼져 있다. 이것은 트럼프가 곳곳에서 저지르는 갖가지 만행에 대한 피로감과도 연결돼 있다.
뿌리깊은 한미동맹 구조가 주는 심리적 압박도 강력하다.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한국에서 한미동맹 관계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진다. 그러면 주류 언론과 보수 세력은 여기에 '반미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공격하기 마련이다.
경험과 기억의 단절도 존재한다. 2000년 여중생 압사 사건 항의 촛불집회, 2002~2003년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등 한국에도 반전평화 운동의 경험과 유산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세대와 부문 간에 단절되어 있고 우리는 이것을 메우고 이어야 한다.
더구나 반전평화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목소리도 크지가 않다.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이 최근 '파병과 전쟁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민주당에서는 아직 미국의 이란 침략을 규탄하고 파병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찾기 어렵다.
국민의힘의 지도급 인사들이나 개혁신당의 이준석 등은 노골적으로 전쟁을 지지하고 파병을 찬성하고 있다. 따라서 국회와 정치권을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고, 오히려 강력한 반전평화 운동을 건설해서 정부와 국회가 그것을 수용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그런 운동을 건설하기에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2024~2025년의 윤석열 탄핵 투쟁은 '광장의 민주주의'가 실제로 권력을 바꾸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경험을 수백만에게 남겼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란 전쟁은 갈수록 도덕적 문제를 넘어서 생존의 문제가 되고 있다.
에너지 수입의 70%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이 나라에서 유가 폭등과 물가 상승은 일상을 직격한다. 이것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조합원 등 전쟁의 직접적인 경제적 피해를 받는 노동자들이 반전평화 운동에 앞장서 결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선 '전쟁 반대, 파병 반대'같은 명확한 요구를 중심으로 최대한 광범위한 연합을 건설해야 한다. 이란 정권 지지냐 반대냐 같은 문제는 당연히 조건이 될 수가 없다. 먼저 제국주의, 자본주의, 한미동맹 등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요구할 수도 없다.
그런 문제의식은 반전평화 운동 속에 함께 행동하고 토론하면서 나아갈 수 있는 출구일 수 있지만, 반전평화 운동에 함께하기 위한 입구일 수는 없다. 거리, 작업장, 대학 캠퍼스, 종교 공동체 등 사람들이 모이는 모든 곳에서 더 많은 반전평화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이것은 어떤 정당성도 없고, 어디서든 대다수 시민들이 반대하는 전쟁이다. 거대한 반전평화의 정서를 가시적 운동으로 결집시키려면 그것을 담아낼 더 큰 그릇이 필요하다. '이 전쟁에 한 발도 들여놓지 마라'고 요구하는 더 폭넓고 강력한 광장의 힘을 만들어야 한다.
파병반대를 위한 5만 국민동의청원 https://bit.ly/nowar_iran
● 미국의 연쇄 학살 제국주의
(얼마전 진보 3당(노동당, 녹색당, 정의당)의 공동 정당 연설회에서 한 연설이다.)
오늘날 트럼프와 미국을 많은 언론도 '갱스터 제국주의'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 이것은 '연쇄학살 제국주의'입니다. 이것이 제일 먼저 등장하고 실험된 곳은 바로 팔레스타인 가자입니다. 그 핵심 파트너와 하수인은 이스라엘과 네타냐후였습니다.
우리가 베네수엘라와 이란에서 보는 것은 가자에서 모두 먼저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초토화 폭격이고, 인공지능을 이용한 학살이고, 병원과 학교의 파괴이고, 어린이들을 산산조각내서 죽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미국과 이스라엘은 가자에서 2년반 동안 7만명 이상을 집단학살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에 '휴전'을 하고서, 지난 5개월 동안 7백여명을 추가로 학살했고, 1600번이나 휴전협정을 위반했습니다. 이것은 저강도 집단학살이고 식민통치의 새로운 단계일 뿐입니다. 그래서 지금 가자는 거대한 감옥에서 인간을 표적삼는 사격장, 공개 처형장이 됐습니다.
가자 아이들은 새소리가 아니라 폭탄소리를 들으며 잠이 깨고, 키우던 고양이보다 일찍 죽습니다. 만약에 미국에서 백인 아이들 수백명이 집단살해당하면 전세계가 충격받고 계속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하지만 가자에서 아랍인, 무슬림 아이들 수천수만명이 죽을 때는 어땠습니까.
세계 주요 정부와 언론은 침묵하고 외면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란 미나브 초등학교에서 180여명의 아이들이 죽었지만,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갑니다. 그래서 이제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가자처럼 만들기'를 전 세계 곳곳으로 확대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분명히 묻고 답해야 합니다. 지금 무장해제해야할 것은 하마스입니까? 아니요, 이스라엘입니다. 지금 전쟁을 중단하고 항복해야 하는 것은 이란입니까? 아니요, 트럼프입니다. 지금 우리가 수출하고 보내야 할 것은 이스라엘에 무기와 트럼프가 요구하는 군함입니까?
아니요. 가자와 이란의 시민들의 생명과 평화를 위한 연대를 보내야 합니다. 이런 진실을 말하고 투쟁하는 진보정당들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 한 고비를 넘은 검찰 개혁
미국의 이란 침략 전쟁으로 좀 가려지긴 했지만, 지금 한 고비를 넘고 있는 검찰 개혁은 한국사회와 권력기구 대개혁의 매우 중요한 핵심 과제이다. 지난 '빛의 혁명'에서도 중요 의제와 요구였다. 윤석열 정권을 탄생시킨 검찰공화국이 쿠데타의 뿌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족벌언론, 재벌, 기득권 우파와 권력의 카르텔을 형성해서 이 사회를 지배해 왔다. 그래서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이 정치권력을 잡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막으려 했다. 하지만 이러한 검찰의 문제를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만의 관심사로 보는 것은 심각한 오해와 착각이다.
돈과 권력에서 거리가 먼 보통 시민들일수록 검찰의 힘 앞에 더욱 속수무책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예컨대 지난해 16년만에 무죄가 밝혀지며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의 범인이라는 억울한 누명과 감옥살이에서 벗어난 부녀의 사례를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검찰의 증거 조작과 강압 수사, 선정적인 언론 플레이를 통해서 이들은 근친 상간을 하고 존속을 살해한 악마들로 몰렸다. 하지만 부녀는 교육 수준이 낮고 가난하며 지적장애까지 갖고 있었기에 스스로를 방어할 수도 대형 로펌이나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할 능력도 없었다.
물론 이것은 검사 개개인의 인격의 문제도, 모든 검사가 악당이어서의 문제도 아니었다. 수사권, 기소권, 영장청구권, 공소유지와 형 집행권 등을 모두 독점하고서 정치권력과 유착해 사건을 덮어서 돈을 벌거나, 사건을 파헤쳐서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구조의 문제였다.
이 구조와 '시스템 에러'를 바꾸는 것이 검찰 개혁의 과제였고, 그것은 항상 강력한 저항과 반발 속에 실패해 왔다. '빛의 혁명'을 거치고 나서도 여전히 쉽지 않았다. 지난해 이재명 정부의 1차 검찰개혁안에 대해 임은정 검사가 "눈가리고 아웅하는 수준"이라고 실망할 정도였다.
그러면서 검찰 개혁을 둘러싸고 정부와 민주당, 민주당 내부, 지지자들 간에도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 논쟁은 감정적 대립과 불신으로까지 발전하다가 결국 마무리되고 있다. 비판과 우려들을 대부분 반영해 수정한 검찰개혁 법안이 곧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그동안 번번히 저항에 직면해 실패했던 검찰 개혁과는 다른 양상이다. 당장 2019년 '조국사태'를 떠올려 볼 수 있다. 당시에 검찰 개혁 시도는 검찰과 언론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거대한 '조국 마녀사냥'이었고,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였다.
검찰-언론은 기득권 우파를 모두 결집하고 '이러한 권력형 비리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한 것이 검찰 개혁'이라는 프레임으로 중도층과 심지어 일부 진보좌파까지 자기 편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검찰-언론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그것은 먼저 상황과 조건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박근혜 정권 탄핵의 '촛불혁명' 이후이기는 했지만, 지금은 윤석열이 쿠데타까지 시도했다가 실패한 '빛의 혁명' 이후라는 점이 다르다. 더구나 당시에 검찰은 박근혜의 비리를 파헤쳐 탄핵에 기여했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검찰은 오히려 윤석열 쿠데타의 공범이라는 이미지 속에 갇혀 있다. 게다가 당시에 기득권 우파는 문재인 정권 중기로 접어들면서 위기와 분열을 벗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 초기인 지금 기득권 우파는 아직도 위기와 분열 속에 헤매고 있다.
이러한 상황과 조건의 차이가 검찰 개혁을 추진하는 쪽과 그것을 막으려는 쪽의 서로 다른 대응과 세력 균형을 낳았다. 이번에 논쟁은 검찰 개혁 찬성과 반대가 아니라 검찰 개혁의 방식과 내용, 강도의 차이가 문제였다. 이재명은 결국 철저한 개혁의 요구를 어느정도 수용했다.
검찰 개혁을 지지하는 세력들간의 논쟁과 갈등 속에서 검찰 개혁을 반대하는 쪽은 공개적으로 나서기 어려웠고 주변화됐다. 하지만, 이런 상황과 조건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먼저 이번 검찰 개혁이 허점을 드러내거나 부작용을 낳는다면 그들은 '그것 봐라'하고 나올 것이다.
모든 것을 '검찰 개혁이 오히려 사회적 약자들이 더욱 범죄 피해에 노출되며 고통받게 만들었다'며 연결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다시 검찰 개혁의 내용과 방식에 대한 차이를 이용해 '강경파'와 '온건파'를 갈라치고 특정 인물과 세력을 탓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미 이번에도 그런 현상은 어느 정도 나타났다. 이런 반격이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에서 불거지는 비리 의혹에 대한 표적 수사와 결합한다면 그 파괴력은 더욱 커질 것이고 다시 중도층과 일부 진보좌파까지 '검찰의 독립과 수사권'을 편들지 모른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 미국 농업 노동운동의 영웅이던 세사르 차베스의 추락
최근, 미국 농업/이민 노동운동의 전설적 투사였던 세사르 차베스(César Chávez)의 성폭력 범죄들이 폭로된 것은 충격적이고 서글프다. 차베스는 "히스패닉계의 마틴 루터 킹"으로 불릴 정도로 전설적 노동영웅이었고, 교과서에도 기록되고 기념일과 동상이 세워질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1993년에 사망한 상태인데, 30년도 더 지나서야 진실이 드러난 셈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수많은 피해자 중에서 차베스와 함께 농업 노동운동의 핵심 창설자였던 돌로레스 후에르타(Dolores Huerta)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현재 96살인 후에르타의 '미투'는 결정적이었다.
차베스의 성폭력으로 2번의 임신과 출산까지 했던 후에르타는 최근 침묵을 깨트렸다. "나의 침묵은 여기서 끝난다. 운동을 보호하기 위해 이 비밀을 충분히 오래 간직해 왔으나, 이제 나는 숨겨진 폭력의 토대 위에 운동을 세우는 것이 진정한 정의가 아님을 깨달았다."
이것은 단지 차베스가 위선적 악당이었기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중남미 사회의 마초 문화에서 노동운동도 자유롭지 않았고, 소수의 지도자를 영웅화하면서 다른 활동가들(특히 여성)은 실무자 취급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분위기 속에 폐쇄적인 조직 구조까지 작동한 결과로 보인다.
이런 구조와 문화 속에서 전미농업노동연맹(UFW)의 2명의 창설자 중에서 차베스는 '온화한 지도자'로 과대평가되고 후에르타는 '극성스러운 여성'으로 과소평가돼 온 것이다. 지금, 미국 사회에서는 차베스의 동상을 철거하고, '차베스의 날'을 '농업 노동자의 날'로 바꾸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차베스와 후에르타가 함께 동참했던 농업, 이민 노동운동의 의미와 성과 전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나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동안 노동운동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외면하고 삭제해 온 더 다양한 요구와 목소리들을 훨씬 더 민감하고 풍부하게 반영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길게는 60년만에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드러나고, 견고한 신화까지 무너트린 것은 '미투' 운동이 결코 끝나지 않았고, 여전히 의미있는 변화와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좌파 운동단체에 고통받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생각나 더욱 마음이 아프다.
무엇보다 그런 단체가 정말로 사회운동의 더 큰 연대와 발전을 바라고 있다면, 하루 빨리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고통에 응답해야 한다. 차베스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운동의 성장을 위한 피해자의 침묵'은 결코 오래갈 수가 없고, "숨겨진 폭력의 토대 위에 운동을 세우는 것"은 진정한 정의도 아니고, 그것은 급진적 사회운동 단체가 겉으로 내세우는 어떤 그럴듯한 혁명적인 가치와도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 BTS 공연을 보고 나서
워낙 큰 행사이고 세상이 떠들썩해서 BTS 공연에 무관심하긴 어려웠다. 우선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 노래와 춤으로 위안과 즐거움을 얻고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는 것은 좋은 일인 것 같다. 그게 문화 예술의 힘이니까. 그걸 위해 공간을 내주고 불편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평소 주말마다 광화문 네거리를 차지하던 전광훈 집회보다는 훨씬 덜 거슬렸다. 쿠데타 저지와 윤석열 파면으로 지켜낸 광화문에서 모여서 노래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무료인데 2만명으로 한정하고 저렇게 듬성 듬성할 정도로 공간을 배치한 것은 납득이 안갔다.
그러나 이태원에서 축제를 즐기러 모인 청년들의 비극을 떠올리면 이해도 간다. 공연이 안전하게 끝나고 자발적으로 청소까지 하고 돌아간 아미팬들 이야기도 반가웠다. 또 첫 곡에서 “총 칼 키보드 다 좀 치워/ 인생은 짧아 증오는 비워” 가사도 지금 상황에서 가슴에 남았다.
이 공연을 무려 190개국에 동시 생중계되고 수천만이 봤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당분간은 깨지기 힘든 기록이라고 한다. 여기에 1만5천의 공적인력과 세금이 들어갔다. 그렇다면, 이것은 당연히 모두가 보고 즐길 수 있어야 마땅했는데 넷플릭스가 독점했고, 공중파는 배제됐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처럼 공공적 지원을 받는 전사회적 행사의 중계권을 사유화해서 사고팔며 돈버는, 자본주의에서 문화와 예술의 모순이 더 심하게 나타났다. 넷플릭스, 하이브의 탐욕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기에, 어떻게든 그들이 독점한 수익을 다시 사회로 환원하게 만들어야 맞다.
특히 하이브와 방시혁은 이 기회를 이용해 주가조작 등의 범죄혐의를 덮고 수사를 피해보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방시혁이 그동안 민희진, 뉴진스를 괴롭히고 망쳐놓은 과정은 케이팝 생산자와 창작자들의 자유로운 도전과 실험을 짓밟는 과정이기도 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인지, 이번 공연은 솔직히 기대보다 좀 밋밋하고 납작하게 다가온게 사실이다. 이란 침략 전쟁의 상황에서 반전 평화의 직접적 메시지가 없었던 것도 아쉽다. 적어도 응원봉을 들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광화문 광장의 의미나 대전 화재 참사 희생자 추모는 있었으면 했다.
물론, BTS는 무슨 정치인이나 사회운동가들이 아니다. 하지만, BTS는 간접적으로 인종주의나 혐오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낸 적이 있고, 더구나 반트럼프의 상징이 가득했던 지난 슈퍼볼 배드 버니 공연의 연출자가 이번 공연도 연출한다고 해서 기대가 생겼었다. 하지만 역시나였다.
이 나라는 하이브같은 기획사들이 연예인의 모든 것을 철저히 통제 관리하고, 언론은 도덕경찰처럼 연예인들을 감시하다가 툭하면 꼬투리잡아 조리 돌린다. 정치권력은 블랙리스트로 연예인들을 감별해 왔고, '가수는 노래만, 배우는 연기만 하라'는 풍토도 여전히 강력하다.
잘나가는 문화예술인들은 한번 삐끗하면 끝이라는 공포 속에 자기검열을 한다. 이런 구조 속에 케이팝은 대중적 인기 넘어 사회적 의미도 가지는 문화 현상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아무튼, 다음에는 방시혁이 잘못의 정당한 댓가를 치르고, 뉴진스도 완전체로 돌아와 팬들과 만나면 좋겠다.
(기사 등록 202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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