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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막가는 트럼프/ 검찰개혁/ 종북몰이/ 민주당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6. 7. 21.

전지윤

트럼프와 미국의 전략적 혼수상태가 재앙을 부르고 있다

트럼프가 호르무즈를 미국이 통제하며 20% 통행료 받겠다고 주장. 자기 나라 앞바다를 지나가는 배를 통제하며 통행료 1% 받겠다는 이란. 남의 나라 앞바다를 지나가는 배를 통제하며 통행료 20% 받겠다는 미국. 국제법을 위반하는 깡패국가로 당장 정권교체돼야 하는 곳은 어디인가?

지난 5개월의 전쟁 동안에 거듭 확인되고 있다. 그나마 상식적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제정신인 것은 미국이 아니라 이란이다. 전쟁을 다시 시작하면 미국과 나머지 세계는 고유가 고물가를 견딜 수 있을까? 트럼프는 중간선거 패배를 막을 수 있을까? 주식시장 폭락과 세계공황을 피할수 있을까?

답은 분명하고 종전합의한 한달전과 달라진 게 없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왜 이럴까? 자포자기의 전략적 혼수상태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이란의 다리도 표적삼아 폭격하고 있다. 어떤 분석으로든 여전히 트럼프가 다시 전면전을 시작하긴 어렵다.

하지만 두 가지가 걸린다. 1. 이런 깽판을 칠때마다 죄없는 이란과 중동 민중들이 죽어간다. 2. 트럼프는 합리적 이성적 판단을 하지 않는 XXX라는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가 어제 예고한 특별 연설은 이란이 아니라 부정선거에 대한 것이었다. 중간선거를 안하고 계엄으로 나가기 위한 준비 작업 중인? 이러면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란과 다시 전쟁을 시작하기 어렵다'는 예측도 흔들릴 수 있다.

검찰개혁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다

또다시 시작됐다. 검찰개혁 법안과 제도가 시행될 때마다 반복되는 패턴이다. 대다수 언론과 정치인, 평론가, 지식인들이 나서서 '검찰에게서 권한을 뺐으면 우리 사회에 재앙이 올 것'이라고 비명지른다. 특히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는 모두 검찰이 지켜온 것처럼. 심지어 진영을 넘어서 그런 태도를 취한다. 그리고 '경찰이 수사권을 독점하면 안된다'고 말한다. 이런 식이면 법원도 '사법권을 독점'하면 안되고, 국회도 '입법권을 독점'하면 안되겠지만, 그런 주장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사례를 들고 나온다. 이번에는 '장윤기 사건'이다. 마찬가지로 이런 식이면 '김학의 사건' 때는 검찰의 기소권 독점을 빼앗자고 주장했어야 한다. 김학의의 강간치상을 경찰이 이첩했지만, 검찰이 빼버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대 그러지 않았다.

지금 검찰개혁은 누가 더 착하고, 더 악하고, 이런 문제가 아니다. 검찰이 영장청구권, 수사권, 기소권, 죄형집행 지휘감독권 등 너무나 많은 권력을 가져 생기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반세기 넘게 형성돼온 이 구조는 윤석열 검찰정권 탄생으로 절정에 달했다.

오래고 뿌리깊은만큼 개혁하기 너무 어렵다. 흔히 '민주당은 다른 개혁은 무시하고 검찰개혁만 중시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민주당이 4번 집권하는 동안에도 이 문제에서 거듭 타협하고 후퇴하고 중단했다. 이번에도 1년 동안 질질 끌다가 이제 다시 내부 반대 목소리가 폭발 중이다.

너무 엄청난 돈과 권력이 걸려있는 문제이다. 검사 출신이 대통령까지 했고, 검사 출신 이연주 변호사의 말처럼 많게는 23조원이나 되는 전관시장까지 걸려있는데, 도대체 어느 집단이 이것을 순순히 놓으려 할 것인가? 쉽지 않을 것이고, 끝까지 저항할 것이고, 끝나도 끝이 아닐 것이다.

장윤기의 끔찍한 범죄는 너무 충격적이고 분명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이 것들을 바로잡아 다시는 이런 비극과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다. 피해자 유가족이 용기내서 이름과 얼굴까지 공개하며 나선 것도 그런 절실한 마음에서일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교훈을 자꾸 '경찰은 믿을 수 없고, 검찰에 수사권을 남겨야 한다'는 것으로 축소하려는 이들이 있다. 그것은 사실적 근거도 부족하고, 이 사건에 대한 어떠한 진지한 고민과 분석도 느껴지지 않는 놀라울 정도의 단순화이며, 그저 도구적인 접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 사건에서 경찰의 잘못과 문제점은 매우 심각했다. 이것은 국가기구는 역시 철저한 감시와 견제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나마 이번에 경찰의 잘못은 검찰의 보완수사뿐 아니라 내부 감사와 조사를 통해서도 일부 밝혀졌다. 또 그 책임자들은 직위해제, 파면, 형사 처벌 등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이러한 경찰에 대한 감시, 견제, 처벌을 더욱 촘촘하게 강화할 필요는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측면에서 검찰은 더욱 취약하다. 검찰이 내부에서 검사의 잘못, 범죄를 찾아내 징계, 처벌하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덮은 경우가 훨씬 많다.

'대통령도 2명이나 탄핵했지만 검사는 1명도 탄핵하지 못했다'는 말은 그냥 나온게 아니다. 무엇보다 검찰이 불기소하면 그것을 뒤집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바로 이런 구조 때문에 '검찰의 막강한 권한 중에서 수사권이라도 반드시 분리해야 한다'는 요구와 문제의식에 나왔다.

따라서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남겨두자'는 근거로 장윤기 사건을 들먹이는 것은 전혀 타당성이 없다. 무엇보다 장윤기 사건은 단순히 '경찰과 검찰 중에 누가 더 수사를 잘하냐'같은 문제를 뛰어넘는 접근과 고민을 필요로 한다.

이 사건은 여성혐오와 성적대상화의 '인셀' 현상이 증오범죄와 구조적 '페미사이드(Femicide)'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미 여성청소년들의 신체를 불법촬영하고 리얼돌 훼손을 통해 삐뚤어진 욕망을 보여온 장윤기는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던 베트남 이주여성과 교제를 시도하며 스토킹을 했다.

여성이 거절하자 장윤기는 폭행, 감금, 강간을 저질렀고 더 나아가 자신을 스토킹으로 신고한 그 여성을 보복살해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에 실패하면서 그 화풀이로 하교하던 여고생에 성폭행을 시도하다가 살인하게 된 것이다.

장윤기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생각하며 멸시(혐오)했고, 그렇게 혐오하던 여성(더구나 이주여성)이 자신과 교제를 거부하자, 그것을 여성 개인을 넘어서 여성 일반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발전시키고, 마침내 증오범죄까지 저지르게 됐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너무 안타까운 것은 장윤기에게 스토킹을 당하던 이주여성의 처지였다.

이 피해자는 그것을 신고하지도 못했고, 나중에 폭행, 강간을 당하고나서야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지만, 그 때도 강간 피해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사건은 현장에서 종결돼 버렸다. 만약 거기서 수사로 전환됐다면 장윤기는 나중에 여고생을 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억압과 폭력에 직면해 있지만, 입을 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 3중의 억압 속에 있는 이주여성들은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장윤기에게 아무리 최고형을 선고 집행해도 이러한 차별, 억압, 혐오의 구조가 남아있다면 비극은 되풀이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검찰 수사권을 지키자'고 목소리를 높이며 이 비극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사회적 구조, 문화, 규범을 바로잡기 위한 고민과 노력이다. 그것이 '다시는 이런 비극과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제대로 귀기울이고 응답하는 길이다.

이번에 마녕사냥당한 것은 김현지 PD였다

김현지 PD는 리센느를 일베라고 했나? '~'라는 말을 쓰면 다 일베라고 했나?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 다 일베라 했나? 조국은 끼어들어서 같은 주장을 했나? 어느 하나도 사실이 아니다. 조금만 노력해 원자료들을 찾아보면 알 수 있다. 누군가에 돌을 던지려면 그 정도의 시간과 노력은 써야 한다.

하지만 지금 그렇게 몰아가는 언론, 정치인, 지식인들에 그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보인다. 그리고, 스타벅스 사태와 배제고 파문으로 몰리던 혐오세력에게 이것은 중대한 반격 기회가 되고있다. 처음에 김현지 PD가 리센느 영상을 보고 느낀 우려는 얼마든지 귀담아 들을 만한 이야기였다.

오늘날 일베는 사라지지 않고 모든 온라인과 청소년 문화에 놀이, 말투, 기호로 흡수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인식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김현지 PD는 창작자로서 예민함으로 그것을 포착해서 고민과 토론을 제안한 것이지, 누군가를 낙인찍지도 강하게 비판하지도 않았다.

조국 전 대표는 아예 리센느를 언급하지도 않았다. 일베식 말투와 사투리를 구분하는 일반론적 설명을, 그것도 어디서 퍼왔을 뿐이다. 그런 문제제기에 공감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리센느의 영상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고 일베의 영향력은 크지 않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아니면, 그것을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자연스러운 공기처럼 스며있는 일베식 놀이문화의 일부나 반영으로 해석하면서, 근거를 제시하며 깊은 고민과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의견과 판단을 제시하며 토론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사태는 이상하게 흘러갔다.

족벌언론, 황색언론과 이준석, 나경원 등이 나서서 이것을 '검열과 낙인'의 프레임으로 몰아갔다. '커피 한잔도 못마시게 하는 독재정부'는 이제 '사투리도 못쓰게 하는 검열사회'로 업그레이드됐다. 진중권도 "아이돌 스타 하나 잡아 5·18 제단에 바쳐야 만족하려나"라며 거들고 나섰다.

중립적 양비론을 즐기는 지식인들도 그 뒤를 따랐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나 문제의 구조와 본질을 놓치고 표면적 유사성에 매달린다. 그리고 '일베의 혐오도 문제지만 일베를 혐오하는 것도 문제다'라고 말한다. '<빨갱이는 죽여도 돼>도 문제지만 <국힘 제로>도 문제다'라는 식이다.

'흑인 혐오도 문제고 백인 혐오도 문제다'와 비슷하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이제 '힘없는 여자 아이돌을 일베로 낙인찍어 나락보내려던 진보 꼰대들의 패악질'로 탈바꿈했다. 그들의 수법은 전형적이다. 첫째, 사실의 왜곡이다. 김현지 PD와 조국이 하지도 않은 언행을 만들어냈다.

둘째, 도둑질이다. '누군가를 표적삼고, 낙인찍고, 괴롭히고, 마녀사냥하지 말라'는 것은 언제나 진보개혁 세력이 기득권 우파를 비판하던 주장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그것을 거꾸로 뒤집어 자신들의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일베의 무기가 된 것과 비슷하다.

셋째, 물론 실제로 검열, 낙인, 불링, 마녀사냥은 여전한 이들의 무기다. 리센느는 이번 논란으로 활동 중단이나 방송 출연 금지를 당할 이유도 없었고 실제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리센느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더욱 늘어났고 지지와 응원이 쏟아지고 있다.

반면에 김현지 PD는 가족까지 신상털이를 당하고, 쏟아지는 비난으로 SNS를 중단하고, 심지어 공개 사과와 해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김현지는 페미니스트이고, 조국은 내로남불의 위선자'라는 오랜 낙인도 동원되고 있다. 절대로 김현지 PD를 지지하고 응원한다. <어른 김장하><남태령>을 만든 그 시선과 감각은 우리 사회에 더 많이 필요하다.

이번에 아이돌 팬들도, 경상도 사투리 사용자도 정말 분노하고 비판해야 할 것은 일베였다왜 우리의 언어를 이토록 오염시켜서, 내가 사랑하는 아이돌과 사투리에까지 피해를 줬냐고 말이다. 그러나 전선은 이상하게 그어졌다. 일베를 비판하는 사람과 일베에게 피해를 본 사람들이 대립하도록

그것은 언론과 정치인과 평론가와 특정 세력들이 집요하게 그렇게 프레임을 바꿔치기 했기 때문이다. 그런 구도를 통해서 얻을 이익과 추구하는 목적이 있었으니까. 김현지 PD의 실수와 잘못이 이 모든 것이 출발점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피해는 피해자가 유발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주검에까지 혐오를 드러내며 돌을 던지게 만들었는가?

최근에 민주노총과 진보당에서 오래 활동하다 최근 돌아가신 분을 맹비난하는 글을 보았다. 그러면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의 동지라 볼 수 있지만, '진보 활동가'인 이 글의 필자는 엄청난 적개심과 혐오, 분노를 드러내며 주검에 돌을 던지고 이들의 법적 처벌을 넘어 심지어 '소멸'까지 기원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SNS상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이런 멘탈리티는 주로 '평등파' 계열 활동가나 자유주의자들에게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몇 있는데 가끔 그들의 글과 동조하는 이들을 보게되면 서글프고 참담하기만 하다. 먼저 이런 분들의 혐오와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한

비겁하고 수치스러운 '십자가밟기'를 먼저 하자면 나는 자주파도 아니고 북한 체제를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주파 활동가들은 북한의 지령을 받는 간첩과 같고 남한체제의 반역자들이기에 사라져야 한다'는 프레임에는 조금도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물질적 토대나 구체적 조건들과 떨어트려 이데올로기만 보고 '전광훈교회나 민중신학이나 같은 기독교'라고 하는 것처럼 틀렸다. 예컨대 1930년대 소련에서 공산당은 권력을 쥐고 억압하는 지배계급이었지만, 미국에서 공산당은 권력에 탄압받으며 연좌파업을 건설한 노동운동의 일부였다.

더구나 이런 분파적 활동가나 자유주의자들은 소련식 사회주의 지지자를 '볼세비키적 투사', 중국식 사회주의 지지자를 '인민의 붉은별', 북유럽식 사민주의 지지자를 '노르딕의 개혁가', 미국식 자본주의의 지지자를 '자유의 수호자'라고 추모할 때는 이처럼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식 사회주의의 지지자를 '주체의 혁명가'라고 추모할 때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며 혐오와 적개심을 감추지 않으며 주검에 침까지 뱉는다. 자신들이 평소에 지지한다고 말하던 '사상의 자유와 다른 의견의 존중과 공존'이라던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마저 내던져 버린다.

여기에는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반공주의, 내면화된 종북몰이와 마녀사냥, 주로 친북좌파를 겨냥한 국가의 탄압과 갈라치기, 자주파와 평등파의 오랜 갈등과 분열 속에 생긴 상처, 노선 차이를 딱지붙이기와 적대의식으로 발전시키는 운동사회의 잘못된 문화 등 복잡한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거기에는 일부 이해할만한 요소도 있지만, 결코 동의할 수는 없고 매우 위험하다. 서구의 일부 신좌파가 반스탈린주의를 넘어서 반공 냉전전사로 변신하고, 이란과 이라크의 독재정권을 반대한다면서 미제국주의의 침략과 정권 교체를 지지하게 된 배경에도 이런 멘탈리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도 이런 멘탈리티는 '저 사람들이 사라지면 우리가 진보운동을 대표할 수 있다'는 잘못된 마음으로 간첩조작과 종북몰이가 벌어질 때 마녀사냥의 응원부대가 되어서 같이 돌을 던지거나, 심지어 극우보수 세력으로 강을 건너 가면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기도 했다.

민주당 내부 갈등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사회의 진보적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은 민주당의 지지자든 아니든 이 당의 앞날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현재 집권당이고 최대 정당이기 때문이다. 최근 민주당 내부 갈등을 언급하기 전에 이것을 먼저 확인하는 이유는 일부 사람들이 이런 것에 관심갖고 언급하는 나를

'민주당 지지자'라고 딱지붙인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을 논평하거나 극우에 맞서 조금 편들기만 해도 '민주당 지지자'가 되는 단순한 이분법과 자신과 다른 입장의 활동가에게 이런저런 딱지를 붙이는 태도가 좌파운동 곳곳에서 보이는 것은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가서, 지금 민주당 내부 갈등은 무엇보다 기득권 우파의 오랜 작업이 낳은 결과로 보인다. 내란 실패 이후에 분열과 위기에 처한 국힘과 극우, 족벌언론, 검찰, 재벌 등에게 유일한 희망은 민주당과 지지층 내부에서 자중지란이 벌어지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 속에서 아주 작은 틈만 보여도 소금을 뿌리며 서로 갈라서라고 노래를 부르는게 지난 1년간 족벌언론, 종편방송, 보수유튜버들이 한 일이다. 문재인, 조국, 정청래, 유시민, 뉴스공장, 매불쇼 등을 매도 비난하는 것은 이들이 항상 하는 일이었다.

여기가 토대이면서 약한 고리라고 봤기 때문이다. 달라진 것은 민주당 내부에서 편을 갈라서 한 쪽이 다른 한쪽을 비난하고 적대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에 있었다. 그래서 '친명 대 친청', '친명 대 친문'의 구도와 온갖 조롱과 혐오의 용어들도 바로 이곳들에서 처음 시작됐다.

'진보, 개혁언론'과 그들의 새로 시작한 유튜브 방송들이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도 사실이다. 경마장식 정치 보도의 관성 때문만이 아니라, '싸움 구경'이 뒤늦게 시작한 유튜브 방송의 구독자와 시청자를 늘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시장의 논리도 작동했기 때문이다.

급성장을 넘어서 포화 상태에 다다른 정치유튜버 시장에서 군소 유튜버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도 최강 빅스피커들을 향해 디스전을 벌이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것도 분명했다. 그런 방송들에는 흔히 윤석열 시대에 기계적 중립의 양비론이나 펴며 설 자리를 못찾던 이들이 나왔다.

이제 이재명 지지자로 변신한 그들은 민주당의 전통적 가치나 개혁 과제보다는 '중도 실용의 뉴이재명'을 강조하며 민주당 내부의 온갖 현상을 '올드'''의 충돌로 해석했다. 더구나 실제로 국힘이나 이준석당에 있다가 민주당으로 건너온 '뉴이재명' 정치인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그런 평론가들의 관점과 해석을 반길 수밖에 없었고. 거기서 나오는 '올드 민주당'적 요소들에 대한 멸칭과 조롱을 확산시키며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넓히는데 이용하기 바빴다. 이것은 민주당 기존 지지자들에게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받아들여졌다.

민주당의 전통적 가치와 과제들을 중시하는 지식인이나 지지자들도 감정을 담아서 부적절하고 거친 표현으로 대응하기 시작했고, 이런 주고받기 속에 감정과 표현은 갈수록 격해졌다. '0000'라고 던지니 '00000'이라고 받았다. 이것이 지난 반년간 벌어진 일이다.

따라서 선후, 맥락, 원인과 결과를 빼놓고 '양쪽 다 문제'라 할 수는 없다. 언제나 모든 것은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예컨대 윤석열 시대에도 '검찰개혁이 부족했다'며 문재인을 욕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하지만 지금 '뉴이재명''검찰 개혁은 그만 좀 하자'면서 문재인을 욕한다.

과거에 '사법리스크''비명횡사'를 말하며 이재명을 욕하던 평론가들이 지금은 '이재명의 뜻을 거스른다'며 올드 민주당을 욕한다. 언론이 이런 다툼을 '노선 경쟁과 무관한 권력 다툼'이라고 깎아내리는 것도 맞지 않다. 어디서든 모든 권력 다툼은 노선 다툼과 분리될 수 없다.

지금의 권력 다툼은 검찰 개혁과 보완수사권에 대한 논쟁,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합당에 대한 찬반, 정당 민주주의와 11표제에 대한 입장 등과 연결돼 있고, 이것은 모두 중요한 노선적 경쟁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 민주당과 지지층이 확실한 두 개의 편으로 갈라진 것은 아니다.

검찰, 사법, 언론 개혁이나 11표제, 조국혁신당 합당 문제 등을 넘어서 다른 경제, 외교, 부동산, 청년 정책 등에서 '중도 실용주의'를 넘어서는 특별한 차이점은 보이지 않는다. 전임 대통령, 노무현 재단, 뉴스공장과 매불쇼 등 민주당의 정치적 영향력을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 토대들을 허물고

'뉴이재명'(이언주, 김용남 등)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해서 중도층을 기반으로 새로운 건물을 짓자는 게 최고권력자인 이재명의 확실한 뜻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다만 지금 갈등의 뿌리에 '김앤장 출신이든, 국힘 출신이든 일만 잘하면 된다''중도실용주의'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재명은 '로버트 태권브이의 조종석에 영희나 철수를 앉히면 된다'는 생각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바로 그렇게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검찰총장 윤석열과 감사원장 최재형은 나중에 촛불 반혁명의 지도자들이 됐다. 이재명의 경험도 비슷하다.

이재명이 도시개발의 능력과 추진력을 인정해 옆에 둔 유동규는 지금 검찰의 이재명 죽이기 조작수사의 핵심 조력자로 변신해 있다.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은 이런 위험을 걱정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상황을 더 악화시키기만 하는 평론가나 유튜버들은 양쪽 모두에서 나타나고 있다.

자극적이고 거친 표현과 과도한 음모론을 바탕으로 일부 인신공격까지 나타나는데, 이것은 조회수를 높이는데 효과적이겠지만 건강한 정치적 토론에는 아무 도움이 안되고 있다. 결국, 과장된 해석과 억측, 사소한 오해들이 쌓이며 서로간의 불신과 감정은 계속해서 격해지고 있다.

이 상황과 조건에서 작은 불씨만 던져지면 순식간에 2019'조국몰이'2020'윤미향 사냥'같은 걷잡을 수 없는 산불로 번지면서 증축이나 재건축이 아니라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될 것은 뻔해 보인다. 지금 기득권 카르텔과 극우세력이 흐뭇한 마음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는 이유다.

따라서 '그만 싸우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는 것은 별다른 해법이 될 수 없다. 실컷 기름을 붓고 부채질하며 싸움을 부추기던 이들이 그러는 것도 좀 어처구니가 없다. 꼬인 실타래들을 풀어야 문제가 해결된다. 먼저 끈질긴 방해를 뚫고서 이제는 검찰개혁의 마지막 돌을 놓아야 한다.

검찰정권과 마녀사냥의 피해자였던 이들이 지금도 여전히 같은 프레임 속에서 공격과 고통받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은 사라져야 한다. 엘리트 정치인들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 정당의 주인 자리를 주겠다는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잘못된 과거를 제대로 성찰도 않는 보수인사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일도 없어야 한다. 보수인사들만이 아니라 진보정당이나 사회운동을 거쳐온 능력있고 믿을만한 진보 인사들이 더 많이 중요한 자리로 올라가야 한다. 이것을 통해 탄핵 광장에서 시민들이 기대하던 더 많은 진보적 정책과 과제들이 더 늦지않게 실현되어야 한다. 

(기사 등록 2026.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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