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R. 고드시(Kristen R. Ghodsee)
사랑은 관심, 애정, 그리고 상호적 흐름 — 즉 주고받음의 자연스러운 순환 — 을 필요로 한다. 자본주의는 앞의 두 가지를 쉽게 상품화할 수 있지만, 세 번째 요소는 시장에 저항한다. 우리 경제 시스템이 그토록 끈질기게 그것을 파괴하려 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글의 필자인 크리스틴 고드시(Kristen Ghodsee)는 미국의 비판적 민족지학자로서 사회주의적 페미니스트이며 <에브리데이 유토피아>, <레드 발키리>, 그리고 <사회주의 체제에서 여성이 더 나은 섹스를 하는 이유>의 저자다.
출처: https://jacobin.com/2025/12/love-capitalism-value-reciprocal-flow

독일로 거처를 옮길 때마다 나는 머그컵을 하나 산다. 보통 가장 가까운 티케이 맥스(TK Maxx) 매장으로 가서 허브차를 마실 4유로짜리 초대형 용기를 구입하는 일이다. 가구가 구비된 숙소에 비치된 앙증맞은 유럽식 머그컵들은 내가 필요로 하는 양을 도저히 담아내지 못한다. 내 기준은 단순하다. 크고 튼튼해야 한다. 어떻게 생겼는지나 누가 만들었는지는 상관없다. 마르크스주의 용어로 말하자면, 나는 오직 그것의 사용가치(use value)에만 관심이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화려하거나 유행에 민감해 보이고 싶다면, 125유로를 주고 에르메스(Hermès)의 'H 데코 루주 1번' 머그컵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자기 잔에 생강차를 마신다면 식기 감식안이 높은 사람들 눈에는 나의 사회적 가치가 높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용가치는 동일하다. 즉, 차를 담는다는 기능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언어를 계속 빌리자면, 내가 에르메스 머그컵에 이론적으로 지불할 수 있는 추가적인 121유로는 상품으로서 두 물건이 지닌 교환가치(exchange value)의 차이를 나타낸다.
카를 마르크스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차이를 논할 때, 그는 인간의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키는 물질적 대상을 지칭하며, 이것이 시장에서 거래될 때에야 비로소 상품으로 변모한다고 설명한다. 1857년, 그는 밀을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밀은 노예가 재배하든, 농노가 재배하든, 혹은 자유 노동자가 재배하든 동일한 사용가치를 지닌다. 설령 밀이 하늘에서 눈처럼 내려온다 해도 그 사용가치를 잃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용가치는 어떻게 상품으로 전환되는가? 그것이 교환가치의 매개물이 될 때다."
따라서 경제 체제로서의 자본주의에 내재된 본질은 사용가치를 지닌 것들(종종 풍부하고 공짜인 것들)을 교환가치를 지닌 것들, 즉 사람들이 돈을 지불해야만 하는 희소한 상품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사랑은 물질적 대상은 아니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교환의 사회적 관계 외부에 존재하는 사용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리 중 대부분은, 아니 거의 모두는 사랑을 주고받아 본 경험이 있으며, 이는 대개 주변 사람들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인정받는 가족 안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이 가장 치명적이고 중요한 감정을 주고받는 것은 음식, 물, 거처만큼이나 인간의 번영에 필수적이다. 따라서 사회주의적 변혁을 위한 그 어떤 정치 프로그램에서도 사랑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에 대한 사회주의적 분석과 그에 따른 정치를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현재의 경제 시스템이 사랑을 주고받는 데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우리에게서 뺏어가는지 이해해야 한다.
사랑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더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나는 '사랑'이 적어도 세 가지 뚜렷한 구성 요소인 관심, 애정, 그리고 상호적 흐름을 포함한다고 제안한다. 낭만적 사랑, 플라토닉한 사랑, 자애로운 사랑, 영적인 사랑 등 모든 형태의 사랑은 이 세 가지 요소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이 셋 모두 시장 외부에 존재하는 사용가치를 지니지만, 오직 두 가지만이 직접적으로 상품화될 수 있으며, 세 번째 요소인 상호적 흐름은 필연적으로 교환의 영역 너머에 남는다. 자본주의가 사랑을 주고받는 우리의 능력을 어떻게, 그리고 왜 감퇴시키는지 이해하는 핵심은, 교환가치로 전환될 수 없는 유일한 사용가치를 자본주의가 동시에 평가절하하고 착취한다는 점에 달려 있다.
관심을 위한 지불
사랑의 첫 번째 구성 요소는 관심(attention)으로, 이는 한 존재의 인지 능력을 다른 대상이나 객체에 거의 독점적으로 집중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타인의 관심을 갈망한다. 우리의 근본적인 소속감은 관심이라는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으며, 이에 대한 욕구는 매우 강해서 대부분의 사람은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보다 차라리 부정적인 관심을 받는 쪽을 택한다. 예를 들어, 2015년의 한 연구는 직장 내 따돌림이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비하하고 모욕하며 경멸하거나 굴욕을 주는 괴롭힘 행위"보다 실제로 심리학적으로 더 나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동료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은 괴롭힘보다 직원의 신체적 건강, 업무 태도, 그리고 장기적인 이직률에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인간의 번영에 있어 관심이 차지하는 중심적 위치를 고려할 때, 관심은 분명한 사용가치를 지닌다. 타인에게 목격되고 인정받는 것, 그리고 우리의 생각과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고 이를 인정받는 것은 필수적인 심리적 욕구다. 2010년의 한 연구는 대화 상대가 눈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깊은 소외감을 유발하여 '명시적 및 암묵적 자존감'을 저하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021년의 연구는 사회적 배제감이 청각적 지각까지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무시당한 개인은 주관적으로 세상을 더 조용한 곳으로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정의한 사랑의 세 가지 요소 중 관심은 가장 명백하게 상품화 가능한 요소다. 돈으로 관심을 살 수 있으며, 자신의 관심을 파는 것은 생계를 유지하는 정당한 수단이 된다. 상담사, 라이프 코치, 퍼스널 트레이너는 온전한 주의 집중의 시간을 판매한다. 타로 상담가나 영매사도 이와 유사하게 세션당 비용을 청구한다. 부모는 아이를 돌보는 노동자에게 자녀를 보살펴주는 대가를 지불하며, 상품화의 최첨단을 걷는 미국에서는 rentafriend.com(렌트어프렌드닷컴) 같은 회사를 통해 사용자들이 플라토닉한 관심의 시간을 사고팔 수 있다. 심지어 우리는 로봇을 고용해 우리에게 관심을 갖게 한다. 챗지피티(ChatGPT) 같은 인기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채팅 로그에는 고해성사와 같은 글들이 넘쳐난다.
한편, 기업과 알고리즘, 그리고 현대 생활의 필수 요건들은 우리의 관심 자원을 엄청나게 집어삼켜, 우리가 스스로 결정해서 쓸 수 있는 여분의 자원을 거의 남겨두지 않는다. 우리의 직업은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 동안 온전한 주의 집중을 요구한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남은 관심을 포착해 이를 광고주에게 팔아넘기며 우리를 고갈시킨다. 우리 경제 시스템이 주의력을 집중하는 능력을 고갈시킴에 따라 관심은 더욱 희귀해지고, 이로 인해 교환가치는 상승한다. 후기 자본주의의 고단한 하루가 끝날 때쯤이면, 아무리 자상한 부모라도 아이를 반쯤 무시하게 될지 모른다. 친구들은 메시지를 읽고 답하지 않으며, 연인들은 말없이 잠적(ghost)해 버린다.
관심을 살 수 있는 무언가로 생각하는 데 익숙해지면,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빈약한 관심 자원을 (무료로) 나누는 것을 점점 더 꺼리게 된다. 하버드 대학교 연구원들은 '우정의 불황'을 지적하는데, 생활비 상승으로 인해 사람들이 더 많은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고 사교 활동에는 더 적은 시간을 쓰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많은 미국 여성들(최근 연구에 따르면 26%)은 심리상담을 받지 않는 남성과의 데이트를 주저한다. 이는 여성이 낭만적 관계에서 오는 관심의 부담을 나누고 싶어 한다는 또 다른 표현이다. 남성들의 친구들이 다른 곳에 관심을 쏟으면서 남성들의 사회적 세계 또한 쪼그라들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부유한 구성원들이 타인의 관심 자원을 구매하는 동안 — 노동자로 고용하거나 소비자로서 돈이 되는 오락거리를 설계하는 방식을 통해 — 우리는 거의 혹은 아예 관심을 받지 못하는 하층민의 증가를 목격하게 되며, 이는 전 지구적인 사회적 고립의 유행을 부채질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6명 중 1명이 외로움을 경험하며, 이러한 사회적 연결의 결핍으로 인해 매년 거의 90만 명의 추가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애정과 흐름
사랑의 또 다른 주요 구성 요소는 애정(affection)으로, 이는 섹스, 신체 접촉, 위로, 다정한 말, 칭찬, 그리고 다정함이나 열정, 염려, 헌신을 표현하는 수많은 행동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범주다. 미국의 심리학자 해리 할로(Harry Harlow)는 1958년의 유명한 연구 '사랑의 본질'에서 두 마리의 무생물 대리모를 제공받은 새끼 붉은털원숭이들을 관찰했다. 첫 번째는 우유를 주는 철사 대리모였고, 두 번째는 우유는 없지만 부드운 천으로 덮인 대리모였다. 할로는 새끼 원숭이들이 음식보다 이른바 '접촉 위안'을 더 갈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최근 생물인류학자들은 기본적인 인간의 접촉이 저중력, 고산 지대, 극한의 추위나 더위와 같은 가혹한 환경과 관련된 생리적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기후 위기가 인간 생물학의 한계를 더욱 압박함에 따라 애정의 사용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관심과 마찬가지로 애정의 단위들도 쉽게 상품이 된다. 생활비가 평균 급여를 초과하는 사회에서, 과도한 업무와 불안은 사람들을 시간 빈곤과 탈진 상태로 몰아넣으며, 사람들은 필연적인 자기 돌봄(self-care)을 위해 애정이라는 자산을 비축해 둔다. 누군가에게 그가 가장 좋아하는 위로의 음식을 만들어 준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일 것이다. 끊임없는 경쟁과 경제적 불안정은 우리를 고갈시킨다. 애정이 희귀해짐에 따라 교환가치는 상승하고, 특히 평균 임금이 낮을 때 더 많은 노동자가 자신의 애정을 노동력의 한 형태로 판매하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한 가지 명확한 예는 성 노동이다. 이는 자본주의 등장 훨씬 전부터 존재했지만, 오늘날에는 '캠밍(camming: 웹캠을 통한 성매매)'부터 '핀돔(findom, 금융적 지배를 통한 성적 만족 추구)'에 이르기까지 훨씬 더 창의적이고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하지만 돈은 다른 유형의 애정도 구매한다. 일본 비즈니스맨들은 호스티스 클럽의 여성들에게 비용을 지불하여 개인화된 칭찬을 통해 자신이 매력적이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산다. 부유함은 또한 마사지 테라피, 발 반사 요법, 스파 트리트먼트, 뷰티 서비스 등 전문화된 형태의 신체 접촉을 꾸준히 공급받게 해준다. 상위 1%가 구매된 형태의 보살핌으로 자신의 일정을 채울 때, 애정 그 자체는 사치재가 된다.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진 경제 시스템에서 애정은 비축되고 거래되고 과시되는, 개인적 성공의 토템이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관계에서 관심과 애정의 나눔은 내가 '상호적 흐름(reciprocal flow)'이라 부르는 세 번째 요소, 즉 주고받음의 자연스러운 순환과 결합되어 있다. 이는 생성적이고 생산적인 역동성이다. 우리가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받을수록 더 많이 주고 싶은 영감을 느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자연 어디에서나 이를 발견할 수 있으며, 포타와토미(Potawatomi) 족의 식물학자 로빈 월 키머러(Robin Wall Kimmerer)는 이를 자신의 글에 아름답게 담아냈다. 대지는 나무를 보살피고, 나무는 잎과 열매를 떨어뜨려 대지를 보살핀다. 벌은 꽃식물에서 꿀을 채집하며 수분을 돕고 식물의 생존을 보장한다. 인간은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뱉으며,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한다. 전체 생태계는 상호적 흐름의 끊임없는 주고받음의 순환에 의존한다.
상호적 흐름의 사용가치는 그것이 어떻게 이러한 섬세한 생태계를 자연스럽게 이끌고, 종 내 및 종 간의 협력과 시스템 전체의 균형 유지를 가능케 하는가에서 나온다. 러시아의 지리학자 표트르 크로포트킨(Pyotr Kropotkin)은 시베리아 여행 중에 가혹한 기후 속에서 서로 다른 동물들이 상호 생존을 위해 어떻게 협력하는지를 보고 경탄했다. 이와 유사하게, 연구자들은 걸음마 단계의 아이들이 종을 뛰어넘는 이타적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이들은 보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개를 돕는다.
수년간 나의 반려견들에게 느껴온 사랑의 상당 부분은 우리 사이에 순환하는 애정과 관심의 상호적 흐름에서 비롯된다. 2024년의 한 연구는 미국 퇴역 군인들이 서비스견과 짝을 이룰 때 'PTSD 증상의 심각성, 불안, 우울증이 현저히 낮아졌다'고 보고했다. 내가 재직 중인 대학교는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시험 기간에 치료견들을 캠퍼스로 데려온다. 연구들에 따르면 개를 쓰다듬는 것은 쓰다듬는 사람에게나 쓰다듬을 받는 개에게나 똑같이 즐거운 일이다. 개가 당신을 되받아 쓰다듬어 주지는 않지만, 그 행위는 상호적인 애정의 에너지, 즉 사랑의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모두 함께다
상호적 흐름은 상호성(reciprocity)과 같지 않다. 상호성은 각 당사자가 주고받음의 균형을 기록하는 정산표를 암시한다. 반면 상호적 흐름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며 지속되는 관계 내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단기적인 불균형을 허용한다. 나와 나의 반려견들이 상호적 흐름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수년 동안 동일한 일상을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친밀함은 우리 연결의 강도와 지속성에 발맞추어 성장했다.
이와 유사하게, 부모 노릇 또한 이러한 상호적 흐름의 상태를 어느 정도 수락할 것을 요구한다. 어린 자녀들은 엄청난 양의 관심과 애정을 요구하지만, 많은 부모는 이러한 자원을 아낌없이 나누는 것에서 깊은 목적 의식과 만족감을 느낀다(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종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호적 흐름의 상태는 세대 간의 관계가 수십 년 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공유된 기대에 의해 유지된다.
훌륭한 대화는 상호적 흐름의 축소판이다. 그것은 누구 한 명의 독점 없이 편안하게 주고받는 과정 속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듣고 응답하는 자발적인 행위들을 포함한다. 우리는 잠재적인 교환가치에 구애받지 않고 이야기, 소식, 아이디어, 관찰을 공유하며 공감과 통찰, 조언을 구하거나 제공한다. 창조적인 영역에서 재즈 잼 세션과 아마추어 볼룸 댄스는 상호적 흐름의 공유된 기쁨에 의존한다. 내가 프라이부르크 임 브라이스가우(Freiburg im Breisgau)에서 보낸 수많은 여름 동안, 나는 늘 대학교 식당 근처의 탄츠브루넨(Tanzbrunnen, 춤추는 분수)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감탄하곤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으로 산산조각 났던 분수의 야외 분지에서, 모든 연령대의 커플들이 따뜻한 저녁에 모여 그저 즐거움을 위해 별빛 아래서 함께 몸을 흔든다. 최근 스코틀랜드 여행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악기를 가져와 악보나 미리 정해진 곡 목록 없이 함께 연주하는 케일리(ceilidh)를 처음 겪어보았다. 그것은 노래와 소리가 시끌벅적하고 즐겁게 어우러지는 광경이었고, 음악가들은 그저 스코틀랜드 전통 선율을 연주하는 단순한 즐거움을 위해 서로의 연주에 즉흥적으로 반응했다.
아이들에게조차 놀이의 가장 높은 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형태는 '협동 놀이' 또는 '상호 놀이'라고 불린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상상의 세계를 공유하며, 함께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냈던 긴 날들을 떠올려 보라. 역할극, 변장 놀이, 공동 스토리텔링은 아이들의 상상력 사이에 흐르는 상호적 흐름의 자연스러운 상태에 의존한다. 이러한 활동들은 아이들에게 타인의 감정적 신호를 읽는 법과 자발적으로 반응하는 법을 가르친다.
아동 심리학자들은 장시간의 상호 놀이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의 인지 발달에 필수적임을 인정한다. 상호적 흐름의 공유된 상태에 몰입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토대가 되는 친사회적 행동을 배우는 방식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그의 인상적인 에세이 <왜 사회주의인가?>에서 개개인과 사회가 끊임없는 상호적 흐름의 상태 속에 존재한다고 제안하며 이 논의를 한 걸음 더 밀어붙였다.
"개인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노력하며 일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은 자신의 신체적, 지적, 감정적 존재 양식에 있어 사회에 너무나 많이 의존하고 있으므로, 사회라는 틀 밖에서 그를 생각하거나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에게 음식, 옷, 집, 노동의 도구, 언어, 사고의 형식, 그리고 사고 내용의 대부분을 제공하는 것은 바로 '사회'다. 그의 삶은 '사회'라는 작은 단어 뒤에 숨겨진 과거와 현재의 수백만 명의 노동과 업적을 통해 비로소 가능해진다."
우정과 낭만적 사랑에 있어, 우리는 긴 시간과 가까운 거리 덕분에 자연스럽게 타인과 상호적 흐름의 상태에 진입한다. 이러한 흐름에 들어가는 계기는 다양할 수 있으나(신체적 매력, 유사한 정치적 신념, 상응하는 지적 관심사 등), 관심과 애정의 상호적 흐름은 초기 동력을 넘어 성장한다. 반려동물이나 대부분의 아이와의 관계와 달리, 이러한 성인 간의 관계는 훨씬 불안정하게 느껴지는데, 당사자 중 누구라도 언제든 갑자기 그 흐름에서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가 흔들릴 때, 그것은 대개 한쪽이 상호적 흐름의 상태를 버리고 훨씬 더 계산적인 형태의 교환을 택했기 때문일 수 있다. 나르시시즘, 탐욕, 원한, 트라우마, 피해망상, 또는 수많은 심리적 상태가 주고받음의 자연스러운 리듬을 유지하는 능력을 저해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냥 무례한 얼간이(jerks)일 뿐이다.
사랑은 판매용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을 경험함에 있어 상호적 흐름이 갖는 중요성은 음악, 예술, 문학, 그리고 영화 속 수많은 묘사를 통해 더욱 증명된다. 거의 모든 로맨틱 코미디나 친구 영화(BFF flick)의 줄거리는 개인들이 자신의 소울메이트, 즉 이러한 흐름 상태에 가장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상대를 찾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더 부유하거나 매력적인 다른 구혼자들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진정한 사랑'은 거의 언제나 특별하고 대체 불가능한 연결에 관한 것이다. 상호적 흐름의 발현 또한 상품화될 수 있는데, 열성적인 관객들이 실시간으로 상호적 흐름을 목격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즉흥 코미디(Improv comedy)가 훌륭한 예이며, 개별 선수들이 팀원들과 협력하여 승리하는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내가 인버네스(Inverness)에서 참석했던 케일리 공연들은 참여와 관람이 무료였지만, 청중들은 때때로 음악가들에게 맥주를 사주거나 팁 바구니에 동전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관심이나 애정과 달리, 상호적 흐름은 상품화될 수 없다. 상호적 흐름에 교환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투자 대비 즉각적인 수익에 대한 기대 없이 이루어지는 주고받음의 자연스럽고 리듬감 있는 순환이라는 본질을 부정하는 일이다. 이는 마치 한 손에는 '프리 허그(Free Hugs)'라는 팻말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기부금 함을 흔드는 사람을 보는 것과 같다. 어떤 형태로든 지불이 요구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프리(무료/자유)'가 아니다. 애정과 관심의 사용가치는 그것이 자유롭게 공유되든 판매되든 혹은 하늘에서 눈처럼 내려오든 적어도 어느 정도는 훼손되지 않고 유지되지만, 상호적 흐름은 시장으로 끌려 나오는 순간 그 사용가치를 잃는다. 그것은 이기심이 아닌 배려에서 우러나오는 정서적 자원의 공유, 즉 관대함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상호적 흐름을 상품화하려는 시도 자체가 그것을 죽이는 행위다.
이는 자본주의에 문제를 제기한다. 자본가들은 상호적 흐름의 가치를 인정하고 싶어 하며, 그것에 교환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는 점에 동의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평소 사적 시장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가족 보수주의자들과 우익 이데올로그들도 어린아이들이 사회적, 인지적 기술을 발달시키기 위해 풍부한 애정, 관심, 그리고 상호적 흐름을 경험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전통주의자들은 어린아이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제공하는 일은 오직 상호적 흐름의 상태를 통해서만 이루어져야 하며, 이러한 상태를 촉진하는 것은 부모, 특히 어머니의 내생적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어머니들은 자녀에 대한 '자연스럽고' 생물학적인 사랑에서 우러나와 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유아들이 (유급이든 무급이든) 다양한 보살핌을 하는 성인들에게 충분히 잘 양육되고 안정적으로 애착을 형성할 수 있다는 풍부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와 아이 사이의 '특별한 유대'에 대한 도처에 널린 이상화는 여성의 돌봄 노동을 생산 경제에서 제외하는 효과를 낳는다. 모든 것에 가격이 있는 사회에서, '가격을 매길 수 없는(priceless)' 것으로 남겨진 것들이 의심스럽게도 엘리트들이 혜택을 입는 것들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반면, 자본주의 하에서는 상품화에 저항하는 것들의 사용가치를 깎아내리려는 충동 또한 존재한다. 우리가 성인이 됨에 따라, 고도로 개인주의적인 사회는 타인이 우리를 이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상호적 흐름의 상태에 빠지는 위험을 두려워하도록 가르친다. 당신의 친절은 나약함으로 간주될 것이다. 국제적인 연구들은 사회적 신뢰 수준이 국가별로 현저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크고 관대한 복지 국가는 더 낮은 수준의 불신과 상관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2017년에서 2022년 사이 수행된 <세계 가치 조사>(World Values Survey)의 제7차 조사에서는 응답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대부분의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사람을 상대할 때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독일인과 미국인의 대다수는 타인을 대할 때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답했다. 독일은 54.5%, 미국은 무려 62.5%에 달했다. 반면 덴마크 응답자의 25.8%, 노르웨이 응답자의 26.9%만이 그렇게 답했다.
불평등 수준이 높은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받기만 하고 주지는 않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독이 되는(toxic)' 우정을 서둘러 정리하고 '결핍된(needy)' 파트너를 끊어버리라는 권고를 받는다. 관심과 애정에 그토록 높은 가격이 매겨지는 세상에서, 그것들을 거저 나누어 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 된다.
자본주의 너머의 사랑
시민 복지를 우선시하는 더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는 상호적 흐름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을 창출한다. 타인과 상호적 흐름에 빠져들고, 우리가 배운 회계적 사고방식을 내려놓으며, 비용과 편익의 계산 없이 주고받음의 순환에 다시 합류하려면 시간과 물리적 거리가 필요하다. 우리가 가족이나 오랜 친구들과 훌륭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이 사람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지?" 혹은 "최근에 나한테 해준 게 뭐야?"라고 묻지 않는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 그 흐름이 균형을 이룰 것임을 믿는다. 그러나 시간은 부족하고, 불안정한 시장의 끊임없는 스트레스 속에서 가까운 거리는 연결보다는 긴장을 부채질할 수 있다.
상호적 흐름은 사랑의 핵심 요소지만, 자본주의는 이를 정복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부유한 구성원들조차 이러한 흐름이 약해지고 있음을 감지한다. 부자들은 타인의 관심과 애정을 무한히 구매하지만, 그 어떤 돈으로도 비거래적인 주고받음의 자연스러운 순환 속에 온전히 몰입하는 경험을 살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비거래적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처음부터 이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부르주아 체제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적나라한 자기 이익과 냉혹한 '현금 지불' 외에는 아무런 유대도 남지 않는" 사회를 만든다고 썼다. 자본주의는 모든 진실한 인간적 감정을 "이기적인 계산"의 차가운 물속에 익사시키고 "개인의 가치를 교환가치로" 해소해 버린다. 결과적으로 "모든 신성한 것은 모독당하며", 우리의 가장 친밀하고 가치 있는 경험들은 시장으로 끌려 나와 가격이 매겨진다. 1923년,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사적 소유가 사랑에 대한 우리의 집단적 이상을 왜곡하는 경제 체제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내면적 외로움의 냉기"에 대해 썼다. 그녀는 사람들이 상호적 흐름을 너무나 풍부하게 누려서, 어느 하나의 특정한 흐름을 잃더라도 덜 파괴적으로 느껴지는 사회주의적 미래를 상상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또한 개개인과 사회 사이의 자연스러운 상호적 흐름을 사람들이 불신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개인이 이를 "긍정적 자산, 유기적 유대, 혹은 보호하는 힘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자연권이나 심지어 경제적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볼 수 있다"고 시사했다. 대신, 사용가치보다 교환가치가 격상된 시스템 하에서 고투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 이익이라는 감옥의 죄수가 되어, 불안과 외로움을 느끼고 천진하고 단순하며 소박한 삶의 즐거움을 박탈당한다."
우리가 더 높은 수준의 사회 보장과 여가 시간을 보장하는 더 평등한 사회에 산다면, 우리는 진정한 상호적 흐름을 누릴 수 있는 더 큰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관심과 애정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사이의 간극은 더 좁아질 것이다. 이것이 그것들을 전혀 상품화해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너무나 많은 사람이 기본적인 생계를 위해 그것들을 판매하는 데 의존하고 있으며, 이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조직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더 크게 생각해야 한다. 더 강력한 복지 국가와 노동자 보호는 상호적 흐름을 촉진하겠지만, 이것만으로는 수 세기의 자본주의가 우리가 우리 자신과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에 가해온 엄격한 제약을 초월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사랑의 정치가 필요하다. 기쁨, 연민, 연결, 그리고 연대를 새롭게 수용함으로써 축적과 이윤의 논리에 능동적으로 저항하는 정치 말이다. 이러한 무한하고 소외되지 않은 사랑은 자본주의 이후에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자본주의는 불신을 낳는 희소성의 체제이며, 사랑이 의존하는 관대함과 근본적으로 상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고받음의 자연스러운 순환이 주는 천진하고 단순하며 소박한 즐거움을 누리는 데 필요한 시간과 거리를 공유할 수 있는 자원을 우리 모두가 가진 새로운 세상을 위해 싸워야 한다.
(기사 등록 202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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