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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브라질의 ‘의회 쿠데타’/ 총선 평가 논쟁 등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6. 4. 30.

전지윤



브라질 우파가 호세프 탄핵의 의회 쿠데타를 통해 노리는 것


최근, 브라질 노동자당의 호세프 대통령이 직면한 탄핵 위기는 여러모로 2004년 한나라당(지금의 새누리)의 노무현 탄핵 시도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 노무현 정부는 이미 개혁약속을 져버리고 오히려 개악을 추진하기 시작했지만, 우파가 말하는 부당한 선거 개입은 노무현을 탄핵하려는 진정한 이유가 아니었다.

 

브라질 상황도 비슷하다. 언뜻 보기엔 브라질 노동자당이 연루된 부패스캔들 때문에 호세프를 탄핵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브라질 우파의 공식 탄핵 사유조차 다른 것이다. ‘국영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실업자 지원과 사회복지에 쓰고 이를 바로 상환하지 않은 것이 죄라는 것이다.

 

국가 재정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운 게 잘못이란 것이다. 사실 지금 탄핵을 주도한 세력이야말로 브라질에서 부패의 진정한 몸통들이다. <뉴욕타임스>호세프의 탄핵에 찬성하는 브라질 의회 의원 594명 중 60%가 심각한 뇌물, 선거부정, 불법 산림훼손, 납치와 살인과 같은 혐의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물론 브라질 노동자당은 분명 문제가 많고 이미 노동계급을 배신한 세력이다. 노동운동의 성과에 기반해 집권한 그들은 집권 후 신자유주의에 타협했고, 우파와 연정을 구성했고, 심지어 부패했다. 월드컵 등에 돈을 쏟아 부으며 공공요금을 인상해서 2013년에는 거대한 아래로부터 저항에 직면하기도 했다. 에너지부 장관이었던 호세프는 석유기업을 중심으로 한 부패 스캔들에 책임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노동자당을 탄핵하려는 주요 세력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군사독재의 후계자들, 부패한 우파들이다. 특히 1963년에 조앙 골라르트 좌파 정부를 군사쿠데타로 전복한 세력이 지금 탄핵 추진 세력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군사독재 시절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다.

 

반면 땅 없는 농업노동자 운동(MST)’과 브라질 노총(CUT)은 탄핵 반대 투쟁을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싸움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탄핵 찬성측에는 특권층, 부유층이 결집해 있고 반면에 탄핵 반대측에는 노동자, 농민, 빈민들이 모여있는 것이다.

 

우파는 호세프를 탄핵한 후 우파 임시정부를 꾸리고 연금 개악과 긴축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심각해지는 신흥국 경제위기가 그 배경이고,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과 우파가 손잡고 좌파 정부들을 하나씩 제거해가는 과정의 일부일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당을 왼쪽에서 비판해 온 사회주의해방당(PSOL), 사회주의단결당(PSTU)이 이런 의회쿠데타에 반대하는 것은 옳다.

 

브라질 노동자·민중은 우파의 의회쿠데타가 성공하면 자신들이 더 열악한 조건으로 몰릴 것을 직감하고 있다. 노동자당의 왼쪽에서 더 좌파적·급진적 대안을 건설하려는 좌파는 그 운동에 개입하면서 대안을 건설해야 한다. 노동자당은 우파가 아니라 좌파와 노동자 민중에 의해 끌어내려지고 더 좌파적 대안으로 대체돼야 한다.


 

총선 결과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비판이 중요한 이유

 

이번 총선에서 박근혜가 참패한 것을 보고 많은 노동자 민중이 기뻐한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그중에 다수가 민주당이나 국민당의 어부지리를 보고 흡족했을 리는 없다. 나아가 진보정치의 전진을 기대한 노동자들은 역시나하는 아쉬움이 컸을 것이다.

 

진보진영의 다수도 이번 선거 결과에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박근혜의 패배를 기뻐하는 것과 별개로 말이다. 그런데 진보진영의 일부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있다. 대표적으로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다야구도 속에 야권연대 없이 이룬 현상유지는 그래도 작은 진전이라며 위안삼는다. 나아가 “2년전 지방선거에 비해 두배 가까운 정당지지율을 얻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며 성과적 평가까지 한다.

 

이런 평가는 여러 가지로 협소한 관점을 반영하는데 먼저, 진보당 해산 시도 속에 진보정치가 최악의 분열과 최저의 득표를 기록한 ‘2년전 지방선거를 기준으로 삼는 것부터 설득력이 없다. 더구나 진보정당들의 득표수 합계는 그 ‘2년전 지방선거보다도 더 줄었다


다음으로, 이런 평가는 진보정당 전체가 직면한 분열과 후퇴는 못 본 척하며 정의당의 득표만 단순 평가한 것이기도 하다. 전체 진보진영의 단결과 전진에는 관심없고 특정 세력의 성장에만 시야가 갇혀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협소한 관점에서 정의당만 떼어놓고 보면 2년 전보다 성장한 것은 사실이고 그것을 어느 측면에서는 인정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의당이 그 일부로 속해 있는 진보정치 전체를, 그것도 노동운동의 단결과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번 결과가 전진이나 성과라고 보기는 힘들다. 새누리도 민주당도 싫고 국민당도 못 믿겠다는 정서가 이토록 큰 가운데, 그래서 박근혜가 참패하는 가운데 진보정치는 기회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보정당 전체의 의석과 득표는 4년 전보다 오히려 크게 줄었고 ‘2년전 지방선거와 비교해도 줄었다.


게다가 진보의 사분오열은 더 심해졌고, 정치적으로도 헌법 내 진보경향이 더 커지면서 유일 원내 진보정당은 군복을 입고 태극기를 흔드는 심각한 후퇴까지 보였다. 즉 득표율, 득표수, 의석 수, 분열 정도, 정치적 급진성 어느 기준으로도 전진하지 않았다. 정의당만 따로 봐도 제4당으로 밀려났을 뿐 아니라 통합진보당의 표도 다 흡수하지 못했다.

 

진보정치 전체의 몫이 줄어든 와중에 정의당의 성장이 나타내는 효과도 살펴봐야 한다. 그것은 진보정치 안에서 정의당의 비중과 목소리가 더 커졌다는 말이다. 이것을 환영하고 기뻐하는 사람들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동의하긴 어렵다.


정의당처럼 종북몰이에 타협하고 우클릭하는 게 어쩔 수 없거나 심지어 성장을 위해서는 바람직하다는 신호와 압력을 진보정치에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의당 지도부는 이번 선거의 결과를 애써 전진으로 포장하면서, 어떠한 의미있는 반성적 평가도 하지 않고 있다. 제대로 된 선거 평가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정의당 안팎의 좌파는 이런 평가에 동조해서는 안 된다. 특히 정의당 내부의 좌파나 정의당에 개입하려는 좌파는 정의당 지도부가 민주노총 지도부의 선거연합 제안을 거부한 점, 진보의 단결보다 민주당과의 야권연대를 우선한 점, 종북몰이에 추수하며 선 긋기와 우클릭에 급급한 점을 정면으로 분명하게 비판해야 한다.

 

그것이 우파의 분열과 제3의 대안을 바라는 대중적 열망이라는 기회 속에서도 진보정치의 분열과 주변화를 낳았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민주노총과 총선공동투쟁본부가 울산에서 멋지게 보여 준 것처럼 진보가 하나로 단결할 때만 기회를 잡을 수 있고 종북몰이도 무력화할 수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이런 평가와 비판이 중요한 이유는 정의당이 비록 참여계와 통합으로 복합적 성격을 가지게 됐지만, 노동계급 기반을 가진 주요 진보정당이기 때문이다. 특히 의회 안에 있는 유일한 진보정당이 이 같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은 이후 노동자 단결과 투쟁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선거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보다 훨씬 더 중차대한 일이다.



윤종오 당선자에 대한 공격은 종북몰이에 맞선 진보 단결의 성과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다.


 

멸시와 혐오의 시선만은 거두어주길

 

지난해 노동자 투쟁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노동자연대 지도부 동지들과 토론 속에서 나는 2개의 토론글을 쓴 바 있다. 내 두 번째 글(http://rreload.tistory.com/264) 이후에 노동자연대 동지들은 아예 나를 비판하는 책자를 하나 출판했다.( http://workerssolidarity.org/?p=19277&post_type=book)

 

나는 약간의 걱정과 기대 속에서 그 책자를 구입해 봤다. 논의의 발전을 위해서 다시 재반박하는 글을 써야 할 것인가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책을 읽은 이제는 더 이상 노동자연대 동지들과의 토론이 무의미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 책에서 나는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불신하고 마르크스주의에서 이탈한 기회주의자로 그려질 뿐이다. 심지어 노조 무용론을 주장하고 비정규직 조직화의 필요성과 파업 건설의 의의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런 매도를 통해 진지한 정치적 토론이 이뤄지거나 누군가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서글프게도 노동자연대 동지들은 이런 방식에 흡족해하는 것 같다.

 

이제 기회주의자”, “민중주의자같은 무수한 딱지 붙이기는 더 이상 말아달라고 부탁할 의지도 사라진다. 비판의 근거를 제시해 달라는 부탁도, ‘내가 언제 총파업에 반대했단 말이냐는 항변도, ‘노동자연대가 우리 단체의 총선공동투쟁본부에 참가 신청을 가로막은 것은 부당하다는 문제제기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다.

 

다만 한 가지만 당부하고 싶다. “거짓말”, “위선”, “부정직”, “교활함”, “벽창호”, “얄팍한 수작등 내 인격을 모독하며 온갖 혐오를 드러내는 말만은 그만하셨으면 한다. 우리는 그런 멸시와 혐오 속에 상처받는 사람들의 손을 잡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던 것 아닌가. 십수년을 함께 믿고 의지했던, 여전히 동지적 애정이 남아있는 이들에게 그런 멸시어린 시선과 혐오의 발언을 들을 때 상대가 느낄 마음의 고통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봤으면 한다.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http://rreload.tistory.com/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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