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러시아 혁명의 변질과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전지윤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 이 같은 이상은 언제나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나도 소련 몰락 이후의 혼란 속에서 헤매다가 여기서 빛을 발견하며 신발끈을 고쳐 묶은 적이 있다. 그 흥분과 열정이 어느 순간 식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커져가다가, 지난 2년 전에 나는 다시 치열한 논쟁 속에서 그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게 됐다.

 

내가 새로운 출발에 나선 후, <아래로부터 사회변혁이 그토록 중요한가>(http://rreload.tistory.com/214)같은 글을 부족한 영어 실력을 무릅쓰고 번역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글 등에 자극받은 류한수진 동지의 글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라는 시대정신>(http://rreload.tistory.com/271)은 진지하고 치열한 고민과 문제의식으로 나에게 더 큰 자극을 주었다.

 

류한수진 동지의 글을 지지하면서 몇 가지 보충을 시도한 김민재 동지의 글 <사회주의는 본래적 의미의 민주주의 그 자체이다>(http://rreload.tistory.com/280)도 마찬가지다. 이 글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왜 원래의 민주주의와는 다르며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닌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나아가 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가 왜 그 자체로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인지를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김민재 동지가, 기존의 소련 사회가 사회주의나 노동자국가라고 볼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도 분명히 옳다. 그러면서 그 글은 소련 사회의 성격을 규명하려고 했던 앞선 시도들을 검토하고 있다. 토니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 이론과 트로츠키의 퇴보한 노동자 국가 이론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김민재 동지는 각 이론에 담긴 합리적 핵심을 인정하면서도 정치적 약점을 설득력있게 지적하고 있다. 각각의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런 지적을 보면서 다시 고민하고 재발전시켜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김민재 동지는 이런 논의를 통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고민거리와 과제를 던져 주고 있다.

 

소련은 분명히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노동자국가로 출발했기 때문에 왜 그렇게까지 변질되었는지, 왜 노동자민주주의가 후퇴했는지, 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답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게 생각되어야 한다. 과거 역사적 사건에 대해 평가하는 것도 필요하고, 더 나아가 일상 활동을 할 때도 우리는 스탈린주의에 반대하니까 우리 조직은 그렇게 될 일이 없다는 안이한 생각에 빠지지 않고 항상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나아가 사회주의자들은 피억압 대중의 잠재력을 신뢰하고, 그들 스스로가 변혁의 주체가 되는 길이 무엇일지 고민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며 글을 끝맺고 있다.

 

나는 이 글의 많은 부분에 공감과 지지를 보낸다. 특히 이 글이 소련 사회에 대한 이론들을 재검토한 것은 중요하고 적절한 시도였다. 그것은 단지 이론적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중요한 정치적 고민과 판단들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도대체 자본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 사회주의 변혁의 핵심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사회주의 변혁을 위한 시도들이 실패하거나 변질된 원인이 무엇인지 등이 이어질 수 있는 쟁점들이다. 그런데 기존 이론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김민재 동지가 제시하고 있는 대안적 주장은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않다.


소련 사회에 대한 성격 규명  


김민재 동지의 주장은 소련이 관료가 지배하는 공동생산체제였다는 것이다


소련 체제를 노동자국가, 부르주아국가 둘 중 하나로 규정하기보다는 관료가 지배하는 공동생산체제정도로 파악하되 소련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보다 진보적인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제국주의에 의해 진보적인 부분이 위협받는 경우에조차 방어를 거부하는 실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비판하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이런 규정은 소련 체제에 대한 일면적인 거부도, 일면적인 지지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듯하다. 그리고 국가자본주의 이론이나 퇴보한 노동자 국가 이론의 지지자들이, 구체적 상황을 분석하며 전술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서 몇 가지 혼란과 시행착오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첫째, 소련에 대한 일면적 지지나 비판은 두 가지 이론 그 자체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구체적 상황에 대한 전술적 판단의 문제일 것이다. 예컨대 북한이 국가자본주의라고 보는 입장도 제국주의적 압박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반대할 수 있다.

 

둘째, 소련이 자본주의였다는 주장도, 소련이 노동자 국가였다는 주장도 피하면서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제3의 체제였다는 결론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제 3 체제의 본질과 동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은 별로 제시돼지 않는다. 링크돼 있는 글(‘소련사회의 진보성과 반동성http://programto.net/wordpress/?p=677)은 주로 소련 사회의 진보성반동성을 대조하는 데 머물고 있다.

 

셋째, 막상 링크된 글에 제시되는 관료가 지배하는 공동생산체제에 대한 제한적 설명들은 퇴보한 노동자 국가 이론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퇴보한 노동자 국가이론은 소련이 노동자 혁명을 통해서 수립됐고 생산수단의 국유화라는 진보를 이루었지만, 노동자 민주주의를 짓밟으며 관료적으로 퇴보했다고 주장해 왔다.

 

따라서 제국주의에 맞서서 소련을 방어하고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유지해야겠지만, 관료지배를 타도하는 정치혁명을 해야 한다는 게 그 주장이다. 그런데 관료가 지배하는 공동생산체제이론도 이와 비슷하다.

 

“10월 사회주의 혁명은 생산수단 사적소유의 폐지를 통해 자본주의 이상의 생산력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그 자체로 자본주의보다 진보적인 측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생산수단의 사적소유가 철폐된 사회였고, 국가 계획을 통해 소련사회는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의료 교육 등 사회복지 부분에서도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였다.

스탈린의 등장을 통해 당내민주주의가 완전히 말살되었고 관료들의 이해가 관철되는 과정에서 당은 독재화되었고, 노동자들의 권리는 해체되어 갔다.

소련사회가 가진 진보적 측면을 방어하고, 반동적 측면을 갈아엎기 위해 소련을 방어하는 것이 사회주의자의 태도여야 했다.”

 

퇴보한 노동자 국가이론은 소련이 자본주의보다는 우월한 사회라고 봤지만, ‘관료적 타락때문에 사회주의 이상에는 못 미치는 체제라고 봤다. ‘관료가 지배하는 공동생산체제이론도 소련이 자본주의 기준으로 보면 진보했지만, 사회주의 기준으로 보면 반동성이 있다고 본다.

 

물론 관료가 지배하는 공동생산체제이론은 소련이 타락하고 변질되긴 했지만 모종의 노동자국가라는 관점에서는 벗어나 있다. 하지만 국유화와 계획경제가 모종의 진보라는 점과 그것을 방어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퇴보한 노동자 국가이론과 공통점이 있다.

 

반면 국가자본주의론은 이 점에서 분명한 차별성이 있고, 여기에 국가자본주의론의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그 이론은 국유화와 계획경제같은 형식과 제도가 그 자체로 사회주의라거나 진보라고 보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자기해방 활동도 없고, 노동자 민주주의도 존재하지 않고, 노동자들이 생산을 통제하지도 않는 그런 사회가 사회주의라면 도대체 마르크스주의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이 토니 클리프가 던진 의문이었다.

 

클리프는 소련에서 국유화는 소유의 법적 형태에 불과하다고 봤다. 나아가 생산관계와 독립하여 소유형태를 고찰하는 것은 형이상학적 추상이고 형식주의라고 비판했다. 중요한 것은 소유의 법적 형태가 아니라 계급적 내용이고, 나아가 소유를 규정하는 생산관계의 성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소유의 계급적 내용과 그것을 규정하는 생산관계를 볼 때, 소련은 소수의 관료집단이 생산수단을 소유·통제하며 노동계급을 억압·착취하는 생산관계를 보여 준다는 것이다. 2차 대전 때 전시경제 속에서 주요 국가들은 일부 기업들을 국유화하고 경제를 계획했다. 개발독재를 택한 많은 후발 국가들도 산업의 국유화와 경제계획을 택했다. , 국유화와 계획경제는 그 자체로 사회주의적이거나 진보적 성격이 있지 않았다.

 

이는 국유화가 사회주의라면 비스마르크의 담배 전매도 사회주의냐라던 엥겔스의 문제의식과 같다. 엥겔스는 <반뒤링론>에서도 국가가 생산력을 더 많이 장악할수록 국가는 모든 자본가의 현실적 집합체가 되며 더 많은 시민들을 착취하게 된다고 했다


국가자본주의론의 혁신과 종합 

 

하지만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론은 몇 가지 한계와 약점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것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클리프 이론의 빈틈은 세 가지다. 첫째, 소련을 가치법칙이 작동하지 않는, 노동 분배가 바로 계획되는 하나의 공장으로 보았다. 둘째, 마르크스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개념을, 서로 맞서지만 한 테두리 안에 있는 '통일체'(unity)로 보지 않고, 따로 떼어놓고 있다. 셋째, 국가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옮아가는 시기로 보았다.”(이진, <마르크스 가치론으로 본 소련 자본주의 논쟁>)

 

이것은 꽤 심각한 문제일 수 있는데, ‘가치법칙이 작동하지 않고, 교환가치가 아닌 사용가치를 추구하는 체제가 과연 자본주의일 수 있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이 추구하는 것은 사용가치와 필요가 아니라 교환가치와 축적이라고 했다. 김민재 동지도 이 약점의 일부를 날카롭게 파고들며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클리프와 국제사회주의경향(IST)이 발전시킨 이론만을 국가자본주의론의 전부로 볼 이유가 없다. 클리프의 이론은 다양하고 폭넓은 국가자본주의 이론 중의 하나로 봐야 한다. 거기에는 클리프와 같은 빈틈이 보이지 않는 이론들도 존재한다. 물론 그 이론들은 또 다른 측면의 빈틈이 존재한다.

 

결국 우리는 어떤 이론이든 신성불가침의 교리처럼 고수할 것이 아니라, 열린 자세로 다른 이론과 비판들을 받아들여야 하고, 무엇보다 실천과 경험 속에서 이론을 현실에 비추며 끊임없이 혁신해 나가야 한다. 클리프의 이론도 여기서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럴 때 소련에서 유일한 고용주는 국가였고, 노동자들은 일종의 국가노예였고 임금노동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클리프의 주장은 명백한 오류로서 비판·극복돼야 한다. 생산수단을 독점한 자본들이 다수로 존재하고, 생산수단에서 자유로운 노동자들은 그들에게 노동력을 팔아야만 하고, 그 다수 자본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잉여가치 착취에 매달리게 되는 게 자본주의의 핵심 메카니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나예프스카야, 베틀랭, 샤토파디야, 페르난데스 등의 국가자본주의론은 다양한 자료와 조사를 통해 소련에서 임노동이 존재했음을 밝혀냈다.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을 가지지 않은 노동자들은 국영기업에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고 임금을 받아 생활했다.

 

기본생필품에 대한 배급, 현물임금, 루블로 지급되는 화폐임금 모두가 존재했다. 노동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찾아 작업장을 옮길 수 있었다는 것은 높은 이직율로 확인된다. ‘스타하노프주의 성과급은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시도를 보여 준다. 수많은 농촌인구와 수백만까지 달했던 강제수용소는 산업예비군 구실을 했다.

 

, 소련에서 노동자들은 생산수단과 노동과정, 생산의 결과물에서 소외된 전형적인 임노동자였다. 이러한 임노동 관계의 존재는 캘리니코스 등도 클리프 이론의 모순을 비판하면서 지적한 내용이다.(따라서 캘리니코스가 의도와 다르게 은연중에 클리프 논리의 문제를 고백했다는 김민재 동지의 지적은 수긍하기 어렵다. 캘리니코스는 공식적으로 클리프 논리의 허점을 비판하며 나름의 보완을 시도한 것이다. 비록 충분치는 않아 보이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소련의 관료집단은 누구인가? 그들은 왜 노동자들에게 소외된 노동을 강요했을까? 이 부분에서 퇴보한 노동자 국가론’, ‘관료가 지배하는 공동생산체제론등은 설득력 없는 설명을 제시하거나 별 다른 분석을 제시하지 못한다.

 

과연 관료들은 노조 관료와 비슷한 구실을 한 것일까?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어떤 노조 관료도 생산수단을 소유·통제하지는 않는다.

과연 관료는 분배 과정에 일시적으로 등장한 기생적 집단이었을까? 하지만 관료들은 70년 가까이 소련을 지배했고 분배만이 아니라 생산을 통제했다. 마르크스는 생산과 분배를 기계적으로 분리하지 않았고, 분배는 생산수단의 분배부터 출발한다고 지적했다.

과연 관료가 노동자들을 억압·착취하도록 만든 동력은 관료 자신의 소비와 향락, 지배욕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이것은 왜 관료가 소비재보다 생산재, 중공업 생산에 우선권을 두며 수억 톤의 석탄과 철강 생산에 매달렸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반면, 클리프는 국제적 차원의 군비경쟁이 관료들을 추동한 압력이었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일리가 있긴 하지만 관료가 추구한 것은 사용가치의 생산이었고 소련 국내에서는 경쟁을 발견할 수 없다는 주장은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과 연결되기에 불충분하다.

 

결국, 이 부분에서도 두나예프스카야, 베틀랭, 샤토파디야, 페르난데스 등의 다양한 국가자본주의론은 대안적 분석과 근거를 제공한다. 이에 따르면 소련의 국영기업 관리자들은 투자와 경영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자율성과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더 많은 원료, 노동력을 확보하고 산출량을 달성하기 위해 경쟁했다. 생산목표를 앞서서, 초과로 달성하기 위한 경쟁이 있었다. 이 경쟁에서 실적과 우위가 그들의 정치적 출세와 사회적 지위를 결정했다.

 

경쟁에서 승리한 국영기업에게는 더 많은 융자와 보조금이 제공됐다. 이런 경쟁의 압력은 국영기업들이 서로 노동자들에게서 더 많은 잉여가치를 짜내기 위해 행동하도록, 또 잉여가치의 더 많은 부분을 확대재생산에 다시 투자하도록 내몰았다.

 

이 과정에서 국영기업 관리자들이 추구한 것은 사용가치와 필요가 아니었다. 그것은 루블 가격이나 산출량으로 측정되는 교환가치였다. 초과달성하고자 한 것은 더 많은 석탄과 철강이었다. 즉 인민의 필요를 위한 생산이 아니라 생산을 위한 생산, 축적을 위한 축적이었던 것이다.

 

소련 경제학계에서 주도적이었고 국가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던 수리경제학파는 이런 현실의 이론적 반영이었다. 수리경제학파는 기업의 수익성을 증대하기 위한 유인을 어떻게 제공할 것이냐를 중시하면서 이윤과 수익성() 크기가 성과 평가의 유일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99042)

 

물론 소련 경제에서 시장가격의 형성과 경쟁에서 뒤쳐진 국영기업의 파산은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가치법칙이 수정됐다는 것이지 적용돼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독점가격의 설정이나 국가개입을 통한 대마불사같은 가치법칙의 수정은 시장자본주의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다.

 

이런 분석들은 국가를 소유하고있으며, 축적 과정을 통제하고 있는 러시아 관료는 전통적 자본가 계급의 부분적 부정인 동시에 자본가 계급의 역사적 사명의 가장 진정한 인격화라는 클리프의 논지를 뒷받침하고 보강해 준다. 결국 경쟁, 잉여가치의 착취, 소외된 노동, 계급 분단이 존재한 소련 사회를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보기는 힘들다.

 

이처럼 국가자본주의론은 마르크스주의적 틀과 방식을 이용해 소련 사회의 성격과 동력을 설명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런 분석은 특정한 형식과 제도가 아니라 노동계급 대중 스스로가 투쟁 속에서 주체가 돼서 사회를 바꾸고 운영하는 것, 아래로부터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이 사회주의의 핵심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한다.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중심으로 한 재구성  

 

하지만 사회주의 변혁을 위한 시도가 실패하면서 국가자본주의로 변질된 원인이 무엇인지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국가자본주의론 그 자체가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성격과 그 변질에 대한 설명을 자동으로 제시해 주진 않는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국가자본주의론 중에서도 변질의 시점과 원인, 과정에 대한 설명은 각기 다를 뿐 아니라 대체로 불충분하다.

 

클리프 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대개 스탈린주의 반혁명에 책임을 지우면서, ‘레닌주의적 이론과 실천을 신화화하기 급급했던 게 사실이다. 스탈린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변질과 후퇴의 조짐들은 보통 엄혹한 상황이 강요한 불가피한 타협으로 정당화돼 왔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금기나 성역도 없이 의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스탈린의 반혁명만이 문제였을까? 스탈린 이전의 후퇴가 그 길을 닦았던 것이 아닐까? 레닌과 볼셰비키의 정치에 변질의 요소가 있었던 것 아닐까? 191710월 혁명과 볼셰비키의 실천은 단순 반복돼야 할 모범답안일까? 마르크스가 이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이미 내놓았는가?

 

우리가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일관되고 철저하게 추구하기 위해서는 이런 의문들을 더 깊게 고민하고 답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답은 이미 나와있고 그것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태도를 피하며 열린 자세로 말이다. 그 점에서 류한수진 동지의 글은 의미가 컸다.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는 아직 사회주의 운동에서 합의된 원칙으로 격상되지 못했다. 그것은 20세기 사회주의 운동을, 그 운동이 물려준 전통과 유산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레닌이나 트로츠키, 스탈린 등 기존 사회주의 운동에서 영웅으로 추앙되어온 많은 선배들조차 비판의 칼날을 피해갈 수 없다.”

 

류한수진 동지의 문제의식을 지지하며 사회주의 변혁에서 민주주의의 필수불가결함을 강조한 김민재 동지의 글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나는 그 글에서 대중의 잠재력을 신뢰해야 한다는 주장에 크게 동감한다.

 

하지만 그 글이 대중의 현재 상태와 변화될 미래를 너무 구분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또한, 그 글은 대중이 주체로 서고 깨어나는과정에서 사회주의자들의 노력과 책무를 강조하고 있다. ‘투쟁하고 싶어하는 노동자들은 많은데 그들을 이끌 정치 지도자와 뛰어난 조직가는 부족하다는 레닌의 말도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이 전위로서 대중을 주체화하고 깨워야 할 책무가 있다고 보는 것은 아래로부터와 어긋나는 것 아닐까? 대중이 아직 깨어나지 않았거나 내전 속에서 해체되고 있을 때는 전위가 그들을 대리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 아닐까? 중앙집중적인 직업혁명가들의 조직이 혁명에 필수적이라는 레닌주의조직 이론이 어느 정도 그런 위험을 담게 됐던 것이 아닐까?

 

191710월에 권력을 잡고 나서 볼셰비키가 취했던 많은 의문스러운 조치들(사실상 볼셰비키만으로 구성된 권력 구성, 소비에트 내에서 반대파 추방, 다른 좌파들에 대한 박해, 당내 분파 금지, 공장위원회와 노동조합의 무력화, 1인경영 도입 등)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이것은 대개 부르주아적 세력과 시도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됐고, 볼셰비키의 선택은 프롤레타리아의 의지를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반면 이에 대한 반대는 보통 민주주의에 대한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잣대라고 반박받았다. 물론 후대에 그것을 신화화하며 더 편협한 형태로 발전시킨 책임까지 레닌과 볼셰비키에게 지울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따라서 나는 사회주의는 원래 그 자체로 민주주의적인 것이라고 강조하며 몇 가지 기준을 세워서 노동자 국가의 변질 정도를 측정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사회주의는 원래 민주주의적인 것이란 말은 민주주의가 없다면 그 사회는 사회주의가 아니다는 말도 되지만, ‘그 사회가 사회주의라면 이미 민주주의적인 것이다는 말도 될 수 있다.

 

이 순환론을 피하려면 우리는 사회주의와 노동자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행해진 모든 이론과 실천을 철저하고 근본적으로 재검토해봐야 한다. ‘노동계급 스스로의 자기 해방’,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중심으로 해서 혁명조직에 대한 이론, 변혁의 전략과 전술 모두를 재구성해 볼 수 있어야 한다.

 

미래에 대중이 변혁에 나설 것이라는 잠재력을 믿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지금 현실에 존재하는 대중 속에서 그들의 경험과 주장을 듣고 거기서 배우려 하면서 말이다. 어렵고 전문적인 용어나 역사적 지식에서 부족한 평범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더 올바른 판단과 방향 제시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말이다.

 

이것이 오늘날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활동가들의 과제가 아닐까. 이 과제로 나아가는 데 류한수진, 김민재 동지의 글은 나에게 큰 자극과 도움이 됐다. 이 글은 그 자극과 도움을 이어가려는 시도이다.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http://anotherworld.kr/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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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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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8.12 2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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