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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과 논쟁

‘레닌주의’는 신주단지인가?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7. 5. 23.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이 글은 최근 레닌주의에 대한 재평가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에 관한 글이다. 박노자 교수는 이 글에서 레닌주의에 대한 비판적 재평가에 경직된 태도를 보이면서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기는 태도를 비판하며 이론적 혁신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92734)을 옮겨 싣도록 허락해준 박노자 교수께 감사드린다.]

 



이 포스트는 <노동자연대> 분들의 정성진 선생님 비판 (https://wspaper.org/article/18693 )에 대한 제 반박입니다. 저는 레닌주의를 진정으로 따르자면 기존 레닌주의의 미비점, 결점부터 보완하여, 레닌이 다 못한 이론적 작업들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불가에서 하는 말로 逢佛殺佛逢祖殺祖(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인다)인지라, 진정으로 불조의 혜명을 이어받자면 "지금, 여기에서" 하화중생할 수 있는 부처를 나나 타자 안에서 발견해야 되고, 굳이 이미 죽은 글자들에 옭매일 일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레닌주의의 혁명 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자면 "지금, 여기에" 맞는 혁명의 논리를 지금 여기 상황에 맞게 개발해야 하고, 죽은 레닌의 글자 하나하나에 옭매일 일은 없을 겁니다. 오히려 정성진 선생님처럼 이 글자들을 비판적으로 볼 줄 아는 건 진정한 혁명정신에 훨씬 가까운 거죠.

 

레닌은 과학기술 맹신은 좀 심했습니다. 그뿐만 아니고 제2인터네셔날의 카우츠키 등 당대의 많은 사회주의자들은 기술발전과 "진보"를 동일시했죠. 사회주의를 "쏘비에트 권력과 전국 전기 보급"이라고 한 것은 바로 그 단적 사례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짐 필요한 건, 전기를 덜 쓰면서 사는 환경적 삶의 방식을 개발하는 거죠.

 

레닌은 당위론적 "여성해방"의 지지자이었지만, 젠더 문제를 이론화한 적은 거의 없죠. 그런데, "지금 여기"의 대한민국은 희대의 반여성적인 사회입니다. 마초적인 병영문화와 여성 비정규직들에 대한 초과착취를 축적의 주된 원천으로 삼는 신자유주의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여성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구조적으로 영위할 수 없는, 그런 사회죠.

 

이 사회의 젠더적 갈등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착취구조를 이해하는 만큼 중요합니다. "사회주의적 테일러주의"를 주장했던 레닌은 규율에 대한 맹신을 가졌지만, 이미 규율화가 지나친 병영사회에서는 이 부분은 해방성이 그다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정말 혁명가 레닌의 정신을 계승하자면, 레닌주의에 대한 수정도 보완도 필요하죠. 레닌주의는 신주단지가 아니고 늘 상황에 따라 발전돼야 하는 혁명의 과학입니다.

 


며칠 전에 노동자연대라는 클리프주의(구 동구권이나 중국, 북조선 등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한 트로츠키주의의 별파; 트로츠키 자신은 쏘련을 "왜곡되고 관료화된 노동자국가"라고 규정했음) 단체의 기관지에서 제 학계 동료이신 정성진 선생님에 대한 이 기사를 읽고 (https://wspaper.org/article/18693) 상당한 충격에 휩쌓였습니다.

 

사실 정선생님은 제가 수업하면서 맨날 하는 일과 똑같은 일을, 발표하면서 하신 거죠. ,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레닌의 여러 시기의 주장들을 종합하여 이 문제에 대한 레닌의 생각이 몇 번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 그리고 많은 면에서 ("무산계급 독재"하에서의 국가자본주의를 "사회주의의 초보적 단계"로 본다든가, "무산계급 독재" 국가의 통제하의 신경제정책 시기의 시장경제도 사회주의로의 통로라고 보는 측면에서라든가) 맑스의 사회주의관과 다르며 차라리 카우츠키 류의 경제결정론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는 점을 명확히 하신 겁니다.

 

글쎄, 저도 대체로 수업하면서 그런 작업을 하곤 하죠. "아세아적 생산양식" 지배하의 아세아가 스스로 자본주의로 진입할 수 없다고 보면서도 중국의 태평천국이나 인도의 무장독립투쟁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 마르크스의 아세아관의 자기모순 등을 학생들에게 설명하곤 하죠. 역사학자에게는 맑스도 레닌도 무엇보다는 비판적 검토의 대상물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검토를 가하여 인류의 스승인 이 분들이 각종의 자기 모순 속에서 결국 당대의 유럽중심주의적, 오리엔탈리즘적 편견들을 그래도 상당부분 극복하여 보다 현실적이고 급진적인 세계관을 분투 속에서 형성해나간 궤적을 추적하는 것입니다. 자기 모순들의 극복과정이야말로 사상적 발전의 원천이죠.

 

레닌은 위대한 사상가이자 실천가인데, 굳이 방점을 찍자면 후자에 찍어야 할겁니다. 특히 191710월 집권 이후에는 인민위원 위원회(Sovnarkom, 국무원) 위원장이 된 레닌의 첫째 급선무는 "사회주의"에 대한 올바른 정의라기보다는 무엇보다는 혁명의 생존이었습니다.

 

러시아와 비슷한 시기에 사회주의 지향적 혁명의 시도들은 헝가리, 핀란드, 바예른 (뮌헨) 등에 있었으며 북의태리나 애란, 노르웨이 일부지역에서까지도 소비에트를 만드는 시도들이 있었는데, 다 진압을 당하고 패배를 당하고 말았죠. 러시아만 빼고요.

 

학살을 피한 핀란드나 헝가리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모스크바로 망명할 수라도 있었는데, 모스크바까지 함락됐다면 레닌과 그 동지들이 망명할 수 있는 나라는 이 지구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학살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혁명이 살아남아야만 했고, 혁명의 생존을 위해서는 레닌과 그 당은 집권초기부터 "사회주의"와 아무 관계도 없는 일들을 막 해대야 됐습니다.

 

이상적이지만 당장에 "효율"을 내지 않는 노동자들의 공장관리 대신에 전국적인 중앙집권적 산업경영이 이루어지고, 볼셰비키들의 비판을 받아온 제정정권의 비밀경찰 (Okhranka)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소련 비밀경찰 (Cheka)이 세워지고, 사회주의자들이 반대해온 징병제로 운영되며 그 장교 중에서는 구 제정군대의 장교가 약 83%나 차지하게 된 엄청난 규모의 붉은 군대가 편성되고, 대부분의 중앙정부 부서의 중하급 기술관료들이 다 "노동자 국가"의 행정관료로 재임용되고 말았습니다.

 

역사학적 입장에서 본다면 레닌과 그의 당이 제정러시아 국가를 인수인계하여 몇배로 보강시킨 거죠. 전국적인 배급제가 실시된 "전시공산주의"의 현실적 모델은 제1차대전시절 독일의 전시계획-배급경제이었습니다. 레닌도 그 사실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고요.

 

이 모든 일들은 1917년의 <국가와 혁명>에서 이야기한 "국가의 사멸"이라든가, "상비군을 민병제로 대체하여 생산을 직접생산자의 통제하에 두자"는 맑스나 엥겔스 시대의 사회주의의 이해와 아무 관계도 없었습니다. 일당제의 국가가 사실상의 시장경제를 관리하는, 오늘날 중국이나 베트남, 북조선 모델의 원형이 된 1921년 이후의 신경제정책도 마찬가지죠.

 

참고로, 신경제정책은 실업이라든가 가시적 격차, 성매매 등 사회악들의 복원을 의미했으며 그 당시 많은 당원들을 아주 강하게 실망시켰죠. 그렇다면 레닌이 이끈 혁명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느냐 하면 절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제정시절의 봉건제(황제, 귀족, 귀족들의 농장, 국교 따위)는 흔적없이 날아갔으며, 어차피 자주적 근대화 능력이 없었던 자본계급을 대신하여 당/국가가 내포적 근대화의 견인차 역할을 맡은 겁니다.

 

이 당/국가의 관료기구들은 평등주의적 이상을 가진 농노계급 출신들로 충원됐으며,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업적주의적, 실력주의적 방식으로 운영하게 됐습니다. 대부분 기층민 출신인 당원 관료들은 개발 위주로 움직이는 신사회에서는 당연히 "사회주의"를 실행할 수 없어도, 적어도 계몽주의적인 "위민"(爲民)정치를 충분히 실시할 수는 있었죠.

 

스딸린 시절에 들어 우여곡절들이 생겼지만, 일단 1920년대에 국내소수자들이 많은 권리들을 획득했으며, 중국, 조선을 포함한 여러 국외 해방운동들이 상당한 방조를 받아 제국주의 세계체제의 파괴에 기여했습니다.

 

스딸린 때에 가장 보수적인 스딸린의 파벌이 승리하여 좌파적인 그룹들을 숙청시켜 사회 전체를 다시 보수화시켰지만, 사실 이미 1920년대초반에 공고화된 당/국가의 틀들이 스딸린 집권 이후에도 계속 계승돼온 거죠. 그 명암들을 고스란히 다 간직한 채요.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는 이상적인 사회주의적 사회의 청사진을 그렸지만, 세계체제()주변부의 한 국가에서 국가권력을 장악한 이후로는 당연히 그 구상을 실천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 전시배급경제를 만들었다가 나중에 일당제 국가 관리하의 시장경제로 갔다가 결국 스딸린 치하의 국가독점적 "적색 개발주의" 모델을 구성해 발전시켰지만, (레닌과 같은) 급진적 방식으로든 (스딸린과 같은) 보수적 방식으로든 러시아의 통치자인 이상 개발주의 이외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거죠.

 

한데 평등사회인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당을 이끄는 입장에 서 있는 이상, 또 그 동시에 배급경제든 국가관리하의 시장경제든 국가독점계획경제든 다 "사회주의로의 통로", "사회주의로의 이행기", "사회주의의 첫단계"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민 기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사회주의야 아니더라도, 결국 스딸린의 공포통치 등 엄청난 곡절을 겪은 뒤에 쏘련에서 생겨난 사회는 사람으로서 살기에는 오늘날 대한민국보다 훨씬 좋은 사회이었습니다.

 

완결된 복지국가가 태어난 측면도 그렇지만, 인간과 인간 사이에 경쟁 대신 협동적인 관계가 지배적이었다는 점이라든가, 개인에게 여유가 많았다는 점에서 개개인 차원에서 (일과 돈의 압박으로부터의) 자유가 있었다든가, 이런 차원에서는 소련사회에는 오늘날 제가 경험하는 한국 내지 서방 자본주의보다는 훨씬 인간적이었습니다.

 

그게 엄격한 의미에서는 맑스의 사회주의는 아니었다 해도 저는 만약 지금 타임머신을 타고 그 사회로 돌아갈 수만 있었다면 저는 당장에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리고 레닌은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사회주의와 아무 관계 없는 사회 형태들(배급경제, 신경제, 계획경제, "무산계급독재" 즉 일당지배사회 등등)을 억지로 "사회주의"와 연결시키는 견강부회를 저질렀다는 점을 알아도 저는 레닌을 대단히 존경합니다.

 

그러나 또 존경하는 만큼, 레닌의 한계도 뛰어넘어야 한다고 보기도 합니다. 과학기술이 인제 지구를 거의 망가뜨린 이 시대에는 레닌의 과학기술맹신은 전혀 맞지 않으며, 인간의 소외라든가 젠더 문제 등에 대해 레닌이 거의 이론화적업을 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맑스나 레닌의 결점을 보완하는 작업을 우리가 해야죠. 이거야말로 창조적인 맑스-레닌주의라고 봅니다.  



 (기사 등록 2017.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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