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의미있는 레닌 비판을 위하여

의미있는 레닌 비판을 위하여: 이상이 아니라 현실과의 괴리에서 시작해야 한다

 

미래




최근의 레닌주의 논쟁이 오래 붙들고 있던 화두와 맞닿아 있어, 차제에 내가 해온 고민들을 정리하고 질문을 나누어보고 싶어 짧게 글을 썼다. 누군가 이것을 읽고 내 모자란 지식을 보충해주고 진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그게 안 된다면 최소한 이 고민을 이해하고 같이 해준다면 말할 수 없이 기쁠 것 같다.

 

우선 밝히고 싶은 것은 내가 레닌주의를 하나의 정답으로서 내세우고 싶은 생각이 없으며, ‘레닌주의는 신주단지가 아니다는 말에 원론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이다. 인식은 역사를 따라잡지 못하며, 이론은 실천의 총화에 불과하다. 미래의 역사가 갈 방향에 대해 백 년 전의 이론과 실천이 최선의 정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믿는 것은 그 이후의 실천이 이루어낸 진보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역사 속에서 역사를 진전시켜 나가려는 사회주의자가 가질 자세가 전혀 아니다. 지루하고 당연한 일반론이지만 적지 않은 사회주의자들이 암암리에 레닌을 일종의 정답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 말을 하는 것이 여전히 의미가 있다.

 

애초에 레닌이 이끈 러시아 혁명의 본보기를 모든 나라에 적용하려 드는 것은 레닌 자신도 반대했던 태도다. 1917년 러시아에는 계급지배, 이윤 위주의 착취체제와 경제적 불평등, 제국주의와 소수민족 억압, 불균등발전, 사상과 표현의 통제 등 자본주의 사회 어디에나 보편적인 조건들도 많았지만 광대한 영토, 경제적 후진성, 시민사회가 거의 존재하지 않고 전제정과 검열이 작동하는 정치체제, 부르주아 계급의 취약성 등 특수한 조건들 또한 많았다.

 

레닌의 운동 모델은 명백히 전자만큼이나 후자도 고려하고 설계된 것이었으며, 어떤 부분이 지금 이 사회에 적용 가능하고 어떤 부분이 그렇지 않은가는 레닌의 책에서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상황과 정세를 분석하면서 끊임없이 우리 스스로 새롭게 판단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게다가 러시아에서라고 레닌이 항상 정답만 말한 것은 아니다. 레닌은 최초이자 가장 모범적이었던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켜내는 불멸의 역사적 업적을 세웠지만 동시에 그 사회의 변질과 붕괴를 예비했다. 법의 통제를 받지 않는 비밀경찰의 창설, 당과 국가 기구로의 권력 집중, 당내 분파 해산 및 분파활동 금지,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테러 모두 스탈린 시대에 들어 극단화되고 심화되었을지언정 레닌 생전부터 형성되었던 흐름이었다.

 

그의 사상에 그러한 권위주의적 정치를 정당화하거나 적어도 허용하는 부분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조치들이 이렇게 별 문제 없이, 또는 종종 레닌 자신의 적극적인 주도로 이루어질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는 레닌의 저서를 읽을 때도 고려해야 할 배경이다.

 

그러나 레닌의 사상과 저술에서 직접적으로 엘리트주의를 읽어내려는 시도는 별로 생산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한 번쯤 들어보았을 말이겠지만) 레닌의 글은 대부분이 구체적 논쟁의 과정에서 쓰인 매우 맥락적인 글이다.

 

그렇다고 당시의 역사나 이론적 쟁점을 모르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레닌은 대개 비판 대상을 정확히 규정하고 들어가기 때문에 그의 글은 텍스트 자체만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앞뒤 문맥만 고려해서 읽어도 오해할 여지가 별로 없다.

 

그리고 그렇게 읽은 레닌의 글에서는 (적어도 주요 저작에서는)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이라는 기치를 이해하지 못했다든가, 노동자계급을 대리하는 위로부터의 혁명을 원했다는 결론을 끌어내기 어렵다. 앞뒤 문맥을 왜곡하거나 사상하면서 개별 구절만 발췌하는 오독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말이다.

 

레닌이 실천가였지만 성의 있는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이기도 했으며, 마르크스의 논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발전시키는 데 상당히 공을 들였던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노동자계급은 스스로 사회주의 의식을 체득할 수 없고 지식인들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외부도입 테제 같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레닌은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을 대놓고 위배하는 입장을 공공연하게 쓰고 다닐 만큼 허술한 사람이 아니었다. 선배를 신격화해도 곤란하지만,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선배들은 몰랐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무시해서도 곤란하다.

 

사회주의의 핵심은 본래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이다. 이것을 이해했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은 대개의 민주주의 투쟁에서 선봉에 있었다. 레닌과 볼셰비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위가 계급을 대리하는 엘리트라는 흔한 통념과 달리 이들은 전위를 명확하게 노동자계급의 선진 부위로 규정하고 있었으며, 대중 속에서의 활동이 중심이라는 입장을 아주 명백히 했다. 비록 그들의 습속이나 사고방식이 이러한 원칙을 완전히 체화하고 있지는 못했을지라도 이 원칙이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레닌과 볼셰비키가 이러한 원칙을 수용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레닌과 볼셰비키가 억울하게 비난받는다는 것보다 훨씬 크고 심각한 위험성이 있다. 레닌주의를 매개로 사회주의를 통째로 엘리트주의 독재를 지지하는 사상으로 매도하는 반공주의 프레임을 재생산하게 된다는 것조차 이에 비하면 대단히 부차적인 문제다.

 

내가 국가자본주의라는 규정을 비롯하여 소련에 대한 간단한 선긋기를 끔찍하게 우려하는 이유는, 문제를 이런 간단한 원칙의 부재로 귀인하게 되면 원칙을 천명하는 것으로 손쉽게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다는 잘못된 희망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여기에 머무른다면 다음 사회주의 혁명도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레닌의 가장 중요한 오류들은 이론과 사상보다는 실천에 있었고, 그 본질은 이상이 불완전했던 것이 아니라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해결하지 못한 데 있었다. 러시아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상정하는 완성된 자본주의 사회가 전혀 아니었고 러시아 혁명은 세계로 확산되지 못했다.

 

게다가 당시 러시아는 전국의 생산시설이 거의 마비된 상태였고, 인민들은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다. 내부에서는 반혁명 세력이, 외부에서는 온갖 자본가 국가들이 군사를 끌고 전쟁을 벌였다. 농민들은 곡식을 내놓지 않으려고 했고 노동자와 병사들은 굶주렸다. 전쟁이 끝난 시점에서는 노동자 민주주의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노동자계급의 구성원들 대부분은 전쟁에서 죽거나 흩어져 농촌으로 돌아가 버린 상태였다.

 

볼셰비키가 당면한 문제는 그냥 절차상의 불편이나 대중의 후진성으로 인한 답답함이 아니었다. 피와 살의 문제인 빈곤과 굶주림과 전쟁이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레닌은 사회를 더 단단하게 장악하고 무엇보다도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싶어했다. 통제와 계획이 필요했고, 물자 생산이 필요했다. 효율과 단결과 집중이 필요했다. 훈련된 관료들이 필요했다.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라는 선언은 이 필요 속에서 그 이상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으며, 레닌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답을 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포기했다.

 

레닌이 무능했을까? 혹은 의지가 부족했을까? 후대도 답을 내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레닌 사후에 볼셰비키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두 쪽으로 갈라졌다. ‘사회주의적 시초축적을 통한 공업화를 주장한 좌파와 신경제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농업을 육성하자는 우파로.

 

스탈린이 집권 뒤 결국 선택한 쪽은 전자였고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의 이상과는 전혀 맞지 않는 매우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우파가 옳았을까? 우파가 제시한 길은 소생산자의 사회였는데, 전근대로 돌아가거나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체제를 고안하지 않는 한 이것은 결국 시장 사회일 수밖에 없고, 시장에서는 집적과 집중이 결국은 진행되고 말기 때문이다. 당장 10년도 채 가지 않았던 신경제정책 기간에도 농촌은 엄청나게 양극화되었다.

 

콜론타이를 위시한 노동자 반대파는 이 상황을 개탄하면서 노동자 대중의 창발성을 자극하고 참여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당과 국가기구에 노동자들을 참여시키거나 당 간부들을 주기적으로 하방시키는 등 지엽적 보완책 이외의 구체적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나는 이들의 문제제기와 활동이 지극히 의미있고 소중한 것이었고, 이들이 탄압받지 않고 활동했더라면 적어도 소련 사회가 덜 경직되고 자생적 변화의 여지가 조금 더 늘어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이 노동자계급을 복원하고 관료계층의 성장을 방지하고 노농동맹을 부활시킬 수 있다고 기대한다면 그것은 계급적 이해 충돌의 위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과장된 희망일 것이다.

 

볼셰비키가 당면했던 난국은 여전히 현재적이다. 자본주의는 중심부에서 더 쉽게 양보하고 주변부와 반주변부의 인민을 더 가혹하게 착취한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주변부·반주변부가 또다시 약한 고리가 될 가능성은 결코 낮지 않다. 더구나 생산력이 이렇게 세계화된 시대에는 심지어 중심부 국가라 하더라도 혁명이 세계적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지연된다면 금방 경제적, 군사적 난국에 처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좋았을까? 모른다.

 

소련 이후를 살아가는 좌파로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볼셰비키가 갔던 길이 결과적으로 노동자계급의 혁명성이라는 사회주의의 핵심적 동력을 소실시켰다는 것, 그 결과 소련 사회는 경직되고 변질되었으며 결국은 관료들에 의해 붕괴했다는 것, 이것이 역사상 유례없는 정치적 환멸과 침체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는 정치적 억압과 권위주의를 패배를 피하기 위한 필요악으로 여겼지만 역사적으로 입증된 것은 이것이 최악의 후과를 낳는 패배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뭘 하면 안 되는지 알게 되었다. 그게 전부다.

 

자본주의의 모순은 해결되지 않았고 인간은 억누르면 봉기한다. 역사는 끝에 오지 않았고, 핵전쟁이나 기후재앙이 그 전에 인류를 쓸어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소련 같은 방식으로 패배하고 싶지 않다면 그 때는 소련이 갔던 길을 다시 가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러지 않으려면 볼셰비키가 (전부는 아니라도 많은 부분) 올바르게 답했던 질문을 다시 붙들고 그들도 알았던 답을 다시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답을 내지 못했던 질문을 붙들고 아무도 낸 적이 없는 답을 내야 한다. 정치적 원칙과 물질적 생존의 필요가 서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살아남아 버티면서도 세상에 계속해서 영감을 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도대체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한다면 물질적 현실의 압력은 또다시 볼셰비키가 갔던 길로 사회주의 혁명을 떠밀 것이고,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외치는 활동가들은 결국 해산되고 축출되었던 노동자 반대파와 같은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이상이 아니다. 현실의 장벽 앞에서 그 이상을 실현할 방법이다. 레닌을 넘어설 길을 여는 비판은 레닌이 직면했던 이 상황에서 그가 했던 실천을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함으로써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기사 등록 2017.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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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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