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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당과 계급: 카우츠키는 ‘레닌주의’를 옹호했는가?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7. 8. 28.

 

[국제적 좌파들 속에서 역사학자인 라스 리(Lars Lih)의 선구적 작업 속에 레닌주의에 대한 재해석이 진행돼 왔다. 레닌과 카우츠키의 관계도 그 쟁점 중에 하나였는데, 아래 글들은 특히 당 개념에서 레닌과 카우츠키가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많았다는 점을 설명하며 기존의 정설에 도전하고 있다. 먼저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이자 역사학자이며 볼셰비키와 민족문제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에릭 블랑(Eric Blanc)이 주장을 펼치고, 라스 리가 보완적 답변을 하고 있다. 번역에 수고해 준 김민재 동지에게 감사드린다. 우리는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맞아서 이처럼 관련된 글을 지속적으로 다룰 계획이다.]

 

https://johnriddell.wordpress.com/2016/05/24/party-class-and-marxism-did-kautsky-advocate-leninism/

 

 

외연이 넓은 정당이라는 문제가 최근 몇 년 동안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뜨겁게 논쟁이 되어 왔다. 많은 이들이 시리자, 포데모스, 영국 노동당, 녹색당 등과 같은 보다 넓은 연합 형태를 옹호해야 하며 레닌주의는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다른 이들은 독립적인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정당을 건설하는 것이 여전히 사회주의자들의 전략적, 조직적 임무라는 레닌주의적근거에서 그런 조직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해 왔다.

 

레닌주의그 자체에 대한 진지한 재평가 역시 이 논쟁과 얽혀 있다. 특히 라스 리의 기념비적인 연구인 <레닌 재발견> 출간 이후에 큰 질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레닌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칼 카우츠키에 의해 설명된 정통적전략과 이론적으로나/또는 실천적으로 단절했는가? 다시 말해 볼셰비키는 새로운 형태의 당이었는가?

 

불행히도 이제까지의 논쟁은 혁명적 정당 건설에 대한 카우츠키의 가장 의미심장한 글들 중 하나인 1909분파인가 계급정당인가?”를 간과해 왔다

이 놀라운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잊혀진) 글의 영어 번역은 여기서 볼 수 있다.(https://johnriddell.wordpress.com/2016/05/24/karl-kautsky-sects-or-class-parties/)

이 글은 초기의 혁명적이었던 카우츠키(즉 그가 1909년 이후 독일 당 관료주의에 항복하기 전)의 전략을 명확하게 보여 주며, 오늘날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헤게모니를 얻은 문제적인 정치 경향에 대해 통찰력을 갖고 문제제기하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널리 읽힐 가치가 있다.

 

카우츠키는 1908년에 영국노동당이 제2인터내셔널에 가입하는 것에 대한 논쟁 속에서 나타난, 그가 생각하기에 잘못된 두 가지 전략에 대해 반론한다. 한편으로 여러 개량주의자들은 광범위하게 무정형인 노동당을, 드러내 놓고 마르크스주의적인 정당들에 대한 긍정적 대안으로 그렸다.

 

카우츠키가 보기에는 영국 사회민주당(SDP)이 노동당 밖에서 마르크스주의 정당을 따로 건설하려고 하는 것 역시 분파주의적 시도로서 잘못된 것이었다. 카우츠키는 자신의 글에서 대다수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독립적인 당을 건설하는 계획과 엄밀하게 마르크스주의적인 당을 건설하는 계획을 대립시킬 필요가 없음을 보여 주고자 했다. 그는 첫 번째가 두 번째를 위한 발걸음으로 여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파인가 계급정당인가?”의 가장 중요한 측면들 중 하나는 카우츠키에 대한 종종 반복되는 잘못된 신화(<국제사회주의> 잡지[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이론지]에서 케빈 커와 가레스 젠킨스가 쓴 글처럼)를 깨뜨려 놓는다는 것이다. 그 신화에 따르면 카우츠키는 이데올로기적 응집성이라는 의미에서보다는, 넓은 외연이라는 의미에서의 단결에 기초하여 세워진 계급 전체의 당을 건설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런 당의 사례가 있다면 그것은 영국 노동당이었다. 하지만 카우츠키는 대중적인 마르크스주의 정당이 있는 국가들에 이 모델을 수출하려는 시도는 더 퇴보적인 당을 가지고 이미 존재하는 더 높은 수준의 형태를 분쇄하려는 시도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카우츠키는 명확하게 확실한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 즉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탐구로부터 연역된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이론에 기초를 둔 당을 옹호한다. 카우츠키의 생각에 따르면 노동자들에게는 독립적인 당이 필요하다. 이 당은 이론적이고 실천적으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에 헌신하는 당이어야 한다. 그리고 만약 그 당이 아직 확고한 마르크스주의 당이 아니라면, 그 때 혁명가들의 역할은 그 당을 그렇게 되도록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레닌도 이 정통적인 지향을 러시아와 영국 모두에 대해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 노동당을 제2인터내셔널에 받아들이기로 하는 1908년 결정에 동의하면서, 이 볼세비키 지도자는 노동당이 영국에서 진정으로 프롤레타리아적인 조직들이 의식적인 계급 정치로,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을 대표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노동당이 자유주의자들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묶여 있는 의회 및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지도부로 있는 당임을 고려하며, 카우츠키는 별개의 혁명적 조직이 필요하다는, 대단히 레닌주의적인 주장을 하였다:

 

영국의 독특함은 그곳의 조건들이, 사회민주주의적, 즉 마르크스주의적 강령을 가진 대중 정당들이 이미 존재하는 국가들에서는 굳이 필요가 없을, 분리되고 확고한 조직의 형성을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필수적인 과제로 만든다는 사실에 있다. 오로지 대중 사이에서의 가장 정력적인 마르크스주의 선전, 지도자들의 오류와 함정들에 대한 가장 확고한 비판을 통해서만 노동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을 위한 투쟁 속에서 강력하고 신뢰할 만한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다.

 

카우츠키가 영국 혁명가들을 비판한 이유는, 그들이 엄밀하게 마르크스주의적인 정당을 건설하려 했기 때문이 아니라, 영국 노동당 참여에 대한 그들의 기권과 거절이 실천 속에서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혁명적 대중정당을 효과적으로 건설하기 위한 유연한 전술들의 구사는 서로 다른 국가들의 고유한 조건들 속에 강제되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 정당을 스스로 자처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했다.

 

지나고 나서 보면, 카우츠키의 접근의 문제점은 그가 잘못된 당 모델(“계급 전체의 당”)을 옹호했다는 것이 아니다. 독일 SPD처럼 강령적으로 마르크스주의적인 정당의 관료화가, 결국 그 정당들을 실천적으로 영국 노동당과 똑같아지게 할 수 있는 정도를 과소평가했다는 것이 그가 가진 레닌과 마찬가지의 문제점이었다.

 

2인터내셔널에서 혁명적 좌파의 비극은 카우츠키가 영국에 대해 옹호했던 레닌주의적전략(즉 사회주의 대중정당 내의 개량주의를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별개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조류의 조직)이 대륙에서는 반복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1914년 노동 관료들의 역사적 배신 이후에야 비로소 레닌과 (결국은) 로자 룩셈부르크도 서구에 대한 그들의 조직적 전략을 그에 따라 조정했다.

 

카우츠키의 글에서 드러나는 이것을 포함한 다른 약점들(특히 대중행동에 대한 심각한 과소평가)에도 불구하고, 제시된 일반적인 전략 지향은 1909년보다는 오히려 오늘날 더 시의적절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국에 마르크스주의 대중정당이 없는 현상은 그 당시에는 예외적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오히려 그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카우츠키에 의해 비판받은 두 경향(외연이 넓은 정당과 마르크스주의 정당을 건설하는 작업을 서로 대립시켰던)들이 헤게모니를 얻게 되었다. 사실 1909년에 카우츠키가 반론을 제기했던 입장들은 현재 설명되는 그와 비슷한 입장들보다는 더 나은 것이었다. 2인터내셔널에서 외연이 넓은 정당 모델을 옹호하던 개량주의자들은 최소한 노동계급 조직을 요구한 반면, 오늘날에는 사회주의자들이 범계급적 민중주의 조직을 추구하는 것(혹은 심지어 미국 민주당과 같은 자본주의적 조직에 참여하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다.

 

또한 분파주의적인 영국 SDP(스스로를 곧장 대중정당으로 변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는 이유로 카우츠키가 비판했던)에는 약 13천 명의 당원이 있었던 반면, 오늘날에 같은 접근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조직은 그 규모가 종종 수십 명 혹은 수백 명 정도에 불과하다.

 

지난 몇 십 년간의 경험은 외연이 넓은 비마르크스주의 정당은 자본주의를 효과적으로 넘어설 수 없고, 반면 마르크스주의 정당을 건설하려는 계획은 노동계급 다수 대중의 정치적 대표를 추구하려는 보다 광범위한 노력과 유리될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드러내 주는 것 같다. 오늘날의 사회주의자들은 카우츠키의 잊혀진 1909년 글을 재발견하여 그 전략적 결론을 재고찰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보인다.

 

이것은 우리가 소규모의 결단력 있는 사회민주주의 당을, 명확한 강령이 없는 대규모 계급정당보다 선호하는지 여부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SDP와 같은 유형의 사회주의 조직은 노동당만큼이나 그 자체로 불충분하다. 우리는 둘 모두를 촉진시켜야 한다.


 

 ● 카우츠키는 레닌주의를 옹호했는가?’에 대한 라스 리의 답변

  

출처:https://johnriddell.wordpress.com/2016/05/28/lars-lih-responds-to-did-kautsky-advocate-leninism/

 

에릭 블랑이 열의를 갖고 쓴 글 <, 계급, 그리고 맑스주의: 카우츠키는 레닌주의를 옹호했는가?>을 통해 카우츠키의 글을 더욱 알려내서 기쁘다. 에릭이 소개하는 논평은 확연히 설득력 있다. 이 글의 결론 부분에서 이런 사람들(레닌, 카우츠키 등)에게 생색내며 잘난 척하지 않는 것이 특히 좋았다. 아래의 내 논평들은 그 글이 제기한, 특히 에릭이 보여주는 보다 장기간의 역사적 맥락 속에 배치된 쟁점들에 대한 다소 두서없는 생각들이다.

 

카우츠키의 글은 혁신적이고 예상치 못했던 것인가, 아니면 보다 이전에 쓰인 더 기본적인 저술들에서 표현된 당에 대한 카우츠키의 기본적인 관점을 전적으로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적용한 것에 불과한가? 내 답은 단연코, 예측 가능한 적용이라는 것이다.

 

비록 그가 이 글에서는 그것을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않지만, 이 논의의 전체적 틀은 내가 통합 공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의 통합이다.” 카우츠키가 분석한 이같은 사례에서 우리는 이런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다.

 

맑스주의 원칙을 가진 작은 그룹이 계급 기반을 가진 대규모 노동자당과 통합하여, 투쟁하는 노동조합의 전투성과 맑스주의자들의 명확한 관점 둘 다를 가진 하나의 단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카우츠키는 이 기본적인 대비에서 시작해 일련의 이원적 구조 전체를 세워낸다.

 

예를 들어 내가 예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이 하나 있다. 나는 종종 결사”(조직)와 계몽을 혼합하는 것에 대해 맑스를 인용했었는데, 카우츠키가 여기 한 지점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 두 가지 근본적인 활동들이 이원적 구조의 양 기둥을 각각 대표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카우츠키의 글을 역사적으로, 약간 다른 방식으로 읽는다. 어쩌면 에릭보다 더 반어법적으로 읽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시기까지(1909년에서 1910) 카우츠키와 레닌 같은 사람들은 이 통합이 이미 몇 군데에서 일어났고, 다른 곳에서는 일어나고 있고, 결국은 모든 곳에서 일어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가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그런 현실과 심지어 통합의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가장 작아 보였던 독일 같은 곳에서조차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즉 사회민주주의의 기회주의진영)은 통합이 실패할 경우에 두 부분들이 각각 어떻게 될 것인지 상당히 잘 알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개량주의, 다른 쪽에서는 분파주의가 나타날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결과들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보였다. 아무튼 서유럽과 미국에서 이 분리는 장기적인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 맑스주의자와 대중에서 카우츠키가 보여주듯이, 맑스는 혁명적 사회민주주의가 영국에서 노동조합으로부터 나오기를 기대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논평한다: 한동안은 맑스의 분석 전체의 기반이었던 국가에서 맑스의 희망이 헛된 것으로 드러난 듯 보였지만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1909년에 와서 보니 그 예측이 실현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갖고 이것을 읽어야만 할까? 그 예측은 전혀 실현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오늘날 사람들은 그것을 옹호해야 하는, 사실은 그것이 왜 바람직한지를 설명해야 하는 임무에 직면해 있다. 좋다,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당신은 카우츠키와 레닌이 그랬던 것처럼, 이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내가 보기에 고전적 맑스주의의 시대(맑스, 카우츠키 그리고 레닌이 있었던 시대)의 종언은 한쪽이 혁명을 포기하고, 다른 한쪽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포기한 순간에 왔다. 후자는 부르주아 지배 하에서의 정치적 자유가 가식일 뿐이라고 크게 외치면서 통합으로 가는 길은 제시하지 않았다.

 

물론 에릭은 이 시기에 있었던 통합의 실패를 알고 있지만 그는 이것을 다른 방식으로 틀 짓는다: “기회주의를 과소평가한 데 대해 카우츠키와 레닌을 책망하는 것이다. 글쎄, 맞다. 그들은 그 암적 존재가 퍼져 있는 범위를 간과했다. 하지만 그들은 기회주의가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강력한 존재라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으며, 그 뿌리를 분석하는 등의 일을 했다.

 

다시 말하자면 레닌은 카우츠키의 글에서 발견되는 전쟁 이전의 기회주의 개념을 계속 사용했다. 마치 이것이 그저 레닌과 카우츠키 쪽의 실수인 것처럼 에릭이 말하는 것은, 만일 그들이 알기만 했다면 모든 것이 매우 달랐으리라고 그가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1914년 이후 레닌의 해결책은 기회주의자들을 쫓아내고, 기회주의자가 없는 당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의 가정은, 전쟁과 혁명의 시대에는 아래로부터의 거대한 대중적 압력이 바라 왔던 통합을 이루어 내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쟁과 혁명의 시대는 퇴조했고 레닌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부딪혔다.

 

유럽과 미국에서 그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고, 아무도 그걸 어떻게 이룰 것인지 정말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그것이 일어날 수 없는 일이고 원래의 분석이 틀렸기 때문에? 글쎄, 이것은 이단적인 생각이겠지만 에릭처럼 레닌이 기회주의 없는 당을 요구함으로써 해결책을 찾았다고 자동적으로 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같은 문제가 형태만 다르게 또 나타났을 뿐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여기서 카우츠키의 충고를 레닌의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다소 비슷한, ‘좌익공산주의쪽의 영국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충고와 비교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레닌이 1920년에 말한 바를 최근에 찾아본 적은 없지만, 생각해 보면, 나는 처음에 카우츠키가 우호적 인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반면 레닌은 적대적 인수를 말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카우츠키의 인수는 과연 얼마나 우호적인가? 그는 우리가 조직에 충성하는 것으로 보일 때 영국 노동조합 지도자들에게 맑스주의적 원칙을 더 쉽게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또한 맑스주의자들에게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갖고 있는 부르주아적 편견을 제거할(다시 말해 기회주의를 공격하는!) 임무를 부여한다.

 

어떤 순간에 다다르면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정말로 공격당한다고 느끼거나(“당신은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되든가 아니면 떠나야 해!”), 혹은 맑스주의자들이 이념적 원칙과 조직적 충성 사이에서(분파주의와 에릭이 당 관료에 대한 투항이라고 부른 것 중 하나에서) 선택해야 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았나?

 

요약하면: 레닌이 결국 풀지 못했고 우리가 오늘날도 여전히 직면해 있는 깊은 딜레마를 풀지 못한 것에 대해 정말로 카우츠키를 비난할 수 있는가?

 

 

칼 카우츠키 

 

 (기사 등록 2017.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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