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10월과 그 유효성: 차이나 미에빌과 에릭 블랑의 대담

 

보다 효과적으로 자본주의에 도전하면서, 러시아 혁명의 역사에 개입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들 사이의 긴장이 불가피해 보인다.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어려움은, 1917년의 러시아와 볼셰비즘에서 역사적으로 특수한 것을 더 일반적 경향과 구분하는 방법이다. 여러 문학상 수상 경력이 있는 차이나 미에빌(China Miéville: 영국의 저명한 환상문학 소설가이자 좌파 활동가로서, 사회주의 노동자당에 적을 두고 집필과 정치활동을 병행하고 있다_역주)의 최근 저작 <10: 러시아 혁명 이야기 October: The Story of the Russian Revolution)>(Verso)를 인용하자면 이것은 러시아 혁명이었지만, 확실히 그것은 다른 이들의 것이었고, 다른 이들의 것들의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것일 수도 있다. 그 문장이 여전히 미완성이라면, 그것을 완수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이러한 목적에서, 미에빌은 최근, 러시아 혁명과 오늘날 그것의 유효성에 대해 에릭 블랑(Eric Blanc)과 토론했다. 블랑은 역사사회학자이자, 곧 출간될 연구도서 <() 식민지주의적 마르크스주의: 차르 국경지방에서의 억압과 혁명 Anti-Colonial Marxism: Oppression and Revolution in the Tsarist Borderlands)>(Brill Publishers, Historical Materialism Book Series)의 저자이다. 그는 러시아 혁명과 레닌주의에 대한 온갖 신화를 해체하는 많은 글을 써 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글을 번역해준 정강산 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일러두기

1.추상적인 문장에 대해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부연은 대괄호 ‘[ ]’로 표기했다.

2.역자의 주석은 본문 내부에 소괄호 ‘( )’로 표기했다.


 

출처:

http://www.historicalmaterialism.org/blog/october-and-its-relevance-discussion-with-china-mieville

 


 

블랑: 1917년의 주요 측면 중 하나는 역사와 대중의 의식이 그 양상을 달리하게 된 급격한 방식이었고, 회상 문학들에서 제가 가장 많이 보았던 은유는 어떤 회오리바람으로서의 혁명입니다. <10>에서 당신은 레닌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이러한 급격한 변화와 정치적 우발성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회오리바람의 상태를 마주한 1917년의 다른 행위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그리고 이 접근법들에서 무엇이 여전히 유효할 수 있습니까? 예를 들어 당신이 편집자로 있는 <Salvage>의 최근 사설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사설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것은 사태가 얼마나 빨리 변할 수 있는지 였다'라며 코빈(Corbyn)의 등장 이후에 관해 논합니다.

 

미에빌: 공식적으로, 저는 항상 상황이 아찔하고도 빠르게 변화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이는 결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없는 새로운 시대라는 식의 비애에 제가 굴복하도록 이끌린 적이 없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저는 분명히 어떤 수준에서는 그런 공식적 인식을 항상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제게, 코빈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즉 저는 그가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보다 더 잘해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허나 입에 발린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말하자면 그 광풍의 규모가 절 놀라게 한 것입니다. 저는 제가 틀렸다는 것이 이렇게 기뻤던 적이 없습니다. 이제 우린 대략 제가 4년여 만에 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최선의 시나리오에 있게 된 것입니다. 코빈이 그것을 잘 수행해서 말이죠.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진 않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도달했습니다.

 

이것은 공식적으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한 겸허하고 좋은 암시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연결하는 것이 치우친 것이라 보지 않는데 - 1917년에 관해 계속해서 떠오르는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사태가 얼마나 빨리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국가와 혁명>을 인용하자면, ‘혁명에 대해 읽거나 쓰는 것보단 급격한 변화를 직접 경험하는 것이 더 즐겁고 유용하다는 점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1917년 자체의 측면에서 보면, 예외적으로, 저는 매우 명민한 사람들까지도 포함하여 멘셰비키의 지식인들은, 그들 자신의 이론적 모델을 현실에 다소 억지스럽게 부과시키려 하고, 현실의 복잡함과 마주해서 그것을 분석하기보단 억누른다는 점에서 구분된다는 인상을 종종 받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전성기의 트로츠키를 구분시켜주는 것들 중 하나였다고도 생각하며, 아마 이론적으로 덜 유연했지만 그 속도는 놀라웠다는 점에서 레닌에 대해서도 꽤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이들이 미묘한 변화에 관한 레닌의 감각(antenna)에 대해 평했습니다. 이는 그가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그는 여러 번 틀렸습니다. 7월에도, 코르닐로프(Kornilov)에 대해서도, 명백히 10월의 여러 측면들에서도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들에 대한 그의 감각뿐만 아니라, 변화에 따라서 자신의 방침을 완전히 바꾸려한 그의 의지는, 제 생각에 매우 특별한 것입니다. 당신은 감탄하는 방식으로, 그가 그 자신의 위치들에 대해 완전히 비감상적이었다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블랑: 저는 당신의 책에서, 조직에 그러한 지도자를 둔 것에 대처해야했던 볼셰비키 활동가들에게 당신이 거의 동정심을 느끼는 듯한 묘사가 정말 좋았습니다.

 

미에빌: 1917년 가을 레닌이 숨어있을 때, 그가 썼던 글을 동료들이 2주나 늦게 인쇄하는 잘못이 그로 하여금 엄청난 분노를 유발시켰다는 것은 주목할 만합니다. 우리 중 그런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텐데, 만약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우리를 매우 잘못 대변할 수 있겠죠. 더더군다나 레닌의 경우에는 그것은 매우 오해의 여지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블랑: 볼셰비키 당의 존재에 의해 가능하게 된 범위에 관해 생각해보는 것도 가치가 있습니다. 레닌은 단지 신문을 읽은 게 아니라 조직가로서의 위치에 있었고, 여기서 독립적으로 개입하며 일이 진행되는 것에 대해 평가할 수 있었던 그의 동료들을 통해 기층에서 나온 소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으레 망각되는 경우에 레닌은 단지 천재일 뿐이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 당신은 1917년 이후 중간 간부들과 레닌 등 최고 지도자 간의 연결이 산산이 부서졌을 때 무엇이 망가진 것인지 얘기할 수도 있을 겁니다.

 

미에빌: 당신은 1917년에 레닌이 심지어 자신이 듣고 있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때조차도 중간 간부들의 보고와 입장에 매우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을 것입니다. 이는 에드워드 둔(Eduard Dune)의 회고록 <어느 적위대(Red Guard)의 기록>에서 매우 유용했던 것들 중 하나인데, 여기서 당신은 매우 예민한 방식으로 정치적으로 개입하고, 토론하며, 배우는 열성적인 간부층에 관한 느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감각(antennae)의 주요한 원천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옳다고 봅니다. 모든 게 말해줬듯, 여전히 레닌 자체에는 실로 주목할 어떤 것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마찬가지로 이러한 연결망[간부층과 기층 민중의 네트워크]을 접할 수 있었던 다른 이들은 레닌과 동일한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블랑: 지난 몇 년간 가장 조짐이 좋은 발전 중 하나는 청년들 사이에서 사회주의 정치가 부활해왔다는 것인데, 이는 영국에서의 코빈, 미국에서의 버니 샌더스의 부상으로 (상이한 방식들을 통해)표현되었듯, 주로 사회민주주의 좌파의 성장이라는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한편 이것은 흥분되고, 고무적이며, 급진적 정치를 위한 거대한 시작을 제안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또한 동시에,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적 역할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대차대조표가 여느 때 보다 중요해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917년의 러시아에서, 그해 전체에 걸친 진정한 논쟁은 급진주의자들과 (이보다 더 나은 용어가 떠오르지 않는데)‘온건 사회주의자, 즉 중앙러시아의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후자[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을 비롯한 온건 사회주의자들’]중 많은 이들은 결국 5, 케렌스키 정부에 합류하게 되었고, 급속히 그들 자신의 기획과 목표들의 많은 부분을 포기합니다.

 

즉 오늘날 사람들은 이 당들의 정견이 그해 초기에 얼마나 전투적이었는지 종종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10>에서 당신은 무엇보다 그들이 10월의 제 2 소비에트 대회에 항의하며 떠났을 때, 특히 마르토프(Martov)에 의해 지도되던 멘셰비키 좌파의 역사적 파산을 강조합니다. 당신은 1917년에 온건 사회주의자들이 다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나요? 그리고 우리는 오늘날 사회민주주의가 100년 전 그들의 거울상[온건 사회주의자들]과는 다르게 행동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요?

 

미에빌: 당신이 말 한 대로, ‘온건한이라는 형용사는 사실 꽤나 오해의 여지가 있고 여기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그것이 넓은 범주의 다양한 경향들을, 걔들 중 많은 부분이 꽤 급진적인데도 일률적으로 함께 취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그 용어를 항상 분명한 따옴표 안에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다른 게 될 수 있겠느냐라는 일반적인 질문은 제가 느끼기엔 썩 논란이 될 문제가 아닌데, 대답을 하자면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들 중의 상당수가 그렇게 된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에라도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 맨셰비키 좌파였던 수하노프(Sukhanov), 그가 죽는 날까지, 2 소비에트 대회에서의 사보타주를 후회했습니다. 그는 마르토프와 갈라서지 않고 남아있었다는 것을 자신의 가장 지울 수 없는 최대의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그 날 저녁 불과 몇 시간 전에 (트로츠키를 포함하여) 범사회주의 정부가, 볼셰비키를 배제하지 않는 사회주의 정부가 있어야 한다는 데 합의가 이루어졌었다는 사실을 종종 충분히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건 놀라운 일이에요. 아주 대단한 일이죠. 현장을 목격한 기자들은 이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제게 그것은 고통스러운 순간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매우 다른 과정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어쨌든 우파 사회주의자들이 항의하여 떠났다고 하더라도, 우파가 아닌 비 볼셰비키들의 많은 수가 있었고, 그들의 영향력은 소비에트 정부의 굴절과 그 방법론을 상당히 바꿀 수 있었을 겁니다.

 

블랑: 이런 맥락에서, 러시아 제국의 다른 분야에선 사건이 달리 풀렸다는 것은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핀란드에선, 1917년 내내 애매한 입장이었던 대다수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결국 19181월의 순간에, 혁명의 편에 서게 됩니다. 나는 단지 핀란드의 한 중도적 사회주의 지도자의 실로 감동적인 편지를 발견했을 뿐인데, 여기서 그는 핀란드의 1월 반란 직후 자신의 딸에게 이렇게 씁니다. 비록 자신이 폭력적인 혁명에는 반대했으나, 봉기가 결정된 이후에는 당과 노동자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의 의무라 믿었다고 말입니다.

 

미에빌: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것은 사정이 달라질 수도 있었던 범위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저는 그랬다면 모든 것이 괜찮을 수도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유토피아적이고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그것이 잠재적으로 실제적인 효과를 가질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동지적이지만 비판적이고 엄밀한, 그리고 대안적인 목소리를 혁명 내부에서 허용하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현재로선 저는,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누군가를 기본적으로 배신자 혹은 투항자 등으로 설명하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경향이 몇몇 극좌파들 사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극좌파 전부가 아니라, 그들 중 일부가 말입니다. 만약 당신이 혁명적 형식으로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어떤 시도도 근본적으로 반대해야한다고 믿기에 사회민주주의자라면, 저는 결코 당신의 친한 동료가 되려하진 않을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자본주의를 전복한다는 생각을 좋아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당장의 의제는 아니라고 본다는 점에서 사회민주주의자라면, 그것은 다른 얘기이며 당신은 많은 잠정적 혁명가들 보다 더 진지한 활동가일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한 변화와 더 급진적인 무언가가 갑자기 당신의 의제가 되는 경우에는 어떻습니까?

 

그래서 저는 사회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 좌파에 대해 쉽게 일반화하는 것은 판단을 그르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심지어 자유주의자들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저는 항상 리처드 시모어[Richard Seymour]의 이런 논평을 인용하는데,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적 이상에 충실한 자유주의와 자유주의적 국가에 충실한 자유주의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이지요) 급진적인 변화의 지평선이 가까이 다가와 보다 선명해지기 전까지, 당신은 누가 당신의 친구이고, 동료이며 적인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블랑: 저는 당신이 제안한 것에 대해 동의하지만, 이것의 또 다른 면은 지배계급에 의해 위에서부터 모든 사회주의자들을 짓누르는 엄청난 압박입니다. 예를 들어, 정확히 19174월에 사회주의자들의 유입 없이 임시정부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기에, 특정한 온건 사회주의자들을 통합하려는 구조적 필요가 있었던 것이죠. 따라서 그것은 단지 개인의 정치학이 아니라, 또한 체제를 지탱하려는 희망에서, 노동계급에 대한 어떤 신뢰를 주며, 힘을 끌어들이고 그에 기댈 필요성이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제국의 다른 부분들에서도, 전후 유럽의 혁명의 물결을 통해서도 이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미에빌: 맞습니다. 저는 여기서 사고(이것은 언제나 변화무쌍하고 유연합니다)신념을 일종의 약칭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정치적 함수로서의 인간이죠. 만약 당신이 특정 상황에서는 자본주의 하에서 관료적 국가 장치에 들어갈 의향이 있는 활동가라면, 당신에게는 [구체제와의] 단절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가 문제로 떠오를 것입니다. 좌익을 포함해서, 사회민주주의 내부에 그러한 단절을 막으려는 강력한 경향이 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언제나 필연적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일단 가능성의 지평선이 열리게 되면, 심지어 국가 장치의 내부에 있는 이들조차 (그들 자신과 우리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어) 해방의 기획에 투신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접근보다는 오히려 더 눈길을 끄는 대안, 긴장감이 넘치는 듯한 전략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긴장에 대한 초좌파적 전략과, 시스템 내에서의 개선이라는 개혁주의적 사회민주주의 전략 사이의 조잡한 대립에 관해 고민한다면, 저는 때로 양자의 변증법적 지양이라는 꿈이 실제로 불가능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아마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다양한 시간에 다양한 측면으로, 그들 사이를 겹치게 가로지르는 것일 것입니다.

 

블랑: 아마 그 핵심은 그러한 긴장을 잊지 않는 것이겠군요..

 

미에빌: 맞습니다. 그리고 파열에 대한 건강한 움직임은 이들 양 경향들의 대표를 포함하는 것이어야만 한다는 것이죠.

 

블랑: <Salvage>에서, 당신은 희망과 절망이라는 주제를 해결하기 위해 꽤 노력해왔습니다. 그 정기 간행물은 엄숙한 혁명적 비관주의를 옹호해왔는데, 그 표어 중 하나는 희망은 소중하다. 그것은 배급되어야 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제게 많은 질문을 제기하는데, 아마 제 연구의 대부분이 제 2 인터네셔널의 혁명가들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들의 정치적 성공 - 그리고 정치적 메시지 - 의 많은 부분은 명백히 매우 희망적인 접근에 기초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흐름들은 종종 진보에 대한 숙명론적 믿음으로서, 혹은 사회주의의 최종적인 승리에 대한 과잉된 낙관으로서 치부됩니다.

 

허나 저는 그들이 행했던 것의 합리적 핵심은 노동자들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그들이 승리할 수 있음에 대한 믿음을 주고, 계급투쟁에 대한 정치적 개입으로 희망을 제시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희망은 특정한 범위의 자기충족적 예언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노동자들이 그들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마 그들은 더 투쟁할 것이고, 따라서 더 승리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죠.

 

러시아에서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사이에 있는 주된 차이 중 하나는 정확히 이러한 문제와 관련된 것이기도 했습니다. 즉 멘셰비키는 끊임없이 레닌과 그의 동료들이 노동계급에 대한 과대망상적 믿음을 갖고 있다며 비난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1917년의 희망과 절망의 정치학을 어떻게 봅니까? 이러한 서로 다른 접근들의 어떤 측면이 오늘날 유효할 수 있는 것일까요? 정확히는 특히 코빈과 관련해 희망이 다소 부활한 시기에 말입니다.

 

미에빌: 나데즈다 로크비츠카야(Nadezhda Lokhvitskaya) - 이른바 테피(Teffi_유머작가였던 나데즈다의 필명: 역주) - 는 만약 레닌이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를 만났는데 말 다섯 마리가 있다면, 그가 우리는 여덟 명이로군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레닌을 놀려댔습니다. 정치적으로 활발하며 모든 것을 과장하는 좌파의 지속적 경향을 아는 이들이 그것을 읽는다면 누구든 웃을 것입니다. 많은 것이 변화했지만, 많은 것이 그대로라는 것이죠.

 

희망이 요구되는 단순하고 명백한 단계가 있습니다. 즉 당신이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어떤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를 위해 투쟁할 이유도 없는 것이지요. 이것이 변혁적 기획에 희망이 중요한 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희망의 진부해진 버전이 있고, 이는 으레(이는 테리 이글턴이 자신의 최근 저작에서 지적한 바 있는데) 막연한 낙관론과 구분될 수 없습니다. 그런 낙관론은 매우 다른 문제죠. 만약 당신이 낙관론의 기본적인 입장에서 출발한다면, 거기엔 논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어떤 믿음의 상태입니다(그리고, 덧붙여 제게 그것은 설득력이 없는 어떤 것이며, 자주 절망을 못 본체 하는 것을 뜻합니다). 만약 낙관론과 비관론이 어떤 것이든 의미가 있으려면, 그들은 구체적인 조건들에 대한 분석의 결과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은 비관적이고, 다른 상황은 낙관적일 수 있는 것이죠.

 

당신은 희망의 정치적 사용을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근본규범으로서 희망을 깔고 가자는 것이 아니라, 제가 당연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던 맥락에서입니다. 그러나 출발점으로서의 희망이 아니라, 일종의 희망이 필연적으로 뭔가를 가져온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더군다나(그리고 종종 외려 미친 듯이), 그것이 노동계급을 고무하고 그들의 기관을 비롯한 여러 곳에 동력을 가져오기 때문에 우리가 낙관론을 고수해야 한다는 생각 말입니다. 이러한 접근에 따른 제 고충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중 하나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분석보다 [낙관론의]그 명령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적어도 잠재적으로, 지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부정직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저러한 전술이 성공할 것이라고 맹목적으로 단언하는 글쟁이들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것이 사실이 아닌 것은 물론 그들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지요.

 

더욱이, 사람들을 활동에 나서게 하려는 의도의 경우에 관해 말하자면, 저는 우리가 그 비용에 대해 충분히 깊게 고려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제 자신의 정치적 경험에서 보면, 비관론보다는 공허한 낙관론으로 길을 잃은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즉 한 번의 큰 흐름이 상황을 바꿀 것이라고, 내기를 걸어야할 모든 것이 있다고, 엄청난 기회들이 모든 상황에 있다고, 너무 많은 것을 얘기한 후에 어떤 사람들은 소진돼 버립니다. 더욱이 이들은 상황이 사실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감지하면서 정치적으로 창피함을 당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들이 잘 대응한다면 일이 풀릴 것이라 얘기한 후에 상황이 잘 흘러가지 않을 때의 유감스러운 상황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실패 말고 무엇이 가능하겠습니까?

 

물론, 좋은 일도 일어납니다만, 좋은 일이 일어날 때 그 진부한 일종의 낙관론이 합리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반복하건대 저는 확실히 코빈 현상의 속도를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무언가 벌어진 것과 그에 대한 모든 측면들을 구체적으로 감지했던 몇몇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전환은 지난 30년간 열광적으로 낙관론을 펴던 이들을 합리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가끔 시간을 맞출 뿐인 고장 난 시계인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저는 최근 희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려 해왔습니다. 우리가 얘기했던 - 이글턴의 헤아릴 수 없이 중요한, ‘낙관 없는 희망’ - 그 훌륭한 느낌을 깊게 받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영국 좌파들에게는 확실히 희망이란 단어가 다른 성질으로 패권화된 나머지 그 용어를 달리 듣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저는 코빈 이후에 대해 얘기 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쁩니다. 저는 사회와 제 자신에게서 그런 변화를 감지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일의 규모를 현실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사활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도, 아마도 코빈 이후에는 더더욱이요. 그것은 이전처럼 많은 활동가들을 소진시켜버리지도 않을 것이고, 얄팍한 낙관주의에 전혀 지지 않을 만큼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것입니다.

 

블랑: 볼셰비키와 제 2 인터네셔널의 혁명가들은 보통 실로 희망적이었고 낙관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그것을 믿었던 겁니다.

 

미에빌: 물론, 특정한 분석이 특정한 상황을 긍정적이라 감지하는데 이르게 된다면 - 당신이 이야기하는 좋은 신념, 구체적인 낙관 말입니다 - 저는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저는 동의할지도,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바로 동료들 사이에서의 합리적인 논쟁이지요. 허나 볼셰비키의 희망찬 상태와 그들의 정치적 성공에 관해 말하자면, 양자가 특정한 상관관계라기 보단 외려 필연적인 인과관계라는 어떤 암시에도 저는 솔직히 회의적입니다.

 

아마도 그 성공은 보다 넓은 정치 기반과 경향들의 작동이었을 것이고, 볼셰비키가 낙관론이냐 비관론이냐하는 것은 역사의 격변 내에서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미미할 것입니다. (물론 비관론자인 볼셰비키도 있었을 뿐더러,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다는 것을 필연적으로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옳고 필연적이고 가능하다고 믿는 것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성공하리라는 엄청난 자신감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아마 더 좋은 신념에 관한 토론에 관련된 문제일 거 같군요.

 

블랑: 러시아 혁명의 가장 큰 유산은, 마르크스주의 정당 건설을 둘러싸고 새로운 국제적 방향을 촉발했다는 것인데, ‘레닌주의로 알려져 있는 한 접근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후, 볼셰비키 당의 역사적 본질과 그들의 경험으로부터 공식화될 수 있는 것에 관한 지속적인 논쟁이 있어왔습니다. 제가 당신의 책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는, 볼셰비키 당이 가진 그 정치적 힘과 10월을 가능하게 한 탁월함만큼이나 그들의 골칫거리와 긴장, 실수를 묘사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당 건설에 관한 유산의 유효성이 오늘날엔 어떨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미에빌: 볼셰비키의 상황에서 유효했던 것으로 보인다고해서 특정한 낡은 구조를 단순히 복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중요한 경고를 전제하면(속류는 좌파들에게 문제적이었죠), 어떤 정치적 기획에 관한 하나의 형식으로서 당은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수평주의자가 아닙니다. 제가 여전히 매우 강력하다고 생각하는 레닌주의에서 기본적인 한 가지는, 당을 의식에 관한 이론, 즉 의식이 사람들 속에서 작동하고 변화하는 방식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블랑: 그렇다면 특히 의식의 불균등함은...

 

미에빌: 명확히 하자면, 당 내부를 포함해서, 그리고 그 리더십 내부를 포함해서 말이죠. 때로 당 형식의 개념 - ‘전위에 대해서는 차치하고라도 - 은 엘리트주의적이고 노동계급 민중들을 업신여기는 것이라는 아나키스트(혹은 부당하게도 민주주의 우파)들의 공격이 있습니다.

 

이들 중 많은 것들은 좋지 않은 믿음의 공격이지만, 이에 대해 신중하게 답하자면, 저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바꾸리라 믿습니다. 제가 정당에 있을 때를 포함해서, 제 스스로도 여러 번 그랬습니다. 따라서 질문은 이겁니다. 정치적 주체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당신이 말한 의식의 불균등함은 시간에 걸쳐 변화합니다. 제게 당은 - 그것이 케케묵은 실체가 아닌 한에서 - 의식이 존재하고, 변화하고, 불균등하다는 단순한 사실과 관계 맺는 결코 나쁘지 않은 방식이며 정치적 기획이라고 여겨집니다.

 

블랑: 혁명의 역사에 대한 트로츠키의 책에서 그는, 모든 심각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볼셰비키 당은 상당히 적절한 혁명의 도구였다고 얘기합니다.

 

미에빌: 맞습니다. 당은 하나의 도구이고, 저는 그에 관해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으려 합니다.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기구의 집행자로서가 아니라 때론 브레이크이자 제약으로서의 당을 강조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저는 이 범주가 매우 중요하고 유동적이라 여기는데, (단지 러시아 혁명 뿐 아니라) 고도의 정치적 사건들 와중에 중요한 순간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할지를 말하는 어떤 전위가 아니라, 때론 멈추라고 말하며 자제를 요구하고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일 뿐인 계급적 분노와 복수를 통제하려하는 것이라는 말이죠.

 

우파들의 공격은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어떤 기획으로서 당에 대한 좌파의 관계가 감정적이며 속류적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좌파가 항상 이 문제에서 가장 좋은 친구는 아니었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블랑: 그런 맥락에서, 당신이 역사를 진지하게 탐구할 때 참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볼셰비키가 수년에 걸쳐 변화한 정도와, 그들이 실수한 정도, 오늘날 사회주의자들에게 열려있는 수많은 정치적 질문들과 관련된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보통 이러한 지점들을 부정하지 않지만, 실제 우리가 쓰는 역사는 다소 무비판적인 경향이 있고, 그래서 우리가 이 경험으로부터 도출하는 교훈은 때로 약간 진부할 수 있는 것이죠...

 

미에빌: 저는 볼셰비키를 포함하여, 많은 좌파들이 실수를 인정하는 일에 대해 무능력하다는 것이 실망스럽습니다. 이건 책에서 제가 코르닐로프 사건에 대한 레닌의 대응을 두고 그를 다소 놀렸던 이유이기도 한데, 그건 제가 본 것 중 그가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과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사태의 '완전히 믿을 수 없고 급격한 방향 전환'에 관해 말할 때조차 그의 어조는 꼭 [자신이 아니라] 현실이 오류를 저질렀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저는 우리가 행동이나 분석 혹은 양자 모두에서 실수했을 때를 인정하는 데에서 이러한 과민반응을 극복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실로 여전히 흔한 현상입니다.

 

블랑: <10>을 읽으면서, 저는 이 정도에 달하는 리서치의 양과, 당신이 착수했던 그 프로젝트의 역사기록학적 측면의 진지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제 짐작엔 이러한 역사에 새롭게 접근하는 많은 독자들이 당신 저서의 이런 차원을 못보고 지나칠 듯합니다. <10>을 위해 조사하고, 집필하면서, 러시아 혁명을 당신이 조사를 시작했을 때와는 달리 보게 된 방식들이 있습니까?

 

미에빌: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방식의 많은 부분이 당신을 비롯하여 제 초고에 관해 기꺼이 저와 협동하려하는 다른 전문적인 학자들에게서 나왔습니다. 비록 제겐 새로운 독자가 항상 최우선이지만, 전문가들이 만족스러운 듯 끄덕이며 최소한 내가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 사람이 제 할 일을 했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정말 중요합니다.

 

제가 제 독서를 시작하기 전까지, 저는 그 주제에 대해 새로운 정보도 없었지만, 자세한 지식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넓은 범위에서 저는 제 입장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사가 했던 역할은 특정한 동기를 강화하거나 제가 갖고 있던 인식을 넘어서고 그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좌파들에게 볼셰비키에도 내부적으로 많은 의견차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그러한 것들 중 하나일 수 있겠습니다. 대략 말이 나온 김에 우리는 볼셰비키가 어떤 완전히 통일된 당이 아니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방법으로 이를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블랑: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종종, 레닌이 거의 모든 것에서 옳았다고 말하며, 그런 주장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에빌: 정확히, 우리는 두 가지 모두를 원합니다. 제겐, 그 내부적 토론의 순수한 규모가 정말 중요했는데, 이는 당에 있어 일종의 끊임없는 자극의 요소이기도 합니다. 비슷하게, 저는 10월이 그 자체 역사적으로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던 반면, 무언가 일어났다는 것은 모두에게 명확했다는 느낌에 휩쓸렸습니다. 국가는 어떤 것 - 거의 종말의 느낌 - 을 향해 혼란스럽게 뒤죽박죽으로 돌진하고 있었고요. 그리고 그 필연성의 정도는 매우 강력했습니다. 이들은 제 주제에 대한 모호한 인식의 추정에 살을 붙여줬습니다.

 

반대로 미세한 수준에서, 제겐 어떤 진정한 뜻밖의 새로운 사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항상 모든 것에 대해 깊은 -주의자(Lih-ean_역사학자인 라스 리(Lars Lih)의 해석을 따르는 사람들. 라스 리는 <러시아에에서의 빵과 권위(Bread and Authority in Russia)>, <재발견된 레닌(Lenin Rediscovered: What is to be Done? in Context)>, <레닌(Lenin)>등의 저서를 냈으며, 1917년 전후 러시아의 식량 문제와 혁명의 관계를 검토하거나,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훈고학적 접근을 통해 레닌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는 연구로 잘 알려져 있다: 역주)’의 방식을 취하진 않습니다. 저는 오래된 볼셰비즘과 새로운 레닌주의 사이에는 그가 때로 암시하는 것 이상으로 단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라스 리(Lars Lih)의 작업은 상당히 중요하고, 러시아로 돌아가기 전 레닌의 먼 곳으로부터의 편지에 관한 그의 분석에 저는 완전히 설득되었습니다. 누군가 때로 먼 곳으로부터의 편지가 매우 충격적인 나머지 레닌의 동료들이 그의 급진적인 정치적 입장에 아연실색하여 그것을 검열했다고 해석하는(예를 들면 트로츠키를 포함하여)그런 관점들을, (Lih)는 제가 흥미 있는 지점까지 명확하게 반박합니다.

 

제가 떠나온 마지막 문제 하나는 정확히 의견의 변화가 아니라, 유별난 집단인 메즈라이온카(Mezhraionka_1913년부터 1917년까지 있었던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내부의 한 분파로서, 멘셰비키와 볼셰비키의 중간자적 입장으로 알려져 왔다. 이후 10월 혁명을 거치며 볼셰비키와 통합 된다: 역주)가 실로 무엇이었는지를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처럼 저는 처음에 그들을 트로츠키와 관련된 소규모의 급진적 집단으로서 접했습니다. 그러나 더 깊게 그들을 이해하면서 저는 그들의 놀라운 독립적 사유와 정치학, 실로 매혹적이면서 작은 규모, 번쩍이는 지성 등에 관한 무언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블랑: 그리고 그들은 2월 혁명과 10월 혁명 양자에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했죠.

 

미에빌: 저는 그들이 완전히 매력적이라 봅니다. 저는 메즈라이온카에 관한 훌륭한 책이 - 슬프게도 저에 의해서는 아니겠지만 - 쓰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블랑: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정치적 기여를 당신이 어떻게 상상하는지에 관해 좀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의 반응은 무엇이었고, 러시아 혁명에 대한 현재의 개입 수준에서 이것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미에빌: 저는 점점 더 우리가 전 지구적으로, 관련된 모든 배설물들과 함께 자본주의의 쇠락이 굳어지는 순간에 도달했다는 생각에 이끌립니다. 저는 우리가 지금, 특히 헛소리와 좋지 않은 믿음의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단지 부수적 현상은 아닐 것이라 여깁니다. 제게 흥미로운 결과는 좋은 믿음이 점차 중요해진다는 것입니다. 즉 저는 제가 동의하지 않는 이들과 명예로운 논쟁을 위한 능력을 위해 많은 것들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단지 좌파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정말로 이러한 주제에 관해 진지한 자유주의자들 심지어 우파들의 토론마저도 환영합니다. 외려 제가 참을 수 없는 것은 혁명은 그들의 자식을 잡아먹지라거나, ‘매력적인 생각이지만 그건 절대 작동할 수 없어라는 식의 시시한 자유주의적 만병통치약 같은 것들입니다. 그럴듯한 문구로 분석을 대신하는 것 말이죠.


좌파가 아닌 이들까지도 포함해서, 리뷰는 대부분 긍정적입니다. 이는 많은 걸 의미합니다. 저는 특히 역사학자 쉴라 피츠패트릭(Sheila Fitzpatrick_러시아사 전반에 관한 수정주의 역사학의 거장이며, 그녀의 저작 중 The Russian Revolution(1982)은 최근 <러시아혁명 1917~1938>(2017)으로 국내번역 출간됐다: 역주)의 리뷰에 기쁘고 감사했는데, 그 사람은 저와는 굉장히 다른 정치적 공간에서 왔기에, 다른 방식으로 혁명을 바라봅니다.

 

그녀는 관련 문헌들을 섭렵했고, 매우 진지하고 사려 깊으며 박식한데, <10>을 관대하게 봐주었습니다. 특히 그녀의 저작이 수십 년 전 제가 그 혁명에 관해 읽었던 첫 번째 책이었기 때문에, 저는 그게 감동적이라 느낍니다. 나이가 들수록 저는 책에서 취할 수 있는 것을 얻기 위해 더욱 더 스스로 무언가를 발견하며 관대하게 읽고자 하는데, 저는 <10>이 그런 방식으로 읽혔다는 게 감사했습니다.

 

다른 놀라움도 있었죠. 기이하게도 제 책은 경제지 <포브스 2017년 여름 독서 리스트(Forbes Summer Reading List of 2017)>에 실리기도 했는데, 여기선 책을 일군의 방해꾼들이 몇 백 년 된 낡은 제도를 바꿨던당시의 이야기로 묘사합니다. 즉 제정 러시아 말이죠.

 

이 책의 첫 번째 목적은 러시아 혁명에 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그 이해관계와 리듬, 사건 당시에 무엇이 일어났는지 알고자하는 독자들을 위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좌파를 위한 러시아 혁명의 역사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비록 어떤 좌파에 의해 쓰인 모두를 위한 러시아 혁명의 역사이긴 하지만요.

 

따라서 책이 수행할 수 있는 정치적 기여가 만약 있다면, 하나는 단순하게 사람들이 그 이야기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러시아 혁명에 관해 얘기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하는 거죠.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솔직히 저는 전체적으로 그것이 아직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상황이 약간 우울합니다. 책에 대한 반응에 관해서는 만족하지만, 저는 100주년에 제가 기대한 것보다 1917년에 관한 대화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1917년의 의의를 약화시키기 위해 그것을 비난하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이제 제 생각에는 어떤 점에선, 1917년을 훼손하는 최고의 방법은 그냥 그에 대해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린 때로 접어들었습니다. 만약 이 책이 약간이라도 더 자유와 존엄, 그리고 다른 모든 것들에 영향을 미친 그 세계사적인, 새 시대를 열어젖힌 해에 관한 토론을 촉발한다면, 저는 매우 기쁘겠습니다.

 

블랑: 이건 단지 낙관론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에 현재 젊은이들의 급진화가 상대적으로 더 일찍 1917년에 관한 광범위한 재개입을 이끌 거 같습니다. 어쩌면 100주년이 1, 2년 일찍 왔던 것일까요?

 

미에빌: 좋은 소식은 확실히 어떤 호기심이 있다는 겁니다. 부분적으론 생각지도 못한 리뷰들에 의해, 책이 제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더 넓게 흥미를 끈 것으로 보이는 측면들에 의해 증명된 것처럼 말입니다. 최고의 소식은 현재 좌파들이 방어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러시아 혁명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고 써온 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피고측 변호사의 기본입장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혁명에 충실한 많은 이들이 사려 깊게, 제가 여느 때 봤던 것보다 더 열린 방식으로, 예를 들면 단지 외부적 문제보단 외려 볼셰비키에 내재한 문제점들에 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외부적 요인만큼이나 중요하죠. 이는 건강한 현상입니다.

 

그래서 아마 전반적으로 제가 바란 만큼 혁명에 관한 실로 많은 토론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좌파들과 그 외 사람들의 토론은 제가 염려했을지 모르는 것보다 완전히 덜 기계적이기도 하고, 덜 유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사 등록 2018.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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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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