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로자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 중인 이 글의 필자는, 노동당과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에서도 활동해왔다. 과학이 가지는 실천적 책무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대중문화와 계급의식 사이의 동학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얼마 전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대한 필자의 글(http://www.anotherworld.kr/620)을 실은 바 있는데 그 글과 이어지는 글이다.]
최근 퀸의 전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개봉했다. 영화 속에서는 퀸이 전설적인 공연을 펼쳤던 <라이브 에이드>가 등장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요즘 들어 이 전설적인 공연이 새로운 세대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퀸이 어떻게 웸블리 스타디움을 접수했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실 라이브 에이드는 퀸 뿐 만 아닌 수많은 뮤지션들의 명연이 쏟아져 나온, 대중음악사에서 우드스탁과 함께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대중음악사의 태동기부터, 록 음악이 ‘상업적으로’ 가장 비대했던 80년대까지 흥행했던 중요한 이들이 장르를 망라하고 라이브 에이드에 섰기 때문에, 라이브 에이드는 대중음악사를 속성으로 (그러나 총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할 때에 무조건 챙겨보아야 할 공연이기도 하다.
대중음악의 태동기에 등장했던 베테랑들부터(비치 보이스, 더 후, 밥 딜런, 조안 바에즈, 산타나, 크로스비 스틸스 앤 내쉬...와 따로 공연한 닐 영, 믹 재거와 롤링 스톤스 멤버들, 조안 바에즈, 폴 매카트니, 에릭 클랩튼 등...), 하드 록과 헤비 메탈의 전설들(레드 제플린, 오지 오즈본과 블랙 사바스, 주다스 프리스트), 80년대에 최전성기를 맞았던 뉴 웨이브와 신스 팝 뮤지션들(듀란 듀란, 마돈나, 스팅 등...)까지, 없는 이들이 없다.
라이브 에이드가 성사되도록 한 사건은 1984년 에티오피아의 대기근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가수이자 정치 운동가 밥 겔도프는 기근으로 인해 벌어진 대규모 난민 사태에 도움이 되고자 자선 음반을 기획했는데, 여기에 영국의 날고 기는 팝 스타들이 숟가락을 얹으면서 일이 무진장 커지게 된다. U2와 컬쳐 클럽, 조지 마이클과 필 콜린스, 듀란 듀란과 데이빗 보위, 심지어는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까지 음반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해서 탄생한 싱글이 그 해 전 세계의 크리스마스 음악 차트를 점령한 “Do They Know It’s Christmas?”다.
당시 주류 미디어들에서는 억만장자 팝스타들이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재능 기부를 한다는 것에 코웃음을 쳤는데, 이것이 예상과 달리 대박을 치자 대서양 건너 미국의 뮤지션들까지 자극을 받게 된다.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 그리고 퀸시 존스는 미국판 “Do They Know It’s Christmas”라 할 수 있는 프로젝트 “USA for Africa”를 기획하게 되는데, 여기에도 빌리 조엘, 신디 로퍼, 폴 사이먼, 브루스 스프링스틴, 밥 딜런, 레이 찰스, 스티비 원더, 티나 터너 등등 의 전설들이 참여해서 대박을 치게 된다. 여기서 탄생한 곡이 바로 “We Are the World”다.
대중음악사상 유례없던 자선 기획이 영국과 미국 양 쪽에서 대성공을 하게 되자, 자신감을 얻은 밥 겔도프는 이듬해에 이 사업을 대규모 라이브 공연으로 확장시켜보자는 기획을 하게 된다. 이러한 발상이 현실화된 것이 바로 라이브 에이드다. 라이브 에이드는 1985년 7월 13일 필라델피아의 존 F. 케네디 스타디움(100,000명의 관중이 참여했다)과 런던의 웸블리(72,000명의 관중이 참여했다)에서 동시에 진행되었으며, 전 세계의 19억명에게 위성 방송으로 중계되었다.
필 콜린스는 런던에서 공연을 마친 뒤 콩코드를 타고 필라델피아로 날아가, 거기에서 또 공연을 하는 기행을 벌이기도 했다. (런던에서는 스팅과 함께 공연했고, 필라델피아에서는 에릭 클랩튼과 레드 제플린의 드럼 세션을 맡기도 했다. 이 일로, 필 콜린스는 하루에 두 개의 대륙에서 공연한 최초의 뮤지션이 되어 기네스북에 올랐다.)
하지만 라이브 에이드가 성공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기대하던 레드 제플린의 재결합 공연은 몹시 실망스럽게 끝났다. 공연이 7시간 쯤 진행되던 동안 모금된 금액을 확인한 밥 겔도프는, ‘고작’ 120만 파운드밖에 모이지 않은 것을 보고서는 실망을 표하기도 했다. 답 빌런... 이 아니라 밥 딜런은 “여기서 모금되었던 돈들은 그냥 동네 농부들이 꿀꺽해서 빚 갚는 데나 쓸 것 아니냐. 아프리카 말고 우리 미국의 농부들을 위해 돈을 쓸 수는 없냐?”라는 식으로 인터뷰를 했다가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논란은, 라이브 에이드를 통해 모금된 돈이 에티오피아 지역 군벌의 무기 구입비로 유용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라이브 에이드 이후로도, 제국주의의 가장 거대한 상징이었던 영국과 미국의 팝 스타들은 이를 계승하는 자선 공연과 음반을 기획해오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라이브 에이드 20주년 기념 공연 ‘라이브 8’인데, 여기서는 핑크 플로이드의 역사적인 재결합 공연이 있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앵글로-색슨 국가들은 여전히 아프리카를 착취적 구조 속에 가두는 가장 주요한 주체들이다. 이들이 시혜적으로 몇 푼쯤 모아서 아프리카에 보낸들, 그곳 인민의 삶이 근본적으로 나아질 리는 만무하다.
이들을 가난과 기아로 내모는 사회경제적 토대 덕에 윤택할 삶을 영위하는 영미의 부르주아들과 팝 스타들에게, 이러한 토대를 뒤엎을 용기와 의지가 있을까? 결국은 시혜적 자선을 상품으로 만들어 내다 팔고, 과잉된 자의식 속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는 데에 그칠 뿐이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그어놓은 국경선으로 인해 내전이 벌어지고, 다국적 기업들이 현지의 플랜테이션과 광산, 공장들에서 노동을 착취하고 환경을 망가트리는데, 선심 좀 써서 돈 몇 푼 보낸다고 인민들이 해방될 리는 없는 셈이다.
우리는 흔히 혁명가로서의 예술가를 이야기한다. 상징 투쟁에서 저항적 이데올로기의 전위를 차지하고, 인민들에게 새로운 해방적 전망을 제시하는 예술가로서의 상일테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는, 이러한 예술적 작업물들까지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수요에 따라 생산해낸다. ‘라이브 에이드’는 인민에 대한 선의를 가진 대중예술가들이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남긴다.
(기사 등록 20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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