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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한반도/ 삼성해고자/ 난민인권/ 기생충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7. 5.

다시 기회의 창이 열리는 한반도

 

얼마전 남북미 정상이 만나는 판문점 광경을 보면서 아마 많은 사람들이 국경이란게 얼마나 헛된 것인지 떠올리게 됐을 것 같다. 땅에 그어놓은 선에 불과하고 저렇게 쉽게 넘어가 왔다갔다하면 될 것을 왜 누구를, 무엇을 위해서 반세기가 넘게 서로 증오, 불신, 적대하고 죽고 죽이고 해 왔을까. 왜 철조망을 치고 지뢰를 깔고 군대를 배치하고 총을 들고 지켜 왔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주역 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에게 그것을 강요해 온 나라의 대통령이며, 지금 멕시코 국경에서 그 어리석고 잔인한 짓을 확대하고 있는 트럼프라는 것이 아이러니다. 얼마전 멕시코 국경 강가에서 아빠의 목에 팔을 걸고 함께 죽은 아기의 살인범.

 

그래도 이런 트윗 즉석 만남은 트럼프같은 워싱턴의 아웃사이더에게 가능한 발상과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역시 지난번 하노이 결렬은 청문회와 특검으로 국내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려 있던 트럼프의 장난질이 컸던 셈이다. 또 미중 무역전쟁의 휴전과 함께 다가온 기회는 북미관계가 미중갈등과 연동돼 있다는 것을 다시 입증했다.

 

이번 만남에 대한 민주당 대선후보들 다수의 부정적 반응은 역시 미국 민주당 주류가 대외정책에서는 트럼프보다 더한 매파라는 것도 재확인시켜준다. 하지만 그런 민주당에서도 한반도 문제에서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갈수록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그러면 이제 특검 압박이 사라지고 대선도 다가오는 상황에서 트럼프가 북한과 화해를 통해 실리를 얻고 중국도 견제한다는 구상으로 더 다가갈 가능성은 커진다. 하지만 이것이 지금 트럼프가 피스메이커라는 말은 아니다. 핵과 미사일을 제일 많이 가진채 멋대로 쏘고 실험하면서, 상대방은 그러면 절대 안된다며 제재로 목을 조이는 놀부심보는 여전하다.

 

그보단 저런 땡깡에도 다시 핵과 미사일 시험으로 판을 깨기보다는 자력갱생을 말하면서 기회의 창을 닫지 않고 있는 김정은 정권이 더 평가받을만 하다. 무엇보다 피스메이커란 이름이 정말 가당찮은게, 트럼프는 지금 이란 전쟁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란 앞바다에서 유조선 피격, 미국 드론 격추에 이어서 이란 폭격 10분 전에 그것을 취소했다는 트럼프의 공갈협박이 있었다.

 

지금 미국-이란의 전쟁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고, 만약 전쟁이 현실이 된다면 이라크 전쟁과도 비교할 수 없는 대재앙이 될 것이다. 트럼프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지만, 전쟁을 낳을만한 모든 잘못된 행동을 취하고 있다.

 

이번에 트럼프가 오기 직전에 한국에 와서 문정부의 화려한 대접을 받고 돌아간 사우디 왕자 빈살만은 지금 수많은 난민을 낳은 예멘 전쟁의 주도자이면서 이란 전쟁을 누구보다 원하며 미국을 등떠밀고 있다. 지금 우리의 감사와 칭찬을 받을 것은 평화와 화해에 대한 열망으로 트럼프가 쇼라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보통 사람들이지, 피묻은 손으로 다음 타켓을 찾고 있는 트럼프는 아닐 것이다.

 

김용희 삼성해고자의 목숨을 건 단식 고공 농성


김용희 삼성해고노동자의 강남역 4거리 20미터 철탑 단식고공농성이 한달을 넘어가고 있다. 반올림, NCCK 인권센터, 삼성화재애니카지부 등 많은 분들이 여기에 함께 해주고 계시다. 특히 자신들도 장기 투쟁중인 삼성화재애니카지부 노동자들은 김용희 동지의 투쟁에 너무나 큰 도움을 주고 계신다. 삼성중공업 이재용 해고자와 기아차판매영업직 박미희 해고자 동지도 제 몸처럼 김용희 동지를 돌보고 있다.

 

김용희 동지가 한달 전에 기발한 작전으로 저 20미터 철탑 위로 올라간 뒤에 강남, 서초, 수서 경찰서는 서로 자신들의 영역이 아니라고 미뤘다고 한다. 너무 비좁아서 다리도 뻗기 어렵고 자다가 떨어질 수도 있는 곳에 사람이 올라가 있는데, 밑에 메트리스도 충분히 깔아두지 않는 것은 정말 비정한 일이다.

 

촛불집회에 가면 저 멀리 철탑 위에서 흔드는 반짝이는 헨드폰 불빛밖에 보이지 않는다. 반딧불처럼 희미하게 반짝이는 그 불빛이 꺼져가는 희망과 생명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투쟁을 보여주는 것 같다. 삼성해고자는 철탑 위해서 죽어가는 데, 본 척도 않는 이재용은 멀쩡히 국내외를 돌아다니고, 용산 철거민은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이것이 문재인 정부 3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이다.

 

이 모든 것을 삼성, 과거 정권의 책임으로 돌리고 문정부를 탓하지 말라는 말은 너무나 매정하고 무책임하다. 누군가가 산에 올라가서 나무에 밧줄로 목을 걸었다면 그 죽음은 산이나 나무나 밧줄에게 책임이 있는 게 아니다.

 

헛된 희망을 끝내 포기하게 만들고, 살아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사람들에게 그 책임이 있다. 지금 관료사회 핵심에 역시 소득주도가 아니라 재벌주도이고, 노동존중이 아니라 삼성존중이 맞다는 분위기가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버닝썬 수사들이 흐지부지 되고, 이재용 대법 판결이 계속 미뤄지고, 권성동이 무죄 판결받은 상황들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문정부가 아니면 누구에게 이 책임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나를 믿어달라고, 나같은 피해자가 또 나와서는 안 된다고 끝없이 맞서는 사람들은 결코 투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집회나 기자회견 현장마다, 심지어 저 멀리 청와대까지 이재용 흉상을 끌고 도로를 걸어다니며 복직을 요구하던, ‘이재용 구속박스탑을 만들어서 자전거 안장에 싣고 여기저기 타고 다니던 김용희 동지의 모습이 기억난다.

 

김용희 동지가 20년도 더 된 낡은 가방 속에 모아두었던, 삼성이 얼마나 악랄하게 탄압했는지 증거들을 봤다. 경찰관이 김용희 동지 부인을 성폭행하려 했던 기사도 나왔다. 김용희 동지에게 자주 들었던 이야기다. 최근 한겨레 기사를 보면 삼성은 이런 범죄를 이제 베트남, 인도에서도 저지르고 있다.

 

이런 자신의 억울함과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것이, 믿어달라는 것이, 인간으로서 존중해 달라는 것이 그의 요구다. 지난 겨울에 폐지나 박스를 농성장 옆에 모아두면서, 그걸 팔아서라도 계속 투쟁하겠다던 김용희 동지가 기억난다.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우리 곁으로 무사히 돌아오실 거라고 믿는다.

 



세계 난민의 날

 

620일은 세계 난민의 날이었고, ‘아시아 평화를 위한 이주’(MAP: Migration to Asia Peace) 분들이 준비한 난민과 함께하는 사람책 도서관행사에 갔다 왔다. 다채롭고 꼼꼼하게 잘 준비된 행사는 오늘날의 세계와 이주, 난민의 삶에 대해서 생생하게 보고 듣고 생각하게 해주는 아주 소중한 시간을 제공했다. 아마 모든 사람이 10명의 사람 책 모두에 대해 듣고 싶었겠지만 시간이 한정돼 있으니 2명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첫 번째는 파키스탄에서 소수종교로서 기독교 신앙을 지키다가 박해와 차별을 받고 이주해 온 난민 여성의 이야기였다. 할아버지가 테러로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그 심각한 후유증과 우울에 시달리고, 오빠도 납치돼서 구타 속에 개종을 강요당하고, 어머니와 본인도 염산테러에서 간신히 몸을 피할 수 있었던 경험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을 피해서 공정한 세상과 다른 이들과 똑같은 삶을 꿈꾸며 한국에 왔지만, 아버지의 우울과 근심들을 별로 달라지지 않았고, 나이많은 한국남자와 결혼해야 살 길이 생긴다는 강요에 시달린 경험은 그녀가 어둠 속에서 아직 빛을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두 번째는 바로 지난해 큰 이슈가 됐던 예멘에서 온 여성 난민의 이야기였다. 전쟁과 폭격, 강제징집에 시달리던 삶, 도저히 끝날 거 같지 않은 전쟁. 그런데 한국에 와서 직장을 구하다가 여기서 일하려면 히잡을 벗고 한국문화를 존중하라는 말에 바로 일어서 나왔다고 했다. 자신을 믿어주고 난민이 아니라 사람으로 대해주는 사람들과 일하고 싶다고 했다.

 

행사에 앞서, 같이 참석한 한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임종을 앞둔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해오신 경험을 이야기해주시는데, 살면서 겪었던 고통과 트라우마가 삶의 마지막 순간을 더 힘들게 한다는 말씀이셨다.

 

폭력과 상처, 피해를 겪었던 분들은 그 순간에 그것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래서 그 순간에 그건 당신의 탓이 아니다. 당신은 아무 잘못이 없고 의미있는 일을 한 것이라고 위로하면서 다시 평온을 찾게 해드린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 내가 아는 피해자들이 떠올랐다. 지금처럼 끝까지 해결되지 못한다면 고통과 상처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그분들을 괴롭힐 생각을 하니 너무 먹먹해졌다. 그것은 절대 당신의 잘못이 아니고 용기있게 증언하고 투쟁한 것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말해주면서 함께 이겨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분명해 졌다.

 

기생충쏘리 투 보더 유

 

가지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의 단순한 범주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가장 참담한 현실이다. 오늘날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일반적인 존재로부터 단절됨과 동시에 인간적 존재로부터 여전히 더 많은 것을 단절당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것은 인간 존재의 완벽한 비현실성임과 동시에 비인간적 존재의 완벽한 현실성이면서, 또한 매우 적극적인 소유, 즉 기아와 추위와 질병과 범죄와 굴종과 어리석음 따위의 모든 비인간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의 소유이다.”(마르크스, <신성가족>)

 

한 역사학자는 마르크스도 누구나처럼 독창적 천재 이런 게 아니라, 앞선 사상가와 이론들을 누구보다 잘 배우고 베낀 사람이었다고 했다. 위의 문구도 어디선가 가져온 것일 수 있다. 암튼 영화 기생충을 보니 위의 문구처럼 가난이 범죄를 낳는다는 측면 등은 보였다.

 

그러나 나머지 많은 측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여성 캐릭터 묘사의 진부함과 일면성을 떠나 많은 인물들이 그러했다. 부와 권력이 인성을 다리미로 펴준다? 그것도 썩 동의는 안 갔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당당하고 영악하고 전혀 기죽지 않은 모습들이 가장 낯설었다.

 

가난은 사람을 한없이 주눅들게, 소심하게 만드는 것 같은데. 이런 타자화가 덜하고 사건의 개연성이 더 많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론 얼마전 개봉한 배심원들이 더 좋았다. 물론 이런 개인적 취향과 선호는 다 다를 수 밖에 없고, 기생충이 계급과 양극화에 대한 우화이며 블랙코미디라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점에서는 개인적으론 작년에 나온 쏘리 투 보더 유’(Sorry to Bother You)가 더 웃기고 좋았다. 이 영화 또한 계급과 양극화에 대한 우화인데, 근미래를 배경으로 불안정 노동, 저항과 파업, 파업 파괴 등을 보여 준다.

 

텔레마케팅 회사에 취업한 흑인 주인공이 첨엔 죽을 쑤다가, ‘백인남자말투를 쓰면서부터 놀라운 실적을 올리기 시작한다는 설정도 재밌었다. 계급과 인종에 대한 이런 교차적 관점은 워리프리라는 대기업이 몰래 약물주사로 모든 노동자를 말 인간으로 만들어 노예노동시키며 번창해간다는 풍자로 나간다.

 

가장 웃긴 부분은 주인공이 방송에 출현해 그런 더러운 비밀을 고발한 후에 벌어지는 일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언론, 여론에 대한 냉소적 풍자의 절정이다. 막바지에 추가적 에피소드로 등장하는 말 인간과 새로운 계급투쟁의 역설도 상당히 웃프다. 자본주의가 노동력을 착취하는 과정은 자신의 무덤을 파는 과정이라는 비유처럼 보인다.

 

이 영화를 만든 부츠 라일리는 힙합 가수이자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라고 말하고 다니는데, 단지 그의 급진적 세계관이 이런 영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엥겔스는 보수적 왕당파인 발자크가 현실의 본질을 깊이 고찰하고 예술적으로 재현하려 한 것이 낳은 성과를 칭찬하며 리얼리즘의 승리라고 했다. 거대문화자본-멀티플렉스-천만영화들의 물결 속에 그런 고민과 성찰이 담긴 영화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기는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기도.

 

요즘 한국사회에서 반지하와 옥탑방에 가장 많이 사는 사람들 중 하나는 바로 이주민과 다문화가정 등인데 이들이 주역으로 등장하는 영화들은 사실 별로 없다. 대부분 이들은 악역이나 범죄자로 등장한다.(심지어 여성주의적 관점이라는 걸캅스에서 마저) 이런 게으르고 위험한 상상력들은 언제 봐도 실망스럽다.



(기사 등록 20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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