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레닌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언 버철(Ian Birchall)
번역 서범진

 

 

이 글의 원문은 이 곳에 있다. 클릭


[<Socialist Review> 편집자 주]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지난 2<소셜리스트 리뷰>에 쓴 글[이 글의 번역본인 "레닌주의는 끝났는가?"는 이 곳(클릭)에서 읽을 수 있다]을 통해 레닌주의의 유효성이 다했다는 주장에 의문을 던졌다. 이 글에서 필자는 알렉스가 질문은 던졌으되 답은 충분히 제공하지 못했다고 논평한다.

 

많은 <소셜리스트 리뷰>의 독자들은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기사 레닌주의는 끝났는가?”(20132월호에 수록)에 많은 부분 동의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재앙에서 어떤 탈출구도 제공하지 못하는 개혁주의의 무능력함, 혁명정당의 주도 하에 이뤄지는 노동 게급 혁명의 필요성, 볼세비키 혁명과 특히 레닌에 대한 방어 등등.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SWP, 특히 토니 클리프의 기여에 의해 발전된 여러 주장 등을 반복했다.

 

그러나 알렉스의 논의는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 그는 SWP의 정당 모델이 레닌의 주도 하에서 10월 혁명을 이끌었던 혁명 정당의 방식과 같다고 우리에게 주장한다. 그러나 클리프의 레닌 전기에서도 자세히 다뤄져 있듯이, 볼세비키가 채택한 조직 방식은 객관적 상황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변화했다. <무엇을 할 것인가?>이든 다른 어떤 사용자 설명서든 간에, 특정하게 틀 지워진 레닌주의 정당모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볼세비키는 혁명적 상황이 발생할 때까지 계속 소수였다, 그들은 가장 전투적인 부위로서 스스로를 규정했다, 그들은 개혁주의와 싸웠다. …… 이 모든 진술들은 기본적으로 사실이지만, 사실 답하기 어려운 많은 질문거리들을 남긴다.

 

알렉스도 지적했듯이, 볼세비즘은 매우 유연했다. 그러나 이것이 곧 볼세비키가 채택한 여러 당 모델들이 오늘날 세계의 매우 다양한 요구들에 잘 들어맞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매우 일반적인 차원에서, 2013년에 레닌주의자로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알렉스는 이 질문을 던지지만, 이에 대해 답하지는 않는다. 그는 끊임없는 창조적인 [이론/실천의] 갱신이 필요하다고 단언하면서도, 정작 그런 갱신이 어디서부터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1922, 그의 코민테른 마지막 연설에서 레닌은 이렇게 주장했다. “[조직 문제에 대한] 계획안은 지나칠 정도로 러시아적입니다. 이것은 러시아의 경험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국의 동지들에게는 이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지요. ... 외국의 동지들은 러시아의 경험의 일부를 분명 배워야만 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 배워야하는지는, 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대의원들에게 강조했다. “그들이 진정으로 혁명적 과업의 내용과 수단, 구조, 조직 문제 등을 이해하려면, 연구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일까? “레닌주의자란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 나는 (그리고 아마 레닌도) 이 말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출발점이지, 답은 아닌 것이다



 

냉전 속의 탄생

 

러시아 혁명 이후 수년 동안에는, “볼셰비키가 러시아에서 한 것처럼 하라, 그러면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이 충분히 그럴 듯하게 이야기될 수 있었다. 독일 혁명의 실패는 어느 정도는 독일에 볼셰비키 같은 혁명 정당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로써 설명될 수 있었다. 그러나 1945년 이후부터는 볼셰비키를 모방해 1917년을 재현한다는 희망이 더 이상 실행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것은 레닌의 유산을 이어받으려는 이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실이었고, 우리 정치 경향은 [이러한] 트로츠키 운동 안에서의 혼란 속에서 태동했다.

 

냉전은 더 복잡한 문제를 야기했다. 서구에서 레닌은 인간의 형상을 한 악마였고 스탈린의 아버지였다. 스탈린주의자들에게 레닌은 일종의 종교적 권위를 가진 인물이 되었다. 아주 작은 혁명적인 소수는 수세적인 입장에서 종종 문제를 과도하게 단순화했다. , 레닌 치하에서는 모든 것이 잘 돌아갔지만, 갑작스런 스탈린의 출현과 함께 모두 엉망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클리프의 레닌 전기는 이런 식의 방어에 대한 훌륭한 반박이었다. 클리프는 1917년 이후의 코민테른과 러시아의 상황에 대해 충격적인 비판을 수행했다. 더 최근에 와서는, Lars T Lih의 저작이 (비판의 여지는 있으나) 우리의 레닌에 대한 이해를 더욱 진전시켜 주었다. 그리고 Pierre Broué코민테른의 역사-바라건대 빨리 영어 번역판이 나오길 바란다-초기부터 존재한 코민테른 내의 모순과 복잡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시 우리의 생각을 점검해보고 연구를 해봐야 할 주제들이 상당히 많다. 이런 저작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골치 아픈 문제들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과연 [하나의 교의로서] “레닌주의라는 것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 같은 것 말이다.

 

역사는 혁명가들에게 아주 큰 중요성을 갖는다. 1789년의 프랑스 혁명가들은 그들이 로마 공화주의 전통을 재현한다고 생각했다. 볼세비키들은 프랑스 혁명과 파리꼬뮌의 전통을 참고했다. 만일 우리가 노동자 계급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 믿음은 어떤 논리적 추론 과정에 기재고 있는 것이 아니라(때때로 헝가리의 마르크스주의자 게오르그 루카치가 암시하는 것처럼) 과거 노동계급의 역사적 성취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전에 노동계급이 한 일이라면, 그들은 이것을 다시 재현할 수 있을 것이고 심지어 더 잘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1848년 혁명, 파리꼬뮌, 1905년 러시아 혁명, 1936년 스페인 혁명, 1956년 헝가리 혁명, 1968년 프랑스 혁명, 1974~75년의 포르투갈 혁명, 그리고 다른 수많은 사건들은 우리가 반드시 배우고 계승해 나가야할 전통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1917년과 그 이후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는 특히 그래야할 가치가 있다. 알렉스가 이야기했듯이, 그것은 최초의 그리고 여전히 역사에서 유일한 노동자 혁명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레닌은 레닌주의자였을까?

 

혁명적 시기 동안 레닌이라는 인물은 조직자로써 만큼이나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킨 이론가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혁명적 위기 시기를 겨냥해서 쓴 그의 가장 중요한 저작인 국가와 혁명(이상하게도, 알렉스는 당 조직 문제에 대해 집중하면서 레닌의 국가 이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은 매우 중요했다. 여기서 레닌은 국가를-루카치의 표현을 빌면-“계급투쟁의 무기라고 주장한다. 우리 정치 경향의 기틀을 이루는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 이론은 스탈린주의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를 국가 소유와 동일시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이것은국가와 혁명에서 직접 다루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레닌의 저작들과 함께, 우리는 그를 알고 그와 함께 일했던 이들이 남긴 문헌들을 연구해야 한다. 예컨대 알프레드 로즈머의 <레닌의 모스크바>라던가, 빅토르 세르주의 회고록, 그리고 가장 주목할만한 저작인 클라라 체트킨의 <레닌에 대한 회상>[각주:1] 등 말이다. 이 저작들은 레닌이 복잡한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위대한 스승이었고 동시에 노동계급으로부터 배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언제 강경해지고 언제 회유해야 하는지, 어떤 때에 분열이 필요하고 반대로 어떻게 힘을 합쳐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분열이 훨씬 더 쉬워진 이후로, 레닌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많은 이들은 일반적으로 이 분열문제에 대해서 [과도하게] 주목해왔다.)

 

레닌과 191710월 혁명을 방어한다는 것은 21세기의 사회주의자들에게 필수적인 작업이다. 하나의 논리적 체계로서 레닌주의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아닌지-특히 당 조직 문제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다. “레닌주의라는 단어는 오직 레닌의 죽음 이후에야 광범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단어는 코멘테른에 소속된 여러 나라의 당을 하나의 조직적 모델로 통일하고자 했던, 그레고리 지노비에프의 볼세비키화 정책실시화 함께 비로소 사용되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최고 수작으로 꼽히는 <칼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에서 알렉스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이 말을 인용한다. “내가 아는 전부는 내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레닌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과연 없을지 의문이다. “나는 레닌주의자가 아니다.” 라고.

 

당 조직 문제와 관련한 토론에서 알렉스는 민주적 중앙집중제를 강조한다. 그의 논의는 물론 설득력이 있다. 그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 결정 방식, 전원 합의에 의존하는 방식을 거부했는데 이 점은 옳다. 이런 모델 뿐 아니라 사실 우리는 노동당 같은 당 모델도 거부한다. 오웬 존스 등이 비판해왔듯이, 이런 모델은 대안적 정책을 제안하는 데에서는 광범한 자유가 있지만, 실천적 측면에서 보면 실질적으로 당이 하는 일에 영향력을 행사할 어떤 방법도 없다.

 

그러나 민주적 중앙집중주의는 실상 많은 것을 뜻하며, 많은 것들이 그 이름으로 행해졌다. “민주적 중앙집중주의레닌주의의 핵심이라는 말은 매우 의심쩍다. Lars T Lih가 최근에 지적한 것처럼, 그 모델은 레닌 이전에 멘세비키들이 먼저 고안해낸 것이었다.[각주:2] 

 

알렉스는 우리가 적용하고 있는민주적 중앙집중주의의 두 가지 측면을 강조한다.

 

첫째, “결정은 충분한 토론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다수결에 의해 한번 결정된 것은 모든 당원에게 구속력을 가져야 한다.” 내가 보기에 이 이야기는 진실이기는 하지만, 부분적으로만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투표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결말을 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혁명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형식적으로] 표결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토론에서 이기는 것이다. 클리프가 공장 지회에 대한 팜플렛에서 썼듯이, “당연히 우리는 열 명 노동자 모임에서 일곱 명의 지지를 얻어 IS 다수파가 되는 것보다, 모임에 온 5백 명 노동자 중에 1백 명의 지지를 얻는 소수가 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는 노동조합 운동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당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에게는 친숙한 풍경이 있다. 당신은 당신의 지회에서 어떤 집회에 참가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 결정은 대체로 만장일치로 통과된다. 그러나 정작 집회에 가보면 당신만이 유일한 참석자다. 그 결과 당신은 미친 듯이 당신과 함께 다른 쪽 현수막 막대를 들어줄 한 명을 찾아 해매야 한다. 당신은 표결에서는 이겼으되, 토론에서는 이긴 것이 아닌 것이다.

 

당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노조 선거에서 후보 이씨를 지지하냐 후보 김씨를 지지하냐와 같은 문제에 관해 당 내에 이견이 있다고 해보자. 동지들 사이에 의견 통일이 되지 않는다. 토론을 하고, 그에 따라 투표를 한다. 김씨를 지지하기로 다수결로 결정을 했다. 이제 이씨를 지지하고자 했던 이들은 규율에 따라야 한다. 그 동지들은 이견을 표현하지 않고 노조 모임에서 결정에 따라 투표했고 리플릿도 나눠줬다. 그러나 만일 그 동지들이 여전히 이씨를 지지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정이라고 믿고 있다면, 그들은 캠페인을 한다고 해도 그들의 작업장 동료, 노조 동지들 속에서 진정으로 열정적이고 설득력 있게 김씨 지지를 호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오로지 정치적으로 설득되었을 때만 김씨 지지에 열의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단지 투표에서 졌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닌 것이다.

 

혁명적 확신

 

변혁적 정치는 확신에 달려있다. 동지들은 단지 투표로 결정했다고 해서 새벽 6시에 비가 오는 와중에 신문을 팔러 나가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 신문의 내용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그리고 신문과 조직에 대한 자부심이 있을 때 비로소 그렇게 한다.

 

더 높은 판돈이 걸린 상황에서, 이는 더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노조 선거는 단기간의 전술적 문제다. 그러나 혁명적 조직은 훨씬 더 많은 선택들에 직면한다. 19174월에 레닌은 러시아로 돌아갔고, 당의 주류적 견해에 맞서 소비에트가 권력을 잡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어진 논쟁에서 그를 지지한 볼세비키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투표를 하고 있었다. 군사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다수의 표결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당원들 다수의 확신을 통해서만 결행될 수 있었다.

 

이것이 실천적으로 의미하는 무엇일까? 표결에서 이기길 원하는 지도부는 가능한 많은 협의회에 지도부 친화적 인물들이 [다수] 참석할 수 있도록 조직할 것이고, 반대파의 논쟁할 권리를 제한할 것이며, 그럼으로써 논쟁에 많은 관련되지 않은 많은 당원들이 [괜시리] 혼란스러워할 필요가 없게끔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반면,] 토론에서 승리하기 위한 지도부는 협의회에서 가능한 많은 시간과 장소를 반대파의 주장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공할 것이고, 협의회 진행위원들이 중립을 지키도록 할 것이며, 반대파의 가장 훌륭한 논자들이 토론에 나설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것은 어떤 자유주의적 도덕 원리에서 공평성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토론에서 상대를 승복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토론에서 이기고자 하는 지도부는 그들의 입장과 소수파를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렇게 할 것이다.

 

하강기 국면 논쟁

 

이런 접근의 좋은 사례는 바로 SWP에서 1979년부터 1982년에 걸쳐 장기간 동안 이뤄진 하강기에 대한 논쟁이었다. 이 논쟁은 평조합원 조직과 여성의 소리폐간(이 문제에 대한 더 상세한 설명은 내가 쓴 토니 클리프 전기의 10장을 참조하길 바란다)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논쟁은 긴 시간 동안 계속 됐다. 그 당시에는 이 토론을 한 번의 투표를 통해 중단시키려는 시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토론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와 다른 여러 사안에 대해서는 정치적 결정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좋은 동지들을 잃었지만, 상대적으로 그들은 소수였다. 이것은 당시 지도부가 자신들이 토론에서 승리할 때까지 이를 지속할 수 있는 충분한 자신감과 인내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렉스가 강조하는 민주적 중앙집중주의의 두 번째 측면으로 넘어가보자. “지도부는 연례 협의회에서 직접 선출되고 책임성을 갖는다. 강력한 정치적 지도부는 우리 당의 활동에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점도 물론 진실이다. 누구도 지도력 약화를 요구하는 분파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진술 역시 많은 의문점을 남긴다. 강력한 지도부란 무엇일까? 분명 이것이 과도하게 규율에 의존하는 지도부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이 많은 동지들은 아마 노동자 혁명당의 지도자였던 게리 힐리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당 안에서] 제명이나 사임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모든 변절자들은 우리 당을 더 강하게 만든다.” 이 논리는 우리 모두에게 으스스한 경고로 다가온다.

 

레닌의 권위가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지는 분명하다. 1917년에 수 천명의 볼세비키 당원들과 그 동조자들은 레닌 편으로 돌아섰다. 그들은 레닌이 어떤 일을 해왔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닌은 어려운 시기에 당의 단결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고, 더 중요하게는 1905년에 소비에트가 등장한 상황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912년에 일간 <프라우다>를 창간해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의 이런 전력은 그가 논쟁을 할 때마다 언제나 큰 힘이 되어주었다. 바로 그 덕에 1917, 레닌은 처음에는 당에서, 나중에는 노동계급에 대해서 벌인 논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된 것이었다.

 

SWP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신용은 여기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스가 우리 자신의 전력을 방어하려고 하는 것은 일정 부분 이상 옳다. “우리 체급 이상의 펀치를 날릴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렇다. SWP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나의 경우는 50년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런 자부심을 느낄만한 많은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영국 극우세력들이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처럼 활개치지 못하도록 하는 일에 공헌한) 반 나치 동맹이 발족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비록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을 멈추지는 못했지만, 이란과 시리아로의 확전을 막는 데는 기여했다고 볼 수 있는) 반전 운동을 건설하는 과정에서도 그랬다. 그리고 그 외에도 수백 건 이상의 그보다 작은 운동과 투쟁들에서도 우리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기간 동안] SWP 지도부는 다른 의미에서 강했다. 그들은 자신의 방향을 전환하는 데 있어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1984~85년 광부 파업과 인두세 폐지 운동에서 우리는 일종의 종파주의적 입장-지도부는 공식적으로 이에 대해 해명했지만-이에 대해 공식적인 을 취했다. 두 경우 모두에서 지도부는 자신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었고, 그 결과 우리는 두 투쟁 모두에서 아주 유의미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축적된 경험

 

그러나 지도력은 상속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은 우리로부터 1968년 이래로 새로운 세기의 초입까지 당을 지탱해온 핵심 지도부들을 앗아갔다. 지도력이라는 것이 선거에만 의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만일 지도부보다 더 많은 경험이 당원들에게 축적되어 있다면, 지도부는 당원들로부터 배워야하며, 그 경험을 끌어와야 한다. 알렉스가 올바르게 말한 것처럼, 지도부는 책임성을 가져야 한다. 만일 실수를 저질렀다면, 혹은 당의 약점을 방관했다면 그 점을 정직하고 공개적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그리고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강해"져야 한다. 이것이 나와 알렉스가 모두 열망하는 "끊임없는 창조적 갱신" 작업의 전제 조건이다.

 

191710월 혁명과 레닌의 유산을 지키는 일을 계속하자.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현재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다는 것을 직시하자. 허풍을 치지도정신승리에 빠지지도 말고 말이다. 클리프가 말했듯이, "우리가 맑스의 어깨 위에 올라있다면 우리는 더 멀리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맑스의 어깨 위에 올라 눈을 감는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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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http://www.marxists.org/archive/zetkin/1924/reminiscences-of-lenin.htm [본문으로]
  2. 2.http://johnriddell.wordpress.com/2013/04/14/fortunes-of-a-formula-from-democratic-centralism-to-democratic-centralism [본문으로]
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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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Л 2014.11.06 08: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자분께서 노력을 기울여주셔서 좋은 번역 잘 봤습니다. ^^ 다음은 몇 가지 제언입니다. 1. "레닌은 레닌주의자였을까?" 절의 두 번째 문단에서 "분열이 훨씬 더 쉬워진 이후로"는 "분열이 (단결보다)훨씬 더 쉽기 때문에" 정도로 번역한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Since가 인과로 쓰이는 것 같아요. 2. "민주적 중앙집중제(또는 주의)"는 "민주집중제"로 번역하는 편이 더 간결하지 않을까요? 3. Conviction은 "신념"이 조금 더 정확한 것 같습니다. X, Y를 "이 씨, 김 씨"로 번역하신 부분은 재밌네요. 배우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