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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국가, 사람을 죽인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12. 4.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한 달 전의 일인가요? 트럼프가 "이슬람 국가"의 지도자 알바그다디의 "작전 중의 자폭"을 웃으면서 발표했습니다. 그 때도 그렇고, 지난 번에 오바마가 빈라덴을 죽였다는 발표를 했을 때도 그렇고, 제가 느낀 것은 어떤 충격과 이루 말할 수 없는 마음의 불편함이랄까, 이런 것이었습니다. 일단 그 경위가 어떻고 어떤 사람이든간에 우리와 '동류'인 인간의 죽음에 대해 경사처럼 이야기할 때에 느껴지는 그 경망함과 폭력성은 불편해도 너무 불편했습니다. 상대가 누구든간에 그를 살인해놓고 자화자찬하는 모습 보기가 너무나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살인을 자랑 삼아 이야기하는 그 태도도 그렇지만, 이런 "정적 제거"의 법적인 지위가 도대체 무엇인지 저로서 전혀 분명하지 않습니다.

 

대개는 전시에 교전국의 제복 입고 저항 포기를 표시하지 않는, 부상하지 않은 군인에 한해서는 교전 중의 사살은 '합법'으로 인정됩니다. 그런데 "아슬람 국가""알카에다"를 국가 내지 교전단체로 인정하지도 않은 미국은, 도대체 어떤 법적인 근거로 그 지도자를 살인하는 것이죠? 그 지도자가 민간인이고 미국이 그 지도자에게 테러리즘 등의 혐의를 적용시키고자 했다면, 체포한 뒤에 현지 당국에 넘겨 재판하는 게 법리입니다. 알바그다디나 빈라덴이 어떤 인간이든간에 그들도 원칙상 법절차와 변호 등의 만인이 누려야 하는 법익을 상실해야 할 근거는 없지요.

데테러전이 만약 법치국가 이상 포기의 명분이 된다면, 그 순간에는 대테러전을 선포한 미국이야말로 커다란, 전지구적 규모의 테러단체가 됩니다. 글쎄, 모르긴 몰라도 타국 영토에서 어떤 타국 국적 내지 무국적의 민간인을 지목하여 그 어떤 법 절차 없이도 그저 현장 살인하는 것은 교전 행위가 아니고 테러행위라고 볼 여지는 아주 큽니다. 그런데 문제는, 국가에 의한 타국 영토에서의 무법 살인은 인제 주요 국가 사이에 점차 '유행'이 돼간다는 점입니다. 물론 "초강대국"인 만큼 미국은 이 업종(?)에서는 단독 1위입니다.

 

2006년 이후 미국이 파키스탄의 영토에서만 무인기를 통해 죽인 "테러 혐의자와 부속 희생자"25백명 이상이 되고 그 중에서는 적어도 160명의 아동도 포함돼 있습니다. 개중에 미국의 장교들이 봐도 "테러리스트"로 보이지 않는 갓난아이, 젖먹이 아이들도 수십 명이 포함돼 있고요. 그런데 미국은 살인업 대국이라 해도 그 업종도 경쟁적이긴 합니다. 이스라엘 같으면 팔레스타인 저항(인티파다) 시절인 2002~2008년간 387명의 팔리스타인 민간인들을 죽였습니다. 그 중에서는 234명은 지목 받은 "표적"들이었고 나머지는... "부속 희생자", 즉 이스라엘 군이나 안보기관이 봐도 아무런 죄과도 없는 아랍인들이었죠.

 

아이들도 그 중의 상당수고요. 러시아는 전세계적으로 과거 체첸 무장 독립 운동의 관계자들을 사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예컨대 20198월말에 독일, 백림(베를린)의 모아비트 지구의 공원에서 체첸 투쟁 유경력자인 젤림칸 칸고쉬빌리가 러시아 안보기관의 자객으로 추정되는 한 러시아 남성에 의해 사살됐습니다. 백주대낮에요. 이런 일은 거의 매년 일어나고 보통 언론의 주목도 잘 끌지 않습니다. 미국, 이스라엘, 러시아와 같은 커다란 "살인 공장"에 비하면 어쩌다가 수십년만에 한 번 김정남 암살 같은 일을 벌일 정도가 되는 북조선은 거의 '수공업'에 불과합니다.

 

국가에 의한 국제 살인은 이미 거의 일상화, "정상화"된 셈입니다. 사우디가 작년에 왕실의 비판자인 카쇼기를 이스탄불에서 토막살인했다고 헤서 무역 내지 투자 차원에서는 불이익이라도 받은 게 하나 있나요? 러시아는 지속적으로 이스탄불에서 체첸 투쟁 유경력자들을 살인해왔지만 (마지막으로는 3년 전에 유명한 게릴라 지고자인 압둘와키드 에델기례예프를 거기에서 백주대낮에 거리에서 사살했죠), 뭐 터키와의 외교관계상으로는 문제 된 일도 없었죠. 그리고 특히 이슬람 계통의 운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와 같은 미국, 이스라엘, 러시아의 "공장식 살인업", 이슬람 계통 소수자들에 대한 다른 국가들의 야만적인 행각도 보다 쉽게 가능하게 합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러시아가 벌이는, 1년에 수십명에서 수백명의 목숨을 하등의 절차도 없이 빼앗는 국제 암살전을 배경으로 하면 중국이 신강성에서 벌인 백만 명 이상 위구르족의 "집중배훈학교에서의 훈련"(무법 수용소 입소 및 강압적인 "교화 재교육")은 거의 "온건 노선"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지금 중국이 취하는 조치에 대해서는 이슬람 세계에서마저도 거의 비판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는 파키스탄 같은 나라에서는 이미 미국보다 중국의 비중이 훨씬 크니까요. 암살전에 이어 수백만 명 단위의 강제 수용소 입소도 "정상화"되면 우리 세계는 도대체 어디로 향할까요? 아우슈비츠가 어떻게 가능해졌는지, 오늘날에 이루어지는 야만의 "정상화" 과정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전세계에서는 반란의 물결이 거세게 일어납니다. 유럽의 불란서("노란 조끼")부터 중동의 레바논, 극동의 향항(홍콩), 남미의 첼레와 콜럼비아, 볼리비아에서는 "광장"이 폭발되고 있습니다. 대대적인 공황을 앞둔 위기의 세계인만큼 당연한 일이지요. 그런데 만약에 국가 폭력, 국가적 암살이나 무법 수용의 "정상화"가 계속 지속되면 앞으로는 여러 국가들이 "반테러" 전술을 얼마든지 길거리의 시위자들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과두 재벌과 관벌의 무법 독재에 반대자들이 무더기로 희생되고 노골적인 폭력이 지배하고 있는 젝 런던의 <강철 군화>(1908)와 같은 세계가 현실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국가적 살인, 국가적인 무법 체포, 수용에 지금부터 비판적인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국가적 야만을 미리 막지 못하면 나중에 늦을 것입니다. 그때 가서는 후회해도 소용 없을 것입니다....


 

 (기사 등록 2019.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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