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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자본주의가 왜 여태까지 생존해왔는가?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0. 11. 3.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역사를 하는 입장에서 옛날 책이나 잡지, 신문들을 읽어야 하는데, 그걸 읽으면서 한 가지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사실 자본주의가 지난 100년 동안 계속해서 '사망 진단'을 받아 온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의 '머지 않은 붕괴'를 예측하는 것은 지난 세기의 하나의 지성계 경향이었던 것이죠. 그럴 만도 했습니다. 세계 대전의 도살이나 미국 전체 근로 인구의 4분의 1이 실업자가 돼 그 중의 상당수가 영양 섭취하는 데에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했던 대공황, 아니면 1968년 세계 혁명의 열정을 목격한 사람들은, '이러고도' 자본주의가 계속 살아남을 것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세기의 모든 도살, 위기, 공황, 그리고 혁명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근본'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총자본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주류 정당들이 의회주의 시스템에서 서로 경쟁하는 사이에 자본주들이 배당금이나 지대를 챙기고, 노동을 팔아야 하는 사람들은 그 규모가 침체되거나 자본 수익보다 훨씬 더 느리게 느는 임금을 받는 것입니다. 1914년 이전 사회의 기본 구조는, '극단의 세기'가 지나고 나서도 지금도 그대로죠.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제1차 대전을 목격했던 상당수 지식인들은, 기존 시스템의 지속이 전후 불가능하리라고 봤습니다. 버트란 러셀이나 허버트 웰쓰는 전후 세계 '개조'를 논하곤 했는데, 그 '개조'는 생산 시설의 사회화와 국제 협력, 즉 민족 국가 초극을 의미했습니다 (조선의 <개벽>지 같은 데에서 이야기하곤 했던 '세계 개조'는 그 영향입니다). 부하린은 1915년에 '국가 자본주의'라는 단어 조합을 처음 만들어 놓았습니다. 세계 대전 참전국들이 하나 같이 국가화된 계획 경제, 국가적 분배 시스템을 도입하는 걸 본 부하린은, 이거야말로 산업 세계의 미래로고 내다 봤습니다. 


세계 지성계의 예상대로,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1917년부터 세계 혁명의 물결이 지구를 덮었습니다. 조선의 3.1운동을 포함해서 1917년부터 1923년까지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는 크고 작은 반란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몇 년 간의 '화산 폭발' 이후는 상황은 안정되고 말았습니다. 부하린 등을 그 지도부로 한, 가장 생명력이 질긴 러시아 혁명은, 정치적으로는 처음에 이긴 것처럼 보였지만, 경제적으로 패배했습니다. 레닌이 1921년에 신경제 정책을 실행하면서 그의 후배 부하린이 만든 개념인 '국가 자본주의'를 사용했습니다. 


집권 정당의 이름과 무관하게 국가가 경제를 총괄하면서 자본 축적의 과정을 총지휘하는 시스템이 (무국가 사회인) '사회주의'와 다르다는 점을, 진짜 맑시스트이었던 레닌이나 부하린이 알았던 거죠. 스탈린이 집권해 소련 지도부의 '사회주의적' 이념 지향마저도 실질적으로 거의 퇴색하게 되는 사이 서방 자본주의는 그 정치적 생존의 방식으로 '민중의 포섭'을 택했습니다. 1918~1946년 사이에 주요 서방 국가에서 노동자와 여성들이 투표권을 부여 받음으로써 최초로 명실상부한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투쟁을 해도 의회주의 시스템 안에서 투쟁하라는 건 지배층의 그들에게의 요구이었습니다. 이 요구는 대체로 관철됐습니다. 


그런데 대중은 정치적으로 포섭돼도 경제적으로 여전히 '소비자'의 대열에 포섭되지 못했습니다. 일부 고임금 노동자 이외 대부분 노동자의 소비는 생존 유지의 수준에 가끼웠습니다. 이 상황을 바꾸고 대부분 (정규직, 백인) 노동자들을 경제적으로 포섭하게 만든 건 전후 호황, 즉 1945~73년의 자본주의 황금기이었습니다. 1960~70년대의 가장 예리한 좌파의 분석가인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1972년의 <반혁명과 반란>에서 적어도 부유한 나라의 노동 계급의 '혁명성'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일부의 잉여 가치를 복지 혜택이나 상대적 고임금을 통해 '돌려 받게' 된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체제에 포섭된 반면 이 체제의 존립을 장기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게 바로 (인간이 아닌) 자연에 대한 착취, 즉 이윤 창출 논리에 의한 생태계 파괴라는 걸 마르쿠제가 맑시스트들 중에서 선구적으로 인지한 겁니다. 이외엔 가시적인 '체제의 반대자'로 나선 것은, 마르쿠제 자신을 주된 이념가로 한 1968년 혁명의 주역, 즉 젊은이/학생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오늘날 한국 대학과 거의 비슷한) 서방 대학 시스템의 거의 중세적 권위주의에 신음했으며 강제 징병을 당해 베트남 같은 데에 가서 제3세계인을 살인해야 하는 현실에 저항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항의도 이 시스템은 일부분 수용했습니다. 대학가의 권위주의는 다소 누그러졌으며, 1970~2010년대 대부분 서방 열강에서 징병제가 폐지됐습니다. 제3세계 인민들을 도살하는 일은 이 시스템은 당연히 (!) 계속 하지만, 이를 경제적 징병을 당한, 즉 돈이 없어서 고용 살인자가 돼야 하는 직업 군인들이 하는 이상 노동자들을 포함한 서방의 주류 사회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정치적 포섭 (보통 선거권), 경제적 포섭 (복지 국가, 상대적 고임금), 문화적 포섭 (탈권위주의, 양성 평등 정책, 소수자 역차별 정책 등)... 이런저런 포섭책으로 제1차 세계 대전 직후에 꼭 망할 것 같았던 이 체제는 지금까지 살아 온 것입니다. 한 종류의 포섭책에 한계가 드러나면, 또 다른 종류의 포섭이 시작됩니다. 예컨대 전후 호황이 1973년에 끝나고 상당수 노동자들의 상대적 빈곤화가 시작되고, 급기야 2008년 위기 이후에 서구 주요 국가에서 대중적 빈곤, 워킹 푸어 문제 등이 심각하게 제기되자 이 체제가 꺼낸 (해법 아닌) '해법'은 바로 공격적 민족주의의 부활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몰락을 겪는 영국 노동자들의 분노는 브렉시트로 흡수되고, 상당수 미국 소도시 백인 노동자들의 분노는 트럼프 지지로 흡수됐습니다. 지금 프랑스 같으면 모든 (!) 좌파 정당보다는 극우 <국민 전선>당이 단독적으로 얻는 노동자 표들은 훨씬 더 많습니다. 대체로 산업 노동자들의 절반 정도가 극우주의자들을 찍어주죠. 경제적 포섭이 한계를 드러내면 민족/국민적 '집단의 광기'를 통한 정치적 포섭이 또 그 모습을 더 확연히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은 도대체 언제까지 이 지구를 괴롭히고 있을 것일까요? 저는 이 시스템의 생존이 인류의 크나큰 불행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체제의 적응력이 엄청나고 앞으로도 당분간 달라지는 상황에 계속 적응해 가면서 잉여 가치를 수취하고 재생산하는 일에 종사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환경 문제가 심각해지면 '녹색 기술 투자' 등을 과시함으로써 또 녹색 물결을 탈 수도 있는 것이고, 미국에서 정말 내전이라도 벌어지면 또 그 기회를 타서 자본 유통의 중심으로서의 (뉴욕이 아닌) 런던이나 취리히, 프랑크푸르트, 상해, 동경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커질 것입니다. 


결국 다른 위기들을 다 경제, 정치적 자본을 벌 기회로 이용해도, 아마도 이 시스템이 내재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딱 한 가지 위기는 바로 기후 위기입니다. 기후 위기의 차원에서는, 궁극적으로 지구에서의 문명의 생존과 자본제의 생존은 공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그건 '궁극', 즉 100~150년 정도의 미래 지향적 시야죠. 이 '궁극'의 차원을 이해하여 자본주의에 맞서는 포스트/탈자본주의 지향의 젊은 인태리, 위킹푸어, 일부 노동자 등의 연합이 일찌감치 형성돼 어느 정도 힘을 얻으면 어쩌면 자본제와 함께 지구가 궁극적으로 망해버리는 일을 미리 예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이와 같은, 폭넓은 탈자본주의적 연합의 형성을 통한 '지구 구하기'야말로 앞으로의 좌파의 과제라고 보죠.   


(기사 등록 202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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