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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러시아 - 무장반란의 극적 분출은 무엇을 보여 줬는가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3. 6. 27.

전지윤 

이번에 우크라이나의 최전선에서 전쟁을 수행하다가 러시아 정부로 총부리를 거꾸로 돌려서 모스크바로 진격하며 무장 정변을 시도했던 바그너 용병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바로 몇 달 전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엘리트층의 자녀들이 해 아래서 엉덩이를 흔들고 있는 가운데 일반 러시아인들은 계속 자녀들을 함석으로 만든 관에 넣게 된다면, 이런 불균형은 1917년처럼 결국 혁명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먼저 군인들이 들고일어나고, 이어 그들이 사랑하는 이들이 나설 것이다.”

러시아 역사에 관심이 있던 많은 이들이 이 말을 보고 러-일 전쟁, 1차 세계대전 등 전쟁의 실패와 지지부진이 혁명을 낳았던 러시아의 오랜 전통을 떠올린 것은 자연스러웠다. 결국, 이번에도 전쟁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장기화하는 와중에 반란을 선언한 용병그룹이 군사기지와 도시를 점령하며 수도로 진격을 시도하고, 중앙정부는 이것을 반역”, “치명적 위협으로 규정하며 진압하려고 하는 대혼란이 벌어졌다.

이 사태의 실마리가 지난 1년간 진행하다가 러시아의 승리로 끝났다고 알려진 바흐무트 공방전에서 비롯됐다고 볼 많은 흔적들이 존재한다. 바흐무트 지역에서 점령을 유지하려는 바그너 그룹과 탈환하려는 우크라이나군의 공방은 고기 분쇄기라고 불릴 정도로 피비린내 나는 과정이었다. 양쪽 모두 10만여 명이 죽었다고 한다.

이 속에서 특히 사상자가 많았던 바그너 그룹의 불만은 커진 것으로 보인다. ‘푸틴의 사냥개’, ‘푸틴의 후계자라고 불렸던 프리고진은 우크라이나 전쟁뿐 아니라 시리아나 리비아 등에서 벌어진 각종 전쟁과 내전에서 푸틴을 위해 온갖 더럽고 잔혹한 살육을 수행한 하수인이었다. 그랬던 그가 바흐무트 공방전의 어느 순간부터 푸틴과 군 수뇌부에 대한 노골적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특히 자신의 부하들이 무의미한 전쟁에서 계속 죽어 나가는 상황에 대한 불만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지난해 연말에 그는 말했다. “여기서 나는 수백 명의 전사를 잃었다. 만족해하는 할아버지는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약 그가 멍청이로 드러난다면, 이 나라와 우리의 아이들, 손자들은 어떻게 되고 이 전쟁은 어떻게 이길 수 있겠나?”

몇 달 후에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특별군사작전이 시작됐나. 전쟁은 수많은 개자식들이 자기를 홍보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다.” 심지어 그는 우크라이나에 나치는 없었고 젤렌스키 정부는 나토에 가입할 생각도 없었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이것은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핵심 명분을 정면 부정하는 주장이었다.

여기에는 자기 부하들이 정규군을 대신해 죽어가고 가장 큰 전공을 세우고 있지만 그만큼 보상과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업적 계산이 있을 것이다. 이런 불만들과 전쟁 수행 방식과 군사전략, 주도권에 대한 이견이 상층 엘리트들 간의 숨겨진 갈등과 다툼으로 발전하다가 극적으로 폭발했다. 이것은 푸틴이 주로 의존했던 전략이 낳은 모순이기도 하다.

푸틴은 별다른 정당성이 없는 이 전쟁에서 기대했던 개전 초기의 속전속결에 실패했다. 우크라이나는 쉽게 굴복하지 않고 서방의 지원을 받으며 저항을 지속했다. 그러자 푸틴 정부는 병사들의 목숨을 계속 갈아 넣는 방식(인해전술)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병사가 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씩 죽어가는 속에서 오랜 시간이 지날수록 우크라이나의 물자와 병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서방의 지원도 벽에 다다를 것이라고 본 것이다.

두 나라의 국력과 인구수가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는 상황에서 이것은 필승을 보장하는 합리적전략으로 보였다. 문제는 그렇게 총알받이가 되는 병사들과 그 가족들에게는 그것이 결코 합리적일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그들의 대다수는 러시아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청년들과 변두리 지역의 가난한 청년들, 소수민족 출신들이었다. 특히 바그너 용병그룹은 아예 미래의 희망이 없는 극빈층과 수감자, 전과자들로 부대를 구성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

이것은 병역거부와 해외 도피만이 아니라 러시아 군대 내부에서 사기 저하와 명령 불복종, 탈영의 증가 낳았고, 푸틴은 도망치는 병사들을 사살하는 독전부대를 꾸렸다는 증언들이 이어졌다. 이 상황은 베트남 전쟁이 뒤로 갈수록 미국 군대 내부에서 벌어진 일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상황에 대해 반전운동가 출신의 급진적 지식인 조나선 닐은 이렇게 지적한다.(<미국의 베트남 전쟁>, 책갈피)

“베트남으로 가게 된 병사들은 부자와 권력자들의 자식이 아니었다. 베트남에 파병된 병사들에게 베트남 주둔은 국내에서 당하던 억압의 완결이었고 아마도 그 억압들 중에서 최악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행하는 살육과 잔혹한 행위가 자신들이 받고있는 억압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푸틴 이후를 노리는 프리고진은 이번에 이것을 명분으로 내세워 우리 젊은이들과 군인들의 생명을 앗아간 사람들을 비난하며 무장 반란을 시도했다. 이것은 전쟁이 러시아 자본주의와 과두지배 카르텔 내부에 어떤 균열을 낳고 있는지도 보여 준다. 러시아 자본주의는 특히 푸틴 시대에 들어서서 공공 자원과 자산을 국가와 결탁한 엘리트들이 약탈하고 사유화하는 구조로 운영돼 왔다.

대재벌, 부패한 관료, 정치적 자본가들은 과두지배 체제를 유지해 왔고 다국적 기업과 합작 투자를 통해서 수익을 늘려 왔다. 하지만 전쟁의 장기화는 자본과 수출 시장은 물론 해외 투자, 다국적 기업과의 협력 감소, 서방의 제재로 인해 상당한 개인적 손실들을 낳고 있다. 장기적 이익에 대한 기대보다 단기적 손해에 대한 압박이 커지며 과두지배체제 내부에서 파열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국가기구 내부에서 군사적 충돌까지 낳게 된 것이다. 이것이 심각한 이유는 바그너 그룹은 단순한 용병이 아니라 국가기관, 군수기업, 밀수업자, 국제 암시장 네트워크와 연결돼서 물류, 공급, 전투 작전을 처리하는 군사적 준국가기구였고 푸틴의 핵심병기였기 때문이다. 군부, 정보기관, 용병그룹을 경쟁시키며 서로 견제하게 하던 푸틴의 지배방식은 흔들렸다.

물론 이것은 하루 만에 일단 중단됐다. 결정적인 충돌이나 방해 없이 순식간에 모스크바 턱밑까지 진격하던 바그너 그룹은 벨라루스의 독재자 루카센코의 중재안을 받아들이며 진격을 중단하고 복귀하기 시작했다. “가혹한 대응과 처벌을 말하던 푸틴은 누구도 처벌하지 않고 용서하겠다며 꼬리를 감추고 있다.

이러한 봉합은 프리고진이 푸틴을 직접 겨냥하는 게 아니라 국방장관과 참모총장을 지목하며 교체를 요구하던 처음부터 예견됐다고 볼 수 있다. 바그너 그룹은 정부를 대체할 목적과 준비가 돼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러시아 내부에서 푸틴의 지지율은 여전히 높은 편이고, 공동의 적인 서방 강대국들에게 선물을 주면서까지 내부 다툼을 우선할 정도까지는 지배카르텔 내부의 균열이 커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사태가 낳은 후폭풍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 첫째, 러시아 병사들은 우리가 왜 고향을 떠나 멀리 우크라이나 땅에 와서 이런 살육과 파괴를 하며 총알받이로 죽어가야 하는지 더욱더 이해할 수 없게 됐다. 러시아 군대와 병사들 속에서 사기 저하와 불복종, 탈영, 상관 살해 등이 나타나거나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둘째, 러시아 과두지배체제의 엘리트들 사이에서 서로에 대한 불만, 갈등은 더욱더 증폭될 수 있다. 누가 제2의 프리고진이 될 것인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고, 푸틴 이후를 꿈꾸는 세력은 다음번에는 더 철저한 준비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며 고민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셋째, ‘스트롱맨푸틴의 위신은 크게 구겨지고 말았다. 이번에 바그너 그룹이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과정에서 푸틴을 위해 목숨을 걸고 그것을 막아서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일부 부대와 병사들이 길을 비켜준 것으로 보인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푸틴은 절친인 벨라루스 독재자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거래를 통해 가까스로 프리고진과 정면충돌을 막았고, ‘무장반역자를 처벌하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넷째.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은(사실은 어느 정도 중국도) 그럴듯한 명분 뒤에서 오로지 이 전쟁을 이용해 자신들의 패권과 이익, 군사블럭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지만 계산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푸틴의 오랜 파트너였던 다국적 기업들은 지금도 우회적 거래망은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이번 대반격이 실패하면 적당히 지원을 줄이면서 휴전’(우크라이나의 영토 포기)을 강요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계산은 더 복잡해지게 됐다. 물론 러시아와 푸틴의 위기와 쇠퇴는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 나토(NATO)를 강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서방 강대국들의 제국주의와 패권주의에 대한 아픈 경험과 기억을 가진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일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책임은 전쟁을 일으켜서 폭격과 살상을 불러온 푸틴 정부에게 있는 것이지, 강대국의 침략에 저항해 온 우크라이나 민중에게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인과 결과, 피해와 가해를 구분하는 것은 항상 중요하다.

다섯째. 가장 중요하게는 이번 사태는 러시아 내부에서 전쟁과 푸틴 정부에 반대하던 시민들에게 큰 명분과 자신감을 줄 것이다. 지독한 탄압에 고립되고 가로막혔던 이들은 이제 더욱더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거리로 나설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침략과 전쟁에 고통받아 온 우크라이나 민중에게 준 기대와 자신감이다. 이들은 푸틴이 결코 흔들리지 않는 독재자라는 신화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이제 이 요인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면서 우크라이나를 무대로 전개되고 있는 전쟁을 어디로 끌고 갈 것인지는 더욱 분석하고 예측하기가 어렵게 됐다. 바로 얼마 전까지 사람들의 관심은 우크라이나 군대가 시작한 대반격이 과연 얼마나 성공적일 수 있을지에 쏠려 있었다. 아무리 서방의 지원을 받더라도 러시아의 군사력과 대규모 병력을 물리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을 위협하는 더 큰 요인은 다른 곳에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기사 등록 2023.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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