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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인류가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는 이것을 막아야 한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3. 10. 14.

전지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가자지구를 폭격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을 집단처형하던 이스라엘 군대가 이제 곧 지상군을 투입한다고 한다. 이것은 지상전이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군사력을 과시해 온 이스라엘 군대가 가자지구로 들어서면 일방적인 인종청소와 대량학살이 벌어질 뿐이다. 팔레스타인은 전투기나 탱크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서방언론에 따르더라도 이미 1012일 현재 팔레스타인 사망자 규모는 1500여명을 넘어섰다. 이것도 비슷한 규모로 추산되는 하마스 전투원들을 뺀 수치이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사망한 이스라엘 사망자 1200여명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네타냐후 정부는 이스라엘 사람 1명이 죽으면 팔레스타인 사람 10명을 죽인다는 그동안의 관행과 법칙을 반드시 지키려는 듯이 야만적 보복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것을 뒷받침한 것은 먼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비인간화하는 일이었다. 이스라엘의 갈란트 국방장관은 하마스를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라며 우리는 동물과 싸우고 있으며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도 하마스는 순수하고 완전한 악이라며 했다. 전 유엔대사이자 공화당 대선후보 중 하나인 니키 헤일리도 "그들을 끝장내버려야 한다고 힘을 보탰다.

이러한 비인간화는 모든 대량 학살과 전쟁 범죄에 항상 뒤따르는 것이다. 그래야 지금 저기서 피 흘리고 울부짖으며 죽어가는 것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고 생명이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양심의 가책을 덜면서 살인면허를 받은듯 부담없이 방아쇠를 당기고, 폭탄을 떨어트릴 수 있다. 쌓여가는 시체더미에 죄책감이 아니라 승리감을 느끼게 된다.

더구나 극우 파시스트라고 비판받아온 이스라엘 스모트리히 재무장관은 인질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마스에 잡혀 있는 이스라엘 인질들의 생명을 걱정하며 폭격과 지상군 투입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 군대는 가자지구의 건물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이라며 폭격을 시작했다.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통행을 금지시키고 전기·가스·수도·식량의 공급을 차단하면서 5일 동안에만 2450여곳에 맹폭격을 가했다. 그래서 1500여명이 사망하고 30만여 명이 집을 잃었다. 이미 주민의 3/4이 난민 상태였던 가자지구에서, 유엔에 따르면 새롭게 33만여명이 난민이 됐다. 그러면 이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하마스를 증오하며 이스라엘의 말을 듣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을까?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새롭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증오하며 하마스에 들어갈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의 평화로운 비폭력 시위조차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이스라엘의 대응이 오히려 이번에 하마스의 폭력적 공격을 낳았듯이 말이다. 이것은 다시 사법 개악으로 국내적 비판과 정치 위기에 직면해 있던 네타냐후 정부가 화살을 외부로 돌릴 수 있게 해줬다.

네타냐후 정부는 하마스의 폭력을 핑계로 지금의 대량학살을 정당화하고 있다. 하마스의 민간인 살상을 지지한다는 오해를 살까봐 주춤하게 되면서, 팔레스타인의 저항에 연대하는 국제적 목소리도 과거보다는 커지지 못하고 있다. 네타냐후 정부가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유도한 게 아닌가라는 음모론까지 제기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느 나라의 어떤 저항운동도 그렇듯이 팔레스타인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저항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마치 일제 강점기의 조선에도 외교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 총독부 요인 암살에 주력하던 세력, 무장 투쟁을 중시하던 세력, 노동자 파업과 농민 쟁의를 건설하던 세력이 있었듯이 말이다.

더구나 일본의 보통 시민들을 살상하는 방식은 지지받기 어려웠다. 지금 상황과 흔히 비교되는 구정공세도 민간인이 아니라 베트남에 주둔한 미군에 대한 공격이었다. 팔레스타인에도 하마스같은 이슬람원리주의만이 아니라 세속적 좌파가 존재한다. 이런 좌파들의 목소리와 성장을 지지해온 제4인터내셔널 집행위원회는 최근 이런 입장을 발표했다.

”우리가 하마스의 전략과 전술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이 방식으로는 점령을 종식시키고 폭력을 끝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팔레스타인 대중의 집단적 저항과 이스라엘 내부의 연대, 국제적 연대의 지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실제로 1987~88년의 팔레스타인 1차 인티파다(민중항쟁)2000년의 2차 인티파다가 이스라엘을 위협했던 것은 그것이 거대한 민중항쟁과 광범한 국제연대의 형태로 발전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 국제적인 BDS(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반대하는 보이콧, 투자철회, 제재 요구) 운동은 더욱 중요해졌다.

무엇보다, 지금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지금 펼쳐지고 있는 이스라엘 정부와 군대의 피의 보복, 무자비한 폭격, 임박한 지상군 투입과 대량학살에 반대해서 즉각 중단을 요구하는 국제적인 항의의 목소리와 행동들이다. 그것은 이란, 헤즈볼라 등의 개입을 낳으면 전쟁의 확산과 국제적 대재앙까지 부를 수 있다.

미국 민주당의 민주적사회주의자 오카시오 코르테스 의원은 "인류가 위기에 처해 있다. 가자지구의 거의 절반이 어린이다. 우리는 이것을 막아야 한다"고 절박하게 호소했다. 이스라엘은 모든 보복과 폭격과 학살을 당장 중단하라!

이 힘든 시기에 나오미 클라인의 말이 옳다

이스라엘이 무자비한 폭격으로 가자지구를 초토화시키고 있고 곧 지상군까지 투입한다는 지금, 하루 하루가 피가 마르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사태는 네타냐후 정부가 자초한 것일 뿐이다. 좌파나 반제국주의와는 거리가 먼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리리조차 네타냐후 연정은 지금까지 최악이었고, 메시아적 광신자들과 파렴치한 기회주의자들의 동맹이라며 오랜 기간에 걸친 그런 행태로 인해 이스라엘에 재앙이 덮쳤다고 지적했다.

물론 지금 사태의 책임이 네타냐후 정부에게 있고, 군사적 보복을 결사 반대애고 막아야 한다는 것이 곧 일부 사람들(예컨대 노동자연대’)처럼 하마스의 잘못을 모른 척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 점에서 신자유주의와 기후 위기 등에 맞서온 저명한 작가이며 사회운동가인 나오미 클라인이 최근 <가디언>에 쓴 글은 정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일부 좌파들이 이스라엘 민간인의 희생을 축소하고 심지어 축하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태도는 비유대인 세계는 유대인을 증오한다는 신념을 뒷받침해주기에 시오니즘 강경파에게 선물과도 같다. 심지어 좌파조차도 우리의 살인자들을 편들고 이스라엘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유대인 어린이와 노인들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반인종주의자나 반파시스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조차 유대인들의 죽음을 축하할 때, 시오니즘 강경파의 주장은 힘을 얻는다. 그 힘을 약화시킬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연대, 인종과 종교를 넘는 휴머니즘, 반유대주의와 모든 혐오에 대한 격렬한 반대, 누구의 총이든 누구의 아이든 언제나 총보다 아이의 편에 서는 국제적 좌파, 윤리적으로 일관성있는 좌파, 일관성을 점령자와 피점령자 사이의 동등성으로 착각하지 않는 좌파, 사랑이다. 이 힘든 시기에 나는 그런 좌파의 일부가 되고 싶다.”(나오미 클라인)

하마스를 비판하며 이스라엘의 피의 보복을 반대해야 한다

내가 성폭력 피해자들을 괴롭히지 말라고 비판하자 5천만원 손배소송을 걸고 내 통장까지 압류해버린 노동자연대’(노연)가 이번 이스라엘 사태에 대한 입장을 내고 집회를 조직하면서 <조선일보>의 공격을 받았다. 경찰은 이 집회의 행진도 불허했다고 한다.

먼저 나는 <조선일보>와 윤석열 경찰에 맞서서 노연을 방어하고 싶다. ‘피해자들과 나를 괴롭힌 미운 단체이니 공격받아도 싸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가자지구 폭격에 반대하는 주장은 타당하고, 노연도 당연히 집회와 행진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

더구나 지금 <조선일보>의 비난은 마녀사냥의 요소도 있다. ‘통합진보당에 참여한 극좌단체라며 낙인찍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종북'이라는 낙인이다. <조선일보>는 노연이 민간인 학살을 옹호했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그런 비판을 할 자격이 없다. 그 전에 자신들이 과거에 전두환을 찬양하며 광주학살을 옹호하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옹호하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을 옹호했던 과거부터 반성하고 입을 열어야 한다.

다만, 나는 노연의 입장도 동의할 수 없다. 노연은 참혹한 민간인 희생과 고통을 낳은 이번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커다란 군사적 성과’, ‘역사를 다시 쓴 자부심을 느낄 일’, 심지어 한 방 먹인 것을 기뻐하자고 말하고 있다.

20년 전에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노연의 태도는 이렇지 않았다. 희생된 민간인과 생명들을 슬퍼하면서 미국의 '피의 보복과 전쟁 선포'를 반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들의 자매조직인 영국 SWP(사회주의노동자당)의 잘못된 입장을 그대로 번역하기만 하고 있다.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과 독자적 판단없이, 그저 영국의 입장을 따라가고 정해진 공식을 암기하면서 이런 오류가 나왔다고 보인다. 더구나 이런 내용으로 집회와 행진을 한다면서, 주체와 명의도 없는 웹자보를 만들어서 곳곳에 홍보했다.

성폭력 사건으로 비판을 받아왔기에 자신들의 이름을 숨기는게 사람들을 모으는데 더 효과적이라고 본 것 같다. 실제로 어제 노연이 주최한 집회에는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팔레스타인인 등이 대거 참가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저 자신들 깃발과 피켓 아래 많은 사람을 모으면 최고라고 보는게 아니라면 이런 정직하지 않은 방식은 잘못이다.

오류를 반성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든가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집회를 조직하고 평가를 받는게 맞다. 집회를 조직하면서 스스로 이름도 떳떳이 밝히지 않는 좌파는 정당하지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희생을 함께 슬퍼하며 더 이상의 희생을 반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문제의 원인은 이스라엘의 점령과 폭격에 있고, 따라서 지금 네타냐후의 무자비한 보복 폭격과 '지상전'은 더 큰 재앙을 낳을 뿐이며 절대로 막아야 한다는 입장과 행동이다. 그런 입장에서 더 폭넓은 단체들이 함께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스라엘에서 최악의 '교훈'만 끌어내는 윤석열 정부

한반도는 중동과 함께 세계의 화약고 중 하나다. 따라서 이번 하마스의 기습 공격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보복을 보면서, 이것이 한반도의 우리에게 보여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지만, 그 중에서 윤석열 정부와 <조선일보>가 보여주는 반응은 최악이다.

그 어리석음이 낳을 재앙이 그려져서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이번에도 앞장선 것은 <조선일보>이다. <조선일보>이번 중동 분쟁을 계기로 대북 방어 태세를 전반적으로 재점검하고 9·19 합의 역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적대행위를 중지하자고 만든 합의를 없애자는 말이다. 그러자 윤석열 정부가 즉각 화답을 하고 나섰다. 전쟁광적 극우익 뉴라이트인 신원식 국장방관은 최대한 빨리 9·19 남북군사합의의 효력 정지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아마도 윤석열 정부와 <조선일보>는 또다시 평화를 원하다면 힘을 키우고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뻔한 소리를 반복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이스라엘에서 벌어진 사태는. 그러한 윤석열 정부나 <조선일보>의 주장들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것인지를 낱낱이 보여 줬다.

첫째, 윤석열 정부와 <조선일보>북한 미사일을 공중에서 탐지·요격하는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시스템을 구축해서 북한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KAMD 시스템의 모델인 이스라엘의 아이언돔은 이번에 무용지물이 됐다.

둘째, 윤석열 정부와 <조선일보>강력한 한미동맹과 한미일 동맹이 북한을 포위하며 우리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을 위해서 강제징용 피해자도 외면하고, 일본의 핵오염수 방류도 눈감아 줬다. 하지만 한미동맹보다 더 오래되고 강력했던 미국-이스라엘의 동맹도 이번 비극을 막지 못했다.

셋째, 윤석열은 북한 미사일에 대해서 선제 타격 말고는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미 수년 전부터 하마스와 테러리스트들의 기반을 제거한다며 가자지구에 대한 선제 공격과 폭격을 지속해 왔지만, 이번 재앙을 낳은 씨앗이 됐을 뿐이다.

넷째, 윤석열은 최근 북한이 핵을 사용할 경우 한미동맹의 압도적 대응을 통해 북한 정권을 종식시킬 것이라고 했다. 지금, 이미 수천 명의 시민들이 죽고 다치고 나서 이스라엘 정부가 피의 보복으로 하마스 제거를 다짐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 사용으로 즉각적으로 사망할 수십만 명의 생명들에게 그 어떤 복수도 의미가 없다. 지금의 참혹한 상황은 정의가 없으면 평화가 없다는 것과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어떠한 민족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진실을 다시 확인해 주고 있다.

영국의 팔레스타인의 정의를 바라는 유대인들’(Jews for Justice for Palestinians) 단체가 최근 올린 글에서 한 이스라엘 시민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강제 수용소에 200만 명을 가두고 수시로 폭탄을 터뜨려 수천 명을 죽인다면 언젠가는 화산이 폭발할 것이고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은 우리가 항상 알고 있던 사실이다.”

이 시민은 또 이스라엘 군대는 시민들이 죽어갈 때 구하러 오지 않았다고 한탄하면서 "인질이 있든 말든 가자지구를 쓸어버리자"고 하는 네타냐후 정부를 비판했다. 이어서 아랍인들이 무기로만 대화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에만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라고 다같이 성찰할 것을 제안했다.

이런 목소리가 이스라엘 곳곳에서 더 많이 울려퍼지길 기대한다. 동시에 윤석열 정부의 무모한 발언과 정책 속에 불이 붙고 있는 남북간의 적대적 대결이 결국 어느 순간에 군사적 충돌로 폭발할지 모른다는 걱정, 우리도 뒤늦은 이런 후회와 반성을 하게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상상 속에서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피의 보복에 대한 선동을 멈춰야 한다

이번에 하마스가 막강한 이스라엘의 정보력과 군사력을 뚫고서 커다란 군사적 성과를 거두었고 역사를 다시 썼다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전혀 공감하지 못하겠다. 서로를 증오하며 죽고 죽이는 재앙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슬픔과 절망뿐이다.

물론 하마스가 보여준 폭력은 이스라엘의 점령과 억압이라는 뿌리에서 나온 비극적 열매이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들에게 무차별로 총격을 하고 납치를 하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 군대의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무차별 총격과 구속이 있었다.

하마스가 축제을 즐기던 이스라엘 시민들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결혼식과 장례식을 하던 팔레스타인 시민들을 폭격하던 이스라엘 군대가 있었다. 팔레스타인 시민들을 내쫓고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는 것 자체가 유엔도 인정한 불법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고 물, 음식, 전기까지 가로막고 괴롭혀 왔다. 팔레스타인의 어린이 22%5살이 되기 전에 사망하고 유아 사망률은 이스라엘보다 7배나 높다. 이스라엘과 싸우다가 죽은 팔레스타인인의 대다수가 9~20살이었다.

서안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스라엘과 협상을 통해서 가자지구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스라엘은 약속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지난해 팔레스타인 민중은 전국적인 총파업을 벌이며 맞섰지만 이스라엘과 국제사회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모든 평화적 수단과 비폭력 저항들이 실패한 자리에 오늘같은 폭력적 저항이 최후의 수단으로 등장하게 된 것 자체가 너무나 참담한 일이다. 물론, 지금 바이든 정부나 윤석열 정부와 <조선일보>가 이스라엘을 편들며 하마스만 비난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다.

이들은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공격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자위권)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왜 그동안 이스라엘의 점령과 폭격에 맞서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자위권은 무시해 온 것인가? 민간인 거주지역을 폭격하고 파괴하며 어린이들까지 학살하는 것이 자위권인가?

결국, 이들이 러시아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한 것은 순전히 이해타산 때문이었다는 고백이다. 강대국의 침략, 점령, 학살에 맞서서 약소 민족과 국가의 저항할 권리와 자결권을 지지한다는 말은 순전한 거짓말이었던 셈이다.(물론 거꾸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면서 러시아의 침략도 지지하거나 양비론을 펴는 일부 좌파들도 스스로의 모순을 직시해야 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신나치와 테러리스트가 있다는 이유로 침략과 폭격을 정당화했듯이, 지금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을 모두 테러리스트라고 매도하고 있다. 그러나 중동과 이슬람 전문가인 이희수 교수는 지난 2008년 이후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죽은 팔레스타인 사람과 반대로 하마스의 테러로 죽은 이스라엘 사람을 비교하면 95:5라고 지적했다.

이 상황에서 과연 누가 누구를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 오페르 카시프Ofer Cassif 의원의 주장이 옳다. 그는 하마스의 공격으로 내 친구도 죽었지만, 이제는 재앙을 낳는 가자지구 점령을 끝내야 한다. 그것이 이스라엘인들도 해방시킬 것이다라고 했다.

정말 보기드문 용기있는 목소리이다. 이런 목소리가 이스라엘 곳곳에서 더 많이 울려퍼지길 기대한다.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도 이스라엘의 군사적 보복을 지지하고 지원할 것이 아니라, 지금 대지진이 일어나서 수천명이 사망했는데 탈레반의 나라라고 낙인찍혀서 국제적 구호와 지원도 거의 없다는 아프가니스탄을 돕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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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 202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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