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 본질은 대선공작이 아니라 뉴스타파 마녀사냥
“대선 판에 영향을 끼치려 했던 중대범죄 행위, 즉 국기문란 행위”(이동관), “없애버려야 한다. 패가망신시켜야 한다.”(장제원) 검찰과 족벌언론과 기득권 우파의 3각 공조가 엄청난 속도와 활력으로 폭발하고 있다. 다시 한번 이 나라 기득권 카르텔의 기획력, 정보력, 순발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쩜 이렇게 기막힌 타이밍과 프레임을 집어내는지 혀를 내두르겠다.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이 돈을 받고 김만배와 허위 인터뷰를 하고, 이 가짜뉴스를 <뉴스타파>가 대선 3일 전에 터트렸고, 좌파 언론들이 그것을 받아썼고, 민주당이 윤석열 공격에 이용했다. 이 모든 것은 철저히 기획된 대선 정치공작’이라는 게 저들의 주장과 프레임이다.
이 협공을 통해서 저들은 1석 3조, 4조, 5조를 노리고 있다. 먼저 후쿠시마 오염수나 홍범도 논란 속에 따가워진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했다. 검찰 특활비 등을 터트리며 최고의 눈엣가시와 같던 <뉴스타파>에 치명적 타격을 가할 수 있게 됐다. 폐간까지는 못시켜도 포털 퇴출은 가능해 보인다.(오늘날 뉴스 소비의 80%는 포털에서 이뤄진다.)
대장동 특검의 힘을 빼거나 망칠 수 있는 카드도 얻었다. 안그래도 검찰이 매달려 온 유동규의 진술 신빙성이 무너지면서 탈출구가 필요했던 상황이었으니 얼마나 만족스러울까. 너무나 복잡해서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던 대장동 게이트를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어지럽게 만든 것도 소득으로 볼 것이다.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신학림 전 위원장은 명백히 잘못했다는 점이다. ‘김만배와 사적 만남과 대화를 보도 목적으로 기획해서 녹음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보 가치가 커서 공유하게 됐다, 재벌-언론 혼맥지도책을 판 것은 별 개의 일이었다, 기득권 카르텔의 실체를 드러내는 그 책에 들인 노력과 그 값어치는 결코 낮지 않다’ 등의 변명은 받아들일 수 없다.
실제로, 아직 국힘의 대선 후보가 정해지지도 않았던 시점에 대선 구도를 미리 예상하고 기획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당시에 대장동은 막 시작된 이슈였다. 나중에 대선 최대 쟁점으로, 김만배가 그 핵심 인물로 부상한 상황에서 그 자료를 덮기는 어려웠을 수 있다. 하지만, 김만배에게 책을 판 순간, 그것은 활용이 불가능한 오염된 정보가 됐다.
따라서 신위원장이 그것을 <뉴스타파>에 넘긴 것도, 돈거래를 밝히지 않은 것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이 용납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잘못인 이유는 첫째, 언론개혁 운동의 구성원으로서 이러한 저널리즘의 기본적 원칙을 몰랐을 리가 없다는 점에 있다. 둘째, 정치검찰과 족벌언론의 극단적 이중잣대도 몰랐을 리 없다는 점에 있다.
족벌언론들은 무슨 책값이 1억5천이냐고 놀란 척 하지만, 윤석열이 보훈장관으로 임명한 박민식 전검사가 1년만에 50억 수임료를 번 것에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윤석열이 대법관으로 임명한 권영준 교수가 로펌에 63건의 의견서를 써주고 18억을 받은 것도 문제삼지 않았다. 사실 발행부수 조작과 부풀리기로 국가보조금 46억과 정부 광고 76억을 받은 조선일보는 책값 부풀리기를 욕할 처지가 아니다.
지금 신학림을 문제삼는 검찰과 언론은 <조선일보> 논설의원이 화천대유 고문으로 1억2천을 받은 것은 어떤 의문도, 보도도, 수사도 않고 있다. 김수남 전검찰총장이 화천대유 고문으로서 ‘50억 클럽’에 일원인 점이나, 정영학 녹취록에 나오는 김만배가 수억에 달하는 술값과 골프비용으로 접대했다는 검사, 판사, 기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검찰과 족벌언론의 논리대로면 여기서도 돈거래를 통한 가짜뉴스 보도와 받아쓰기, 정치권과 연계된 정치적 기획과 공작을 충분히 의심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대선을 앞두고 <동아일보>가 ‘정영학 녹취록에 등장하는 그 분은 바로 이재명’이라고 보도하고, 족벌언론과 주류언론 대부분이 그것을 베껴쓴 일이 있었다.
그렇게 이재명은 대장동의 “그 분”이 됐고 대선은 윤석열이 이겼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밝혀진 것은 정영학 녹취록에 “그 분”은 등장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검찰과 족벌언론이 이런 것들을 문제삼거나 취재나 보도, 수사할 리는 없다. 대신에 지난 2년 동안 검찰과 언론이 한 일은 끝없는 압수수색, 소환조사, 받아쓰기 속에 대장동을 더욱 더 복잡하고 어지러운 문제로 만들면서 이재명을 엮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2년간 300번 넘게 압수수색을 하고 주변을 탈탈 털고도 이재명에게 간 돈을 한푼도 찾아내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정치검찰과 족벌언론이 공들여 만들어낸 ‘대장동 주범은 이재명’이라는 프레임과 고정관념은 흔들리고 있다. 무리하게 급조한 탓인지 유동규의 진술도 오락가락하고 뼈대가 무너지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결국 거리를 두던 정의당도 동의하면서 대장동 특검법안도 통과된 상황이다. 정치검찰은 뒤늦게 고위검사와 언론인들로 구성된 ‘50억 클럽’에 대한 수사에 나서면서 윤석열의 큰형님 격인 박영수 특검까지 구속했다. 지금의 특수부 검사들이 사실 박영수 사단의 직계후배들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코너에 몰린 검찰의 처지를 보여 준다.
이 시점에 신학림과 김만배의 돈거래를 빌미로 뉴스타파 마녀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검찰이 흘리고 족벌언론이 앞장서자 대부분의 언론들의 받아쓰기 속에 뉴스타파는 고립되고 있다. 좋은 자리와 높은 연봉도 포기하고 뉴스타파로 옮겨서 고군분투해온 봉지욱 기자는 “17대 1로 싸우는 느낌이네요”라고 했다. 물론 뉴스타파가 신학림 전위원장을 너무 믿은 것은 오류다. 하지만 나라도 그 시점이 그 정도 정보의 보도를 포기했을까 싶다.
무엇보다 나는 아쉬울 정도로 강박적으로 ‘편들기’를 거부하고 사실 보도에 매달렸던 뉴스타파의 소중했던 탐사보도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뉴스타파는 가짜뉴스를 날조하는 공산당 기관지같은 곳이고 봉지욱은 언론인도 아니다’라는 족벌언론들의 비난에 헛웃음을 넘어서, 십년 전에 먹은 라면 국물이 올라올 지경이다.
아무 흠결과 실수도 없는 마녀사냥의 희생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명백한 마녀사냥이고 나는 전적으로 뉴스타파를 믿고 응원한다. 혹시 아직도 뉴스타파를 후원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지금이 뉴스타파를 후원할 때다. https://online.mrm.or.kr/8Vs71j0
● 왼쪽 날개를 잘라버리려는 윤석열의 폭주
몇 년 전에 미국과 영국에서는 반인종주의 투쟁이 성장하면서 곳곳에서 역사적 위인들의 동상을 철거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백인우월주의, 노예제 옹호, 인디언 학대 등의 전력이 드러나면서 콜럼버스나 조지 워싱턴의 동상이 철거되기도 했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한국에서도 곳곳에 있는 박정희, 이승만, 맥아더 동상들이 대중적 투쟁 속에서 철거되는 장면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역사가 거꾸로 돌아가는 윤석열 시대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은 그 정반대 장면이다.
홍범도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고 정율성 작곡가의 추모사업들을 중단시키려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일제 강점기나 해방공간에서 좌익, 공산당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다. 여기서 작동하는 것은 모든 역사적 인물들에는 공도 있고 과도 있다는 논리가 아니다.
박정희의 친일과 독재, 이승만의 부정선거와 시위대 사살, 이건희의 노동자 탄압과 성매매 등에 대해서 지적할때마다 기득권 우파와 족벌언론들이 들고나오는 것이 ‘공7 과3론’이었지만, 좌익과 공산당 전력은 그런 식으로 저울에 놓여질 수조차 없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 대부분의 사람을 평가하고 추모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된다. 3.1운동 이후에 민족주의적 독립운동은 쇠락해 갔고 대부분의 독립운동이 사회주의(나 무정부주의)를 기반으로 전개됐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은 한국 국가의 기원과 성격이라는 문제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해방후 미군정 하에서 만들어진 한국 국가는 처음부터 경찰 국가였다. 신흥국가의 권력자들은 경찰과 서북청년단같은 우익 깡패들을 이용해 가난한 민중들을 억눌렀다.
한국 군대는 미군정 경찰을 지원하기 위한 국방경비대로부터 시작되어 일제에 충성하던 일본군, 만주군 출신들로 채워졌다. 경찰 기구는 미군정에 의해 일제 식민지 경찰이 그대로 이어져 확대 재편되면서 간부의 80퍼센트 이상이 친일파 출신이었다. 국군도 비슷했다.
이승만은 1948년에 제주도에서 3만여 명을 학살하면서 정권을 세웠다.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분할 점령과 분단 시도에 저항하는 민중 저항이 솟구치자 이승만 정부는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던 ‘치안유지법’을 그대로 복붙해서 국가보안법을 만들었다.
따라서 ‘북한과 달리 한국은 미국에서 넘어온 민주주의로 출발한 나라’라는 것은 대표적인 거짓말이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4.19혁명과 6월항쟁 등을 통해 민중이 스스로 쟁취한 것이지 미국이 가져다 준 것이 아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홍범도 흉상 철거를 “군의 정체성과 육사의 전통”에 대한 문제라고 설명한 국방부의 설명은 틀렸다고 보기 어렵다. 이것을 파고들면 기득권 우파에게 있어서 ‘국가 정체성’(윤석열식 표현으로 “국체”)에 대한 양보하기 어려운 문제가 남는다.
이것은 북한에 대한 태도와도 연결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북한 국가는 친일파에 기반해서 국가기구가 형성된 것이 아니고 항일 무장투쟁의 전통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득권 우파는 누구도 피하기 어려운 양자택일의 문제를 던진다.
‘당신은 북한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지지하느냐? 아니면 남한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지지하느냐?’ 민주사회라면 여기에는 크게 3가지 답이 가능해야 한다. 북한을 지지한다, 남한을 지지한다, 북한도 남한도 아닌 제3의 입장을 지지한다. 하지만 선택은 결코 열려있지 않다.
오로지 양자택일뿐이며 누구도 남한을 지지해야 한다는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핵을 개발한 오펜하이머의 고뇌는 멋진 영화가 되지만, 북한의 ‘국익’을 위해서 핵을 개발한 과학자의 고뇌에 대한 관심이나 공감은 결코 허용될 수도 없다.
시인 김수영이 남로당원이었다는 것이 죽고나서 한참 후에 밝혀지면 그나마 시대적 고민을 담은 낭만적 이야기가 돼지만, 오늘날 북한 체제에 우호적인 좌파는 그저 ‘종북’, ‘간첩’으로 낙인찍혀서 감옥에 갇히고 진보진영에서도 ‘손절’당하기 쉽다.
결국, 언제든 피하기 어려운 ‘십자가 밟기’ 앞에서 또다시 더러운 심정으로 말하자면, 나는 북한 체제를 지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한 체제도 지지하지 않는다. 더 민주적이고 평등하고 자유로운 체제를 원한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사회주의적 이상을 추구했던 많은 선배들이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한국전쟁 초기만해도 많은 빨치산들이 사회주의에서 민족과 계급 해방의 이상을 찾았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북한에서 권력을 세습하고 인민을 억압하는 관료 지배층과 남한에서 반제국주의와 반자본주의적 의미로 북한식 사회주의에 우호적인 사람들은 구분해야 한다고 본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 여러 문제에서 동의할 수 없는 심각한 이견들을 인정하면서도 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홍범도와 정율성을 추모할 수 없다는 논리에 반대하며, 이 분들의 공산당 전력을 오점으로 보는 것부터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은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권력과 출세보다는 이상을 지향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에 공산주의를 지향하고 공산당에 가입했다는 것은 민족해방을 넘어서 힘없고 돈없는 노동자와 농민의 편에서 더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다는 뜻이다. 물론, 그것이 실현되는 과정과 모습들은 기대와 달랐다.
동지들이 서로를 증오하고 공격하는 종파 갈등에 충격받고, 계급해방이 일당독재로 변질되는 모습에 실망하고, 전쟁과 동족상잔 속에 해방의 꿈이 악몽으로 바뀌는 것을 목격하고 좌절했을 것이다. 홍범도의 말년을 보면서 안타깝고, 주세죽 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세여자>의 막바지가 그토록 서글프게 읽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사회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라면 이런 생각을 자유롭게 드러내고 토론할 수 있아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솔직히 최근에 윤석열의 발언을 보고 좀 놀랐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하지만 오른쪽 날개는 앞으로 가려고 하고 왼쪽 날개는 뒤로 가려 한다면 그 새는 날 수 없고 떨어지게 돼 있다”는 말이었다.
이것은 사회주의에 빠져들던 초기에 ‘왼쪽 날개의 중요성과 우선성’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자주 하던 주장의 뒤집어진 버전이었기 때문이다. 부와 권력을 독점한 기득권 우파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국가에 탄압받는 소수 좌파가 이런 주장을 할 때는 그나마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기득권 우파 국가의 우두머리가 오른쪽 날개만이 정답이라고 고집하며 왼쪽 날개를 공격하면서 이런 말을 할 때는, 공존을 거부하고 이견을 말살하며 상대를 제거하려는 무기로서 그 논리의 위험성은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의 위험한 폭주를 막아야 한다.
● 윤미향 마녀사냥이 간토학살 100주기 기념인가?
윤미향 의원과 조국 교수를 마치 자기들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끌고 나올 수 있는 목에 쇠사슬을 걸어놓은 노예처럼 취급해온 족벌언론과 마녀사냥꾼들의 고질병이 또다시 도졌다. 이번에는 ‘윤미향 의원이 친북 조총련이 주최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도 행사에 참가했다’는 것이 핑계가 됐다.
족벌언론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한목소리로 이런 흙탕물을 끼얹자, 국민의힘은 그것을 이어받아서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반국가단체의 국가전복 기도행사”에 참가했다며 윤미향 의원을 공격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커녕 국민 자격도 없다”며 “즉각 의원직에서 사퇴하라”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
물론 이번에도 이것은 아무 근거도 없는 거짓 선동이고 끝없는 습관성 마녀사냥일 뿐이다. 올해는 일본 관동대지진의 대재앙이 낳은 공포 속에서 죄없는 조선인 수천 명이 학살당한 비극이 벌어진지 100년이 되는 해여서 지난해부터 이미 시만단체와 노동조합들이 주도해 ‘간토학살100주기추도사업추진위원회’가 구성돼 있었다.
윤미향 의원은 바로 이 ‘간토학살100주기추도사업추진위원회’의 초대로 일본 현지에서 열린 조선인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행사에 참가했다. 더구나 그 행사는 일본평화포럼, 도쿄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등 일본의 수많은 시민사회단체와 재일동포 단체들로 구성된 ‘간토대진재조선인희생자추도실행위원회’가 주최하는 한일 연대 행사였다.
이 실행위원회에 에 속한 수많은 단체들 중에 (조)총련도 포함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추도 행사는 학살이 벌어진 현장에서 일본의 시민사회와 재일동포들이 함께 지난 50년 동안 매년 진행해 왔다. 그래서 일본의 주요 정당과 의원들도 참가하고 주요 언론들도 보도하는 공식 행사로 자리잡았다. 이것을 ‘친북 조총련이 주최한 반국가 행사’라고 낙인찍는 것은 황당무계한 억지이다.
비판받아야 할 것은 학살이 벌어진지 100주기가 되는 날에 이런 의미있는 행사에 한국 정부나 한국의 주요 정당과 의원들이 참가하지 않은 사실이다. 윤미향 의원마저 참가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조선인 희생자와 후손들에게 대한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됐을 것이다. 물론 한국 정부와 연계된 동포단체인 민단이 따로 소규모 추모행사를 하기는 했다.
하지만, 민단은 그 행사에 윤미향 의원을 초대하지 않았다. 만약 윤미향 의원을 초대했다가는 ‘반국가 성향의 종북 인사를 초대했다’며 공격받을까봐 몸을 사린 것으로 짐작된다. 결국 또다시 시작된 윤미향 의원에 대한 습관성 마녀사냥은 그것이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를 배경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더욱 참담한 비극이다.
100년 전에 일본의 지배세력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리며 마녀사냥을 하고 집단 학살을 부추겼다. 그리고 이제 100년 후에 한국의 기득권 카르텔은 ‘윤미향이 국가전복 기도행사에 참가했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리며 마녀사냥을 하고 인격살해를 지속하고 있다. 이것이 저들이 ‘간토학살’ 100주기를 ‘기념’하는 잔인한 방식이다.
더구나 이번에 또 시작된 습관성 마녀사냥은 9월 20일로 다가오는 윤미향 의원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을 겨냥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항소심 재판부를 향해 ‘이런 종북 반국가 인사에게 면죄부를 준다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셈이다. 앞서 ‘윤핵관’ 정진석 의원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가 당했던 것에 버금갈 인신공격이 예상된다.
나아가 이번 습관성 마녀사냥에서 조선일보는 ‘윤미향의 남편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다’라는 지적만이 아니라 ‘윤미향의 보좌관이 북한 공작원과 접선한 상황을 국정원이 조사하고 있다’라는 미끼도 슬쩍 흘렸다. 항소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윤미향 의원에 대한 끝없는 마녀사냥은 억랄하고 끈질기게 계속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예고편까지 틀어준 셈이다.
근래 윤석열의 ‘공산전체주의 반국가세력과의 전쟁 선포’를 시대착오적 이념전쟁이라고 비판했던 개혁언론과 자식인,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은 이제 다같이 힘을 모아 윤미향 의원에 대한 방어와 연대로 나서야 한다. ‘종북몰이’를 반대하고 비판하다가 막상 구체적인 희생양이 나타나면 몸사리며 방관하고 선을 긋던 오류를 더 이상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 윤미향 최후진술과 ‘휘발’ 한동훈
지난주에 윤미향 의원에 대한 항소심 결심 공판과 최후진술이 있었다. 직접 가서 응원하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으로 최후진술문을 보는데 특히 두 가지 대목이 마음에 박혔다. 하나는 ‘시민운동가에서 국회의원이 되는 과정에서 입은 상처는 너무 깊고, 치른 댓가는 너무나 컸다’는 대목이었다.
정말 그 상처와 고통의 크기와 깊이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또 하나는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 전세계 곳곳의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과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정의로운 판결을 호소한다’는 부분이었다.
정말로 정의가 살아있다면 1심에서 거의 무죄가 된 윤미향 의원에게 항소심은 완전한 무죄를 내려야 마땅하다. 그리고 한국사회는 윤미향 의원에게 사과하고 피해를 회복시켜줘야 한다. 하지만 모든 게 거꾸로 돌아가는 윤석열 시대와 검찰공화국, 아직도 진행중인 거의 모든 언론의 침묵과 방관 속에서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제대로된 사회라면 윤미향 의원이야말로, 지난 4년 동안 누구보다 사회정의와 사회적 소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한 국회의원으로서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다시 공천과 출마, 당선이 돼야 할 의원으로 손꼽혀야 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런 의원들일수록 검찰과 언론의 더 심각한 공격과 시민사회의 외면 속에 만신창이가 돼 있다.
가장 기가 막히고 분노를 참을 수 없는 것은 윤마향 의원과 정대협의 20여년전 활동까지 탈탈 털어서 ‘4300원 사용 내역 영수증이 없다’, ‘1만6000원 사용 내역 영수증이 없다’며 건건히 횡령으로 기소한 검찰이 2017년부터 33개월 동안만 무려 290억원의 특활비를 사용해 놓고 영수증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업무상횡령이고, 국고손실죄고, 허위공문서 작성죄고, 기록물 무단폐기죄이지만 윤미향 의원 마녀사냥에 일치단결했던 언론들은 못본척하고 있다. 뉴스타파가 이 사실을 폭로한 이후로 한달간 22개 언론에서 이 사실을 다룬 기사는 겨우 149건에 불과했다.
윤미향 마녀사냥 때 며칠만에 수천건의 기사가 쏟아졌던 것과 비교해 보면 그 이중잣대에 화가 나서 복장이 터질 지경이다. 윤미향 의원이 1심에서 사실상 무죄를 받자 항소심에서 그것을 뒤집어야 한다는 노골적 공개 압박까지 했던 법무장관 한동훈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한동훈은 검찰의 특활비 횡령 범죄의 공범으로서 ‘오래 전의 영수증은 잉크가 휘발돼 날라갈 수 있다’며 황당한 변명까지 했다. 20여년 전의 몇천원, 몇만원 짜리 영수증도 못찾아내면 횡령죄라고 윤미향 의원을 사냥하던 자가 이런 흰소리를 하고 있다.
원래, 아무리 내가 싫어하는 부패한 우파 정치인이라도 너무 심하게 막말과 욕설로 공격하고 저주하는 것은 반대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한동훈에게 ‘휘발놈’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너무 공감이 갔다. 사실 ‘휘발놈’은 발음이 좀 요상하긴 하지만, 막말이나 욕설이라기 보다는 ‘영수증 잉크 휘발’에 대한 풍자와 해학이라고 봐야 한다.
윤석열에 따르면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한 공산전체주의자’인 나는 한동훈이 ‘휘발놈’이라는 사람들의 말에 찬성하거나 지지하지는 않지만 과학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그리고 ‘휘발’ 한동훈에게 윤미향 의원이 2017년에 올린 아래 포스팅을 한번 보라고 권하고 싶다.
2017년이면 검찰이 영수증도 없이 수십억의 특활비를 흥청망청, 엉망진창으로 퍼가던 시기인데, 이 때 윤미향 의원은 2달 동안에만 강연료로 받은 돈 300만원을 곳곳에 기부하며 이렇게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윤미향 의원의 이번 항소심 최후진술문도 읽어봐라. 물론 영수증만이 아니라 양심까지 ‘휘발’된 한동훈과 정치검사들에게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겠지만.
“저는 지난 30년 동안 결코 제 사적인 이득을 취하려고 정대협에서 일하지 않았습니다. 국회의원이 된 것도 피해자들이 다 돌아가시고 극히 일부만 살아계신 상황에서, 김복동 할머니 등 먼저 떠나신 피해자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책과 제도로 피해자들의 바라시던 인권과 평화를 이루고싶은 마음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시민운동가가 국회의원이 되는 과정에서 저와 제 가족, 제 동료들과 활동이 입은 상처는 너무 깊고, 제가 치른 댓가는 너무나 컸습니다. 제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다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남은 생애동안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베트남 한국군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손가락 걸고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콩고와 우간다, 코소보 내전의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했던 다짐을 지킬 수 있도록, 일본정부와 사회의 차별 속에서도 우리 말과 역사를 배우며 꿈을 키워가고 있는 재일조선학교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겠다고 김복동 할머니과 함께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재판부의 따스한 위로의 판결을 호소합니다.”
● 트럼프와 윤석열의 데칼코마니
엊그제 트럼프가 보석 석방되기 전에 잠시 구치소에 수감되면서 찍은 머그샷이 미국에서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다. 동시에 트럼프가 눈을 치켜뜨고 노려보는 모습을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에서 악당으로 나온 주인공들의 모습과 비교하는 사진도 인기를 끌었다.
이것은 ‘큐브릭의 응시’라고 불리는데, 큐브릭은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 <샤이닝>, <풀 메탈 자켓> 등에서 이런 식의 연기 지도와 연출기법을 통해서 폭력적이고 통제 불능인 반사회적 인물의 특징을 생생하고 섬뜩하게 표현하고는 했다.
여기에 우리는 윤석열의 난폭하고 무례한 표정을 추가할 수 있다. 자기 맘에 안드는 사람은 누구나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며 사냥감처럼 쳐다보는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특수통 검사의 전형적인 표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윤석열은 정치인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어퍼컷 세리모니 등 트럼프의 표정과 태도, 수법을 아주 의식적으로 따라해 왔다. 혐오를 선동하는 우익 포퓰리즘은 트럼프와 윤석열 모두에게서 발견되는 정치적 특징이 됐다. 이것은 갈수록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최근 트럼프는 다가오는 대선에 재출마할 것을 선언하면서 이렇게 연설했다. ”우리는 딥스테이트(심층 국가)를 무너뜨릴 것이다.... 우리는 공산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파시스트들을 쫓아낼 것이다.... 우리는 가짜뉴스 미디어를 퇴치할 것이다.... 우리는 미국을 그 어느 때보다 위대하게 만들 것이다.“ 이 연설을 최근 윤석열의 광복절 연설 등과 비교해 보자.
‘우리 정부는 이권 카르텔을 반드시 혁파할 것이다’, ‘우리는 결코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들에게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여론을 왜곡하는 가짜뉴스와 조작 선동을 근절해야 한다.’ 윤석열의 결론은 이러하다. ‘대한민국은 한미일 동맹과 함께 자유와 평화, 번영으로 나아갈 것이다.’
트럼프가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정치인이듯이, 윤석열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미국역사상 최초로 형사기소되고 체포된 전직 대통령이 됐다. 한국에서는 기소되고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워낙 많았었기에 윤석열이 최초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검찰총장으로서, 대통령으로서 그가 저지른 온갖 죄악들에 대한 심판과 처벌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기사 등록 202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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