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저는 며칠 전에 학술회의 참석차 몽골에 갔다 왔습니다. 울란바토르에서 며칠 밖에 지내지 못했지만, 그 기간 동안 여러 가지를 고민해 볼 수 있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몽골은 남쪽엔 중국, 북쪽에는 러시아에 "포위"된 나라입니다. 구매력 기준 (PPP: purchasing power parity)으로 보자면, 전세계 경제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른 중국의 1인당 총국민소득은 약 2만8천 달러 정도 되는가 하면, 러시아는 최근 '전쟁 특수' 등이 도움이 되어 아예 4만9천달러 정도입니다.
몽골은 그 절반도 안되는 2만 달러 정도인데, 몽골에는 중국이나 러시아에 없는 한 가지 중요한 사회적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민주주의'죠. 몽골의 집권당인 인민당은 1990년 민주화 이전까지 몽골을 1당지배체제로 통치했던 인민혁명당의 후신이지만, 민주화 이후에 권력 교체가 제도화되어 이 과거의 집권당은 더 이상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다원주의가 존재하는 한편, 몽골은 러시아나 중국에 비해 대외적으로 상당히 개방적인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중국, 러시아에서 VPN 없이 접근할 수 없는 페북을 몽골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으며, 표현의 자유 등은 한국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보장됩니다.
동아시아의 민주주의 국가란 결국 미국의 주니어 파트너로서, 미국이 쳐준 울타리 속에서 냉전 때의 미국의 "최전선" 차원에서 차관 공급이나 구미권 시장에의 접근 등의 사실상의 특혜를 받아온 한국과 대만 등 고소득 국가들입니다.
몽골은 중간 소득 사회이며, 한국과 달리 미국 진영에 속한 적이 없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 민주화를 이루어낸 몽골의 시민 사회, 정치 지도자들은 거의 전부 미국이 아닌 소련에서 유학을 했으며, 세계 언어 중에 주로 러어에 의존했습니다. 민주화 그 당시에는 몽골은 러시아에 비해서 지금처럼 약 2배 더 가난했습니다.
1999년에 구매력 기준으로 본 몽골의 1인당 국민 총생산은 약 3천6백 달러로, 그 당시 러시아의 60%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상대적 빈곤 속에서 몽골은 민주주의의 길로 계속 갔는가 하면, 러시아는 곧 다원적인 정치 체제 구축이라는 "실험"을 접어두고 권위주의 체제로 회귀하고 말았습니다.
몽골의 수출의 84%나 가는 주요 무역 상대국인 중국은 아예 당국가 체제를 바꾼 적도 없었습니다. 권위주의 국가 사이에 낀 중위 소득국인 몽골은 과연 어떻게 해서 이 "민주주의 보존"의 기적을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요? 저는 이를 이해하려고 몽골을 포함한 초원 지대 유목민들의 역사를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중화 사상"을 배제해도, 대개 일상적으로는 "동아시아"와 "한자 문화권" 내지 "유교 문화권"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사고한다면 만리장성 이북의 유목민 사회란 고작 "중국을 괴롭히고 빈번히 침공한", 매우 "후진적인" 사회로 보이게 되는 것이죠. 사실, 이건 유목민들의 "평정" 아니면 "교화", "기미 정책"의 대상으로 삼았던 중국 전통 왕조들의 사관과 그리 다르지 않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유목민들에게 한자 보급이 일반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유교와 좀 다른 지배 철학이 있었다고 해서 그들이 과연 그렇게까지 "후진적"이었을까요? 상나라 후기, 그리고 전국춘추시대의 전쟁의 아주 핵심적인 무기인 말이 이끄는 전차 (戰車)는, 사실 중화 왕조, 귀족들이 오늘날 몽골을 포함한 초원의 사슴돌 문화권으로부터 차용해 도입하 것이었습니다.
전차뿐만인가요? 사실 기마병으로서 없어서 안될, 없으면 승마하면서 활쏘기 하기가 힘든 등자 (鐙子) 역사 오늘날 몽골의 초원에서 처음에 나타났다가 기원전 약 2세기쯤에 한나라의 군에 차용되는 것이었습니다. 즉, "중화"가 초원의 유목민들을 "교화"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에게 끊임 없이 "학습"을 해왔던 것입니다.
참고로, 초원 지역에 철기가 들어온 것은 약 기원전 5-3세기로, 전국춘추시대의 중국보다 약간만 늦은 것이었습니다. 철기로 무장돼 있고, 철제 갑옷을 입은 흉노 제국의 창업 군주인 메테칸 (중국 사서의 冒頓單于, 재위 기원전 209-174년)은 한나라 고조의 대군을 기원전 200년에 백등 (白登, 오늘날의 산서성 대동시)에서 대패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그 후로는 흉노 제국이 한나라에 조공했다기보다는 차라리 "회친 정책"의 차원에서 한나라가 흉노제국에 정기적으로 "선물", 즉 사실상의 조공을 바쳐야 했던 것이죠.
한나라와의 빈번한 무력 충돌과 지속적인 긴장 속에서 흉노의 통일제국이 적어도 약 150년 동안, 기원전 1세기 중반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기술'뿐만 아니라 유목민 사회의 '제도'들과도 유관한 것입니다. 유목민 사회에서는 '모든' 자유민 남성은 유사시 병사이었습니다. 무기를 들 수 없었다는 것은 자유민이 아닌 천민 (노비 등)이라는 뜻이었죠.
그만큼 국가의 병사 동원 능력도 좋았지만, 동시에 무기를 든 백성들에게 국가가 잉여를 수취하는 데에 분명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흉노제국에도, 그 뒤를 이은 초원의 국가인 선비족의 국가에서도 한나라와 같은 토지세나 인두세는 없었습니다. 유목민 국가들이 호전적으로 보였던 이유 중의 하나는, 그 지배층이 전쟁을 수행해야 전리품이라는 형태의 잉여를 수취하여 그 재분배를 통해 그 권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데 동시에 세금을 내지 않고 담백질 많은 육류나 낙농 식품 위주의 음식을 섭취했던 유목민들은, 농경지대 인구에 비해서 신체 건강이 훨씬 좋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들이 보기에는 만리장성 이남의 농민들은 오히려 더 불행해 보였을 것입니다. 동시에 유목민 사회는 상당히 개방적이었습니다. 하늘 (뎅그리: 撐犁)은 최고신이었지만, 흉노제국에는 불교라는 그 당시 신흥 종교는 오히려 한나라보다 더 일찍 들어온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화기가 보편화되기 이전의 아시아 사회에서는 유목민과 비견될 만한 무력을 가진 사회란 없었습니다. 그래서 13세기에 칭기스칸이 몽골대제국의 영향권을 아예 동쪽에는 동유럽, 남쪽에는 이란, 페르시아 걸프까지 확장시킬 수 있어 유라시아 세계의 "최초의 세계화"를 이룬 것이죠. 북원 시절의 다얀칸 (达延汗, 1479-1517)까지만 해도 몽골 기마병은 명나라 군대와 싸우면서 연전연승을 하고, 북경까지 위협할 수 있었습니다.
소형 화기 (총)와 야전포 등의 기술이 훨씬 더 발전돼야 청나라의 시절인 17세기말-18세기에 청은 오늘날 몽골의 귀족들로 하여금 "번신"을 자칭하면서 책봉과 인장을 받기 위해 조공을 바치는 복속 관계를 강요하고 서부 몽골인인 준갈인들을 사실상 거의 절멸시킬 수 있었습니다 (일종의 제노사이드라고 할 1750년대의 그 사건을 準噶爾滅族이라고 합니다).
'화약 제국' (gunpowder empire)인 청과 러시아의 로마노프 제국은 유라시아 역사상 최초로 유목민들을 비교적 무력한 주변부로 전락시킬 수 있었습니다. 한데 청나라의 종속 지역인 18-19세기의 외몽골은, 청나라나 러시아 제국과 달리 중앙 집권적 국가가 아닌, 청의 책봉을 받은 귀족들이 각각 다스리는 아이막 (艾马克)과 호슌 (旗)으로 나누어져 있는, 상당히 다원적인 정치체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역사적인 다원성의 전통은, 1990년 민주화 이후에 집권당의 후신인 인민당과 그 반대자들이 권력을 공유하면서 서로를 교체해가면서 집권을 할 수 있는 민주적인 정치의 나름대로의 지속을 역사, 문화 차원에서 뒷받침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국인의 동아시아 인식이란 전통적으로 "한자 문화권"에 국한되는 측면이 강하며, 그 "한자 문화권" 바깥의 "이족"에 대한 학술적 관심도 대중적 관심도 다소 크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건륭제 시대의 청나라를 생각할 때에는 1750년대의 준갈 민족의 제노사이드보다는 일차적으로 연암 박지원 같은 이들을 압도한 그 번성함, 그 부유함부터 먼저 떠오르곤 합니다.
아마도 이런 중심/주변관은 중국 중심으로 동양사를 가르치는 방식과도 연결돼 있을 것입니다. 한데 동아시아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자면 이 "한자문화권" 바깥의 지역들에 대해서도 "주변부"라는 생각을 벗어나 보다 평등한, 주체적 행위자로, "한자문화권"과 동등한 문명으로 재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기사 등록 202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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