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지금도 하는지 모르지만, 한 때에 한국에서 남북 전쟁 발발시에 김정은과 그 측근을 제거할 의무를 받아 "참수 작전"을 벌일 특수 부대는 종종 그 "참수 작전"을 연습하곤 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2026년1월3일에 카라카스에서 본 것은 바로 전형적인 "참수 작전"에 해당됩니다. 아슬아슬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이 "참수 작전"은 표면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사실상의 베네수엘라의 영공 및 영토에 대한 불법 침략을 벌인 미군은, 약 100 여명의 쿠바 및 베네수엘라 군인들을 희생시키고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납치해 갔습니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베네수앨라전"이 성공했다는 것이란 뜻인가요?
꼭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를 통해서 본다면, "참수 작전"만을 가지고 한 나라를 제압해 식민지 내지 속국 등으로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컨대 1895년10월8일의 그 악명 높은 을미사변, 즉 일본과 그 현지 조력자들에 의한 명성황후 시해를 생각해보지요. 그 시해도 일종의 "참수 작전"이었는데, 그 시해 사건의 여파로 1896년2월11일의 아관파쳔이 이루어지고 친일내각이 붕괴됐습니다.
결국 1896년부터 1904년 러-일 전쟁의 발발 시점까지 조선에서 일제에 의한 식민화라기보다는 열강 사이의 일정한 균형, 즉 "균세"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 명성황후의 친척인 여흥 민씨들의 세도, 즉 요직 독점과 가렴주구 등에 대한 원성이 높았음에도, "국모 시해" 사건으로 그 이상으로 일본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이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한 마디로는, 미우라 고로 공사의 그 당시의 "참수 작전"은 조선의 식민화를 앞당기긴커녕 오히려 항일세력들의 성장에 일조하고, 조선에서의 친일파 통치를 일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잘 기억하는 또 하나의 "참수 작전"은 1979년12월27일의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하피줄라 아민 (1929-1979)의 궁전을 습격하여 아민 대통령을 살해한 소련군 특수부대의 소위 "카불 작전"이었습니다. 아민은 공산주의자였지만, 그 실정으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의 친소 정권이 위기에 빠진 데다 소련의 지도부는 아민의 충성심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소련 공산당 정치국은 1979년12월12일 - 한국에서 그 악명 높은 "12.12 사건"이 벌이진 바로 그 날에! - 아민을 제거하고, 그 대신에 "확실한 친소파"라고 생각했던 바브라크 카르말 (1929-1996)을 대통령으로 세우고, 아프가니스탄에 소련군을 투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 결의를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민 궁전의 근위병들이 저항을 하여 기습에 나선 소련 특무 부대 약 7백명 중에 11명이 전사했지만, 결국 그들이 아민을 죽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 결과는? 그 결과는 결국 그 뒤에 10년 동안 이어지고 소련의 국고를 탕진시키고 그 국제적 평판을 떨어뜨리고 결국 불명예스러운 철군과 궁극적인 친소 정권의 붕괴로 끝난 그 아프가니스탄 침공 (1979-89년)이었습니다. "참수"는 됐지만, 결국 아프가니스탄의 산악지대는 소련군의 "무덤"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참수"는 능사가 아니란 이야기입니다.
트럼프와 그 측근들이 지금 "세계는 궁극적으로 힘에 의해서 움직여진다"라고 "힘은 곧 정의"라는, 을미사건 시대쯤이나 유행했던 제국주의적 "명언"들을 되풀이하지만, 사실 군사력 이외에는 미국의 "힘"은 계속 빠지고 있습니다. 고율 관세는 도입됐지만, 미국에서의 산업 부흥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조업의 2025년 성장률은 2%에도 미달했으며, 제조업 고용은 아예 7만6천 명 정도로 감소된 것입니다. 고율 관세로 인해서 "미국인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트럼프의 말은 사실 거짓말로 판명됐습니다.
고율 관세를 유럽과 일본, 한국에도 강요할 수 있었지만, 중국은 저항을 해서 미국과의 무역전에서 사실상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가면 갈수록 미래 지향적 최첨단 기술 - 특히 재생에너지와 로봇 공학, 반도체 등에서는 - 에서는 중국이 추격에 성공하거나 아예 미국을 능가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제외한 각국의 금은, 외환보유고 이제 미국 국채 (23%)보다 금 (24%)의 비율이 더 높습니다. 미화와 미 국채에 대한 국제 신뢰는, 미화 약세와 트럼프의 비정상적인 정책 속에서는 아예 사라져 갑니다. 사실 미국 패권의 위기는 현재만큼 깊었던 적도 전후 역사상 없었습니다.
한데, 그나마 미국의 손에 남은 딱 하나의 "최후의 수단"은 바로 "무적 미군"입니다. 그래서 이제 미국은 베네수엘라 같은 자원 부국에 대한 침공을 벌여, 베네수엘라 자원의 강탈을 통해서 추락해가는 그 경제에 새로운 "휘발유"를 넣어려 합니다. 문제는, "참수 작전"만으로 자원 강탈이 꼭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의 방침이란, 마두로를 납치한 뒤에 그 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새 정권에 대한 살인 및 납치 협박, 그리고 해상 봉쇄 등을 통해서 베네수엘라의 목을 졸라 자원 강탈의 효과를 거둔다는 것입니다.
한데 해상 봉쇄와 살인, 납치 협박만으로 이런 목적의 달성이 가능할는지 다소 의심 가는 일입니다. 중국 등 베네수엘라 정권의 후견국들은 물론이거니와, 그 이웃 나라들인 콜롬비아나 브라질 등은, 미국에 의한 중남미 자원의 강탈을 반길 리가 없습니다. 신규 투자들이 미국이 아닌 중국에서 들어오고, 무역도 미국 이상으로 중국과 더 하는 현재 상황에서는, 미국에 대한 종속은 더이상 "개발"의 희망을 그다지 주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지역 차원의 협조 등을 통해서 베네수엘라의 새 정권은 미국의 협박에 저항하거나, 정면 저항하지 못해도 면종복배 (面從腹背) 하면서 버텨보는 전략으로 맞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이 지상군 투입할 경우, 이라크 내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악몽은 다시 살아날 것이고, 끝이 안보이는 유격전이 벌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힘이 빠져가는 괴수인 미 제국은, 이제 일대 군사주의 모험을 벌인 것입니다. 만약 이 모험에 더해 무력에 의거한 그린란드 장악 등을 벌인다면 유럽 나토 동맹국들과 되돌릴 수 없는 적대가 발생돼 사실 "서방 진영"이란 공중 분해될 것입니다. 사실 이 모든 과정은 궁극적으로 미국 패권 쇠락과 상실의 과정입니다. 단, 이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칠것, 너무나 많은 불법과 약탈, 강탈이 벌어질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주 아픕니다. 이제 가자 학살 반대 운동에 이어, 미 제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을 반대하는 국제적인 연대 운동을 벌일 때입니다.
(기사 등록 2026.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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