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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이란/ 트럼프와 ICE/ 이해찬/ 가자 평화위원회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6. 1. 28.

전지윤

트럼프는 흔들리고 물러서는가?

어제부터 트럼프는 명백히 물러서고 있다. ICE 병력감축, 단속완화, 주경찰과 수사협조, 국경순찰대장의 타지역 발령 등이 이어지고 있다. 살기등등했던 발언들도 철회하고 있다. 오바마와 클린턴까지 나서서 저항을 선동하고, 민주당이 관련예산 통과 거부와 셧다운을 경고하고, 공화당도 흔들려서 일까?

"이민세관단속국(ICE)은 르네 굿을 백주대낮에 살해했습니다. 3주도 채 지나지 않아 그들은 알렉스 프레티에게 10발의 총을 쏴 살해했습니다. 우리는 매일 사람들이 차에서, 집에서, 삶에서 강제로 끌려나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습니다...ICE를 폐지해야 합니다."(조란 맘다니)

미네소타 주지사 선거에 나가려던 공화당 크리스 마델은 후보직을 사퇴했다. 그는 "저는 딸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공화당에서조차 트럼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의 신파시스트 체제가 뿌리까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거기에는 1.23 미네소타 시민총파업의 대성공과 이제 그 힘을 모아서 전국 총파업으로 나가자는 분위기가 있다. 유명한 배우인 에드워드 노튼도 이렇게 말했다. "미네소타에서 벌어지는 파업 행동은 확대되어야 한다. 이 사태가 종식될 때까지 전국적인 총파업을 하는 것을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1.30 전국적 총파업이 준비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배경에는 너무나 친절하고 선한 이웃이었던 것이 계속 드러나고 있는 르네 굿과 알렉스 프레티같은 이들이 비참하게 죽은 것에 대한 사람들의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있다. 미국에서도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고' 있다.

트럼프의 신나치 돌격대 ICE

ICE의 대규모 단속이 시작된 이후 프라우드 보이즈 등의 친트럼프 극우단체들은 거리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트럼프의 ICE는 히틀러 돌격대, 친위대의 21세기적 신파시스트 형태이다.

ICE의 르네 굿 처형 사건에 대한 새로운 영상이 증명하는 것은 살인자인 조나선 로스가 위험에 처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정면에서 그녀의 머리를 쏜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시한다는 사실에 분노했기 때문에 쐈다.

"CNN 기자: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살인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성급하지 않나?

맘다니: 그 영상을 본 것만으로 내가 내린 결론이다... 37세 여성이 ICE 요원에게 살해당했다"

아직도 판결을 기다리자는 자들과 달리, 2024123일을 우리 모두가 윤석열의 쿠데타라고 판단한 이유와 같다.

"가자에서는 갓난아기의 머리를 쏘고, 그것을 정당방위라 부른다.

미네소타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쏘고, 그것을 정당방위라 부른다."

"여러분은 ICE가 무방비 상태의 사람을 살해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JD 밴스는 이를 '전형적인 테러'에 대한 대응이라고 칭했다. 크리스티 노엠은 이를 정당방위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이 수십 년간 해온 바로 그 일이 이제 여러분의 고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ICE가 미국 태생의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백인 여성을 살해했는데 정부가 이를 은폐하려 한다면소수인종이나 미등록 이민자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보라.“

지금 미국에서 베네수엘라 침략과 신제국주의에 반대하고, ICE의 폭력과 살인에 반대하고, 트럼프의 신파시즘 정부에 반대하는 것은 모두 연결돼 있다. 미국 민중이 다같이 들불처럼 일어서서 인류가 직면한 이 치명적 위험을 제거해주기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이해찬 추모를 넘어서 고문 책임자들을 처벌해야

이해찬은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 잡혀가 온갖 고문을 당했고 그 후유증에 시달리다 이번에 사망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기록했다. "매일 불려 가서 고문당하고 맞았어요," "고춧가루 고문도 당하고. 나중에 누가 그러는데 내가 죽은 줄 알았대요. 하도 맞아서",

이번 윤석열의 내란음모도 온갖 고문 계획을 포함했다. 이해찬은 노상원 수첩의 '체포와 수거 명단'A등급으로 올라가 있었다. 만약 윤석열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박정희, 전두환에게 고문당했던 이해찬은 윤석열에게 또 고문당하고 결국 살해됐을 것이라는 말이다.

독재에 맞서 싸우다 민주화에 기여한 정치인이, 결국 새롭게 등장한 독재권력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을 목격하고 자신은 희생양이 됐다면, 그것은 정말 역사의 비극이 됐을 것이다. 추모를 넘어서 반드시 책임을 묻고 그 후계 정치세력도 청산해야만 한다.

한국 정부는 가자 '평화위원회'에 절대 참가말라

"가자 '평화위원회'는 트럼프가 이끄는 독재 기구로, 견제 장치가 없으며 영토적 제한도 없다. 이 기구는 미국의 속국들, 전쟁 범죄자들, 시온주의 억만장자, 글로벌 사기꾼들, 그리고 최소 두 명의 집단학살범들로 구성되어 있고 국제법과 국제 기구를 우회하도록 설계됐다." (전 유엔인권보고관 크레이그 모카이버)

"미국 대통령의 사위가 아우슈비츠처럼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학살당한 폐허 위에 리조트가 즐비한 화려한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비전과 계획'을 제시한다고 상상해 보라. 그는 그 계획으로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겠다고 한다....혐오스럽고, 비인간적이며, 탐욕스럽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이다."

정말 놀랍고 화려한 캐스팅이다. 이렇게 모아놓기도 어렵다. 가자평화위원회 - 암살자, 전쟁범죄자, 학살자, 독재자, 인종청소범, 고문범죄자, 이라크 파괴자...

트럼프가 최근에 유엔과 국제질서를 파괴하기 시작했다는 사람들은 틀렸다. 유엔과 국제질서는 이미 가자 집단학살 속에서 이스라엘과 미국이 함께 파괴하고 있었다. "유엔 건물을 파괴하고, 유엔 직원을 살해하고, 유엔 평화유지군에게 발포하는 나라가 또 어디 있습니까?"

이란 민중 저항과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

이란 민중 저항을 응원하며 또 볼 가치가 있는 영화는 자파르 파나히의 <그저 사고였을 뿐>이다. 이 영화에서 고문 기술자 '외다리 애크발'에게 폭행과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은 모두 그의 얼굴은 모르지만 청각, 촉각, 후각을 통해 그를 기억한다. 이 장면들은 상징적이다.

주인공 피해자들이 애크발의 걸음소리를 듣고, 그에게서 나는 냄새를 맡고, 그의 다리를 손으로 만지면서 자신의 오래전 고통을 떠올리고 공포와 분노를 폭발시키는 장면들은 지금 이란 민중의 저항이 쉽게 사그라들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몸이 기억하는 상처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피해를 겪은 서로 다른 신분의 피해자들이 함께 연대한다. 영화에서 가장 이성적이면서 단호한 태도로 리더 역할을 하는 여성 사진작가 시바는 "우리를 해방하겠다던 자들이 기도문을 외우며 우리의 젊은이들을 죽이고 있다"며 이슬람 신정체제와 지배자들을 고발한다.

주인공들이 어처구니없는 순간에 말도 안되는 이유로 뇌물을 요구받는 장면들은, 신정체제가 만들어낸 부패와 실패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피해자들이 이란 정권의 폭력에 또다른 폭력으로 대응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갈등하다가 변화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는 애크발의 가족이 보여주는 모습과 예기치 않은 사건들이 작용한다. 피해자들은 애크발의 가족에게 연민을 느끼고 심지어 서로 돈을 모아서 도움까지 주게된다. "정권은 우리가 자신들만큼 폭력적이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그들과 달라야 한다"는 시바의 말이 맞았다.

결국, '나는 시리아까지 가서 최고지도자를 위해 싸웠다'고 자부하며 피해자들을 모독하던 애크발도 나중에 '나도 당신들과 똑같은 보통사람이고 먹여살릴 아내와 아이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며 절규한다. 이란 체제의 하수인들이 이렇게 돌아서는 일은 과연 벌어질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은 어려워 보인다. 이란혁명수비대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고 있고, 이란 정권은 이번에 학살당한 피해자들이 오히려 '시위대에 의해서 죽었다'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뒤집고 있다. 하지만 '그저 사고였을 뿐이고, 모든게 신의 뜻'이라는 거짓말은 결코 영원할 리가 없다.

미국의 군사적 개입은 이란 민중 저항을 파괴할뿐

최근 서방 언론과 명망가들은 젊은 여성이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초상화에 불을 붙여 담배를 피우는 장면에 흥분했고 그것을 '저항의 아이콘'으로 소비했다. '서구적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아름다운 여성들'이라는 자신들의 환상과 서사에 적합해 보였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가자의 폐허 속에서 죽어간 팔레스타인 여성과 아이들은 그런 '아이콘'이 될 수 없었다. 그저 '하마스 지지자'이거나 '부수적 피해'로 처리되었다. 서방 진영의 이익과 부합할 때만 인권은 중요해지며, 그렇지 않은 인권과 생명은 지정학적 거래의 장애물일 뿐이다.

미국에 망명 중인 이란의 팔레비 왕세자가 트럼프에게 이란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요청한 것은 이러한 비극적 농담의 절정이었다. 외부의 위협은 언제나 이란의 독재권력이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반대파를 '외국 스파이'로 몰아세우는 데 완벽한 명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1979년 혁명 당시에도 팔레비 왕정을 지키려는 미국의 집착과 간섭은 이슬람 엘리트들이 '반미'를 명분으로 혁명의 주도권을 낚아채는 결정적 빌미가 됐다. 결국 이란 혁명은 제국주의 속박은 벗어났으나,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민중의 열망은 신정 체제의 억압 아래 매몰됐다.

오늘날의 성직자 집단은 팔레비 왕정이 가졌던 모든 악습을 계승했다. 언론 통제, 비밀경찰, 노동 3권의 억압 등은 팔레비 시절과 소름 돋게 닮아 있다. 당시 석유 수익이 서방 기업과 왕실에 집중되었듯, 지금은 부패한 신정 엘리트와 친정부 기업가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대중 투쟁으로 이란에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이란 민중의 의지를 진정으로 대변하는 정권은 오히려 미국의 중동 패권에 더 강력하게 도전하며 팔레스타인과 연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2011'아랍의 봄'이 보여줬듯이.

지금, 쿠르드족과 같은 소수민족, 차별받는 여성들, 대학생, 노동조합원들이 이란 전국에서 저항하고 있다. 이 시위가 79년 혁명의 석유노동자 파업같은 결정적 단계로 나아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하고 거리로 나오는 행위 자체가 이미 거대한 변화를 예고한다.

이번 시위는 1999년 학생투쟁, 2009년 녹색운동, 2022'여성, 생명, 자유' 운동 등의 뒤를 잇는 6번째 이란 대중봉기이며, 장기적인 혁명 과정의 일부일 것이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반대했듯이 이란 정권의 학살에도 반대해야 한다.

어떤 간판을 내걸고 이루어지든 인간과 생명에 대한 모든 종류의 억압과 폭력에 반대해야 한다. 두 가지 폭력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게 아니라 폭력의 구조를 분쇄해야 전세계에서 등장하는 신파시즘을 이길 수 있다.

지금 서방의 언론들은 이란 보안군에 의해 살해된 이란 여성 시위자의 사진을 1면에 싣고 있다. 이들 언론들은 지난 몇 년간 가자지구에서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된 수만 명의 여성과 소녀들을 대해서는 이런 식으로 인간적 공감과 묘사를 별로 하지 않았다.

저명한 소설가 J K 롤링같은 사람도 가자에서 2년간 벌어진 시온주의자들의 집단학살 동안에는 침묵하다가 지금 이란 반정부 시위에만 선택적 휴머니즘, 선택적 페미니즘을 말하고 있다. 또 미국에 망명해 있는 이란의 팔레비 왕세자는 트럼프에게 '이란에 개입해 달라'고 부탁한다.

트럼프에게 자기 나라를 폭격하고 침략해달라고 매달리는게 요즘 유행인 것 같다. 이러면 서방 권력자들이 다음번에는 자기에게 '노벨평화상' 줄거라고 기대하는 듯도 하다. 하지만, 이란 민중은 이런 사기꾼들을 결코 믿지 않을 것이고 스스로 민주주의를 쟁취할 것이다.

지금, 미국에서는 중무장하고 복면을 쓴 요원들이 영장도 없이 집집마다 급습해서 피부색을 근거로 사람들과 아이들을 잡아가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울부짓는다. 이런 미국의 트럼프가 '이란의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얼마나 기가 막힌가

미니애폴리스에서 고등학생들이 트럼프와 ICE의 살인 단속에 항의 시위에 나서기 시작했고 다음주에는 모든 지역 주민들이 동참해서 출근, 노동, 일상을 중단하는 시민 불복종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란 민중도, 미국 민중도 살인권력에 맞서고 있다. 신제국주의와 신파시즘의 시대에 권력을 지키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권력에 맞서는 이들 모두의 투쟁을 지지하고 승리를 기원한다.

이란 민중 저항과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이란 민중 저항에 대해서 먼저 가장 강조할 것은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거기서 얼씬도 말라는 말이다. 자국과 해외 모두에서 민주주의와 생명을 파괴해 온 이 집단학살 전쟁범죄자들은 이란 민중 저항에 개입해 아무 것도 줄 것이 없고 해만 끼칠 것이 명백하다.

지금 이란의 극심한 물가 폭등과 민생난도 결정적으로는 미국의 오랜 제재가 낳은 결과다. 더구나 지난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격 때문에 이란의 도시와 시설이 파괴되고 이란 민중 1000여명이 죽었을뿐 아니라 민주주의는 제한되고 경제 위기는 더욱 악화했다.

이런 자들이 이란 독재왕정의 후계자인 팔레비와 손잡고 이란의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그저 토나올 뿐이다.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 반대편에 있다고 모두 우리 편이 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와 빵을 요구하는 자국민 수백명을 죽이는 이란의 독재권력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

지금 상황은 지난해 본 최고의 영화 중 하나였던 <신성한 나무의 씨앗>을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도 이란 정부의 처형을 피해 결국 망명해야 했다. 영화는 판사로서 이란 독재정부의 말단 하수인이며 두 딸의 아버지인 가부장을 통해 이란의 현실을 보여준다.

가장 끔찍한 것은 시위하다가 산탄총을 맞은 딸의 친구 얼굴에 박힌 파편들을 엄마가 하나씩 떼어내는 장면이다. 남편을 편들던 아내는 이 과정에서 두딸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영화는 2022년 이란을 뒤흔들었던 '여성, 생명, 자유' 운동의 실제 영상을 중간에 계속 보여준다.

가족을 사랑한다던 가부장은 영화의 마지막에 가장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방향으로 치닫고, 결국 부인과 두 딸은 여성들의 저항과 연대로 그것에 맞선다. 영화의 마지막에 보여준 비극적 희망처럼 이란 민중의 저항은 이번에도 실패할지 모르지만 결국은 승리하고 말 것이다.

이란의 최고 권력자 하메네이는 '오만한 왕과 파라오들도 결국 권력의 정점에서 무너지고 말았다'고 트럼프와 네타냐후를 비난한 적이 있다. 그건 정말이지 맞는 말인데, 동시에 그것이 자신들에게도 해당하는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사 등록 2026.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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