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 일본 중의원 선거 결과가 보여주는 불길한 미래
이번 일본 중의원 선거 결과는 솔직히 충격적이고 우울하다. 부패스캔들 등으로 쇠락해가는 듯하던 자민당은 새로운 지도자와 정치적 혁신을 통해서 더 강력한 우익정당으로 변신하고 역사적 대승을 거두었다. 이것은 거꾸로 일본의 민주, 진보정당들이 역사적 대패를 했다는 뜻이다.
자민당은 먼저 다카이치라는 대중적 인기와 카리스마있는 지도자를 통해 구심점을 세웠고, 이어서 소비세 감세와 현금 지원 등의 확장재정을 통한 민생 회복이라는 희망을 제시했다. 격화하는 중일 갈등과 트럼프 시대라는 안보상황도 강력한 국가주의와 안보 공약으로 돌파했다.
반면 입헌민주당과 공명당이 손을 잡은 '중도개혁연합'은 경쟁 상대가 되기 어려웠다. 바로 얼마전까지 자민당의 파트너였던 공명당이 자민당을 견제하다는 것은 신뢰하기 어려웠고, 그런 공명당과 손잡기 위해서 전통적 공약을 포기하고 우클릭한 입헌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입헌민주당과 공명당의 무원칙한 연합은 '순한맛 자민당보다 더 매워진 자민당을 뽑겠다'는 반응과 결과만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전통적으로 입헌민주당과 후보 단일화와 선거 연대를 통해서 그나마 의회 진출 기회를 얻었던 공산당은 의석이 반토막나고 말았다.
물론 고령화와 폐쇄적 조직문화로 새로운 세대에 접근하는데 실패해온 공산당의 고질적 문제도 여전했다. 한때 좌파 포퓰리즘 바람을 일으켰던 신센구미의 성적은 더욱 처참하다. 신센구미의 대표공약을 자민당이 훔쳐간데다가 대표였던 야마모토 타로의 은퇴는 치명적이었다.
카리스마적인 지도자 1인에 지나치게 의존하던 신센구미에게 그것은 결정타가 됐다. 이제 자민당은 참의원 선거에서도 이기게 되면 본격적으로 평화헌법 개정으로 내달릴 가능성이 높다. 반면 일보의 진보좌파 세력은 당분간 '반자민당' 거리의 정치와 투쟁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 속에서 약하고 파편화돼 있는 노동운동, 사회운동의 힘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투쟁과 연대의 속에서 신뢰와 경험을 쌓으면서 진보좌파 정당들도 새롭고 다양한 의제를 중심으로한 정치적 혁신, 당원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조직적 혁신을 이루고 정치적 연합에 나서야 한다.
●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합당 논란 돌아보기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합당 문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지금 집권여당이고 국회 압도다수 1당과 제3당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한국사회와 정치에 끼칠 영향과 결과는 매우 클 수밖에 없고, 따라서 두 당의 지지자이든 아니든 관심갖고 의견을 낼 이유가 있다.
먼저 당대표가 합당을 제안할 권리조차 없다면서 절차를 문제삼고, 누가 누구와 짜고 누구를 몰아낸다는 괴상한 음모와 밀약에 대한 말들은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별로 설득력이 없다. 특히 '사회주의', '인민민주주의' 운운하는 이언주 의원의 색깔론은 기가 막히다.
이언주는 국힘에서 혐오정치를 펼치던 나쁜 버릇을 역시나 못버린 것이지만, 더 문제는 그런 이언주와 손잡고 합당을 반대하고 있는 정치인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인들이 과연 한국사회와 정치 발전에 대한 진지한 고민 속에서 입장을 택한 것인지 매우 의심스럽다.
그보다는 그저 차기 당권과 대권, 자신들의 자리와 총선 공천에서 유불리만을 더 우선해서 판단하는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 그래서 합당 문제는 민주당에서 내부 권력 투쟁의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물론 세상을 바꾸려면 권력이 있어야 하니 권력 의지 자체를 뭐라할 수는 없다.
다만 수단과 목적이 바뀌면 곤란하다. 그 점에서 정청래 대표는 당권과 연임을 노리고 합당을 추진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별 근거도 없는 어긋난 비판으로 보인다. 정청래는 정말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에 무엇이 더 도움인가의 관점에서 합당을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거기에 있다. 먼저 민주당에 무엇이 유리할까의 기준을 주로 선거와 정치공학을 바탕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합당해야 지방선거나 총선에서 박빙 지역의 당선에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이것은 사실인데 단순히 표의 산술적 합산에 멈춘다는 한계가 있다.
정치는 단순한 산수가 아니라 복잡하고 다층적인 방정식이 작동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민주당은 2022년에도 열린민주당과 합당하며 지지층을 결집한 바가 있지만, 당내에서 이낙연 세력과 갈등은 계속됐고 그해 대선에서 이재명은 윤석열에게 아슬아슬하게 패배했다.
더 큰 문제는 두 번째인데, 민주당에게 무엇이 더 유리할 것인가가 반드시 한국사회와 정치 발전에 뭐가 더 유리한가와 일치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그것이 일치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민주당의 이익을 위해서 한국사회와 정치 발전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한국사회와 정치 발전을 위해 더 필요한 것은 지난 탄핵광장에서 민주당이 진보개혁정당들에게 약속한 정치개혁안(교섭단체 구성 요건 완화, 결선투표제 도입, 비례대표제 강화와 중대선거구제 전면화 등)일텐데 이것은 아직도 소식이 없고 합당으로 모든 게 덮어지고 있다.
더구나 '중도우파'를 표방하며 우클릭해온 민주당에 흡수통합되면서 혁신당이 주장해온 사회권 선진국, 토지 공개념, 차별금지법 등은 묻혀질 가능성이 더 커보인다. 물론 지금 색깔론과 음모론이나 펴면서 합당 반대하는 이들 탓이겠지만 정청래 지도부도 별 의지는 안 보인다.
무엇보다 민주당-혁신당 합당은 한국정치의 양당 구조를 그대로 두거나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정치가 보여주듯이 양당 구조는 제도와 구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을뿐 아니라, 그 구조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주류 양당은 그것을 바꾸려는 시도를 가로막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한국에서(미국도) 양당은 단순히 같지가 않고 국힘은 극우반동이지만 민주당은 중도적이다. 하지만 제3의 대안이 등장하는 것을 꺼리는 점에서는 두 당이 비슷하다. 민주당이 혁신당을 흡수하며 합당하면 양당구조를 그대로 두고 거기 머물려는 경향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혁신당 왼쪽의 진보정당들이 그 공백을 흡수하며 제3의 진보대안으로 성장할 수도 있지만 역사가 보여주듯 쉽지는 않은 일이다. 따라서 민주당-혁신당 합당은 한국사회가 앞으로 민주당의 한계도 넘어서 더 급진적 정치체제와 정부로 나아가길 바라는 입장에서 문제가 있다.
핵심은 민주당을 뛰어넘는 능력으로 대중의 더 큰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치세력의 등장이겠지만, 그런 가능성을 위해서도 승자독식 속에서 유지되는 양당구조가 아니라 다당제 속에서 다양한 정치세력이 경쟁하거나 연합하며 정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반과 구조가 더 낫다.
● 위안부 피해자들을 악랄하게 모독해온 친일극우 세력들
'실용 외교'를 강조하며 일본 정부와 관계 개선에 매달리던 이재명 정부가 최근 위안부 피해자들을 모독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친일극우 집단에 대해 "얼굴은 사람인데 마음은 짐승"이라며 강력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것은 반가운 변화다.
실제로 친일극우 세력들은 "매춘부", "거짓말쟁이"라고 조롱하며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잔인무도한 방식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괴롭혀 왔다. 소녀상에 마스크를 씌우거나, 검은 비닐봉지로 소녀상 얼굴을 덮어버리는 '챌린지’를 전개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위안부 피해자 전체에 대한 테러였고, 일제 식민지배와 그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모욕과 테러였다. 이들의 목적은 일제의 식민지배와 전쟁 범죄, 그 하수인들의 책임을 부정하고 면죄부를 주려는 것에 있었다.
이들에게는 역사의 진실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증언해 온 위안부 피해자들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 본심을 차마 드러내기 어려웠는데, 2020년에 일본 극우, 한국의 족벌언론, 윤석열 검찰이 시작한 윤미향(정의연) 마녀사냥은 이들에게 기회가 됐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역겹기 짝이 없는 조롱, 모욕, 테러 행위들은 이 시기를 전후해서 본격화했고, 윤석열 집권 3년 동안 계속됐다. 쿠데타 실패와 윤석열 구속 탄핵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윤어게인' 극우와 국힘이 여전히 부활과 결집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재명 대통령이 이들을 정면 비판하고 국회에서도 '위안부 피해자 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시작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우리는 결코 과거를 잊지말아야 하고,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고 반성과 사과를 요구하던 위안부 피해자들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
지난해말에 나온 책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여기에 도움이 된다. 2017년에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자 송신도 선생님의 삶과 투쟁을 다룬 이 책의 증언들은 처절하다. 16살에 중국 무창의 일본군 위안소를 끌려간 선생님은 온갖 비인간적인 폭력을 겪었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총알이 날아오는 거였지. ...군인이랑 관계를 하는 중에 총알이 날아오는 거야. 관계가 끝나지 않으면 몇시간이고 올라탄 채로 비키지 않는거야. 나는 총알에 맞아죽으면 큰일이니까...그게 가장 괴로웠어요."
조금이라도 일본군의 말을 듣지 않으면 구타와 폭행이 이어졌다. 그 흔적과 상처는 평생 선생님의 몸과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얼굴에 굳은 살이 박혀서 아무리 때려도 아프지 않아요....북이랑 똑같아. 하도 맞아서."
그렇게 7년간 지옥같은 성착취에 시달리던 선생님은 일본군이 패전한 후에, 아무 연고도 없던 일본에 가서 온갖 고생을 하면서 늙어갔다. 똑같이 전쟁터에서 돌아왔는데 일본 남성들은 연금을 받으며 잘 살고 있지만, 선생님은 과거를 숨기고 무시당하며 살아야 했다.
송신도 선생님은 언젠가 생활보호 수급신청을 하면서 옥신각신하다가 "나는 중국까지 가서 훌륭하게 싸우고 온 여자야!"라고 말하게 된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남자들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알아챘다. 선생님이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은 그렇게 알려졌다.
결국 선생님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재판까지 하며 싸우게 됐는데 10년 동안의 재판 끝에 2000년 11월 도쿄고등재판소는 선생님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은 패배로 끝났지만, 송신도 선생님은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로 그것은 패배가 아니었다.
송신도의 투쟁은 위안부의 진실을 일본사회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재판 이후에 민주당, 공산당, 사민당 야3당이 '전시 성적강제피해자 문제의 해결 촉진에 관한 법률'을 참의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또 선생님은 투쟁과 연대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했다.
"사람을 못 믿고 살아왔지. 속기만 했으니까. 그런데 소송을 제기하고, 내가 당한 일을 말하고 나니까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어. 나도 조금은 인간다워졌지." 선생님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속에 피해를 입고나서는 쇠약해졌고 결국 2017년에 돌아가셨다.
이재명 정부도 우리 모두도 선생님의 삶과 저항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라"는 그 당부를 잊지말고, 그것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짐승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이 끝없이 모독하고 삭제하려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런 잔혹한 전쟁은 두 번 다시 반복해서는 안됩니다. '위안소'뿐만이 아니라 중국 사람도, 일본 군인도, 고통받는 처참한 모습을 나는 두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라고...나라를 위한다면서 다 죽이지 않느냐고. 그런 짓을 다시는 하면 안돼."
● 이상민 판결과 10.29 참사 유가족의 슬픔
이상민이 검찰 구형보다 절반인 7년이라니... 그는 윤석열이 계엄 선포 직전에 집무실로 부른 6명 중의 하나였던 내란 핵심공범이다. 행안부는 내란 수행의 핵심 기관이었고. 더구나 이상민은 당시 “고심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그렇게까지 고민못한 게 죄송했다”며 윤석열에게 미안해 했다.
더욱 기막힌 것은 재판 과정에서 이상민이 '이태원 참사를 경험했기에 계엄 선포 이후에 걱정이 앞서서 소방청장에게 전화해 안전 점검을 했다'는 식으로 변명했다는 사실이다. 이태원 참사에 어떤 책임도 안지던 자가, 내란 공범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로 그것을 이용한 것이다.
윤석열 정권과 이상민은 이태원 참사 이후에 아무런 반성과 사과도 하지 않았고, 극우 정치인과 유튜버들을 앞장세워 유가족들의 입을 막고 죽도록 괴롭히기만 했다. 만약 윤석열 내란이 성공했다면 그가 이태원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파묻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 나라의 법조카르텔이 판사 출신 이상민같은 자들에게 너그러운 것은 하루이틀도, 처음도 아니다. 2023년에도 헌법재판소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 탄핵을 기각해서 이태원 참사 책임에 면죄부를 줬었다. 당시 유가족들은 '이 땅에 소망을 갖고 살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절절히 호소했다.
이에 대한 당시 헌법재판소의 답은 잔인하고 분명했다. ‘우리가 살려주고 싶은 것은 이태원에서 죽어간 159명의 생명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와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이 국가의 통치 질서’라고 말이다. 이태원 유가족 신정섭님은 그날의 심정을 <특별한 날은 특별히 아프다>에 기록했다.
"우는 아내의 어깨를 잡고 무작정 걸었다. 우리는 갈 곳도, 가고픈 곳도 없었다. 땅으로 꺼지고 싶었고 하늘로 올라가고 싶었다. 이 나라에서는 우리가 밟을 땅이 하나도 없었다." 이태원 유가족들은 오늘도 같은 심정일까... 그나마 7년형이라도 받은 것을 보고 쓰린 마음을 달래야 하나.
● 악질적 마냐사냥꾼 곽상도에게 면죄부 준 사법부
최근 기막힌 법원 판결들을 생각하면 화가나서 계속 욕만 나오고 숨을 쉬기 힘들 정도인데, 특히 곽상도와 아들의 무죄 판결은 그 정점이었다. 곽상도는 내가 책까지 쓴 2020년 윤미향 마녀사냥에서 검찰-언론-우파 네트워크에서도 가장 앞장섰던 악질적인 마녀사냥꾼이었다.
그는 30년 동안 위안부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활동하다가 퇴직한 윤미향의 정대협 퇴직금 3천여만원도 '위안부 팔이', '부정수급', '이중지급'이라고 문제삼았다. 그래놓고 그의 아들은 고작 5년 9개월 일하고 50억 원을 퇴직금으로 받고 그것을 '정당하다'고 우겼다.
공안통, 특수통을 모두 거친 검사 출신인 곽상도는 1991년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사건'의 수사검사로 조작수사, 고문수사의 책임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책임지고 처벌받기는커녕 승승장구 출세하고 박근혜 정부 때 민정수석을 하고 나중에 국힘당의 국회의원까지 했다.
국회의원으로서 그는 윤미향만이 아니라 문재인, 이재명 등에 대한 각종 마녀사냥을 주도했고 특히 고 노회찬 의원도 누명을 씌워서 집요하게 공격하다가 노회찬 의원이 벼랑 끝에서 숨을 거두자 “이중성을 드러내도 무방한 곳에서 영면하기 바란다”는 악랄한 조롱글을 올렸다.
무엇보다 그는 민정수석 때 권력을 이용해 대장동 비리의 일부가 됐다. 곽상도가 포함된 '대장동 50억 클럽' 명단을 보면 전부 판사, 검사 출신과 언론사주 들로 구성된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대장동의 핵심은 법조게이트였는데, 그들은 그것을 '이재명 게이트' 탈바꿈시켰다.
이번 판결은 한국사회에서 법조카르텔의 구조는 여전히 강력하고 판사, 검사는 법적 수사와 처벌에 대한 걱정없이 어떤 짓도 저질를 수 있었고 여전히 그 '신성가족'의 성역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윤석열, 김건희에 대한 판결을 안심할 수 없다.
이런 구조가 유지되면 앞으로도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어떤 죄가 있어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힘없고 돈없는 사람들은 초코파이만 가져가도 죄를 만들어서도 처벌받는 일이 계속될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은 단지 특정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윤미향 마녀사냥 과정에서 곽상도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정의연 고 손영미 소장님이 생각하면 더더욱 참을 수 없다. 50억을 꿀꺽하고도 처벌은커녕 만족스럽게 웃고 있는 곽상도를 보면서 손영미 소장님은 지금 저 하늘에서도 통곡하고 있을 것이다.
● 인공지능과 네오 러다이트 운동의 필요
최근에 이재명 대통령은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에 대해 "밀려오는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는 없다. 그 사회(변화)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 언론은 이 발언이 현대차 노조가 아틀라스 도입에 반대한 것을 비판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는 아틀라스의 일방적 도입이 “노동자의 안전, 작업방식, 고용안정에 대한 영향이 예상되기에 협상을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대통령의 역할은 사회의 안정적인 유지 발전, 국민의 다수의 이익, 공평한 분배에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재명의 전체 발언과 맥락을 보면 보도가 부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재명은 "노조의 반대는 투쟁 전략의 일부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생산수단을 가진 쪽은 엄청난 부를 축적하겠지만, 대다수 사람은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것은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이 낳을 변화에 대한 노조의 우려와 비슷하다. 그러면서 이재명은 "'기본사회' 시스템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얘기를 하면 공산주의자라고 몰아붙여서는 변화에 적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재명과 금속 노조(현대차 노조)의 입장을 보면 오히려 공통된 인식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일자리 양극화와 부의 편중을 낳을 '거대한 수레(위기)가 오고 있다'는 위기 의식이다. 이에 대한 새로운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도 꼭 대립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족벌언론과 친기업 경제언론들은 '글로벌 기술 전쟁 중인데 국가 경쟁력을 깎아먹고 청년 세대의 미래 일자리를 가로막는 이기적인 강성 귀족노조'라는 공격을 쏟아냈다. 노조의 입장을 '현대판 러다이트'라고 낙인찍기 위해 열심인 것도 이들이었다.
이것은 19세기초 산업혁명이 시작되던 시기에 영국에서 나타난 러다이트 운동에 대한 오랜 역사적인 왜곡과 오해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다. 러다이트 운동은 모든 기계를 무조건 파괴하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아니었다.
러다이트 운동을 주도한 것은 기술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던 숙련된 직공과 장인들이었고, 그들은 공장주들에게 먼저 자신들의 요구를 담은 편지를 보냈고, 공공의 이익을 해치는 방식으로 기계를 도입해 임금을 깎고 노동조건을 개악한 악덕 공장주들의 기계만 파괴했다.
그것은 아직 노동조합과 단체행동이 등장하거나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일하고 강력한 협상과 저항 방식이었다. 오늘날 노동조합과 단체행동의 초기 형태였다. 저명한 역사가 에릭 홉스봄은 이것을 "폭동에 의한 단체교섭"이라고 했다.
이러한 러다이트 운동은 공장주들의 편에서 군대를 동원한 영국 국가의 폭력적 탄압 속에서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친자본 언론은 러다이트 운동을 낙인찍고 매도했지만, 노동운동이 합법적인 노동조합 운동과 차티스트 운동 등으로 발전하는데 중요한 디딤돌이 됐다.
오늘날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결합은 산업혁명 초기보다 더 급격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로봇기술과 결합하면 단순반복 작업만이 아니라 숙련노동, 지식노동, 서비스노동에서까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본적 관점은 자본주의에서 기계 사용에 대한 마르크스의 통찰에서도 찾을 수 있다. '기계 자체는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노동을 편하게 하고 생산자의 부를 늘리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노동시간을 늘리고 노동강도를 높이고 생산자를 빈민으로 만든다.'
인공지능을 도입하여 생산성을 높이겠다면서 노동법을 우회하여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수익성을 올릴 방법을 찾으며 어마어마한 보너스만 챙겨가는 기업주들은 아동노동까지 끝없이 착취하던 19세기 영국 공장주들과 매우 닮아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네오 러다이트' 운동이다. 무엇을 위한 기술인가, 누가 이것을 통제하는가,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가를 우리는 계속 물어야 한다. 알고리즘의 투명성을 요구하고, 동의없는 데이터 사용을 금지하고, 신기술의 사회적 영향을 검증해야 한다.
인공지능 산업과 기술에 대한 사회의 민주적 통제를 위한 더 강력한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 인공지능과 달리 살아있는 인간은 다른 인간의 고통, 기쁨, 슬픔에 자기 일처럼 아파하거나 공감할 수 있다. 같이 울고 웃으며 손을 잡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 '노동운동 열심히 하라'는 이재명의 발언
이재명은 며칠전 창원의 타운홀미팅에서 '일한만큼 보상을 못받는다'는 불만과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해결 방법은 뭐냐, 노동운동을 열심히 하는 거에요. 노동자들은 약자이기 때문에... 힘을 모아야 노동자 지위가 올라가고 사용자와 힘의 균형을 맞춰 정당한 임금을 받을 수 있다.”
이 발언은 매우 중요하다. 먼저 행사의 참가자가 창원 산업단지의 노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질문과 주장한 사람들 중에도 노동자가 많았다. 노동자, 청년, 비정규직들 수백명 앞에서 대통령이 '노동자가 단결해서 싸워야 임금과 노동조건이 나아진다'고 노골적으로 선동한 셈이다.
이것은 현장에 참석한 노동자들뿐 아니라 전해들은 수백만 노동자들에게 자신감과 투지를 일으킬 수 있다. 실제로 영상을 보면 청중 속에서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온다. 특히 조직과 의식이 충분치 않은 노동자들일수록 '대통령도 보장했다'는 생각으로 더 영향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발언과 영상을 주류언론들에서는 거의 대부분 보도하지 않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효과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이 발언을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말만 그렇다'고 냉소할 문제만이 아니다. 오히려 '말대로 하라'고 압박하면 된다.
어차피 투쟁가의 가사처럼 '우리 것을 되찾는 것'은 '높으신 양반'이 아니라 '강철같은 우리 손'이기 때문이다. 이재명도 그날 말했다. "결국 누가해야 한다? 국민들이 해야하는거죠. 여러분이 직접 하세요.” 공은 우리에게 와 있다. 모든 것을 이용해 투쟁과 연대를 건설해야 한다.
(기사 등록 2026.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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