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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반파쇼 통일전선이라는 급선무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6. 2. 2.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가장 '고전적인' 이데올로기는 자유주의입니다. 본래 봉건적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획득이라는 의미의 초기 자유주의는 미국이나 프랑스 혁명의 이념이기도 했습니다. 크게 봐서 이런 자유주의는 '근대' 그 자체를 만든 이념적 ''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역사가 이미 몇 세기나 되는 만큼, 250-3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자유주의도 계속해서 "재정의돼 왔습니다. 20-21세기만 해도 적어도 3 가지의 자유주의 사상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본래'의 자유주의는 1945년 이전의 구미권의 주류, 그리고 일본의 지배층 비주류의 이데올로기였습니다. 사유재산제 및 '경제적 자유' 본위의 이데올로기였으며, 의회주의 내지 헌정을 주장해도 여성이나 식민지 주민, 아니면 비주류 백인 남성 (동성애자 등)에 대해는 권리 부여를 하려 하지 않았으며, 노동계급에 대해 때로는 적대적이었습니다.

吉野 作造 (1878-1933) 같은 제국 일본의 자유주의자들은 조선에서의 무단 통치의 문제점을 의식해도 식민주의 그 자체를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으로서의 남성, 식민모국민인 노동자들에게의 보통선거권 부여까지 용인할 수 있었지만,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사회적 권리에 무관심했습니다. 결국에 이 '본래'의 자유주의는 파시즘에 의해서 절대절명의 위기를 겪었다가 간신히 생존해 1945년 이후 냉전형 자유주의로 거듭났습니다.

냉전형 자유주의는 구미권의 1945-91년 사이의 주류 사상이었으며, 일본에서는 보수적 개발주의에 밀려 다소 비주류적이었습니다. 옛 제국들이 어차피 망하는 시대며, 여성들이 '시민'이 됐거나 점차 되는 시대인지라 냉전형 자유주의는 탈식민화와 남녀 평등에 다소 호의적이었습니다. 수정 자본주의 시대며 케인스주의 시대인 만큼 냉전형 자유주의는 때때로 사민주의적 특색까지 가져 복지국가건설에 상당히 적극적일 수 있었습니다.

한데 반공의 시대이기도 하기에 냉전형 자유주의는 丸山 眞男 (1914-1996)가 대표적으로 그랬듯이 무엇보다 "집단"이 아닌 "개인"을 강조하고 "계급" 본위의 분석틀과 각을 세웠습니다. 한국의 경우 예컨대 김대중의 사상은 냉전형 자유주의와 사민주의 사이에 왔다갔다했었죠.

탈냉전형 자유주의 (1991-현재)는 대체로 세계핵심부, 1968년 혁명의 세례를 일찍 받은 고소득 사회들의 사회통합형 이데올로기였습니다. 냉전형 자유주의는 소수자에 대해 무관심했지만, 탈냉전형 자유주의는 노동자와 여성뿐만 아니라 종족적 소수자나 성적 소수자 (동성애자 등) 등까지 안고 갈 수 있는, 훨씬 더 폭넓은 스페크트럼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좀 더 래디컬한 탈냉전형 자유주의자들은 환경 의제나 동물권, 기후 의제의 수용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본래'의 자유주의나 냉전형 자유주의는 대개 일개 국가 틀 안에서의 사회 개혁 등에 초점을 맞추지만, 세계화 시대인 만큼 탈냉전형 자유주의는 아예 전지구적인 환경이나 인권에 대해서도 관심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현제 참여연대 등 진보적 시민사회의 이념은 대개 거의 세계 표준적 탈냉전형 자유주의에 가깝습니다.

한데 '본래'의 자유주의가 1930년대에 극우들에게 심하게 밀려 커다란 위기 국면을 겪었듯이, 이제 탈냉전 자유주의 역시 최악의 위기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거의 교과서적인 탈냉전형 자유주의자인 카말라 해리스 후보가 거의 교과서적인 유사 파시스트인 트럼프 후보에게 완패를 당한 것은 너무나 가시적이었습니다. 이유는? 1930년대와 엇비슷합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자본주의 위기 국면에 그 어떤 종류의 자유주의자들도 빈곤화 등 노동계급과 중하층, 영세 부르주아 등의 신분 하강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위기 국면에 신분 하강을 경험하게 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은 결국 "자유""계급"도 아닌 "민족"의 품으로 결과적으로 안기고 만 것입니다. "민족""국가"야말로 불안과 지속적인 신분 하강의 위협으로부터 개개인을 막아줄 수 있는 것 같은 최선의 방패막이로 보였습니다.

한데 독일이나 이태리 등에서 보였듯이 민족/국가 지상주의는 자유주의 가치들과 도저히 공존이 불가능했습니다. 사실 이게 역사 이야기만도 아닌 것이죠. 오늘날 트럼프 지지자 상당부분이나 혐중 데모에 나서는 일부 "이대남"들의 심리는, 1930년대의 독일, 이태리와 큰 차이 없습니다. 하여튼, 그때나 지금이나 자유주의는 위기 속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시장"의 폭력을 막아주지 못해 파산 순서를 밟게 된 것입니다.

1930-40년대에 자유주의를 그래도 살려준 것은 바로...사회주의의 "접종"이었습니다. 루즈벨트의 뉴딜 시대 미국에서나 노동당이 집권한 전후 영국에서는, 자유주의자들이 일부의 잉여가치를 세금으로 거두고 재분배하는 데에 동의하고 일부 사회기본시설, 생산 시설의 공유화에 찬성했습니다.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광의의 노동계급과 중하층, 중간층 등이 1945-73년 사이에 신분 상승의 시대를 살게 되고, 이에 따라 냉전형 자유주의 역시 그 황금시대를 구가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주의적 내용인 '평등'에 대한 관심을 상대적으로 잃은 탈냉전형 자유주의는, 결국 극우들의 공격 앞에서 방어력을 많이 잃고 말았습니다.

결국 극우화의 광무 속에서 "정상적" 사회를 살려내자면 탈냉전형 자유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일종의 동맹을 맺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데 이런 2020년대판 반파쇼 통일전선이 성립되자면 1930-40년대의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그랬듯이 오늘날 자유주의자들 역시 사회주의적 의제를 대대적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무료 교통수단이나 집 임대료 통제, 약자층을 위한 저가 상점, 그리고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에 대한 세계적인 반대 운동 등도 수용해야 할 것이고, 금융 자본에 대한 통제와 부유세 도입에 열성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한데 새로운 반파쇼 통일전선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아마도 이 극우적인 광란에 각자 따로 맞서기가 아주 힘들 것입니다

(기사 등록 20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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