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함 후민파르(Elham Hoominfar)
번역: 두 견
최근 이란의 시위를 분석하는 이 글은 2022년의 "여성, 생명, 자유" 운동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시위는 계급횡단적이고 다원주의적이며, 생존권에 대한 불만을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에 대한 요구와 결속시키는 21세기 사회운동의 전형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글의 필자인 엘함 후민파르(Elham Hoominfar)은 이란 출신으로 노스웨스턴 대학교 글로벌 보건학 조교수로 환경과 사회 운동의 교차점에 초점을 맞춘 연구를 해 왔다.
출처: https://en.irandraft.com/elham-2026-uprising-in-iran-en/

2025년 12월 28일 일요일 이란에서 시작된 거리 시위는 갑작스러운 폭발도, 국가 통화 가치 하락에 대한 일시적인 반응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슬람 공화국의 정치적, 경제적 토대 내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축적된 깊은 구조적 위기가 가시적으로 분출된 것이다.
수년 동안 이란은 서로 다른 불꽃에 의해 점화된 연속적인 사회적 시위의 물결을 경험해 왔다. 이번 시위의 초기 도화선은 테헤란의 바자르(Bazaar)에서 시작되어 처음에는 직업적이고 경제적인 성격을 띠었으나, 시위는 급속히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었고 곧 전국적인 운동으로 진화했다. 이번 시위의 물결은 이례적으로 광범위한 슬로건이 특징인데, 이는 팔레비(Pahlavi) 왕정을 지지하는 목소리, 반권위주의, 반빈곤, 부패 척결, 그리고 지대 추구 관계의 타파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아우른다.
이러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이 요구들은 이제 이슬람 공화국의 전복이라는 공통된 궁극적 목표로 수렴되고 있다. 이 시위에서 눈에 띄는 점은 경제적 불만과 인간의 존엄성 및 개인의 자유에 대한 요구가 명확하게 융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이란은 특히 필수 식료품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견뎌왔으며, 이는 저소득 가구들을 생존권 붕괴의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미국이 2018년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핵 합의에서 탈퇴하고 "최대 압박" 제재를 재개한 이후, 중산층 가정조차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 끊임없는 인플레이션 속에서 저축은 바닥났다. 2015년 JCPOA가 체결되었을 당시 미국 1달러는 약 32,000리알에 거래되었다. 12월 시위 직전 그 수치는 147만 리알 이상으로 치솟았는데, 이는 경제적 파탄과 공적 신뢰의 붕괴를 보여주는 극명한 지표다.
그러나 이 시위들을 단순히 달러 환율에 대한 반응이나 단일한 경제적 결정의 결과로 축소할 수는 없다. 2022년 이후 이란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혁명적인 "여성, 생명, 자유" 운동의 여파 속에서 등장한 이번 봉기는 근본적인 변혁을 추구하려는 인구 대다수의 결의를 반영한다. 지배 질서의 정치적 전복과 이란 사회의 거대한 구조적 변화를 요구했던 "여성, 생명, 자유" 운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대중의 의식과 사회적 실천 속에 지속되어 왔다. 현재의 시위는 이란 정치 체제를 괴롭히는 동일한 정통성 위기의 연장선에 있으며, 다만 이제는 노동자, 상점 주인, 노점상, 바자르 상인, 교사, 공무원, 퇴직자,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을 포함하여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에 점점 더 사로잡힌 집단들로 행위자들의 구성이 재편되었을 뿐이다.
이란에서 경제적 요구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경제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시위들이 "여성, 생명, 자유" 운동과 마찬가지로 계급 횡단적(cross-class)이고 다원주의적이라는 것이며, 이는 많은 21세기 사회운동의 결정적인 특징이다. "계급 횡단적"이라는 표현은 이 분석에서 계급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산을 몰수당하고 생존의 안전을 빼앗겼으며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당한 사회적 집단들이 동시에 수렴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 집단들은 주로 노동 빈곤층, 노동자,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이 운동에는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변혁에 대한 희망부터, 신자유주의적 노선에 따라 체제 내 권력을 재구성하려는 외세의 개입, 쿠데타의 가능성, 또는 강화된 탄압 속에서 파편화된 시위의 재등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나리오가 투영되고 있다. 이 글은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실상을 명확히 하고, "여성, 생명, 자유" 운동 이후의 이 시위들을 둘러싼 주요한 오독들을 바로잡는 데 목적이 있다.
1. 제재와 내부의 구조적 위기: 제재의 정치경제학과 정경유착 자본주의
제재에 기반한 경제는 필연적으로 패배하는 사회와 나란히 승리하는 계급을 만들어낸다. 제재는 예외적인 경제 환경을 조성하며, 결과적으로 지대 기반 시스템을 창출한다. 제재는 인구 대다수를 가난하게 만드는 동시에 극소수에게 부를 안겨준다. 다중 환율제, 지대 추구형 수입, 그리고 책임을 지지 않는 기관들은 이란 제재 경제의 결정적인 특징이다.
정경유착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란 상업적 성공이 자유로운 경쟁이 아니라 비즈니스 엘리트와 정치 권력 사이의 긴밀한 개인적 관계에 달려 있는 경제 체제를 말한다. 특혜적 접근권, 특별 면허, 또는 세금 감면을 통해 국가는 동맹 세력에게 독점적 이익을 부여하며, 이는 부패와 불평등, 그리고 불투명성을 부채질한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내부자는 승리하고 외부자는 패배한다. 제재는 경제를 규제되고 투명한 틀 밖으로 밀어내어 영구적인 예외 상태로 만든다. 공적 감시는 약화된다. 제재를 우회하는 행위는 비밀주의의 정당화 기제가 된다.
그 결과 면허, 정보, 전용 채널에 대한 특권적 접근권을 가진 개인과 기관에 막대한 지대가 창출된다. 직접적인 결과 중 하나는 통화 부족과 다중 환율제의 등장이다. 준공식 환율 및 자유 시장 환율과 나란히 존재하는 정부의 우대 환율은 매우 불평등한 접근권을 형성하며, 일부 수입업자들이 물건을 시장 가격에 팔거나 어떤 경우에는 물건을 전혀 수입하지 않고 외화를 빼돌리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가장 치명적인 점은 이 시스템이 중개, 뇌물 수수, 그리고 후원 관계의 조밀한 네트워크를 육성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는 준국가적 안보 기관이나 마피아 같은 네트워크만이 경제 활동을 유지할 수 있다. 지하 경제는 팽창하고 구조적 부패는 제도화된다. 이슬람 혁명 수비대(IRGC) 특유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거대 지주 회사들, 그리고 생산, 유통, 보건, 교육, 지방자치 서비스, 심지어 자연 그 자체에 대한 가차 없는 민영화 과정을 통해 지배 엘리트의 일부는 막대한 부를 쌓았다. 경제 권력은 불투명하고 무책임한 기관들과 연계된 행위자들의 손에 집중되었다.
국가는 석유를 팔고, 필수품을 수입하며, 자금을 이체하기 위해 그림자 중개인들에게 점점 더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실체들 중 상당수는 공공 감사, 독립 언론의 감시, 사법적 감독으로부터 보호받는다. 이러한 권력의 집중은 투명성을 침해하고, 남용을 증폭시키며, 면죄부를 고착화하고, 국민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강화한다. 핵심적인 지점은 민주주의, 자유 언론, 독립된 사법부의 부재가 제재와 결합할 때 부패의 역학이 기하급수적으로 가속화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제재는 비용이 많이 들 수 있지만 반드시 시스템적 부패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란이 다른 점은 제재가 탄압, 비밀주의, 감시 제거의 구실로 도구화되어 부패를 통치 수단으로 변모시켰다는 점이다. 여러 국제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은 달러 기준 백만장자 수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2022년에는 전년 대비 약 73%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동시에 이란인 3명 중 약 1명은 빈곤선 아래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일부 국제 좌파 평론가들과 이슬람 공화국 지지자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위가 오로지 제재 때문이며 제재가 해제되면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위기는 구조적이고 내부적이다. 제재는 위기를 심화시켰을 뿐 창조한 것이 아니다. 수십 년에 걸친 권위주의적 신권 통치, 교육 시스템의 붕괴, 경제·사회·환경 문제에 대한 만성적인 실책, 그리고 일상생활에 대한 이슬람 규범의 강제적 주입은 이란 사회를 집합적이고 결정적인 변화로 몰아넣었다.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의 항의 운동은 종종 장기화된다. 억압받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더 큰 강도로 돌아온다. 지나(Jina, 마흐사 아미니의 쿠르드어 이름) 봉기의 여파에서 보았듯이, 사회가 국가 폭력에 맞설 더 큰 용기를 얻게 됨에 따라 이후의 시위들은 더욱 대항적이고 확장된다. 이 시위들 자체는 일종의 교육학으로서 기능하며 대중의 의식과 저항 전략을 재구성한다. 시위는 사회적 네트워킹을 가능하게 하고, 공식 서사를 분쇄하며, 정권의 정당성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킨다.
그러나 이란의 위기는 단순히 정부를 바꾸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 부,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 사이의 관계를 변혁하는 것에 관한 문제다. 현재의 시위는 동일한 정통성 위기의 연장선에 있으며, 모든 사회 계층에 걸쳐 지배질서에 대한 깊은 불신을 드러낸다. 주로 시아파 쿠르드족이 거주하는 케르만샤(Kermanshah)주의 하르신(Harsin) 같은 작은 도시에서 히잡을 쓴 여성들이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치는 것은, 빵을 위한 폭동을 근본적으로 정치행위로 받아들이는 집단적 이해를 대변한다. 1979년 혁명은 왕정에게 도둑맞은 정의를 회복하겠다고 선언했음에도, 정의를 보편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
2. 외세의 영향과 기회주의, 그리고 내부의 구조적 위기
이란의 최근 시위들이 주요 촉매제로서든 직접적인 조직을 통해서든 외세에 의해 설계되거나 지휘되었다는 신뢰할 만한 증거는 없다. 동시에 한정된 수의 외부 행위자들이 이 위기의 주변부에 존재하며, 이들은 기회주의자나 간접적인 영향력 행사자로 묘사될 수 있다. 외세의 의제가 이 시위들을 시작했다는 실증적 증거도 없다. 전 미국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가 모사드 부대가 거리에서 이란 국민과 나란히 서 있다고 주장한 트윗은, 주로 이슬람 공화국이 자국의 위기를 외부화하고 탄압 이후 시위대에 대한 처형과 대량 체포를 정당화할 수 있게 함으로써 오히려 정권에 봉사할 뿐이었다.
만약 외부 행위자들이 대규모 봉기를 설계할 능력이 있었다면, 그들은 훨씬 오래전부터 훨씬 더 효율적으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란인들은 수년 동안 거리에 있어 왔다. 국가는 시위대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무엇보다 위기의 내부적 뿌리를 가리기 위해 일관되게 외세의 개입을 들먹여 왔다. 이러한 패턴은 이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러시아와 이집트에서도 관찰되며, 이는 권위주의 정권 내에서 투사와 외부의 "타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정부는 탄압과 착취를 통해 47년 동안 생존해 왔다. 만약 이 시위들이 외세 주도적이었다면 해마다 반복해서 재등장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외부의 개입이 결정적이었다면 문제는 신속하게 해결되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전국적이든, 도시든, 심지어 우리 동네에서든 벌어지는 모든 사소한 시위조차 외세의 탓으로 돌려졌던 것을 기억하며, 이는 국가 기관들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해준 전술이었다.
외세의 개입으로는 은퇴자, 노동자, 작은 도시의 여성에 이르는 사회적 동원의 폭을 타당하게 설명할 수 없다. 그러한 주장들은 시위에 참여하는 데 따르는 높은 개인적 비용을 무시한다. 사람들은 외국의 프로젝트를 위해 목숨을 걸지 않으며, 매번 탄압의 물결이 지나간 후에도 새로운 운동의 깃발 아래 이란 전역에서 다시 나타나지도 않는다. 조직적인 외세의 지휘에 대한 증거는 없다. 시위의 궤적에 영향을 미치려는 외부의 시도들이 징후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이란 봉기의 원동력은 내부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
즉, 생계 위기, 인간의 존엄성과 시민적 존중의 굴욕, 정부의 무능력, 그리고 정치적 참여로부터의 배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에 의한 갑작스러운 군사 공격 가능성이나, 알리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Ali Akbar Hashemi Rafsanjani)의 유산을 따르는 신자유주의 파벌인 이른바 하셰미 진영을 포함한 지배 엘리트 파벌과의 비밀 협상을 통해 서구의 이익에 부합하는 저비용의 하향식 권력 이양을 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나의 관점에서 이러한 시나리오들은 현재 시위 운동의 열망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3. 시위 내의 퇴행적 조류: "샤 국왕 만세", 어떤 국왕인가?
이란의 전 독재자의 아들인 레자 팔레비(Reza Pahlavi)에 대해 시위대 일부가 목소리를 높여 지지를 보내는 현상은 진보 집단과 다른 시위대 사이에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이 지지는 실재하지만 제한적이다. 그것은 정치적 합의라기보다는 현재 상황에 대한 분노의 축적, 조직화된 대안의 부재, 그리고 상실된 질서에 대한 향수를 반영하며, 이러한 정서는 해외 디아스포라 매체와 일부 초기 시위 영상의 오디오 덧씌우기에 의해 증폭되었다.
레자 팔레비의 지지자 대부분은 위기에 지친 도시 중산층, 해외 거주 이란인, 그리고 이슬람 공화국의 탄압에는 익숙하지만 왕정 통치를 직접 경험해본 적이 없는 세대 사이에서 발견된다. 극심한 위기의 순간에 사회가 인지 가능하고 겉보기에 비용이 적게 드는 인물을 찾으면서 이러한 지지는 더 가시화된다. 레자 팔레비는 익숙한 이름이며, 조직적 부담이 없고, 오늘날의 탄압이나 심지어 그의 아버지 시대의 탄압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 그러나 이 지지는 상징적이고 제한적이며 일시적이다. 조직적 역량이 없는 상징적 리더십은 정치적 전환을 좀처럼 만들어내지 못한다.
설령 외세의 후원과 미디어의 홍보를 통해 권력에 오른다 해도, 그러한 인물은 통치할 능력이 없을 것이며 곧 사회적 혼란이 뒤따를 것이다. 실제로 왕정은 이란 사회에 있어 이미 닫힌 장이다. 모하마드 레자 샤(Mohammad Reza Shah) 시대의 정치적 탄압, 사바크(SAVAK, 비밀경찰)의 역할, 경제적 불평등, 그리고 권력의 집중은 이란인들에게 단지 매력이 없는 정도가 아니다.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정치적 의식이 높아지면서 지식인층, 노동 계급, 그리고 쿠르드족, 발루치족, 아랍인, 그리고 많은 이란계 투르크족을 포함한 소수 민족 공동체의 대다수는 더 이상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구조를 받아들일 수 없다.
더욱이 레자 팔레비는 명확한 정당도, 내부적인 사회적 네트워크도, 일관된 사회경제적 프로그램도 가지고 있지 않다. 최근 몇몇 기회주의적인 행위자들이 그의 주변에 작은 집단들을 모았으나, 이들 모두는 국내 정치 과정이나 프로그램이 부족하며 외부의 개입과 제재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특정 외국 기관들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집단들은 이란의 정치 및 문화 엘리트들 사이에서 거의 정당성을 얻지 못한다. 팔레비는 심지어 그의 아버지에게 충성했던 조직화된 왕정주의자들 사이에서도 결속력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들의 고위 인사 대부분은 그와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일부 지역, 특히 팔레비 국가 하에서 심한 탄압을 겪었던 루르(Lur)족 거주 지역에서 들리는 "샤 국왕 만세"나 "이것이 마지막 전투다, 팔레비가 돌아올 것이다"와 같은 퇴행적 슬로건들은 사회학적 해석을 요구한다. 이 현상은 역사적 망각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특히 탄압과 붕괴가 미래 선택의 지평을 수축시킬 때 집단적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에 기인한다.
시위대는 교착 상태, 굴욕, 그리고 미래가 없는 현재로부터의 탈출을 모색하고 있다. 팔레비를 소환하는 것이 반드시 팔레비 체제를 지지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역사적 판결이라기보다는 정치적 기표로서 기능하며, "이슬람 공화국 반대"와 "현상 유지 반대"를 의미한다. 여기서 팔레비는 희망하는 모델로서가 아니라 부정의 상징으로서 작동한다.
어떻게 "샤 국왕 만세"가 이란 대중의 의식에 들어왔는가 하는 질문은 단순히 특정 외국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그를 대안으로 홍보하는 해외 페르시아어 매체들의 역할로만 축소될 수 없다. 이 슬로건을 외치는 많은 젊은 루르인들은 루르인들에 대한 레자 샤의 탄압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들의 부모조차 그것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들이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석유와 물이 풍부한 땅에서 살면서도 이란에서 가장 소외된 지역 중 하나가 된 삶이다. 그들은 높은 실업률과 빈곤에 직면해 있다.
그들은 수자원 개발 프로젝트가 어떻게 그들의 땅과 물을 몰수하여 실업과 궁핍을 낳는지 똑똑히 보고 있다. 이러한 적은 역사 속으로 밀려나고 이슬람 공화국에 의해 적으로 규정된 샤 국왕보다 더 가깝고 실체적이다. 팔레비 국가가 석유를 전유했다면, 집단적 기억은 여전히 농업, 목축, 그리고 삶을 위한 물을 기억한다. IRGC의 개발 정책과 신자유주의적 실천 하에서 물은 약탈당했고, 땅은 말라붙었으며, 실업과 질병, 빈곤이 지배하게 되었다.
유사한 슬로건들이 이란 다른 곳에서도 들려왔다. 독립적인 정치 조직이 부재하고 사회적 협회와 정당들이 억압되며 미래가 차단되거나 불투명해 보이는 조건에서, 항의 행동은 단순하고 인식하기 쉬운 상징으로 쏠리게 된다. 팔레비 시대에 대한 향수는 외세의 자금을 지원받는 미디어에 의해 적극적으로 제조되고 증폭되는 것을 넘어, 사회학자들이 "방어적 향수(defensive nostalgia)"라고 묘사하는 현상을 반영한다. 미래가 차단되었을 때, 비록 폭력적이었을지라도 과거는 재구성된다.
이러한 퇴행적 슬로건들은 "가자도 레바논도 아닌, 나의 삶은 이란을 위해"와 같은 구호들과 나란히 나타나는데, 이는 이슬람 공화국이 지지하거나 구현하고자 하는 모든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정권의 폭력은 과거의 권위주의 통치를 소급적으로 미화한다. 이슬람 공화국 탄압의 정도는 사람들을 너무나 절망적으로 만들어서 과거가 아무리 불의했을지라도 이상화된 대안으로 상상되게 한다. 폭력과 지배가 정권이 결부된 모든 것, 팔레스타인 대의를 포함하여, 항의 담론에서 거부의 대상으로 변모시킬 정도의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항의 지형의 전부는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흔한 슬로건 중 하나는 "샤 국왕이든 최고 지도자든, 압제자에게 죽음을"이었다. 이 구호는 왕정과 성직자 후견주의라는 두 권위주의 모델을 모두 거부하며, 가부장적 인물을 넘어선 질서를 모색한다. 역사적으로 이란의 사회적 진보를 가로막아온 두 세력인 종교와 왕정은 이 나라의 진보적인 계층 사이에서 여전히 비판과 거부의 대상이다.
전 독재자의 아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주로 망명 매체의 산물이다. 미디어에서의 가시성을 사회적 헤게모니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란 사회 내부에서 레자 팔레비에 대한 지지는 합의가 아니라 절망의 신호다. 그것은 망명지에서 요란하고 미디어에서 가시적이지만, 실제로는 불균등하고 제한적이다. 이란의 시위는 지도자보다는 과거와 현재의 권위주의에 대한 깊은 거부를 향하고 있다.
요컨대 팔라비는 혁명적 상황에서 통합보다는 분열을 상징한다. 그는 다리가 아니라 장애물로 기능한다. 수많은 영상에 따르면 극우와 보조를 맞추는 그의 해외 지지자들은 다른 시위대와 사상적 조류에 대해 파시스트적 공격을 가해 왔는데, 이는 이슬람 공화국 특유의 준군사 조직을 불안하게 연상시키는 행태다.
혁명적 분노에서 과정 구축으로
이란의 현재 시위들은 혁명적 분노와 혁명적 조건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또한 그것들은 놀라운 다양성과 다원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제 긴박한 질문은 그다음에 무엇이 올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슬람 공화국에는 더 이상 정당성이 남아 있지 않다. 정권은 현재 자국민을 살해하고 있으며, 만약 시위가 가라앉는다면 구금된 사람들을 처형하려 들 것이다. 즉, 정권이 통제권을 되찾으면 보복을 꾀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 국가는 약 4일 동안 전국적으로 인터넷과 유선 통신을 차단했다. 영상과 사상자 수치는 처참하다.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희망은 근본적인 변혁이다. 그러나 초기 단계로서 과정 구축을 지향하는 시위는 이번 운동과 이전 시위의 물결에서 잡힌 정치범들의 석방을 확보하기 위한 네트워크 형성에 집중할 수 있다. 만약 권위주의 국가의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Masoud Pezeshkian)이 주장한 대로(그는 나중에 트윗을 삭제한 것으로 보이지만) 시위대 대표와의 협상이 가능하다면, 이는 구금자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초기 전략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국민 투표가 수반되어야 한다.
1906년부터 1911년 사이의 입헌 혁명 동안 이란에는 다양한 사회적, 국가적 요구를 대변하는 여러 지도자가 있었다. 오늘날 정치범 및 인권 활동가, 노동 운동가, 교사 협의회, 그리고 학생 및 노동자 조직가들이 유사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이번 주에 큰 진전이 이루어지든 아니면 앞으로 몇 달 안에 이루어지든, 이란은 이슬람 공화국 이전부터 존재했으나 그 안에서 가장 완전한 형태를 찾은 역사적 권위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지속적인 네트워크 구축과 참여를 필요로 한다.
(기사 등록 2026.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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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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