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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수많은 ‘백남기’들이 순실, 근혜, 백선하들을 이기기 시작했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6. 10. 27.

전지윤


'내가 백남기다'라고 외치며 부검을 막아내고 승리를 쟁취하다  



이것은 단순한 레임덕(임기 말 현상)이 아니다. 대통령 국정 운영 권능의 붕괴 사태다.”(<조선일보>)


37년 전 어제 대통령 박정희는 부하의 총에 맞아 죽었고, 이 나라의 정치체제와 국가기구는 아노미 상태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 박정희의 딸 박근혜는 그때와 비교될 만한 총체적 혼란과 마비 사태로 빠져들고 있다.

 

그동안 박근혜는 정치적 반대파를 북한에 보고해 결재를 받고 종노릇을 하는 종북이라고 공격해 왔다. 그런데 박근혜는 최순실에 보고해 결재를 받고 종노릇을 하는 종순이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얼마전 녹화 방송된 사과 기자회견에서 박근혜의 표정은 잔뜩 움츠러든 대다가 눈동자도 불안감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것은 2년전 세월호 유가족들의 항의 속에 국회로 들어가던 때 이후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왜 박근혜가 최순실에게 이토록 깊이 의존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최태민부터 이어진 사적 친분 때문인지, 어렵고 힘든 시절에 옆에 있어 준 의리때문인지, 종교와 연관된 어떤 맹신 때문인지,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다.(그중에서 여성·성소수자 혐오적 시선과 선정적 사생활 캐기, 막말 등 일부 주장은 매우 부적절해 보인다.) 

 

분명한 것은 최순실이 이 정권의 막후 권력자로서 주요한 사안들을 보고받고 결정에 영향을 끼쳤으며, 그것을 이용해 부패한 특권을 구축해 왔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교육기관 등이 너나없이 최순실 모녀에게 특혜를 제공한 것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나아가 최순실은 박근혜 퇴임 이후와 권력연장 시도에도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특별한 것도 없어 보이는, ‘어버이연합이나 엄마부대회원같은 사람이 근거나 자격도 없이 국가 주요 정책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에 놀라고 있다. 그러나 최순실은 박근혜의 패션과 취향을 맞춰주는 것에 탁월한 감각을 가졌던 거 같다. 딱딱한 연설문에 특유의 부자연스럽고 거친 어투들을 집어넣은 것도, 보수적 노년 지지층에서는 뭔가 먹혔을 것이다.

 

무엇보다 최순실은 냉전과 독재로 특징지어지는 박정희 시대의 시대정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체득한 사람이었으리라. 그것이 그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 왔고 재현하고픈 박근혜에게 최순실이 신뢰받아 온 가장 큰 바탕이었을 것이다. 최순실은 대통령을 오래 봐 왔으니 심정 표현을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드리게 됐다고 했다.

 

국정원 선거 조작, 종북몰이와 통합진보당 해산, 세월호 참사 진실 덮기, 교과서 국정화, 위안부 합의,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등 최순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을 정책 방향과 내용들을 돌아보면 이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그리고 이런 유신친화적 시대정신과 정책 추진은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이 나라의 우파적 주류 지배층의 적극적 선택이기도 했다. 이들은 당시의 경제·안보 상황에서 지배체제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보면서 결집한 바 있다. 의도했던 아니던 그들은 결과적으로 박근혜와 최순실을 '1+1'로 얻게 된 것이다. 최순실과 기업임원, 재력가, 교수 등 8명이 모임을 꾸려서 박근혜를 도왔다는 기사까지 나왔다.

 

물론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선출된 자들보다 재벌총수, 고위관료, 언론사주, 군장성 등 선출되지 않은 자들이 진정한 권력을 휘두른다는 것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핵심적 한계와 본질이다. 심지어 임명된 적도, 공식 직책도 없는 권력자의 친인척과 측근들이 날뛸 때 그 한계는 가장 부패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런 구조와 관행의 일부였던 보수 족벌언론과 주류 지배자들이 이런 사실을 몰랐을 거 같지는 않다. 이미 2007년 내부경선 때 이명박측은 최순실 문제를 공격했었다. 하지만 2012년에 박근혜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우파는 최근까지 이 문제를 굳이 들추지 않았다.

 

마이너스 성장까지 예측된다는 경제 상황과 미국이 선제공격설까지 제기하는 안보 상황이 주류 지배자들의 결집에 구멍을 만들었을 것이다. 위기 의식은 결집의 계기이지만, 최순실-박근혜의 대응이 문제를 해결하긴커녕 악화시킨다고 본다면 균열은 커질 수 있다.

 

더구나 최순실 라인이 결재권과 이권을 독점하면서 소외됐던 자들은 불만이 컷을 것이고, 이들은 다음 정권에서는 그것을 빼앗기 위해 판을 흔들기 쉽다. 이명박이 만들어 준 보수종편들이 박근혜 공격에 앞장서는 모순은 여기서 비롯된다. <조선일보>의 되치기에는 복수심이 뚝뚝 묻어난다. 한 보수논객은 우리같은 원로에게 4년간 전화 한통없었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일부 언론은 역겨운 여성혐오·차별적 편견까지 담아서 펜을 휘두르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JTBC, <한겨레> 등의 용기와 진정성을 깍아내릴 순 없다. 이런 언론들은 분명 진실 알리기 위해 노력해 왔고, 박근혜 정부에 대한 기층 민중의 분노와 저항의 목소리를 일부 대변하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쌓여 온 이 밑바닥 정서는 최근 이런 언론들의 폭로와 맞물리면서 박근혜의 콘크리트 지지층까지 허물며 지지율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절체절명의 정치적 위기 속에 크게 흔들리던 박근혜 세력은 송민순 회고록으로 우파 결집과 반대파 위축·분열의 종북몰이를 시도했다. 그러나, 항상 꽃놀이패였던 종북몰이마저 잘 통하지 않았다. 그러자, 개헌 카드까지 꺼내서 판을 흔들려 했는데 그 효과는 하루도 안 갔다.

 

결국 주류 지배자들은 최순실 등을 꼬리자르려 할지 모른다. 부패 고리에 한 몸으로 연결된 친박은 그것도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최순실·박근혜가 1%의 뜻을 대변해 추진해 온 정책과 헌정 질서가 흔들리는 것만은 막으려 할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와 정치권력의 핵심에 도사리고 있는 진정한 권력자들은 2보전진을 위한 1보후퇴로 시간을 번 후, 반격을 시도할 것이다.

 

그동안처럼 주류 야당의 지도부는 여기에 들러리를 서면서 권력 나눠먹기나 떡고물 챙기기를 할 가능성이 있다. 개헌 카드도 그것을 노리고 야당의 일부를 흔든 것이었다. 1년 후에 대선에서 심판하고 정권교체하자는 방안이나, 탄핵이든 무엇이든 야당과 국회로 주도권을 넘기는 방안을 경계해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것은 저들의 시간끌기와 되치기의 공간을 열어 줄 수 있고, 설사 정권교체가 이뤄진다고 해도 형식적 변화에 그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나라 지배층 안에서는 권력분점의 개헌을 통해 더 안정적 지배질서와 효율적 통치구조를 만들자는 공감대가 커져왔다.

 

따라서 저들의 위기와 분열에 기뻐하면서도, 그것이 우리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낙관할 수만은 없을 거 같다. 그것은 우리가 단결해서 파고들 때만 잡을 수 있는 기회다. 이틀 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내가 보았던 승리와 감동에 답이 있었던 거 같다.

 

그 자리에는 경찰 침탈 소식에 곳곳에서 달려 온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있었다. 서로 몸담고 있는 곳과 정치적 견해는 다를지라도 우리는 모두 내가 백남기다라고 외치며 팔짱을 끼었다. 아마 모두들 물대포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던 백남기 어르신을 떠올리며 용기를 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감동했고 힘을 얻었고 그 작은 전투에서 승리했다.

 

이처럼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삼성 반올림 농성장에서, 현대차 본사 앞에서, 갑을오토텍 앞에서, 이화여대에서, 성주와 김천에서, 서울대병원에서... 곳곳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싸워 온 사람들, 이들이 바로 또다른 백남기들이었고 지금의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최순실, 박근혜, 백선하같은 자들을 물러서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제 백남기와 한상균의 용기와 진정성을 배우려하는 우리들이 더 강하게 손을 잡고 더 큰 집회, 행진, 파업을 건설해 나가야 한다. 총궐기 기조, 진보 통합, 대선 방침 등의 생각 차이는 그 속에서 자유롭게 토론하며 함께 답을 찾아나가자.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곁으로 달려와서 팔짱을 끼도록 만들자.

 

지금의 사태는 뭔가 특별한 사람들이 국가를 운영하고, 국가의 통치는 보통 사람들이 통제하거나 거스를 수 없는 힘으로 작동한다는 생각도 무너뜨리고 있다. 우리보다 더 나을 것도 특별한 것도 없는 인간들이, 망상 속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해 온 게 이 나라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만과 분노 속에서도 주눅들어 있던 더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펴고 일어서게 만들 수 있다. 물론 그렇게 일어서는 사람들이 그동안 앞장서 싸웠던 사람들 옆으로 달려온다는 것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2008년 촛불항쟁도 조직된 대오의 메이데이 집회가 끝난 다음날, 예기치않게 거리에서 미조직 대중들에 의해 터져 나온 바 있다. 앞장서 싸워 온 사람들이 꼭 올바른 방향과 정답을 갖고 있다는 것도 정해진 게 아니다.

 

따라서 주도권을 내세우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억눌려 왔던 분노와 잠재력을 분출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이제 몰아치기 시작한 거대한 분노의 파도 속에서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를 고무하고 같이 답을 찾아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박근혜 퇴진, 하야는 결코 불가능만은 아닐 것이다.   


(기사 등록 201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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