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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촛불의 기억과 21세기 혁명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7. 4. 6.

전지윤

 


옛날에 서울구치소 독방에 있을 때, 가끔 운동 나가다가 전 국방장관이자 안기부장이던 권영해와 마주친 적이 있다. 그는 당시 서울구치소 최고의 범털이었고, 나는 자연스레 국가보안법 마녀사냥의 지휘자였던 그를 노려보며 뭐라고 했던 것 같다.

 

그는 허허거리며 눈을 피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당시 그는 총풍 사건과 불법 대선자금 모금 등으로 감옥에 있었고 수사 받다가 문구용 칼로 자해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오늘날에도 탄기국공동대표로 저러고 있는 걸 보면 참 씁쓸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그런데 지금 서울구치소의 범털들은 훨씬 더 엄청나다. 최고의 정치권력자(박근혜), 최고의 경제권력자(이재용), 최고의 공안권력자(김기춘)까지. 역사적으로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유례가 찾기 힘들어 보인다. 사실 나는 특검 연장 실패, 검찰의 청와대 압수수색 포기, 박근혜의 여전한 미소를 보면서 설마하고 있었지만, 그 예감은 기분좋게 어긋났다


역시 5개월간 1700만 명이 만들어낸 아래로부터 힘은 대단했다. 오늘의 한국사회를 만들어낸 19876월 항쟁은 한 달 좀 안되게 지속됐고, 이후 전두환·노태우 구속까지는 8년이나 걸렸다. 하지만 촛불혁명의 효과는 더 빠르게 나타나고 있고, 앞으로도 더 강하고 오래지속될 것 같다. 이 모든 것은 그 추운 겨울에, 멀리 지방에서도 주말마다 서울로 올라오던 보통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따라서 이번 촛불의 의미를 깎아내리며 '혁명은 아니었다고 하는 주장들은 공감하기 어렵다. 보통 그런 주장은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이었던 방식을 문제삼는다. 하지만 폭력과 혁명을 등치하는 것은 되려 주류언론과 지배사상에 가깝다. 그것은 비폭력적 변화만이 옳다는 주장과 동전의 양면이기도 하다. 쿠데타는 폭력적이지만 혁명이 아니다.

 

핵심은 폭력이 있었냐 없었냐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대중이 행동에 나섰냐 아니냐이다. 즉 변화의 동력이 어디서 비롯했느냐가 중요하다.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는 대중이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 역사의 무대로 강제로 들어가는것이 혁명이라 했다.

 

실제로 이번에 5개월 동안 1700만 명이 거리에 나섰고, 주말마다 도심대로는 해방구가 됐다. 토요일 저녁만 되면 종로통의 4차선 대로부터 청와대 근처까지 오고가는 차량도, 경찰과 차벽도 없이 마음대로 행진하고 걸어다닐 수 있었다. 특히 촛불혁명 초기에 나타난 아래로부터 열기는 엄청났다. 이욱종 목사는 그것을 생생하게 돌아본다.

 

시청역을 나오는 출구 계단에서 부터 어디선가 지상에서 우레와 같은 소리가 장엄하게 땅을 울린다. “박근혜는 물러나라!” 청계광장은 이미 엄청난 인파로 진입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하지만 지축을 울리는 시민들의 함성은 마치 지상에서 발생한 우레와 천둥소리 그 자체였다. 아무도 리드하는 사람도 없이 시민들이 서로서로 함성을 만들어 하나가 되어 외치고 있었다. “박근혜는 내려와라!” 다음날 예배에서도 기도하던 중 자꾸 박근혜는 물러나라!” 는 함성이 계속 나의 머릿속에 맴돌 정도[였다.] 심야버스를 새벽 2, 3시에 타면 마치 출근길 만원 버스처럼 서있기 조차 힘든 초만원 버스의 진풍경이 연출되었고 버스 탑승객들 거의 모두가 집회 플래카드와 세월호 리본을 달고 있었고

(http://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7127


왜 경찰과 차벽이 막아서지 못했던 것일까. 박근혜 정부와 경찰이 갑자기 평화시위에 대한 소신이 생겨서? 비폭력 시위를 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관용을 베풀어서? 물론 아니다. 그랬다가는 어떻게 사태가 발전할지 두려워서였을 것이다. 1987년에 전두환이 군대 투입을 포기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노태우는 회고록에서 나는 직감적으로 만일 이번 사태에 군을 동원한다면 이 정권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돌아본다. 사람들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아가 동원된 군이 누구 편에 서게 될지 알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고무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이번 촛불을 사회경제적 체제를 뒤바꾼 사회혁명으로까지 볼 수는 없다.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주창한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였던 할 드레이퍼는 혁명을 법적인 틀을 넘어선 강제적 방식의 통치권력 전이라고 설명하면서 그것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주로 상부구조에서 새로운 이데올로기와 정책, 집단을 대변하는 세력으로 정치권력과 통치형태가 변화하는 것을 정치혁명이라고 했다. 그것을 넘어서 계급적 토대에서 새로운 사회제도와 생산양식의 변화까지 낳게 된다면 그것은 사회혁명이라는 것이다. 모든 혁명은 정치혁명이고 거기서 출발하지만, 그것이 사회혁명으로 발전할지는 정해진 것이 아니다. 또 모든 정치혁명에는 사회혁명의 맹아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촛불은 정치권력과 통치방식의 변화를 낳는 정치혁명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번에 대중행동이 과연 헌정질서를 넘어섰다고 볼 것인지는 의문이 있을 것이다. 절반은 넘어섰고 절반은 그렇지 못했던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임기가 정해진 최고권력자를 중간에 끌어내려서 감옥에까지 보낸 것은 분명히 넘어선 측면이다. 하지만 형식적으로는 국회가 탄핵안을 발의하고, 헌법재판소가 그것을 인용하면서 박근혜가 물러난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1987년 민중항쟁이 낳은 역설이 있다.

 

1987년 민중항쟁은 일당독재 체제를 무너뜨렸고 한국 사회가 점진적으로 자유민주주의로 전환하는 출발점이 됐다. ‘자유민주주의는 아래로부터 저항을 폭력과 강제로 억누르기보다, 동의와 설득의 완충장치를 두텁게 하는 체제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바로 1987년에 민중항쟁의 결과로 이루어진 개헌의 산물이며 ‘87년 체제의 일부이다. 자유주의 야당도 1987년 이후부터 완전한 정치적 자유를 획득했고, 권력구조와 통치집단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이런 완충장치는 모든 정치혁명에 담긴 사회혁명의 요소들이 더 발전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또 아래로부터 열기를 흡수하고 그것을 가라앉혀서 정치혁명의 성과마저도 왜곡시키거나 되돌리게 만드는 구실을 할 수 있다.

 

실제로 헌법재판소는 탄핵 판결에서 세월호 문제를 제외했을 뿐 아니라 박근혜에게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죄를 물었다.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 헌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촛불혁명 과정에서 지지율이 크게 오르고, 다가올 대선에서도 권력을 잡을 가능성이 큰 민주당은 촛불혁명에 담긴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한 요구는 잘 주목하거나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안희정은 말로써 대연정을 주장하지만, 문재인은 이미 실천에서 대연정 선거캠프를 구성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물론 이 측면만 부각하면서 촛불은 헌법재판소, 국회, 민주당, 검찰 등의 권위와 정당성만 높였다고 말하다면 옳지 않다. 이런 논리라면 국가와 자본이 저항에 밀려 양보하고 후퇴하면 할수록 그들의 권위와 정당성만 강화된다는 이상한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촛불혁명 초기에 이 측면을 강조했던 일부는, 이 모든 게 조중동과 비박계의 시나리오이며 촛불은 그 가이드라인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봤다. 하지만 지금 조중동과 우파는 치명적 위기와 분열에 빠져있고 이 어두운 터널의 끝은 어디냐고 묻고 있다. 결국 촛불혁명이 낳은 커다란 성과와 일정한 한계를 균형있게 봐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촛불이 더 큰 사회경제적 토대의 변화로 나가려면 무엇이 필요했을까.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임금과 노동권 요구들을 앞세운 파업을 하고, 촛불집회에서 좌파조직과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더 많은 발언권을 갖고 그랬으면 달랐을까? 안 그래서 계급촛불속에 용해된 것일까? 강력한 중앙집중적 혁명조직이 있었다면 사회혁명으로 발전했을까?

 

이런 주장들은 몇 가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첫째, 보통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조직된 노동자들이 가장 강력한 계급투쟁의 선진 부위로서 투쟁을 선도하고 나머지 민중들을 견인해야 한다는 도식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이런 조직 노동자들에 기반한 혁명조직이 투쟁의 승리를 낳을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지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도식에 따르면 이번에도 조직된 노동자들이 가장 앞장서서 촛불혁명을 선도하고, 견인하며 가장 강력한 동력을 제공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계급투쟁에서 앞장서는 부위와 뒤쳐진 부위가 고정돼 있거나 칼같이 구분되기 어렵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 역사에서는 가장 앞장서 싸우던 부위가 어느 순간 뒤처지고, 가장 뒤쳐져 있었던 부위가 오히려 가장 선두에 서곤 했다. 투쟁 속에 단련된 조직된 부위가 오히려 보수적이고 굼뜨게 반응하고, 경험이 부족한 미조직 부위가 큰 활력과 급진성을 보이기도 했다.(로자 룩셈부르크가 앞서서 이것을 분석했다.)

 

이번 촛불혁명에서 우리가 본 것도 비슷하다. 가장 큰 활력과 힘을 보여 준 것은 바로 투쟁 경험이 없고 조직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고비에 직면할 때마다 그것을 돌파할 아이디어와 힘을 제공한 것도 그들이었다. 조직된 부위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고, 혁명조직이 그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공해서 위기를 돌파했다고 본다면 지금의 현실과 맞지 않다.

 

둘째, 보통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임금과 노동조건 등의 요구를 내걸고 파업과 같은 전통적 투쟁 방식을 사용하지 않으면 계급투쟁이 아니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촛불은 민주주의와 사회정의같은 요구들을 앞세웠고, 거리시위 방식으로 진행됐기에 진정한 계급투쟁이 아니었고 민중주의적 투쟁에 그쳤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 또한 계급투쟁은 특정한 요구나 방식으로 한정될 수 없고, 역사적으로도 계급투쟁은 구체적 시기와 조건에 따라 다양한 형태였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 물론 조직 노동자가 앞장서서 고유의 요구를 내세우고, 파업같은 방식을 주로 사용하며 혁명조직이 그것을 지도하는그림이 계급투쟁과 혁명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처럼 순수하고 정해진 형태의 계급투쟁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지난 5개월간 이 나라를 뒤흔든 과정도 이 틀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현실의 계급투쟁에는 온갖 복합성과 변형, 혼란과 모순들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

 

민주당 지도부는 주요 국면마다 헛발질을 하거나 뒷북을 쳤지만, 집회 대열 곳곳에서 지역민주당 깃발이 휘날렸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분노를 혐오 표현으로 분출했지만, 여성과 소수자 혐오에 반대하는 강력한 목소리도 등장했다. 온갖 다양한 요구와 쟁점들을 들고 나아서 지지를 호소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박근혜 파면과 구속을 거치면서 촛불은 사그라들고 있다. 지금 대선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민주당과 문재인의 부상이다. 이것은 2004년 탄핵 반대 투쟁의 승리 이후 열린 총선 국면에서 민주당만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이 급성장했던 것과도 또 다르다.

 

그때 민주노동당이 민주당의 왼쪽에서 메울 것 같았던 3 정당의 자리를 지금은 국민의당이 오른쪽에서 메우고 있다. 그리고 박근혜는 물러났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과 일터에서는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바뀐 게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나올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재용이 구속됐을 때도, 탄핵이 가결됐을 때도, 박근혜가 구속된 순간에도 여전히 바뀐 건 별로 없다고 했다. 특히 자신이 처한 고통과 문제가 여전할수록 그런 태도는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길고 넓게 봐야 한다. 아마 1917년 러시아에서도 짜르는 물러났지만 전쟁은 계속되고 혁명가들은 수배, 체포되던 7월쯤에 일부 사람들은 무엇이 바뀌었나라고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건 긴 과정의 일부였다. 1987년도 6월로 끝난 게 아니고 7,8,9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다. 연말에 대통령이 된 것은 노태우였지만, 결국 군부 일당독재는 얼마 안 가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사분오열 속에 헤매던 진보정치가 촛불이 만들어 준 시간과 기회를 이용해 그것을 벗어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 2017년의 ‘6은 과연 어떻게 새로운 ‘7, 8, 9 대투쟁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지가 남은 과제일 것이다. 촛불혁명에 담겨있던 사회혁명의 맹아를 어떻게 싹 틔우고 발전시킬지가 고민돼야 한다.

 

지배계급과 기존체제가 폭력과 탄압을 앞세우고 어떤 완충장치도 허용하지 않을 때 오히려 문제는 간단할 수 있다. 그럴 때 저항세력은 어떠한 정당성도 없는 권력을 과감한 기동전으로 치고나가며 정치권력의 타도와 사회경제 체제의 변혁을 연결시킬 수 있다.

 

반면에 설득과 동의가 등장하고 몇 겹의 완충장치가 기성체제를 감싸고 있을 때, 기동전뿐 아니라 진지전이 더 필요해진다. 저항세력 내부의 차이와 다양성을 갈등과 분열이 아니라 더 힘 있는 연대로 발전시키는 지혜가 더 필요해진다. 사람들의 모순된 의식을 파고들어가며 정치권력의 변화와 사회경제적 체제 변화를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해진다.

 

촛불의 바다 속에서 함께 구호를 외치고 함성을 지르며 걸었던 그 벅찬 감정과 기억을 되 돌이켜 보자. 그 속에서 우리가 함께 외쳤던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세월호의 진실이야말로 계급적 요구가 아닐까, 시민자유발언의 생생함과 분노 속에 계급투쟁은 나타나고 있었던 것 아닐까, 이것이 21세기 새로운 투쟁과 혁명의 가능성이고, 우리는 그것을 과거의 틀에 끼워맞추려다 헤매고 있는 것 아닐까.

 

(기사 등록 20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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