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퀴어퍼레이드의 부스 심사 결과가 발표되고 나서 민주노총도 입장을 발표(http://nodong.org/statement/7412956)했고 서울퀴어퍼레이드 기획단장의 글도 나왔다. https://www.facebook.com/1230507146/posts/10213577743377841/ 이를 둘러싼 여러 주장과 논쟁이 벌어지면서 '다른세상을향한연대'에서도 흥미있고 유익한 토론이 진행됐다. 이에 더욱 생산적이고 열린 토론에 보탬이 되길 기대하며 그 과정에서 나온 글들을 글이 나온 순서대로 묶어서 싣는다.]
● 섣불리 재단하기보다 고충을 헤아렸으면
전지윤
서울퀴어퍼레이드 부스 심사 결과에 대해 일부 사람들이 함부로 재단한 것에 대해 엊그제 서울퀴퍼 기획단장이 답답함을 호소한 글은 참 인상적이었다. 다른 이의 고민과 상처 등을 헤아리지 못하고 쉽게 재단, 공격하는 우리의 잘못된 문화를 돌아보게 했다. 물론 몇가지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지금의 매우 열악한 사회적 조건과 상황을 감안할 때,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타협들로 이해하는 게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직후에 올라온 ‘노동자연대’의 이 문제에 대한 기사는 참으로 당혹스럽고, 너무 실망스럽다. 이런 설명과 호소를 아예 못본듯이 섣부른 재단과 비난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들은 “모두 탈락”했고 대사관과 기업 부스들은 “더 늘었다”며, 기업들이 돈을 이용해 “손쉽게 부스를 얻”었다고 단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조직위의 주도자들”이 “대부분 중간계급 출신”이며 “권력자 일부와 동맹”을 맺으려는 “전략을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동자연대가 몇년 전 강남역 사건에 대한 부적절한 주장 때문에 부스 신청에서 탈락했던 걸 끄집어내 퀴퍼조직위를 비난한다.
자신들이 “핑크워싱”을 비판하며 “노동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의 연대를 주장”해서 “관련없는 쟁점으로” 퀴퍼조직위에게 보복을 당했다는 논리다. 그 연장으로 이제 노조들의 부스 신청 탈락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즉, 퀴퍼조직위가 좌파, 노조, 기층 운동과 연대는 관심없고 기업이나 서방 대사관들과 동맹을 중시한다는 비방이다.
어렵고 열악한 상황에서 분투해온 활동가들을 “중간계급”이라고 낙인찍는 이런 재단은 악의적일 뿐 아니라 현실에 별로 근거하고 있지도 않다. 동성결혼은커녕 기본적 권리도 인정받지 못하고 극단적 혐오, 차별에 시달리고, 기득권 주류세력의 핵심 타켓이 돼 공격에 시달리고, 군대에서 색출당하고, 집회나 행진 장소도 구하기 어렵고, 자살로 내몰리고... 이게 ‘제국주의 강대국이나 권력자’들과 긴밀히 ‘동맹’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인가?
한국사회에서 기업들이 광고 효과를 노리고 성소수자 친화적 이미지를 내걸 정도로 차별과 편견이 약화됐고 거대한 시장이 형성된 상황인가? 지난해 인천퀴퍼에서 벌어진 일들을 되돌아보면, 그게 사실이면 차라리 좋겠다.
올해 퀴퍼 부스 심사 결과를 대략만 살펴봐도 기업과 권력자보다는 일상적으로 소외된채 어려움 속에 힘들게 활동해온 작은 단체들에게 수만 명 앞에서 자신들을 알리고 목소리를 낼 기회를 주는데 분명한 강조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민주노총만이 아니라 그런 작은 단체들도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노동자들을 대변할 것이다. 자주 큰 스피커가 주어지는 메이저 단체들보다 그런 마이너 단체들이 탈락했다면 그게 더 아쉬웠을 수도 있다. 퀴퍼에서 그런 작은 운동단체들의 홍보물이 기업 홍보 굿즈들보다 훨씬 많은 것도 명백하다.
더구나 몇 년전 노동자연대의 부스 신청이 거부된 것은 ‘노동운동과 연대를 주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강남역 사건에 대한 잘못된 입장 때문이었다. ‘페미니스트들이 조현병 환자에 의한 묻지마 살인을 여성혐오 사건으로 둔갑시켰다’는 게 노동자연대의 입장이다.
부스 허가 철회까지는 과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노동자연대의 이런 입장이 당시에 사람들에게 준 상처는 이해가 된다. 이런 것을 돌아보긴커녕 그후에 노동자연대 지도부는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괴롭힘과 2차가해라는 잘못들을 더했다. 며칠 전에도 또 피해자와 피해자를 도운 여성, 인권, 소수자, 좌파 단체들까지 전방위적으로 비난하는 장문의 온라인 문건을 몇 개나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들을 비호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며 입을 막는데 유리하면 법적소송, 판결 이용과 언론중재위 제소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런 행동들을 만약 ‘여성, 소수자 운동과 연대는 팽개치고 부르주아 국가기구와 동맹을 추진’했다고 한다면 노동자연대 지도부는 뭐라 답할 것인가?
그러니 제발 안 그래도 온갖 혐오와 공격에 노출돼 있는 동지들을 섣불리 재단하고 또다른 공격을 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년 동안의 온갖 고생 끝에 거대한 축제를 만들어낸 노고를 인정하고,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수고가 있을지부터 헤아리면 좋겠다.
50여명이 참가하는 토론회나 몇 번 조직해본 나로서는 온갖 방해 속에 수만명이 참가하는 행사의 안전하고 성공적 진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고민, 고생, 비용, 스트레스가 상상도 안 된다. 남을 쉽게 재단하기 전에 스스로의 허물부터 성찰해 나갔으면 좋겠다.
● 정당한 비판과 항의들을 악플로 쉽게 단정하지 말아야
윤미래
트위터를 비롯한 인터넷 공간에 언제나 분노와 멸시의 말들이 과한 것과 별개로, 사회적인 논란에는 언제나 차분하고 논리적인 말과 욕설 비방이 다 섞여 나오게 마련입니다. 거기에 '모욕과 조롱은 문제다'라는 말만 반복하는 것은 '내용적으로 반론할 말이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죠. 문제제기 모두를 '모욕과 조롱'으로 싸잡아서 비판하는 사람들 모두를 악플러로 만드는 데까지 이르면 무책임한 걸 넘어서 비겁하고요. 특히 활동가이자 단체의 ‘장’으로서 발표하는 입장이라면 이래서는 안 되는 겁니다. 한채윤 선생님의 입장 발표로, '기업과 대사관은 몇이나 있는데 노동자 단체는 하나도 없는 게 말이 되느냐'는 (많은 경우에 퀴어 당사자들로부터 직접 나왔던) 문제제기들은 죄 “SNS에 한 줄 쓰는” 손쉬운 소비 행위가 되어버렸네요. 트위터를 사용하는 활동가들은 오프라인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줄 아십니까?
이쯤 되면 서울 퀴어퍼레이드가 말하는 '다양성'이 도대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기한 경험을 많이 해보자는 취향의 문제입니까, 아니면 주변화되기 쉬운 약자들에게 목소리를 주기 위한 기치입니까. 후자라면 부스 공간 등의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분배는 어떤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합니까.
사회적으로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다수자에게는 몇이고 돌아가는 공간이 노동자라는 소수자 집단에게는 단 한 칸도 배분되지 않았을 때 축제의 지향성이 불평등에 순응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우려하면 음모론자가 되는 것입니까. 정치인이며 기업가들, 심지어 종교 강연에조차 곧잘 자리를 내주면서 소수자 단체에만 트집을 잡아 공간 사용을 불허하는 대학이나 지방자치단체들은 앞으로 항의하는 퀴어들과 연대자들을 음모론자라고 낙인찍어도 됩니까. 노조에서, 정치조직에서, 정당에서 몫을 요구하는 성소수자들은 '자원이 한정되어 있어서 모든 사람이 원하는 걸 다 해줄 수 없고, 열심히 활동하시는 지도부 동지들이 다 정당한 절차로 결정했으니 가타부타 따지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납득하고 돌아서야 되는 겁니까. 이게 정말 '떨어져서 기분이 나쁘다'는 말로밖에는 안 들립니까.
학교고 교회고 언론이고 사회의 일상은 온통 기업과 정치인들과 서구 국가들이 얼마나 민주적이고 선진적인지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합니다. 그걸 모르고 그게 부족해서 퀴어 퍼레이드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퀴어 퍼레이드가 퀴어 굿즈 박람회나 특별 판매전이 아니라 퀴어 해방을 외치는 정치적인 축제라면 그런 찬미의 홍수에 묻혀 들리지 않는 약자들의 목소리에 당연히 우선권이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어떤 소수자의 해방이든 더 나은 사회를 바라는 보편적인 지향에 기반해서만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소수자들 내부의 소수자들이 안에서 또다시 비가시화되고 배제되지 않도록 운동이 소수자들 안의 상대적 강자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이미 숱하게 나왔던 말들을 이렇게 길게 되풀이하고 있는 것 자체가 참담한 심정입니다. 부스 선정의 결과보다도, 그것이 나오게 된 경과에 대해 기획단이 들려줄 말이 고작 이것밖에 없다는 사실이 충격적이고 우려스럽습니다. 서울 퀴어퍼레이드 기획단이, 나아가 한국의 퀴어 운동이, 쓴소리에 귀를 닫고 자부심을 내세우며 해외의 많은 퀴어 운동들이 밟았던 전철을 똑같이 밟지 않기를 그저 기도할 뿐입니다.
● 아쉬움과 과제를 균형있게 제시하며 나아갈 길을 함께 고민했으면
박철균
이번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민주노총 세 단위의 부스 신청이 모두 탈락한 것에 대한 논쟁이 치열합니다. 한채윤 단장의 입장이 SNS에 올라 온 이후에도 단장의 입장에 동의하시는 분들과 그렇지 않고 여전히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분들로 양분화 되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논쟁이 더 커진 것은 이번 서울퀴어문화축제가 20주년을 맞이한다는 점, 그리고 진보/노동 진영에서 민주노총의 상징하는 바가 크기 때문입니다. 이 논쟁은 퀴어문화축제 본 행사일이 6월 1일이 지난 후에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의도적으로 민주노총을 배제하는 등 노동배제적으로 가고 있다는 주장, 더 나아가 이젠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지금의 진보 운동과 거리를 둔 중간 계급의 운동화 되고 있다는 주장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일단 민주노총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 주요 굵직한 진보운동 단체 및 연대체가 이번 퀴어문화축제에서 부스 선정에 탈락하고 이로 인한 상실감 및 우려에 대한 심경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채윤 단장의 SNS 입장문이나 민주노총의 입장문 등을 봤을 때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준비하는 분들이 의도적으로 민주노총을 배제했던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선정을 하는 과정에서도 신청서를 냈던 단위와 소통을 했었고, 선정 후 문제가 불거지던 과정에서도 피드백은 있었음을 해당 문서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애시당초 배제의 성격을 띄었다면 이런 식의 피드백도 없었고 민주노총의 성명서도 논조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특히 성명서 부분에 "또한 민주노총과 가맹 조직의 부스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은 점은 조직위원회의 배제가 아니라 저희의 불찰과 미비함에서 기인했기에 이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는 없기 바랍니다."라는 부분도 만약에 노골적인 배제였다면 적히지 못했을 부분이라고 봅니다.
물론 아쉬움도 있습니다. 이렇게 노동운동 부스, 굵직한 인권법 제정 연대체가 단 하나도 선정되지 않고 탈락한 것은 처음입니다. 그런데, 한채윤 단장의 입장문에선 부스 선정에 대한 고민은 있어 보이나, 부스 선정 기준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됐고, 그래서 이렇게 선정이 결정되었다라는 내용은 부족해 보입니다. 즉, 민주노총 측에서 불찰과 미비함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보완할 만한 부스 계획 마련이 무엇일지 서울퀴퍼 측에서 잘 제시했으면 이렇게까지 논란이 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채윤 단장의 입장문은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의 감정을 호소하는 내용은 확실히 알겠으나, 구체적인 업무 방향에 대한 내용은 보이지는 않아 보입니다. 해당 입장문에 댓글로 선정 기준을 또 되물어 보는 단위가 있는 것이 그 증거겠죠.
또한 퀴퍼 준비측의 얘기와는 다르게 반이민, 반난민, 그리고 반성소수자적인 트럼프가 있는 미대사관이 선정되는 것은 쉽게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한채윤 단장이 얘기한 대로 미국 대사관이 지난 세월 서울퀴어문화축제에 기여한 바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대사관이 한 나라를 대표하는 타국에 소재하는 기관인 만큼 트럼프와는 아주 상관이 없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러쉬나 구글 등의 기업도 역시 서울퀴어문화축제에 함께하고 기여한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특히 한채윤 단장이 얘기한 대로 러쉬 같은 경우는 노동자들이 직접 돈을 십시일반해서 매년 참여하는 케이스입니다.
다만, 해당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부스를 내는 기업의 경우는 주 목적이 성소수자 운동 연대인지 아니면 기업 마케팅 및 물품 판매인지에 대한 의심이 사람들에게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기업과 대사관의 재정적이든 적극적인 참여든 여러 헌신은 한채윤 단장의 글을 통해서 의의가 남을 수 있지만, 정작 연대 단위로서 민주노총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의 연대와 헌신은 그보다는 작은 것이고 의의가 퇴색되는 것인가 하는 아쉬움도 듭니다.
그럼에도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상당히 노동 배제적으로 가고 있고 노동운동과는 거리를 둔다는 식으로 보는 것에는 이견이 있습니다. 여전히 서울퀴퍼만 했다하면 쌍심지를 놓고 맞불집회로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록 민주노총과 차제연 등이 탈락했어도 노동자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민주노총 부스는 아니더라도 진보정당이나 시민사회단체, 여성운동단체 등 각종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떨어진 단위가 많은 만큼 또 그 자리를 작은 인권사회운동단체들이 들어 온 것은 긍정적으로 봅니다. 민주노총도 깃발을 들고 부스가 아니더라도 행진에서 함께 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한 쪽만을 일방적으로 잘못했다고 하는 것보다는 이번 사건으로 인한 아쉬움과 과제를 제시하며 성소수자운동이 나아갈 길을 함께 고민했으면 합니다. 이 논란이 단지 논란으로 끝나지 않고 잘 평가되어서 앞으로 서울 퀴어문화축제든, 성소수자 인권운동이든 계속해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좀 더 진보적이고 노동 중심적인 행사와 운동이 될 수 있도록 잘 토론하고 잘 평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퀴퍼조직위가 올린 부스 심사 선정 기준
(기사 등록 20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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